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인은 왜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욕을 먹을까?
왜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청소년들의 희망 순위에서 최하위에 속하는 것일까?
기업가들은 전면에서는 정치인들에게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붓다가도 왜 뒷문에서는 그런 정치인과 연줄을 갖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탕진하는가?
사람들은 과연 2~5년에 한 번 정도 투표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정치가, 정부가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1980년 이후 현재까지 시민들이 정부와 정치권, 재벌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여 수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가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집권당과 대통령, 시장과 군수가 바뀌었음에도 왜 빈부격차와 재벌편중은 심해지고, 민주주의는 후퇴, 중소기업은 몰락, 고물가와 고실업, 사교육과 학력과잉, 자살자와 비정규직은 갈수록 늘어나는가?
.....
 
위 질문들은 최근들어 내가 사회와 정치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가 스스로 찾기 위해 읽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우연히도 저자로부터 직접 책에 대한 짧은 강연도 듣게 되어 질문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몇 사람과 같이 토론도 했다. 이 책에서 연결된 여러가지 고민거리 중에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형성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정치가 우선한다>를 다음에 읽고 싶다. 
 
저자는 자신의 궁극적인 질문은 현실 속에서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지 않을 방법이 무엇일지, 떼레야 뗄 수 없는 정치의 세계와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또 정치가 제공하는 긍정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누구에게 기대를 걸까를 즐겁게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그 질문들에 대한 단초를 구하기 위해 한국의 현실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좋은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발간한 것이다. 저자는 진보신당 전대표인 심상정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2010년 11월에 진행된 저자의 5회 강의를 이 책을 정리했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하고자 한다." 
이 말은 저자가 자신의 선생이었던 최장집 교수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정치, 정당, 정치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나 대책없는 야유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일 때가 많다는 것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별다른 깊은 생각없이 답답하고 짜증나는 정치분야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드러낼 때 줄곧 사용해온 것이다. 지구상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태동했고 어떤 과정을 겪어 왔는지 돌아보면 독재자, 기득권자, 엘리트, 자본가, 권력자들이 태생적으로 민주주의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80년대에 대학가 주변 술집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내뱉던 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를 연상하면 된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대놓고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없다. 그 대신에 그들은 언론을 조작하고 민주주의를 희화화시키고 구조적으로 민주주의가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책임을 특정세력에게 떠넘기는 것이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이 된 것이다.
 
1장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에서는 정치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인간의 사회 활동 가운데 정치가 갖고 있는 특징은 어떤 것인지, 누군가 정치를 한다고 할 때 그가 감당해야 할 윤리적 문제들은 무엇이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정치가가 갖춰야 할 자질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대학가와 지식인 집단에서, 노동계와 사회 각층에서 태풍처럼 몰아치던 '혁명'의 열풍은 구공산주의 체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사그라졌다. 하지만 그 태풍과 같던 '혁명'이 필요하던 근원적인 상황과 '혁명'이 원하던 궁극적인 목적은 여전히 이 땅에 남겨져 있다. '혁명'이 사그라졌다면, '혁명'의 모델이 사라졌다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2장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에서는 정치적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민주주의가 열어 놓고 있는 가능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 권력에 대한 태도, 소통의 방법과 말의 힘을 깊이 자각해야 함을 말한다. 지난 번에 읽은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도 도움이 된다. 결국 이 장에서는 "정치와 운동은 별개다"를 말하고 있다.

3강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점과 시각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우리의 민주정치가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것에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즉 현대 민주주의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을 말한다. 그 출발은 보통 시민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은 갈등, 경쟁, 리더십, 그리고 조직이다. 문제는 대중권력의 한계를 감안하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를 조직하는 방법이다.

4장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들]에서는 민주주의 초기 단계에서 진보파들이 했던 정치적 경험을 다룬다. 먼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유럽의 좌파 정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살펴보고, 우리의 경우에는 어땠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서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정치론을 이야기한다. 민주화 운동에서 민주주의 정치로 변해야 한다. 국가, 정당, 당파성, 이념에 대해 현실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민중을 위한 것이며, 거꾸로 민중이 그러한 이념적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04년 원내 진입과 함께 어렵게 만들어진 진보의 정치적 자원이 탕진된 것은, 정파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지도부의 부재로 인해 정파의 폐해가 무제한으로 허용되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강한 정당의 부재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축소하고 선거를 중간계급 위주의 것으로 만든다."

5장 [이런 정치를 원한다] 에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가들이 가져야 할 문제 인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진보적이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좀 더 깊고 넓은 인식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권력을 이해하고 선용해야 한다. 좋은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리더십 있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우리 모두 '정치적 이성'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불활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 기초위에서 진보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가 진보임을 내세워 민주주의와 정치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이 책을 통해 얼핏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정치와 정당, 대의제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만으로 내뱉는 정치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 몸으로 부딪혀서 정치와 정당 속에서 한계와 가능성을 알아내고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고 하고 있느냐이다.
 
* 책 속의 책 :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사울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버락 오바마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샤츠 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마키아밸리 <군주론>,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데이비드 헬드 <민주주의의 모델들>
 
* 책 속의 문장

- 이 책에서도 필자는, 정치를 하게 되어 있고 또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정치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란 놀라운 분야이고, 소명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가가 되는 것은 도전할 만한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p.15)

- 권력의 부패는 권력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다. (중략) 권력은 삶의 진정한 본질이며 원동력이다. 그것은 몸에서 피를 순환시키고 생명을 유지하는 심장의 힘이다. 그것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위로 솟아올라 단결된 힘을 제공하는 적극적 시민 참여의 힘이다. (중략)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중략) 성 이그나티우스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한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p.59)
- 조직가에게 타협은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타협은 실질적으로 활동할 때 언제나 그 안에 존재한다. 타협은 거래를 하는 것인데, 거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숨고르기, 크지는 않지만 보통 정도의 승리를 의미하며, 결국 타협은 획득하는 것이다. (중략)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헐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중략) 타협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p.60)

- 요컨대 갈등 없이는 그 누구도 인간들의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이런 갈등 때문에 불러 들여진 정치체제이고 또 갈등 때문에 존재한다. 갈등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다.(p.99)
- 샤츠 슈나이더에 따르면 "기존의 직접 민주주의 이론은 ‘인민’이라고 불리는 보통의 시민을 민주주의의 보루로 이상화해 놓고는 정작 현실에서 민주주의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그 책임을 모두 이들에게 떠넘기는 일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지식인들이 정치적 사안에 따라 위대한 시민을 칭송하는 일과 욕망에 빠진 시민을 탓하는 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못 참아 했다.(p.106) - 이처럼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는 이른바 정치 부재론 내지 정치 종언론은 정치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쉽다. 오로지 혁명이 중요하고 혁명 이후에는 하나의 진정한 정치형태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다. 정치는 인간이 천사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꼭 있어야 하는 불가피한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정치를 선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지 정치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p.139)

- 혁명은 예술적 상상력과 같은 물리적 강권력의 위험성이 약한 곳에서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혁명론을 갖고 정치적 실천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혁명론은 무엇보다도 종말론적 사고를 강화하기 쉽고, 실제 혁명에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갖는 반정치적인 사고 경향 때문에 혁명 이후를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기 쉽다.
이상 사회를 위한 혁명적 단절론을 앞세워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삶의 모든 것을 걸라고 인간을 미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평균적 한계 위에서 서로 협력하고 나날이 진보하는 것의 가치와 보람을 더 중시해야 한다.(p.140)

- 정치의 방법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학의 기본 전제는, 정치란 개인의 차원 나아가 운동성 내지 도덕성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갖는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초심’, ‘도덕성’, ‘운동성’과 같은 도덕률이 진보의 영역에서 정치의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접근은 무엇보다도 정치를 현실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정치의 현실이 포착되지 않는 조건에서 정치의 방법으로 힘을 조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도덕성은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 강제될 수 없는 것이다. 도덕성이 정치적 행위를 규제하는 기준이 될수록 정치가 도덕적일 수 있는 기반은 파괴된다. 우리 사회처럼 도덕성이 강조되는 정치도 없지만 한국 정치가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은, 한국의 정치가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성을 따지는 동안 실제 개선해야 할 정치의 현실을 놓쳐 버리고 결과적으로 부도덕한 정치 현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p.143)

- 내가 운동권 내지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갖는 가장 큰 불만은, 분명 그들 역시 정치를 하고 권력을 이용하고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투고 있는데도 늘 언어의 구사에 있어서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권력과 이해관계에 초연한 역사적 역할자로 정의하거나, 자신은 안 그런데 상대가 권력과 이해관계를 다툰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또 자신은 원치 않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권력과 이해를 다투게 되었다는 식의 자기 위선과 변명의 문법이 일상화되었다.(p.144)

- 요컨대 정치적 이성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 기초 위에서 진보가 진보다워야 할 것이다. 진보적인 것을 위해 정치를 부정하면 안 된다. 진보는 지금보다 더 그리고 제대로 정치적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허용하고 있는 정치라는 가능의 공간을 지금보다 더 활짝 열어야 한다. 진보의 열정이 정치적 이성과 만나고 그것이 좀 더 넓고 풍부한 인간적인 기초 위에서 성장해 갈 때 진보 정치는 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매력을 갖게 될 때 진보는 한국 정치의 주변을 박차고 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심적 기여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p.173) 

[ 2011. 4.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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