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내일 진행될 공부모임의 교재이다. 지난 번 공부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이 책을 교재로 결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인문사회과학 도서가 교재였기에 ’미술’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는 신선하다. 더군다나 이번 공부모임에는 공부모임 참가자인 어떤 분이 미술과 관련한 연극도 관람하게 된다. 연극 제목은 <드로잉 쇼 히어로>이고 [명보아트홀]에서 내일 함께 관람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내일 다른 저녁 약속이 있기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다. 쩝...
 
이번 연극 관람건도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 미술이나 예술분야는 쉽게 이야기하면 ’서로 운이 따르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주변에 미술이나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도 했고 가까운 사람 중에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가끔 접한 미술과 예술에 친밀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이나 예술을 가까이 해보려고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전체 미술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미술과의 인연은 끝났다. 대학의 전공이 ’건축학’이었지만, 1학년 건축도학 수업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투시도와 조감도를 그리는 것이 건축 디자인에서 어떤 부분을 배울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교수들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나에게 있어 ’건축’이란 ’내 스스로 내가 살고 지낼 집을 짓는다’라는 수준에 불과했다. 대학 입학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가 살 집을 내가 지을 수 있는 것은 건축 설계 능력이 아니라 경제력을 통해 가능하다’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닫고 나서 철없던 내 생각을 비웃었다.
스케치 실력이 좋은 대학 동기들이나 대학 동아리의 탈반이나 미술,음악 계통 동아리의 활동을 가끔 바라보면서 간혹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가 미술이나 예술에 자질과 흥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에 불과했다.
지난 겨울에 런던에 갔을 때, 영국의 현대미술관이나 국립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 오래된 성당을 주로 구경하고 다녔지만 ’새로움’이나 ’신선함’ 이외에 여전히 미술적 감흥이나 감동은 받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미술이나 예술이란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만 반드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환경과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면 누구나 접할 수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성과 열정을 다듬고 키우는 것에도 미술과 예술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활동에서 벗어날 정도로 나이가 들게 되면, 책이나 여행 이외에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쓸만한 활동으로 미술이나 예술은 꽤 좋아 보인다.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제라도 내가 미술이나 예술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도전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20대 이후 계속 드는 고민이고 평생 동안 따라다닐 숙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나는 ’미술’에 대한 정의나 개념, 역사나 구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가끔 미술과 예술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랐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첫 번째 안내서 역할을 해주었다.
미술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미술이 있었는지, 미술의 역사는 어땠는지, 누가 미술의 주체인지에 대해... 
 
이 책의 기본 아이디어들은 저자가 198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졸업반이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동시대 미술, 문화, 비판이론’이란 강의를 하며 만들어졌다. 저자는 "미술과 근대적 주체 개념은 물론 문화에 대한 고루한 편견과 신화를 효과적으로 해체시키는, 그리고 학생들이 비교적 세련된 관점으로 전공 분야에 접근하는 것을 도와주는 예비강좌들을 마련했고 강의를 정리해 책으로 출판"(p.xi)한 것이다.
 
-----------------------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크키는 누구? -------------------------
미술사가로서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 대학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 전자예술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The Power of Display: A History of Exhibition Installations at the Museum of Modern Art》(1998), 《Dennis Adams: The Architecture of Amnesia》(1990) 등이 있으며, 주로 근현대 미술과 문화에 관한 탁월한 저술가로 정평이 나 있다. ---------------------------------
 
저자는 ’미술, 문화, 비판이론’을 10개의 챕터로서 책으로 구성했다.
1. 미술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지금까지 미술에 대해 알고 있었던 오래된 편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2. 미술과 근대적 주체 : 근대를 거쳐오면서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미술에 대한 개념도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밝히고 있다.
3. ’예술’이라는 용어 / 4. 미학 : 예술의 이론 : ’예술’과 ’미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에 대해 서술한다.
5. 미술창작이라는 특권 : 예술이라는 분야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 작가들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다.
6. 아카데미 / 7. 박물관 : ’아카데미’와 ’박물관’의 등장과 역사, 그리고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8. 미술사와 모더니즘
9.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10. 오늘날의 미술과 문화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장-앙투안 와토의 [키테라섬의 순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과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까지, 전세계의 사람들 대부분이 훌륭한 미술(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모든 작품들이 ’미술이 아니(었)다!’라고 선언한다. 
<아담의 창조>

 <모나리자>

<키테라섬의 순례>

<밀로의 비너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 * 역자 박이소는 누구인가? -----------------------------
홍익대학교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박모’라는 이름으로 33회의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했으며,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 Minor Injury’를 운영하기도 했다. 1994년 귀국해 SADI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7년 광주비엔날레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2004년 부산비엔날레 참여작가로 활동했다. 2001년에는 대안공간 ‘풀’ 개인전과 2002년 에르메스상 수상기념전 등을 가졌다. 국내외에서 한창 주목을 받고 있던 2004년에 작고했다. 번역서로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외에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존 스토리 지음, 현실문화연구, 1999)이 있다. -------------------------
 
저자는 책의 첫 쪽부터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뿐만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 니이케상, 중국의 봉헌 그림 등의 사진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이 모든 작품들이 정작 ’미술이 아니다’라고 한다. 지금까지 독자들이 갖고 있었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드리면서 저자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에 나열한 작품들은 오늘날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라 이야기한다.

’미술’은 근대, 특히 지난 200년간의 발명품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들과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그 무엇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다양한 제도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된다. 제도는 사물들에 그 경계와 관행을 설정해 준다. 이는 액자틀이 그 안에 있는 것을 회화로 보이게 만들고, 좌대가 그 위에 있는 것을 조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과 같다."(p.28)
예를들어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미술로 창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 이미지는 단지 로마 교황의 권위와 성스런 의식을 위한 시각적인 은유였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로서 이 프레스코화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미술은 아니(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또한 마찬가지다. 이 5인치짜리 인물상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그리하여 이 상을 미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모두 현대에 와서의 일이다. 이 비너스상은 제작될 당시 단지 일상용품이었을 것이다. 이 조각상을 예술작품이라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들의 속단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1913년 마르셀 뒤샹이 만든 작품 ’기성품’은 이러한 미술 자체에 대한 반성과 그 토대에 대한 공격에서 발생한 반미학적 경향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니이케 상>

<중국 고대 봉헌 그림>

<베르사이유 궁전>

- 마르셀 뒤샹 <기성품>


뒤샹, 피카소, 몬드리안, 폴록, 그리고 워홀 등 저자는 근대 이후의 작품들을 ’미술’이라 정의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가 예술에 대한 영감을 바탕으로 스스로 창조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미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미술의 개념은 개인이 자신의 인간성을 인식해 가는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된 후 생겨났다. 즉 미술은 유럽에서 군주제의 해체와 동시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는 말이다. 이로서 미술은 교회(종교)나 왕권(정치)의 권위를 위해 봉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직 작가 자신이 스스로 얻은 영감에 의해 자유롭게 창작할 뿐이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은 ’자유시장’ 내에서 전시, 교환됨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미술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예리한 지적과 통찰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작품을 보는 새롭고 혁신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미술의 역사를 거쳐간 여러 사조들 - 초현실주의, 인상주의, 추상파, 표현주의, 입체파, 아방가르드, 미래파, 다다이스트 등 - 에 대해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미술에 대한 초보적인 교재로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해석하는 미술과 미술이론은 물론 문화연구와 인문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또다른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저자는 책 속의 곳곳에서 ’제도화된 시각’으로서의 미술이 간직하고 있는 숨은 이야기들 아주 재미있게 들려준다. 이 숨은 이야기들은 오늘날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저자를 통해서도 이반 일리히의 ’가치의 제도화’에 대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학교 없는 사회>) 근대의 산업사회 생산양식은 미술과 예술에 대해서도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미술가’와 ’예술가’, 그리고 화랑, 경매, 미술관, 음악당 등으로 제도화시킨 것이다. 마치 미술관에 자주가서 그림을 보고 음악당에 가서 클래식을 들으면 ’아름다움’을 느낀 것처럼... 
 
* 책 속의 문장
-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그 무엇을 말한다.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소용이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미술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제도들(화랑이나 미술사, 미술출판, 박물관 등)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서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p.28)
 
- 오늘날 서구의 미술관은 텔레비전 방송국이나 대기업, 신문사 등 대중매체에서 후원, 선전하는 대규모 인기 전시회 장소로 변모하고, 회화 도록, 티셔츠, 텔레비전 쇼 등으로 포장되어 팔린다. 구내서점, 레스토랑, 카페 등 관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필수적이 되었고, 한 코너에서는 기념품, 포스터, 장신구 등을 판매하는 상업 활동까지 벌어진다. 미술관 방문은 오늘날의 대표적인 여가 활동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서구의 대도시에서는 미술관이 국제적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에 큰 구실을 하고 있다. 미술관의 이념적 폐허화를 주장하는 시각이 많음에도,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미술관이 지어지고 있는 현상은 그것이 국가와 대기업의 문화주의 및 대중매체와 결합해 과거의 조건에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p.173)
 
- 어떤 의미에서 피카소는 좁게는 창작에 대한 미술가의 권력이라는 신화를,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현대 남성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신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가의 창작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피카소와 브라크, 뒤샹은 서구문화에서 의미와 가치들이 창조되는 방식을 탐구해 자신들과, 작품, 그리고 세계에 대해 보다 많은 지식과 권력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p.225)
 
* 책 속의  책 : 존 버거 <보는 방법 / 어떻게 볼 것인가> 
 
[ 2011년 6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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