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그래? - 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 26 쏠쏠 시리즈 1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지음 / 콜라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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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

잘난년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위하여!

회사생활 접은지가 언제인데 '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26' 이 내게 필요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조직생활이란 것이 회사생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내겐 언니들이 아닐것 같긴 하지만 여하튼) 언.니.들이 알려주는 노하우를 여지껏 접해보지 못했었기에 궁금했다. 자기만의 비밀을 꽁꽁 감춰둔 언니들이 아니라 대놓고 까놓고 알려주는 언니들의 노하우를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명에는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이라고 써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분위기가 어떤 것일지 아마 짐작이 갈것 같다. 내 생각엔 슬기로운 00생활 드라마 딱 그느낌 맞다.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도 유쾌하고 따듯하게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

저자들은 직장생활 20년차부터 7년차까지, 다양한 직급의 여성 6인으로 구성된 팟캐스트 팀이라고 한다. 2017년부터 시작한 팟캐스트가 어느덧 4년째 직장인들의 다양한 사연을 받아 상담을 진행해왔다고 하니 그 사연만으로도 이야깃감이 많았겠지만 남들 얘기보다 본인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냈기에 그 솔직함에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주변에 열 명이 있다면, 한 명은 나를 좋아하고, 일곱은 무관심하고, 둘은 나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회사에는 너무나 많은 협업부서가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게 다반사다. 일이란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하다보면 필요에 따라서 당연히 싫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내가 신경쓴 것은 열 명의 사람 그 누구에게서도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한소리를 듣는 결과를 낳았다. (p. 29)

책은 직장생활에서 한번쯤 겪었음직한 상황인 26가지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위 내용에서 느껴지다시피 굳이 직장생활에 적용시키지 않아도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 활용법'이 안내되어 있지만 이 활용법은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유용한 활용법이다. 나같은 경우엔 직장 바깥 사람으로서 하지만 꼭 직장이 아니어도 사람이 모이면 하게되는것이 사회생활이니 그런 사회적 관계에 반영해 가며 읽게 되었다. 저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듯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여자들은 이 사회와 조직, 어디에나 있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 (p. 9)' 는 모토는 어디에든 적용가능하다.

'N잡러' '다능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여러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시대다. 전자책을 내면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케터나 큐레이터가 될 수도 있다. 클래스101이나 틸잉에서 강의를 열어 강사가 되는 것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창작자가 되는 것도, 북클럽을 통해 커뮤니티 운영자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각종 플랫폼의 범람으로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길이 많아졌다. 회사가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회사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면 된다. (p. 89)

나이들어서 직업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고 있다. 뭐가 될지 모르지만 뭐가 되기나 할런지 모르지만 여하튼 꾸준히 읽고 쓴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그 변화를 다 알지도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눈팅해가며 일단 지금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고 있다. 비교적 정적인 내가 봤을때 이 책 저자들의 열정이 참 대단하다 싶다.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 프리랜서 로 나이도 직급도 직업도 모두 다른 여성들이 모여 가감없이 직장생활에 대하여 만담 대잔치를 열고 있는 현장이 눈에 그려지면서 그들의 열띤 목소리가 책속에서 들리는 듯 했다. 그들의 모토에 응원의 박수를 살짝 보태며 속으로 함께 외쳐 본다.

잘난년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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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 도시 멸망 탐사 르포르타주
애널리 뉴위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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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소멸의 미스테리를 풀어내려면

어떻게 번성하고 유지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얼마전 도시의 역사로 세계사를 엮어내는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 세계사 속 도시들은 과거의 영광을 잃은 도시도 있었고 꾸준히 발달중인 도시도 있었으며 새롭게 부흥하는 도시들도 있었다. 도시의 역사를 보는 것으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기에 도시멸망에 대한 이 책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 속 그 도시들은 왜 사라졌을까?

하지만 이 책은 사라진 도시에 대해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FOUR LOST CITIES 이고 그 사라진 4개의 도시는 차탈회윅, 폼페이, 앙코르, 카호키아 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이 4개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4개의 도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라고나 할까.

'사라진 도시'는 서방의 판타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발견되지 않은 엄청난 세계, 아쿠아맨이 거대한 해마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사라진 도시를 믿고 싶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현실도피적인 이야기에 대한 애호는 아니다. 우리는 세계 대부분의 주민이 도시에 사는 시대에 살고 있고, 기후 위기나 빈곤 같은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대의 대도시는 결코 영원히 유지될 수 없고, 역사적 증거는 지난 8000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도시를 선택하고 버려왔음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간이 소멸될 수밖에 없는 곳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사라진 도시라는 신화는 사람들이 자기네 문명을 파괴했다는 현실에 눈감게 만든다. 이 책은 바로 그 현실에 관한 것이다. (p. 13) -프롤로그 中-

'사라진 도시' 에 대한 판타지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인디아나존스 같은 영화에서 처럼 보물을 가득 품고 미지의 장소에서 신비롭게 나타나는 그런 도시는 사라진 도시여야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앙코르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애당초 앙코르를 사라진 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은 미디어가 조작한 것이엇다. 모든 증거는 그 반대였다. (p. 13)' 고 말한다. 앙코르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고 이 도시엔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그런데 어쩌다 '사라진 도시'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 해답은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 나타났던 도시 폐기 가운데 가장 극적인 네 개의 사례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도시들은 모두 저마다의 종말을 맞았지만, 공통된 실패 요인을 갖고 있다. (p. 13)' 이 4개의 도시들은 모두 우리에게 '사라진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이 도시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라진 것과 용도폐기는 분명 다른 의미이므로.

나는 모든 도시의 죽음은, 우리가 언제나 그 종말을 개별적으로 보기 때문에 미스터리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극적인 소멸의 순간에만 집중하고, 그 오랜 생존의 역사를 잊는다. 사람들이 도시를 유지하는 방법에 관해 수많은 결정을 내리면서 보낸 수백 년의 세월을, 우리가 사람들이 도시인으로 살았던 특별한 방식을 이해해야만 그들이 왜 자기네 도시를 죽게 만드는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 21) 도시 생활의 운명은 인류의 운명에 매여 있다. 우리가 21세기에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한다면 우리 지구 전체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어떤 유해한 도시 생활이 확산할 위험성이 있다. (중략) 도시의 시대가 이런 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차탈회윅, 폼페이, 앙코르, 카호키아는 사라지기 전에 번성하는 문명의 중심지였다. 그들의 어두운 매리는 결코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중략) 결국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가장 좋은 방법을 배운다. (p. 23)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가장 좋은 방법을 배운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 사라졌다고 멸망했다고 묻어둔 도시들을 다시 들춰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현재 도시에서 대부분의 삶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고 이러한 도시 생활이 지구환경을 망치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멈출수가 끊을수가 없다. 그러나 계속 이런식이면 도시의 죽음이 앞당겨지리라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뿐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결국 길들임이란 자연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과 과정에 가깝다. 어떤 생명체는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차단한다. 길들여진 동물·식물·사람은 집 안에 들어와 살지만 야성은 벽에 갇힌 상태다. 차탈회윅의 도시 디자인은 길들여진 생활에 불편하게 적응하고 있는 사회를 반영한다. 그 사람들은 자기네의 야생의 과거에 매달려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억제되기를 원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서 말이다. 이 고대 도시 사람들이 조금 거리를 두길 원했던 것이 또 있었다. 바로 이웃들이다. (p. 43) 인간은 우리가 상시적으로 집에서 살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에 집을 지을 기술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 기술적 혁신 때문은 아니었던 듯하다. 실제로는 거꾸로였을 것이다.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우리에게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보다 영구적인 대상이 필요했다. (p. 46)

'괴베클리 테페 사람들은 황야에서 새로운 사회를 강화하려고 애쓴 반면, 차탈회윅 사람들은 수천 개에 달하는 '자신감 있는 기성사회'의 일부였다. 괴베클리 테페의 거대한 야생 동물 조각품과 색칠한 두개골의 공개 전시는 차탈회윅의 사람들 집 내부에 작은 규모로 존재한다. 차탈회윅에서 이것들은 화덕 및 집과 관련된 사적이고 가정적인 물건이 됐다. 이는 차탈회윅 사람들이 더 이상 어떤 단일 장소와의 일체감을 형성할 긴급한 필요가 없어졌다는 징표일 수 있다. (p. 49)' 괴베클리 테페는 농업혁명을 거스르는 대표적인 유적이고 차탈회윅은 공동생활보다 사생활이 강조된 대표적인 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 둘다 기존의 역사적 '혁명'들에 대해 다른 논리를 요구하는 유적들이다. 8천여년전의 고대인들이라고 해서 석기시대인들이라고 해서 우가우가 하는 침팬지친구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지금의 형상을 갖추고 생활을 영위해온 것은 서기부터 시작되는 고작 2천년이 아니다. 훨씬 그 이전부터 지금과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살아왔음을 알아야 고대시대에 대한 거리감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농업혁명이나 도구혁명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만 인류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곤란하다. 종교가 먼저인지 정착생활이 먼저인지 확신하는 것도 곤란하다. 역사는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유적들은 갈수록 더욱 새로운 진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그 새로운 증거들은 '다산의 여신을 숭배하는 모계사회' 도 잘못된 해석이라고 반박한다.

차탈회윅이 여신을 숭배하는 모계사회가 아니었다면 그 여성 조각상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차탈회윅 일대에서 출토된 소조각상을 연구한 스탠퍼드대학 고고학 교수 린 메스켈은, 멜라트와 그 시대 사람들이 이를 잘못 해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이 유적지를 전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맥락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25년에 걸친 지속적인 발굴에서 얻은 자료들 덕분에 이 여성 조각상들은 보다 복잡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음이 밝혀졌다. (p. 64)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차탈회윅으로 모여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문화의 편익일 것이다. (p. 72) 역사관은 또한 알지 못하거나 그곳에 없는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추상적 관념을 나타냈다. (중략) 이는 유목민 사회에서 공동체라는 것이 모두의 얼굴을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고 생각했을 사람들에게는 철학적인 도약이었다. (p. 75) 도잇에 우리는 차탈회윅 바깥에는 도시인이 거의 없던 시대에 도시생활이 얼마나 이상했을지를 인식해야 한다. (중략) 결국 그들이 견뎌내지 못한 마지막 난관은 서로에게 대처하는 문제였다. (p. 76)' 차탈회윅 사람들이 남긴 유적을 통해 그들의 생활모습을 구체적으로 점검해보고 추론해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그들은 당대에 일종의 실험적인 시도들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실험과 도전들이 거대한 도시를 일구어냈고 발전시켰으며 문제점을 깨닫게 했다. '호더는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을 되풀이한다. '사라진 도시'나 '문명붕괴'같은 용어는 이런 경우에 사용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도시가 변화를 겪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중략) 도시들은 오랜 시간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가 갑자기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도시는 어떤 시기에라도 여러 사회 집단의 복합체다. 그 집단들은 도시 생활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 집단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며, 그들의 세계관을 반영해 도시의 물리적·상징적 구조를 변화시킨다. 더 이상 함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순간까지 말이다. 그러나 차탈회윅에서 그 일이 일어난 순간에조차도 도시를 '잃어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 79)' 세계사의 발견들에 대해 우리는 서양인들의 지식에 기대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우리도 발견한 역사로 배운다. 하지만 그들이 몰랐다고 해서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없어져서야 되겠는가. 도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한 것일뿐이었다. 현재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고 해서 그 중간 과정을 스킵하고 과거의 그 도시는 사라졌었으나 현대에 발견되었다 라고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차탈회윅이 명백한 도시와 초기 형태의 도시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이 도시의 폐기는 도시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에 부합한다. (p. 94)' 도시의 사라짐과 재발견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왜 당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차탈회윅의 흥망성쇠를 상상하며 역사를 맥락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네로가 좋아요!"

나는 너무도 놀라서 커피를 엎질렀지만 메모를 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던 휴대용 컴퓨터는 가까스로 피했다. (p. 118)

"그는 실제로 여성들에게 좋은 일을 했어요"

(중략) 네로는 그의 치세 동안 연극에 돈을 쏟아부었고, 순회공연 수요는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휴즈는 설명했다. 가장 의도하지 않앗던 결과로서 '네로 치하에서 극장이 개방되고 더 많은 여성들이 공연 무대에 참여'했다고 휴즈는 말했다. 여성들의 공연이 흔해졌지만, 여성들은 제작자와 후원자로서 연극 산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p. 119)

폼페이는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로 대부분 기억되고 있다. 폼페이가 화산폭발로 더이상 사람이 살수 없게 된 것은 맞지만 폼페이 사람들의 삶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폼페이 사람들의 생활은 당대의 로마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었다. '식민 역사로 인해 폼페이는 다多언어 사회가 됐다. (p. 106)' 다문화 사회였던 폼페이에서는 해방노예와 여성들의 재산축적이 가능했고 상업의 발달로 계층분화가 뚜렷해지고 있었다. 화산폭발이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지진으로 여러번 위험이 경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왜일까? 차탈회윅 연구에서 중요한 것이 맥락이었다면 폼페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고고학이었다. 폼페이에 남겨진 수많은 흔적들은 데이터화 되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200여년 동안 폼페이를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르티스와 아마란투스가 살던 세계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데이터고고학이 우리에게 상류층 이외 사람들의 삶을 탐구할 새로운 도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는 방식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20세기 사람들이 폼페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추가 발굴을 위해 거듭 이곳을 찾았지만, 그 문화에는 그들이 잊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중략) 그들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로마인들의 눈으로 이 인공물들을 바라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p. 155)

'도시는 집의 집합체라기보다는 화려하고 복잡한 공적 공간이었다. (p. 158) 아무도 폼페이를 버리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 그곳이 불더미에 묻힌 것은 거의 견딜 수 없는 상실로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생존자들은 서둘러 다른 도시들에서 자기네의 삶을 재건하고 그들이 잃어버린 공적 공간의 새로운 변형을 건설하는데 헌신했다. (p. 159)' 폼페이라는 물적 공간은 화산재속에 묻혔지만 사람들은 폼페이에서의 삶의 방식을 다른 곳에서 새롭게 일구어 나갔다. 그렇다면 폼페이라는 도시는 사라졌다고 봐야할까? 아닐까? 폼페이 라는 도시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공적 공간' 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이 공적 공간에 대한 개념은 차탈회윅 사람들과 무척 달랐다.

로마문명과 달리 크메르 전통은 사라지거나 소멸한 것이 아니다. 앙코르에서 꽃핀 문화는 오늘날까지 캄보디아인들의 삶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계속 영향을 미친다. (p. 181) 유럽 고고학자들이 처음 앙코르에 갔을 때 그들은 서방 방식의 도시 발전을 찾도록 길들여져 있었고, 이에 따라 이 도시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집은 그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앙코르와트와 아옼르톰의 석조 탑으로 직행해 이들 사원 단지가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라고 잘못 이해했다. 넓게 확산된 도시 안의 담으로 둘러싸인 구내였는데 말이다. 그들은 한때 꽉 들어찼던 주거 구역들과 저수지, 농경지들이 주변 넓은 땅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지만 전혀 보지 못했다. (p. 188) 이 도시는 심지어 15세기 초 왕실이 이곳을 떠난 뒤에도 비어 있던 적이 없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무오의 기록은 수리야바르만이 옛 앙코르를 몽땅 서바라이 밑에 묻어 말소한 것만큼이나 대담하고 오래간 역사 변개행위였다. (p. 229)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4개의 도시중 가장 개탄스러웠던 것이 앙코르 였다. 서양인들은 앙코르를 발견했다고 떠들썩하게 요란을 떨었으나 크메르인들은 내내 앙코르에서 살고 있었다. 일종의 식민사관 혹은 제국주의적 사관으로 보여지는 이러한 역사 변개행위는 사실 앙코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서양이 아닌 많은 지역에서 일어났다. '늘 그렇듯이 진실은 전설보다 더 기묘하고 더 복잡하다. (p. 230)' 그 진실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밝혀지기를 바랄뿐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에서 나온 고고지지학적 증거는 15세기의 붕괴가 대재앙이라기보다는 점진적인 쇠락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정치' 였다.

17세기에 유럽인들이 일리노이를 탐험할 때 이 도시는 수백년 동안 버려져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카호키아족이 살고 있었다. 일리노이연맹에 속하는 한 부족이다. 유럽인들은 이 부족 이름을 따서 이 고대 도시를 부르기로 했다. 카호키아족 스스로는 이 도시를 건설했다고 주장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하여 카호키아라는 이름이 고착됐다. (중략) 카호키아인들에게 도시의 폐기는 실패나 손실이 아니었고, 오히려 예측된 도시 생명 주기의 일부였다. (p. 260)

4개의 도시중 생소했던 유일한 도시가 바로 카호키아 였다. 그 넓고 풍요로운 땅 아메리카 대륙에 인류의 역사가 없었을리 없건만 인도가 아닌 대륙에 인디언이라 이름붙인 원주민들의 역사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몰랐다. 지금의 미국 땅에도 당연히 고대유적 거대유적이 있.었.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고대인들은 또다른 도시생활을 만들어 살았었었다.

이 책에서 본 다른 모든 도시들도 그렇지만, 카호키아도 고정돼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유적은 수백 년에 걸쳐 몇 개의 시기를 거치며 역동적으로 변화한 문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오늘날 많은 고고학자들이 문명은 '붕괴'국면과 대비할 수 있는 '고전기' 내지 '절정기' 가 있다는 생각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유다. 붕괴 관념은 사라진 도시가 유럽 고고학자들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됐다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식민지 시대 전통과 같은 발상이다. 이런 전통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회가 유럽 문명들이 밟은 길을 그대로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커지고, 더 계층적이며, 더 공업화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는 '미개발'사회로 부르고, 확장을 멈춘 도시는 문화가 붕괴한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증거와 부합하지 않는다. (p. 293)

'1970년대에는 이미 고고학자들과 도시사학자들이 도시 문명에 정해진 발전 패턴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를 많이 축적하고 있었다. 많은 도시들은(앙코르와 카호키아도 여기에 포함된다) 비시장 원리에 따라 조직됐다. (p. 293) 한 도시의 주민이 작은 마을들로 쪼개지더라도 그것이 실패는 아니다. 그것은 변화일 뿐이고, 흔히 정상적인 생존 전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도시의 문화는 조상들을 이어받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전통 속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중략) 도시를 버리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정치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p. 294)' 저자는 기존 학자들의 환경결정론적 도시붕괴론에 대해 반박한다. 중요한 것은 공적 공간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라면서 모든 도시는 건축술을 이용해 공적 영역을 만들어내느 실험이라고 표현한다. 붕괴나 멸망 보다는 변화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모든 도시는 집중과 분산 사이를 끊임없이 순환할 것이다. (p. 297)' 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라진 도시'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차탈회윅, 폼페이, 앙코르, 카호키아 같은 곳들의 극적인 도시사를 되돌아보면 수백 년에 걸쳐 나타난 확장과 폐기의 패턴을 볼 수 있다. (p. 319) 도시의 인구 감소가 그 원인과 결과는 다르지만 모두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만든 거대한 기반시설을 관리하는 골치 아픈 문제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다. 인간 자체를 관리하는 일은 더욱 큰 문제였다. (p. 320) 그렇긴 하지만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도시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역사 속의 증거는 많다. (p. 321) 도시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도시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도시는 우리의 상상 속에, 우리 공적인 땅 위에 계속 살아 있다. (중략) 천 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도시 실험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p. 325) -에필로그 中-

저자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는 아니었지만 글쟁이답게 가독성 높은 르포르타주를 써냈다. 소설을 읽듯 4개 도시생활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나면 역사를 읽은 줄 몰랐는데 역사를 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는 가르쳐준다. 사라진 도시를 통해, 도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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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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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추리의 눈으로 바라본 뜻밖의 인물사

셜록처럼 치밀하고 세익스피어처럼 유려하게

역사를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건 아무래도 소설적 구성을 곁들인 인물사일 것같다. 저자는 정형외과 의사이지만 어려서부터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았다고 한다. 본업인 의학이 대중에게 보다 더 친근해질수 있도록 다양한 학문과 접목하기 위해 노력중인데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한다.

의학은 한 편의 추리다. 의사는 통증이라는 사건을 안긴 가해자 질병을 탐정처럼 수색해 나간다. (p. 6) 사실, 모든 의사는 홈스의 후배다.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의사였고 그가 취직한 병원은 한산했다. 덕분에 부업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중략) 코넌 도일은 스승 조지프 벨 박사를 떠올렸다. 박사는 의미 없어 보이는 사건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동료들이 진단을 내리지 못해 쩔쩔맬 때 박사는 어김없이 등장해 질병을 밝혀냈다. (p. 7) -들어가는 말 中-

읽고 보니 정말 그렇다. 의학은 한 편의 추리다. 여러가지 증상을 통해 병명을 유추해나가는 과정은 흡사 범인을 색출하는 추리의 과정과 비슷해보인다. 게다가 아서 코난 도일에게 영감을 준 조지프 벨 박사의 일화를 읽고보니 셜록 홈스가 따로 없다. 저자또한 셜록 홈스가 된 것 마냥 질병을 추적해 나간다. 환자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다방면의 위인들이다. 위인들이 앓았던 질병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은 역사를 읽듯 사건을 해결하듯 흥미진진해서 독자도 탐정이 된 듯 술술 읽게 된다. 추리의 시작은 항상 질문이다.

세종은 왜 운동을 싫어했을까?

가우디는 왜 해골집을 지었을까?

도스토엡스키는 어쩌다 도박꾼이 되었을까?

모차르트의 사인이 정말 질투일까?

로트레크는 왜 난쟁이로 태어났을까?

니체는 어쩌다 정신병원에 입원했을까?

모네가 말면에 그린 그림이 추상화처럼 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다는 왜 자신을 붉은 과일로 표현했을까?

퀴리는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을까?

말리는 왜 자신의 피부암을 방치했을까?

질문을 던지고 나면 정말로 궁금해진다. 알고 있었던 것들도 질문에 의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네 이상하네 왜그랬지 하면서.

질문에 대해 저자는 단번에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추리라는 것이 이런저런 단서들로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결론이듯이 위인들의 질병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다른 가설들을 먼저 알려준다. 그러한 미끼들은 질문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세종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운동을 꺼렸다는 점, 하나다. (중략) 사람들은 세종을 '고기를 좋아하지만 운동은 하지 않아 결국 비만한 몸을 갖게 된 왕'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은 완벽주의자다.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런 세종이 단순히 '하기 싫어서' 운동을 피했을까? (p. 16)

도스토옙스키는 방탕한 노름꾼과는 다르다. 그는 뱀장어 일당에게 조종당한 가여운 먹잇감이었다. (p. 67) 그는 자신의 이중성에 괴로했다. (중략) 초대받지 못한 전기 뱀장어는 도스토엡스키의 뇌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 (p. 68)

모차르트의 죽음에 대한 보고는 상당히 과장됐다. 누구도 모차르트를 살해하지 않았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독살하지 않았고 프란츠는 악의로 장송곡을 의뢰하지 않았다. 죄 없는 이를 희생시키는 거짓 시나리오는 폐기하자. 이제, 진범을 찾을 시간이다. (p. 96)

주로 질병을 추적하는 과정이지만 때론 뜻밖의 상식을 때론 의외로 멋진 문장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몽마르트는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이다. 가난한 이화 쫓겨난 예술가는 순교자의 산에서 삶을 이어 갔다. 이들을 먹여 살릴 상권은 술집과 사창가뿐이었다. 세탁업을 하던 어머니는 빨간 속옷을 입고 술집에서 캉캉 춤을 췄고, 교회를 다니던 방앗간 주인은 헌금을 낼 돈으로 풍차를 개조해 카바레를 열었다. 순교자의 산은 어느덧 성공한 파리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놀러 와 욕망을 분출하는 하수구로 변모했다. (p. 139)

니체는 소년 시절 신을 떠난 모양새로 바그너를 등진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니체는 육체의 약화까지 감내해야 했다. (중략) 니체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난다. (p. 149) 이무렵 니체의 글은 사뭇 따뜻해진다. 신과 예술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통증과 함께 인간계로 내려왔다. (중략) 니체는 인간을 때리는 신의 채찍을 뺏으며 너무나 인간적인 선언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영리한 동물이 아니다. 전통적인 도덕을 위해 가축처럼 스스로 훈육할 필요가 없다." (p. 150) 매독이 니체의 뇌를 손상시켜 정신병이 발생했다는 그의 주장은 '나는 뇌신경 학파다'라는 맥락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p. 154)

빅뱅 이론은 '우주가 거대한 폭발 뒤에 팽창했다니. 마치 덩치 큰Big 근육질 스트리퍼가 생일 파티에 빵Bang 하고 깜짝 등장하는 것과 비슷하군요" 라며 비꼰 말에서 따왔다. (p. 167)

실험을 시작하고 꼬박 4년 만인 1902년, 부부는 염화라듐 0.1그램을 추출한다. 이만큼을 얻기 위해 8톤의 역청 우라늄과 400톤 이상의 물이 필요했다. (p. 243)

1900년대 의사들은 치료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선배들 덕분에 감염병이 세균 때문이고 류머티즘 질환이 면역 체계 문제라는 건 알았다. (중략) 그렇지만 알면 뭐하나? 환자를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외과 의사들은 차가운 칼을 쥐고 암 덩어리를 적출이라도 할 수 이싿. 하지만 내과 의사는 감염병 환자에게 '당신의 병은 결핵입니다' 라고 진단하고, 환자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물으면, 앵무새처럼 '좋은 공기를 쐬고 식사를 챙겨 드세요'정도의 말밖에 못했다. 허무할 따름이다. (p. 247)

책속에는 참고 그림이나 사진이 종종 등장하는데 212p의 <디에고와 프리다>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프리다의 유명세만큼 프리다의 자화상 그림은 여러점 본 적 있다. 사진도 몇 장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자화상 속의 프리다는 너무 참혹하거나 너무 거대했고 사진은 환자의 모습인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속에 나온 사진은 프리다의 풋풋하면서 강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의 디에고 옆에 너무나 여리여리한 체구로 앉아 있는 프리다가 너무 예뻐서 슬펐다.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결혼, 출산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모여 삶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사건을 와 닿게 하는 것은 사소함이 아닐까. 삶이란 뭉뚝한 사건의 분탕질 속에 부지런히 적응한 사소함일지 모른다. '삶도 사소함에 깃든다'

이 책은 천재들의 사소함에 주목했고, 사소함을 관찰해 병을 진단해 냈다. 왜 세종은 운동을 기피했으며 말리는 죽을 때까지 암을 방치했는지, 모두 사소함에 주목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손톱같은 사소함을 관찰했기에 그들의 숨겨진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진단은 사소함에 주목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에는 원인을 밝히겠다는 철저함과 환자를 대하는 따듯함이 함께한다. (p. 284) -나가는 말 中-

저자는 '의사는 손톱을 기르지 않는다' 고 말한다. 수술을 하려면 손톱이 짧아야 하기에 이삼일에 한번은 손톱을 깎는다고 한다. 이런 섬세함이 습관이 된 의사는 환자의 사소함을 놓치지 않고 병을 진단해내는가 보다. 의사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은 게 없었는데 저자와 같은 마인드의 의사라면 신뢰가 절로 우러날것 같다. '얼핏 고루하고 빡빡할 것 같은 의학은 사실 이렇게나 역동적인 학문이다. 관심이 생기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충분히 성공했다. (p. 286)' 라는 저자의 소박한 바람은 책을 읽는 내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역사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의학으로 마무리된, 여러모로 유용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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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간의 교양 미술 - 그림 보는 의사가 들려주는
박광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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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화가들과 그림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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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그림에 눈뜨는 시간

매일매일 순간이동 미술 여행

저자는 스스로를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의학과 미술의 경이로운 만남을 글과 강의로 풀어내는 내과 전문의' 라고 소개한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와 <히프크라테스 미술관> 그리고 000에 간 의학자 시리즈를 합쳐놓은 <과학자의 미술관> 은 그러한 자기소개가 적절히 표현된 책이었다. 어쩌다 보니 저자가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풀어낸 책을 대부분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의 제목에서 약간 어중간함이 느껴졌다. 의사로서 풀어내는 그림이야기는 의학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신선함이 있었지만, 의학과 상관없이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여 수많은 그림을 본 (직업이 의사일뿐인) 사람으로서 쓴 교양서는 좀 다를 테니까.

제목에서 '60일간' 이라고 써놓았듯이 이 책은 하루에 한명씩 60명의 화가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목차에서 정리해보면 프랑스 16, 이탈리아 4, 영국 4, 독일 6, 네덜란드 7, 아일랜드 1, 벨기에 1, 덴마크 2, 핀란드 2, 노르웨이 1, 스페인 1, 스위스 2, 오스트리아 2, 러시아 5, 미국 6 으로 굉장히 다양한 나라의 화가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이 근대화가들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고전에 대한 교양보다는 생소한 근대미술과 화가들에 대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미술사적인 책은 아니란 소리다.

미술사조나 기법 같은 전문적인 미술이야기도 아니고 화가의 생애를 전기적으로 서술한 것도 아닌 이 책은 화가별로 그림 몇점을 보여주면서 그림에 얽힌 이야기 조금과 화가의 인생사를 조금 엮어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의 앞선 책들이 의사로서 그림에서 의학이야기를 뽑아냈다면 이 책은 의사로서가 아닌 그림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에세이 라고 할 수 있겠다.

상식을 넓혀주는 소소한 재미들은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 그림 속 책이 당시 엘리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던 볼테르의 [캉디드]라는 풍자 소설 이라거나, 유명한 브랜드 '시슬리'가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 부처를 그린 서양화가 르동, 보티첼리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인 셈인데 이탈리아어로 '작은 술통'이라는 것, 이 책의 표지그림의 화가이기도 한 레이턴은 영국에서 화가 중 최초로 세습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하루만에 소멸되었다는 일화,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 그림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가 히틀러에게 칭송받으며 나치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됐었다는 것, 서양미술사에 알려진 화가 중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화가인 독일의 에밀 놀데, 동시대인물도 아닌데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가 함께 그려지고 그시대엔 있지도 않았던 지구본이 함께 그려진 이유, 아일랜드의 국민화가라고 칭송받은 존 레버리, 제너의 종두법 보다 82년 앞서 '인두법'을 알렸던 몬태규 부인 일화 등이 기억에 남는다.

기존 미술 책들에서 여성화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 만큼 책속에 여성화가들이 꽤 여럿 등장한 것이 반가웠는데,

마리 가브리엘 카페 와 스승인 아델레이드의 이야기나, 모리조가 로코코 시대의 대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손녀 라는 것, 초상화 작가로 인정받았던 테레즈 슈바르체, 프랑스 인상주의를 미국에 알린 릴라 캐벗 페리 등 알려지지 않은 여성화가들을 볼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아쉬었던 것은 마리 바시키르체프 의 그림 <회의> 그림이 짤려서 실렸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짤린 부분이다. 소년들의 '회의'가 아닌 소녀의 뒷모습... 또한 헬레네 셰르프백 의 그림들도 그녀의 화풍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그림들이 실린 것도 좀 아쉽다. 또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헬렌:내 영혼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는데 홍보 문구에 '핀란드의 뭉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생소할 수 있는 핀란드 여성 화가를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 대중에게 익숙한 노르웨이 화가 뭉크를 연결한 듯하네요. (p. 284)' 라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아쉽다. 나는 이 영화를 봤다. 굉장히 수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저자가 봤다면 단순히 뭉크가 유명한 화가이기 때문에 헬렌과 연결지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텐데... 싶어서... (유명한 화가는 많다. 헬렌이 '핀란드의 뭉크'인 것은 유명세가 아니라 '화풍' 때문이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오류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좀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내용이 있었는데,

'니체, 슈만, 보들레르 등 다수의 역사 속 인물들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죽었으며 (p. 56)' 라는 구절은 다른 책에선 니체의 죽음이 매독에 의한 정신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설'이 있는 내용일 경우 '설'로만 언급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고,

메두사 에 대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녀에게 반해 끈질기게 구애했고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아테나 여신이 포세이돈을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데다 둘의 사랑이 아테나 신전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였지요. (p. 132)' 라는 내용은 메두사 신화에 대한 3가지 '설' 중 두가지를 합쳐놓은 내용이라 정리 혹은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위키백과만 찾아봐도 3가지 '설'이 잘 구분되어 나온다)

다른 책도 아닌 저자 본인의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인 만큼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는데

<미술관에 간 의학자> 에선 나폴레옹이 옷 속에 한 손을 집어 넣고 있는 포즈에 대해 명치 부위에 통증이 빈번히 발생해 그곳을 만지는 것이 습관화 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했었는데 이 책에선 '흔히 나폴레옹 포즈 라고 알려진 자세입니다. 이 포즈는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아이스키네스가 유행시켰다는 설이 있습니다.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손이 보이는 게 매너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인데요, 이후 프랑수아 니벨룽의 <점잖은 품행의 기본>(1737)이라는 책에서도 손이 보이지 않게 코트 안에 넣는 것이 겸손의 상징처럼 소개된 것을 보면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다시 이런 자세를 취하고 다녔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p. 39)' 라고 바뀐 입장에 대해 저자 본인의 앞선 책에 대한 내용을 수정한다거나 언급하지 않은 것이 좀...

본문 자체에서 서로 상충되는 구절이 있기도 했는데,

'동시대 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렸던 에두아르 마네는 볼롱울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네가 볼롱을 비판했던 기록도 있지요. 그래서인지 사후에 볼롱은 빠르게 잊히고 맙니다. 볼롱은 현재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화가 중에 한 명입니다. (p. 60)' 라는 내용은 마네에게 한 화가를 잊혀지게 할 만큼 엄청난 권위기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마네의 생애 마지막 그림조차 '많은 비평가들은 마네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초상화에서 인물이 의도적으로 평평하게 묘사되어 있어 입체성이 부족하다고 비난했습니다. (p. 56)'처럼 그림마다 혹평과 비난을 받았던 마네에 대해 앞 챕터에서 쓴 내용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편집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도 곳곳에 있었는데 가장 크게는 한 페이지 상에서 수정전 과 수정후 로 보이는 두 문단이 함께 실린 경우였다.

'꽃 시리즈를 창작한 후 4년이 지난 1968년 6월3일, 편집성 조현병응로 피해망상을 품은 여성의 총에 맞아 두 달간 입원하게 됩니다. 응급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였고 몇 차례 추가 수술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였지요.

꽃 시리즈를 창작한 후 4년이 지나 40세가 되던 1968년 6월 3일, 워홀은 밸러리 솔라나스라는 여성으로부터 총에 맞아 두 달간 입원하게 됩니다. (p. 407)'

무엇보다 어색했던 것은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 가 끝나고 바로 색지라는 점이다. 본문이 끝나면 저자의 마무리 말이라던가 참고도서나 혹은 도판 출처 라던가 하다못해 출판사 인쇄일 페이지라도 있는 것이 책이 끝났구나 싶은 기분을 주는데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 로 그냥 끝 이라니 책의 편집이 여러모로 아쉽다. 하지만 그림들이 비교적 크게 실린 것들은 좋았다.

재미있게 읽히는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아쉬운 점만 잔뜩 늘어놓아서 저자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미술관에 간 의학자> 나 <히포크라테스 미술관> 을 읽으면서도 아쉬운 부분들이 좀 있었기에 그것들이 보완된 책이 아니라 보완해야 할 점이 더 많은 책을 저자가 펴냈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곳곳의 숨은 명화들을 보는 것도 좋고 하루 한편씩 두달간 예술 수다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고 60명의 화가와 그보다 더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저자가 쓴 책이 이 책이 첫 책이 아닌만큼 앞으로의 책은 기초자료가 좀더 탄탄한 책을 써주시면 어떨까 바래본다.

여하튼 쉽게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고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을 풍부하게 보면서 뜻밖의 신선한 에피소드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던 책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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