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의 고인돌부터 현재의 사유원까지 이 책속에 실린 건축물들은 시간순으로 등장하기에 역사로 읽히기도 하고 자재와 지형과 구조를 분석하기에 건축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그리고 사람을 아우른 인문학으로 읽혀서 더욱 매력적인 책이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인돌 5만여기 가운데 2만 9,500기가 한반도에 현존한다. 그 숫자만으로도 한반도는 '고인돌 왕국'으로 불릴 만하다. (p. 13)> 세계 곳곳엔 거석문화가 남아있다. 왕의 무덤일수도 있고 제의적 기념물일수도 있고 또다른 의미일수도 있는 거석들의 분포를 봤을때 한반도의 고인돌문화는 분명 특별하다. 모양도 구조양식도 크기도 다양한 고인돌이 유구한 역사속에 파괴된 것도 부지기수일텐데 유라시아대륙 끝자락인 한반도에 (세계 현존하는 고인돌 수의) 절반가까이 남아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토록 많은 왕이 그토록 많은 부족이 있었을리는 없다. 우리 문화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 오랜 옛날에 고인돌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협업과 평등의식이 기초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썩 괜찮은 게 아닐까... 조선과 일제시대에 국한된 역사의식을 그보다 더 오래전 시간으로 확장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집트나 마야문명에만 있는 줄 알았던 피라미드가 고구려의 왕릉에도 있었고 동남아시아에나 있는 줄 알았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고상형 이층집이 가야인들의 생황양식에 퍼져 있었으며 백제의 왕실정원은 그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독창성을 보여주었고 신라의 황룡사9층목탑은 역사상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로서 현재의 아파트 27층 높이로 지금도 어려운 목조건축을 당대에 실현시켰다.
신라는 화엄의 불교사상을 건축물로 구현하기도 했고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건축에서 기본요소였던 평지 입지 전제조건을 고려는 산지가 많은 한반도 지형에 맞춘 경사지에서의 건축으로 거뜬히 변형시키며 원나라의 지배시기에도 고유의 문화성을 잃지 않았다.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만 알았는데 동시대 건축가로 박자청의 업적 또한 경탄할만 했고, 오직 성주인 다이묘만 보호하는 의미의 왜성에 비해 조선의 성곽이 보호하고자 한 대상은 백성이었다는 점에서 (부패하기전)조선사대부의 기본정신에 박수를 보낼 수 있기도 했다.
효명세자의 예악정치사상이 구현된 연경당의 이야기는 짠했고 성공회의 한옥 교회는 애잔했으며 한센인들이 손수 지은 애양원의 역사는 마음아프기도 했지만 저자는 제주도에 남아있는 일제의 군사시설을 보며 '다크 투어리즘'을 상기시킨다. <휴양이나 관광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전재잉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일컫는다. 즉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왜 이 땅에 이런 건축물이 세워져야 했는가? 왜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역사의 상흔으로 남은 이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p. 267)> 그런 의미에서 건축의 시간은 늘 현재일 수 있다.
세운상가와 절두산성당 그리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를 예로 든 한국의 근현대 건축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의 건축사는 과거보다 오히려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유원을 통해 <화룡점정, 눈을 그려야 용이 되듯이 지형과 조경의 마무리는 결국 건축의 몫이다. (p. 306)> 라는 문장에 다시 힘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