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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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처럼 살기 싫지만 부모만큼 되기도 어려운 세대, 밀레니얼

욕 좀 그만 먹고 싶은 밀레니얼의 정당한 변명

내게 '요즘 애들'이란 십대후반 부터 20대 그러니까 90년대후반부터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을 의미한다. 사춘기 청소년 시절을 지나고서도 (철들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의)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이나 직업에 대한 마인드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것을 느끼곤 했다. 내가 아직 꼰대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건만 너무나 세대차이를 느끼곤 했기에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1981~1996' 출생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내 기준에선 '애들'이 아닌 셈이다. 애들이라기 보다는 '어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현 30~40대초반 세대의 삶에 대해 저자는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로서의 고충을 토로한다. 그냥 '못하겠다' 정도가 아니라 뭔가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현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연령은 이십대가 아니라 3~40대를 지칭함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이 책의 원제는 본문 내용에 부합하는 Can't even 이다.

백인 중산층 밀레니얼은 자신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서사를 믿지 못하게끔 길러졌다. 앞선 세대처럼 우리도 능력주의와 예외주의를 먹고 자랐다. 우리 모두는 각자 흘러넘치는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그 잠재력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건 오로지 노력과 전념뿐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현재 인생에서 어떤 지위에 있든, 결국엔 안정성을 쟁취할 거라고 믿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밀레니얼 세대는 이 서사가 얼마나 공허하고 심히 환상적인지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중략)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미국이 기회의 땅이자 자애로운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후렴구는 결론적으로 틀렸다. (p. 6)

저자는 미국에 사는 3~40대 백인계층의 불안정한 삶에 대해 조목조목 풀어낸다. 미국의 기득권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백인계층이 이러할진대 다른 계층은 더 악조건에 처해 있는 셈이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철저히 미국사회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이 책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어쩌면 십년 후쯤의 우리사회 모습이 저러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것들을 뒤따라온 한국사회의 미래를 이 책에서 예감한다면 그 슬픈예감이 틀리도록 우리는 지금현재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반복해 주장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반드시 이럴 필요는 없다. (p. 8)'라는 문장정도로 위안 받을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사회의 현실이 십년후쯤 한국사회의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좀더 행동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퓨리서치센터에 의하면 1996년생인 최연소 밀레니얼은 2021년에 25세가, 1981년생인 최연장 밀레니얼은 40세가 된다. 인구추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밀레니얼은 인구 7천3백만 명으로 최대 다수를 차지하는 세대다. (p. 22) 우리는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반면 직업윤리 수준은 바닥이라고 꾸짖음을 받았다. 우리는 온실 속 화초였고, 순진해 빠진 데다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지 못했다. 이는 우리 세대에 대해 굳어진 합의들로, 우리가 대침체를 어떻게 맞서고 견뎠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학자금 부채를 떠안고 있는지, 성년기의 수많은 이정표가 우리에게 얼마나 도달 불가능한 것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p. 23)

하면되는 세대에 의해 양육되어진 밀레니얼 세대는 하면된다는 믿음을 갖고 성장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부딪힌 현실은 하면된다 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얻은 좌절감을 부모세대는 나약함이라고 치부한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지 않은가?! '이 책은 저자의 번아웃 경험을 바탕응로 하되, 번아웃이라는 느낌에 대한 이해를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 온 부르주아 계급의 경험 너머로까지 확장하려 했다. (p. 29)' 안정적 직업도 못얻고 학자금대출도 못갚은 게으르고 나약하다고 평가받는 밀레니얼 세대가 어쩌다 번아웃 상태가 되었는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부조리를 분석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중산층 백인 밀레니얼의 경험 위주에서 벗어나 밀레니얼 전체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것이 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p. 30)' 쉽게 얘기하자면 밀레니얼 세대의 경험은 개인적 무능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 라는 말이다.

80~90년대 베이비붐 세대의 정신은 우리 유년기의 배경에 스며들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품었던 기대들의 토대에도 녹아들었고, 그 미래를 쟁취하기 위한 로드맵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리를 만든 베이비붐 세대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번아웃에 빠졌는지 이해해야 한다. (p. 41) 베이비붐 세대는 1946년에서 1964년 사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회복기에 시작되어 군인들의 귀가 기간에 가속화된,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세대를 이루었다. (p. 42)

전쟁후 베이비붐 세대는 성인기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경험했고 그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노동현실은 열악했어도 실업률이 높진 않았고 대학을 나온 경우는 그야말로 탄탄대로 였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서 교육열은 과열됐고 자신들의 피와땀을 갈아넣은 자식세대에게 그만큼의 희망을 심어주며 키웠기에 성공가능성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자식세대의 불안정한 직업과 실패는 곧 실망과 배은망덕함으로 이해되곤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밀레니얼은 자신을 걸어다니는 이력서로 완전히 개념화한 최초의 세대다. 부모와 사회, 교육자들의 보조 아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적 자원'으로 여겼으며, 경제 활동에서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압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대학에 가기만 하면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중산층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인식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략) 대학은 우리 부모들의 경제적 불안을 낮춰주지 못했다. 중산층 지위를 보장하지도 않았고, 많은 경우엔 취업 시장에 현실적으로 대비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p. 104)

저자는 '당연한 교육이 가져온 부당한 결과'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절대 다수의 밀레니얼에게 대학 학위는 우리와 우리 부모들에게 약속했던 '중산층의 안정'을 안겨주지 않았다. (p. 128)' 그런데 교육은 너무나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효율적인 노동자를 빚어내는 데' 있어왔다. 실용적이리라 믿었던 교육을 받았으나 써먹을데가 없는 현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살아남는 법은 더 열악하게 더 많이 일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번아웃의 토대가 마련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좋아하는 것' 이 '직업'이고 '일'이 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착각 혹은 '일을 좋아하라'는 강박에 대한 무지이다.

소명을 따를 때 돈과 보상은 부차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 소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초기 계율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략) 문화이론학자 막스 베버는 이런 해석이 모든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노동을 단지 넓은 관점에서 의미 있을 뿐 아니라 가치 있는 것으로 심지어는 신성한 것으로 보도록 장려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p. 149) 성공할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희망 배양은 회사의 사업 전략이 되었다. 인턴과 펠로들은 정직원 급여의 일부만 받으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노동을 제공한다. (중략) 나 자신과 남에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꺼이 더 적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이 일하는 과다한 수의 노동자들을 딛고서 산업 전체는 번창한다. (p. 153)

고용의 불안정성은 실업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과로를 하게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리라는 희망때문에 악조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는게 누구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역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두가 성공했다는 것(p. 162)' 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잘못된 논리인지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특별한 존재라고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 들으며 자라온 세대가 하찮은 존재로 흔하디흔한 인력으로 취급되는 직업사회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부모세대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큰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지는 이유는 그렇게 얻은 일자리마저도 너무나 열악하다는 현실이다.

자유 시장이 모든 것을 고치리라는 약속은 설득력이 있었기에, 80년대와 90년대에 모든 층위의 정치인들이 노동조합 보호 장치를 철회하고 정부 규제를, 특히 금융시장과 관련된 규제를 극적으로 줄여나갔다. (p. 174) 다운사이징, 구조조정, 풀타임 직원 해고 배후의 논리는 근본적으로 간단하다. 회사의 불필요한 부분을 솎아내면 단기 이익이 발생한다. 단기 이익은 주가 상승과 주주의 만족을 가져왔다. (p. 179)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건, 그냥 자본주의가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자본주의다. 이는 제품이나 제품 뒤의 노동자들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이들을 위해, 단기 이익 창출을 취우선의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다. 자신의 투자금이 다른 노동자의 생계와 근무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난데없는 보상이 돌아가는 자본주의다. (p. 183)

미국사회에서 노동조합과 복지는 굉장히 생소해진 개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노동자가 맞서기는 무척 힘들다. (p. 183)' 시스템적인 사회구조적인 문제엔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개개인의 노동자들이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덮어버리는 이데올로기들이 넘쳐난다. '그릿' 이라던가 '시크릿' 같은 온전히 개인의 열정과 개인의 믿음으로 환원시킨 생각들이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어려운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우버'같은 새로운 분야의 등장은 또다른 노동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동의 유연성'은 말이 좋아 유연성이지 따지고 보면 '불안정성'과 동의어인 시대가 된 것 같다. 여기에 온라인에서 경험하게 되는 '디지털 피로'까지 쌓이고 있다. '디지털이 더 많은 업무를 가능하게 했다. (p. 273)' 수시로 울리는 이메일과 톡알람은 일터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번아웃을 해결하려면, 당신의 하루를 채우는 것들이-당신의 인생을 채우는 것들이- 당신이 살고 싶은 인생, 당신이 찾고 싶은 삶의 의미와 결이 다르다는 착각을 지워야 한다. 번아웃 상태가 단순한 일중독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번아웃은 자아로부터, 욕구로부터의 소외다. 당신에게서 일할 능력을 뺐는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중략) 자신에게 다시금 전념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이기적이지도, 자기중심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이는 가치의 선언이다. 당신이 일을 하고 소비하고 생산해서 가치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p. 316)

책의 마지막 챕터는 '엄마처럼 살기 싫은 엄마들' 이라는 제목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하는 육아현실고충에 대한 내용이었다. 본문의 흐름에서 조금은 겉도는 이 부분은 일종의 부록처럼 읽히기도 한다. 여하튼,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미국사회에서 직업전선의 핵심층인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번아웃에 빠지게 하는 직업현실의 고충을 구조적으로 찾아야한다면서도 번아웃의 해결방법을 '개인의 존재가치 상기'로 정리하는 것은 아쉬웠다. 물론, '당신은 행동해야 한다. 투표해야 한다. (p. 367)' 라는 현실지침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이 말은 대단한 해방감을 준다. (p. 380)' 라는 저자의 깨달음이 월세와 학자금대출금을 갚아주는 것은 아니기에 여전한 현실에 대한 좌절감은 그닥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당신을 망가뜨린 게 우리 사회일 때, 나는 당신을 고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려 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을 살펴보라. 일에 대한 생각을, 아이들과의 관계를, 당신의 두려움과 핸드폰과 이메일 계정을 살펴보라. 당신의 피로를 직시하고, 그 피로를 덜어줄 앱이나 자기계발서나 밀키트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피로는 오늘날 세상에서 밀레니얼로 살아가는 것의 증상이며, 인종·계급·직업·부채·이민자 지위에 따라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에겐 이 증상을 바꿀 힘이 있다. 자신을 적절히 고쳐 증상을 이기거나,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빠르게 쫓아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당신과 비슷한-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감정을 느끼는 너무나 많은 사람과 유대감을 나누고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382~383)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우리는 힘을 합하여 지금 이 상태에 저항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지치지 않고 변화를 주장할 정치인들에게 집단으로 투표해야 한다. (p. 383)' 이 책이 쓰여진 때는 트럼프집권기 였다. 과거보다 더 열악해진 노동환경 속에서 다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은 아마도 '투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장기적인 관점과 구체적인 연대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큰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은 아마도 '투표'일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트럼프같은 대통령을 뽑으면 안된다는 깨달음을 기억해야 한다고나 할까.

'요즘 애들' 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궁금하여 선택한 책이었지만 '요즘 애들'에게 닥쳐올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많은 책들이 (문제가 어떤 분야이건 간에) 해결점으로 제시하는 것이 '연대' 다. 나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연구한 사람들이 고민해서 낸 결론이 '연대'라면 우리는 진지하게 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요즘 애들'과 연대하는 방법도 찾게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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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 김봉렬의 건축 인문학
김봉렬 지음 / 플레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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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인문학이 이런 거구나 깨닫게 해준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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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 김봉렬의 건축 인문학
김봉렬 지음 / 플레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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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500년이라는 시간을 축적한 건축물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과거는 영원한 현재, 지금 이곳이야말로 건축의 시간이다.

역사를 읽다보면 예술과 문화를 알게 되고 건축과 건물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인간이 살아온 시간이 역사라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건물이고 건축이기에.

올여름 <뮤지엄 산> 에 다녀온 후 건축의 미학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건물에 남은 흔적이나 건물 안에 전시된 작품 말고 건축 자체만으로도 사유를 끌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이후 건축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게 됐고 예전이면 선택하지 않았을 책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건축과 역사가 결합된 책들을 읽곤 했는데, 기왕이면 국내 건축가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그렇게 [김봉렬의 건축 인문학]을 만났다.

이 책은 서울신문에 2년간 연재했던 [김봉렬과 함께 하는 건축 시간여행]을 보완하고 가필한 것이다. 가급적 원시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28개의 건축적 사례를 택했다. (중략) 등장하는 사례도 무덤부터 궁궐, 사찰, 서원, 정원, 주택, 성곽 그리고 건축가까지 다양하다. (중략) 모든 시대와 건축을 초월한 공통점이 있다면, 다루어진 사례들은 시대적 사회적 한계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부터 현재의 사유원까지 이 책속에 실린 건축물들은 시간순으로 등장하기에 역사로 읽히기도 하고 자재와 지형과 구조를 분석하기에 건축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그리고 사람을 아우른 인문학으로 읽혀서 더욱 매력적인 책이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인돌 5만여기 가운데 2만 9,500기가 한반도에 현존한다. 그 숫자만으로도 한반도는 '고인돌 왕국'으로 불릴 만하다. (p. 13)> 세계 곳곳엔 거석문화가 남아있다. 왕의 무덤일수도 있고 제의적 기념물일수도 있고 또다른 의미일수도 있는 거석들의 분포를 봤을때 한반도의 고인돌문화는 분명 특별하다. 모양도 구조양식도 크기도 다양한 고인돌이 유구한 역사속에 파괴된 것도 부지기수일텐데 유라시아대륙 끝자락인 한반도에 (세계 현존하는 고인돌 수의) 절반가까이 남아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토록 많은 왕이 그토록 많은 부족이 있었을리는 없다. 우리 문화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 오랜 옛날에 고인돌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협업과 평등의식이 기초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썩 괜찮은 게 아닐까... 조선과 일제시대에 국한된 역사의식을 그보다 더 오래전 시간으로 확장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집트나 마야문명에만 있는 줄 알았던 피라미드가 고구려의 왕릉에도 있었고 동남아시아에나 있는 줄 알았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고상형 이층집이 가야인들의 생황양식에 퍼져 있었으며 백제의 왕실정원은 그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독창성을 보여주었고 신라의 황룡사9층목탑은 역사상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로서 현재의 아파트 27층 높이로 지금도 어려운 목조건축을 당대에 실현시켰다.

신라는 화엄의 불교사상을 건축물로 구현하기도 했고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건축에서 기본요소였던 평지 입지 전제조건을 고려는 산지가 많은 한반도 지형에 맞춘 경사지에서의 건축으로 거뜬히 변형시키며 원나라의 지배시기에도 고유의 문화성을 잃지 않았다.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만 알았는데 동시대 건축가로 박자청의 업적 또한 경탄할만 했고, 오직 성주인 다이묘만 보호하는 의미의 왜성에 비해 조선의 성곽이 보호하고자 한 대상은 백성이었다는 점에서 (부패하기전)조선사대부의 기본정신에 박수를 보낼 수 있기도 했다.

효명세자의 예악정치사상이 구현된 연경당의 이야기는 짠했고 성공회의 한옥 교회는 애잔했으며 한센인들이 손수 지은 애양원의 역사는 마음아프기도 했지만 저자는 제주도에 남아있는 일제의 군사시설을 보며 '다크 투어리즘'을 상기시킨다. <휴양이나 관광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전재잉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일컫는다. 즉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왜 이 땅에 이런 건축물이 세워져야 했는가? 왜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역사의 상흔으로 남은 이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p. 267)> 그런 의미에서 건축의 시간은 늘 현재일 수 있다.

세운상가와 절두산성당 그리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를 예로 든 한국의 근현대 건축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의 건축사는 과거보다 오히려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유원을 통해 <화룡점정, 눈을 그려야 용이 되듯이 지형과 조경의 마무리는 결국 건축의 몫이다. (p. 306)> 라는 문장에 다시 힘을 싣는다.

건축은 기술과 예술의 양면성을 가진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건축은 인간 사유의 물리적 결과물이다. 공학 기술과 디자인 능력으로 기능적 건축은 가능하다. 그러나 삶의 기쁨과 슬픔을 공감해야 인간적 건축이 가능하며,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이해해야 사회적 건축이 가능하다. 역사의 질곡과 진실을 알아야 역사적 건축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은 기초적인 인문학에 속하며, 지식인 건축가는 포괄적인 인문학자로서 성찰하고 사유하며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p. 308)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 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p. 309)

건축이 인문학일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분명하게 전달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로 정한 이유를 <역사학의 텍스트가 문헌과 기록이라면, 고고학의 텍스트는 유물과 유적이다. 그렇다면 건축 역사의 텍스트는 문자와 유적 모두가 중요하며 서로 보완적 관계이기도 하다. (p. 318)> 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숨과 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을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또 묻고 또 대답한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라면 미래 또한 늘 현재일 수 있다. 근원을 묻고 현재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다. (p. 319)> 라며 건축에서 인문학적 고찰을 중요시할 것을 당부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래된 미래와 영원한 현재와 새로운 과거로 여겨질때 건축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좀더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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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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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라는 우주를 아직 비행 중인 사람들에게,

일하는 이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보내는 가장 적당한 위로

"어쩌면 나는 31세기형 인재가 아닐까?"

박소연 작가의 첫번째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 <재능의 불시착> 가제본 서평단 모집에 응모했고 단편 한 작품이 실린 얇은 가제본을 받았다. [이 책은 '일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한 번쯤은 느꼈을 야릇한 소외감, 비릿한 자괴감, 소박한 연대감 앞에서 짓게 되는 미묘한 표정들을 소설 속 리얼리티 넘치는 상황을 통해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이 이 책을 정말 잘 대변해주는 문장이었음을 단 하나의 작품만을 읽었을 뿐임에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제본에 실린 단편은 <막내가 사라졌다> 라는 작품이었는데 콩트처럼 읽히는 이 작품을 읽으며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위트는 이런 것인가 싶었다.

막내가 사라졌다.

유난히 평범한 날이었다. 기묘하거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 전조 증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p. 5)

회사의 한 부서에 막내사원이 출근하지 않은 어느날이었다. 평범한 날은 그저 평범한 날인데, '유난히' 평범하게 느껴지는 날이 '유난'했던 이유는 '눈에 띄는 이상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데(p. 6)'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막내사원 시준의 책상의 풍경, 딱 그런 것이었다. '나는 아까 시준의 책상에서 느꼈던 묘한 이질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책상 위가 완벽하게 깨끗했다. (p. 7)' 완벽하게 깨끗한 책상이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평범'함과 다다르다는 것은 달리말하면 '평범'하다는 것은 조금은 어수선하고 조금은 어지럽고 조금은 더러운 그런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저는 오늘부로 퇴사합니다. 필요한 서류는 대리인이 참석해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강시준 드림-'

갑작스러운 퇴사문자도 당황스러운데 회사사람들 모두를 당황시킨 단어는 '대리인' 이라는 단어였다. 퇴사에 왠 대리인? 그런데 의외로 그 단어는 무시못할 위력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회사는 점점 술렁거리고 그리고 어떤 이들은 떨기 시작한다. 대리인이 와서 과연 무어라 말할까? 각자 그동안 자신들과 막내사원과의 일화들을 곱씹어 보는 동안 누군가는 속이 울렁거리고 누군가는 좌불안석이 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다른 또 누군가는 ㅋㅋㅋ

단순한 무단 퇴사라고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p. 15)

'그러고 보니 나는 시준 씨한테 실수한 거 없나?'

덩달아 불안해진 나는 그동안의 행동과 말을 천천히 복기해보았다. 별것 없었던 것 같기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p. 17)

엄청난 회사기밀을 들고 튄 것도 아니고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큰 회사의 여러 부서 중 하나의 부서에 속한 막내사원이 퇴사하는 것에 대해 무어 그리 많은 사연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일화들 속에 과연 막내사원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내일까지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 그러게 회사 다닐 때나 상사고 선배지, 그만두면 아무 관계도 아닐 사람들끼리 진즉 기본 매너는 지키고 살면 좀 좋아요? 지금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까 껌뻑 죽는 척 해주는 거지, 나가면 알게 뭐에요? 말도 제대로 안 섞어줄 동네 아저씨고 모르는 아줌마지" (p. 20)

몇장 안되는 짧은 작품이었음에도 풍성하게 읽혔고 지금껏 읽은 그 어떤 직장인 에피소드 보다 산뜻하고 발랄하게 다가왔다. 기묘한 퇴사 절차에 대해 당황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21세기형 사람들과 31세기형 사고관의 만남이 유쾌하게 읽혔다.

직장인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생각났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대비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속 작품들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사연들이었다. 그 씁쓸함에 비하면 <재능의 불시착>은 아예 그런 구분을 의식하지 않은 작품들을 모은 책인것 같다. 이 신선한 접근에 조금더 다가가보고 싶다. <막내가 사라졌다> 말고도 다른 작품을 읽으려면 어서 이 책을 집어들어야 겠다. '지구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아요' 라고 말하는 31세기형 젊은이들은 또 어디에 어떤 불시착들을 했을까 그래서 어디로 안착하게 되었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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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시간과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도시, 로마

3백여 컷의 근사한 일러스트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유럽 문화의 진수를 만나다

신간소식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한눈에 반했다. 일단, 표지가 너무 예뻤다!!! (사람 뿐만 아니라 책도 예쁘고 볼 일이다;;;; ㅠㅠ)

읽으면서 또 반했다. 예쁜 것뿐만 아니라 알차기까지 했다!!! 로마의 역사부터 예술, 문화등 로마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할만했다. 무엇보다 최신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저자가 참고한 책들을 보니 더욱 믿음이 갔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서양사에 대한 이런저런 책들을 꽤 읽어왔지만 그 책들에서 익혔던 내용들이 이 책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읽는 내내 감탄했고 즐거웠다. 그러니까 이 책은 로마에 한해서만큼은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에서 특별한 광경은 유적지나 박물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쳐 지나는 일상의 풍경이나 로마 사람들의 태도에서 물신 풍긴다. 유적들은 거리나 주택가에서 수백 수천 년의 시간차를 별로 내색하지 않고 섞여 있다. 잠시 쉴만한 그늘을 찾다가 2천년이 다 되어가는 고대 건물의 파편이 벤치처럼 쓰이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하고. 무심하게 콜로세움을 돌아 지나가는 버스를 타게 되기도 한다. 의술의 신 신전 터엔 현대식 병원이 자리 잡고 있고, 로마제국의 근위대 병영이 있던 곳은 이탈리아군이 쓰고 있으며, 고대 전차 경기장 터의 트랙은 산책로가 되어 있다. 무심코 들어간 장소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발견하는 일도 자주 경험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심코 건넌 다리가 2천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할 것이다. (P. 12~13)

저자는 로마의 자취를 좇는 일에 대한 가장 큰 이유가 '재미있으니까'라고 했다. 낡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풍기는 이 도시가 실은 2700년 내내 멈춰 있던 적이 거의 없었음을 단지 생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격렬히 움직여왔기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를 품고 있다는 것을 널리 퍼트리고 싶을 만큼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기존에 읽었던 역사책 속 에피소드들이 이 책에서 더욱 생생해졌고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왠걸 또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면서 읽는내내 재미있었다. 알면 아는만큼 모르면 모르는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로마 시내에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성벽의 잔해가 가게안에 떡하니 있다고 한다. 일상이 곧 역사인 도시라니 wow 하지만 무심해 보이는 이 일상속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생각하게 됐다.

현재의 로마는 한정된 공간에 많은 건물과 사람으로 복닥보닥하다. 3백만명이 일상을 이어가는 한 국가의 수도인지라 문화유적도시라는 핑계를 대며 그대로 둘 수만도 없다. 이런 고충을 덜기 위해 높은 빌딩이라도 세우면 좋겠지만 도시 미관을 해치게 되므로 역사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 공간을 조성하는 방안 역시 어렵다. 땅을 파다 보면 거의 틀림없이 뭔가 나오기 때문이다. (중략) 이처럼 로마는 참 불편한 도시다. 보통 다른 도시들은 인프라를 확충하고 편의 시설을 늘릴 때 비용만 고려하면 되지만, 로마에서는 번거롭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효율성과 편리함은 기꺼이 제쳐둔다. (p. 25)

로마는 지하철 노선들도 정작 도심부는 비껴가서 외곽을 돌고 있고 따라서 대중교통도 원활하지 않다고 한다. 편의시설도 많지 않지만 뭐하나 새로 만들기가 참 어려운 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로마는 걷기 좋은 도시이고 그렇게 걷다보면 의외의 볼거리를 보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길을 잃으면 잃는데로 어디든 볼거리가 있는 도시에서 저자는 쉴겸 무슨 교회인지도 모르는 작은 교회로 들어갔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사람이 사다리위에서 교회의 벽을 손보고 있었다고. 그런 손길이 있었기에 로마가 유지되어 온 것이었다. 무심한 일상의 유지란 사실 엄청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법이다. <자본과 유행을 따르자면 트레비 분수나 콜로세움 옆에 호화로운 호텔이나 거대한 쇼핑센터나 테마파크 따위를 세우고 테베레강 근처를 고급 주거지나 빌딩 숲으로 조성할 일이다. 그랬다면 로마는 더 세련되고 편리하고 부유한 도시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많은 방문자가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 없이 콜로세움의 위용을 온전히 느끼고, 스카이라인에서 미켈란젤로의 돔을 바라보고, 옛 시대의 풍경을 상상하며 거닐 수 있는 것은 그런 '의도된 포기' 덕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중략) 문화재 관리는 대개 눈에 띄지 않는다. 구멍 난 항아리에 계속해서 물을 붓는 격이랄까. 부지런히 새 물을 부어야 그나마 현상 유지가 된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산, 즉 항아리가 클수록 부어야 하는 물의 양도 그만큼 많아진다. (p. 53)> 의도적으로 포기하고 커다란 구멍이 난 커다란 항아리에 계속 새 물을 붓고 있는 로마인들에게 경의를 표해본다.

기초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땅속에서 사람의 두개골 하나를 발견했다. 로마인들은 이를 아울루스라는 옛 영웅의 유골이라고 여기며, 장차 이곳이 '카푸트문디(세계의 머리)'로 우뚝 설 징조라고 해석했다. 그 후 이 장소는 카피톨리움(아울루스의 머리)이라고 불렸다. 카피톨리노는 카피톨리움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p. 45)

로마라는 한 도시에 집중하다보니 세세한 역사까지 알게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카피톨리노는 장구한 로마 역사의 요약(p. 47)'이라는 저자의 표현처럼 '워싱턴 의회의사당의 이름은 '캐피틀'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카피톨리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캐피틀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의 디자인도 빌려갔다.) p. 48' 이라는 저자의 안내처럼 로마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시간대에 존재해온 도시이다. 따라서 로마의 중심부터 변두리까지 들여다볼 곳은 다양했고 볼때마다 '아 그랬구나' 하며 빠져들어 읽게 된다. 예쁜 그림으로 그려진 로마를 보려고 손에 든 책이었는데 왠걸 읽다보니 그림보다 글에 더 집중하게 되곤 했다. 그림도 글도 둘다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한가지 더,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가야 하는 이유! 바로 포룸로마눔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멋진 광경 때문이다. (p. 76)' 같은 로마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팁도 여기저기서 제공된다. 아~ 정말 가보고 싶다~ 로마!!!

로마의 역사를 읽고 로마의 유적을 둘러보며 로마의 인물들을 알아가다 보면 어느새 작은촌락 로마에서 로마제국을 거쳐 제국의 멸망과 도시국가들의 혼돈속에 현대사로 접어들게 된다. 로마에서 이탈리아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여정은 표지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톤 그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부드럽게 읽힌다.

진정한 통일은 땅덩이만 합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통일을 향한 고난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반도의 국가들은 하나였던 시간보다 따로 떨어져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천년이 넘는 간극은 도시의 풍경보다 사람들의 정신에 더 깊이 남아 있었다. 이탈리아 민족이라는 새 정체성에 모두가 공감하진 않았고, 모두가 통일을 갈구한 것도 아니었다. 통일을 원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완성체의 모양에 관해서는 각자 상상하는 바가 달랐다. (p. 575)

이탈리아반도는 1870년에서야 통일됐다. 물론 세계양차대전을 거치며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통일성은 조금 강화된 면이 있다. 한반도가 분단된지 백년도 안됐지만 우리는 통일후 서로의 이질성에 대해 얼마나 걱정을 하는가? 그런데 천년을 넘게 따로 살아온 도시국가들의 통일이라니...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각각 그 색깔이 너무 달라서 관광객들이 놀라곤 한다고 한다. 로마 한곳만 봐도 그러한데 그런 도시국가들이 여럿이었음을 감안하면 지금의 이탈리아는 엄청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한때 경제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유럽에서 가장 뒤처졌던 이탈리아가 지금은 G7 국가에 속하고, 영화, 미술, 음악, 패션, 디자인 ,음식, 자동차 등의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p. 579)> 물론 그리스처럼 고대시대에 대한 예우가 이탈리아라는 국가에도 조금은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너지고 분열됐던 것을 생각했을 때 지금의 이탈리아는 그리고 로마는 분명 대단하긴 하다. 고대 존재했던 도시들이 현재에도 대도시를 이루고 융성하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큰 도시들은 융성했다가도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가 되곤 했다. 하지만 로마는 2700년을 늘 존속해왔다. 이 사실만으로도 로마는 흥미롭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다감한 그림들과 함께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보는 재미 읽는 재미 알아가는 재미가 가득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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