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막내딸처럼 돌봐줘요
심선혜 지음 / 판미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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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병치레가 없던 저자가 서른두 살에 암에 걸렸다. 악성 림프종, 혈액암 1기라고 했다. 2년 반 동안 치료를 마치고 암세포는 사라졌지만 마음은 시들어 갔다. 이 책은 암 치료과정을 다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아닌 제목처럼 나를 먼저 돌봐주고 부디 우리가 더 건강한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저자는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뒤 전업 엄마로 지냈고, 아이를 3년 만 키워 놓고 내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밖으로 나가려 했던 문 앞에서 좌절했다. 쉽지 않았지만 내 몸에 생긴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먼저였다고 했다. 암이 축복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극이라고 푸념하지도 않는다. 암은 그저 암일 뿐이라고.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닫혀 좌절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안에서 보낸 시간들이 오히려 나에게 기회를 줬다고 했다.

 

2년 전, 정기검진에 갔던 날 진료를 기다리던 중 자원봉사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완치 판정을 받고 7년이 지난 유방암 환우였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로 이어지는 위로를 들으며 속마음을 털어놓게 됐다. 할머니는 저자의 손을 쓰다듬어 주시며 몇 번이나 너를 위해 살라고 하셨다. 나를 막내딸이라고 생각하고 아이 보다 나를 더 먼저 돌봐주라고 하셨다. 나를 막내딸처럼 돌보자.

 

저자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깍쟁이었다. 자신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고, 혼자서 버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도움을 받는다는 건,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니었다. 곁을 내주는 것이었다.

 

겪어보지 않은 아픔을 위로로 건네는 말이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면 좋은 말도 곱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에 암은 병도 아니라더라 이런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위로를 하고 싶을 땐 차라리 점이라도 찍을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면 어떨까? 라는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귀자 소설 [모순] 속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이 구절이 오랫동안 나를 안아 줬다. 남의 불행을 보고 행복해지려 했던 못난 나를 토닥여 줬다.p122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 낸 게 글쓰기였다. 혼자 울고 불고 아무 말이나 쏟아낼 수 있는 곳. ‘대나무 숲으로 블로그가 딱이었다. 이제는 억지로 눈물을 참지 않는다고 했다. 슬프고 힘들면 글을 쓴다. 하소연할 누군가를 찾는 대신 마음을 담아 쓴다. 몸과 마음이 힘든 나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방법은 좋은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글을 썼을 저자가 대단하다.

 

저자는 신문에 부고를 읽는 습관이 생겼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낯선 산을 혼자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지만, 이미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여서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누군가 살아가는 흔적들이 나를 일으켜 준다고 하였고, 아이를 끌어안을 때 순간의 행복을 확인한다고 하였다. 아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 앞선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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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 삶의 교양이 되는 10가지 철학 수업
필립 휘블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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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가다가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다.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는 메시지를 본다. 어깨에 토끼 문신을 한 여자가 네오를 초대하고, 정체 모를 남자를 만나고, 빨간색 알약을 선택하고 녹색의 우아한 가상 세계에서부터 어둡고 잔혹한 현실로 돌아온다. ‘하얀 토끼는 철학의 새로운 은유다. 이 책에는 느낌, 언어, 믿음, , 행동, 지식, 행복, 생각, 감각, 인생 등 모두 10가지의 이상한 나라가 등장한다.

 

이 책은 현대철학 입문서다. 일반적인 정보를 늘어놓은 것이 아닌 흥미로운 논쟁이 중심을 이루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이 감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신은 존재할까?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는 걸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하는 말은 어떻게 의미를 갖는 걸까? 의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몸을 어떻게 경험할까? 죽음에도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각 장에서 설명이 되어 있다.

 

윌리엄 제임스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두려워서 몸을 떠는 게 아니라 몸을 떨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슬프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제임스는 우리를 사고실험으로 이끈다. 그러나 이론에는 함정이 있다. 이론에 따르면 신체감각이 약할 때는 감정도 약해야 한다. 정반대 사례를 보여준 이가 저널리스트인 장 도미니크 보비다. 그는 왼쪽 눈꺼풀을 제외한 신체 부위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임상심리사의 도움을 받아 왼쪽 눈의 깜박임만으로 알파벳을 나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보비는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을 썼고, 영화화되었다.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주인공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헬렌 켈러는 19개월 때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눈과 귀가 멀었다. 독자적인 수화를 만들었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앤 설리번이 손으로 단어의 철자를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자 영어를 익히고 손을 상대방의 입술이나 후두에 대는 방식으로 단어를 파악했다. 켈러의 예시는 우리의 언어능력이 선천적이라는 증거다.

 

렘수면 단계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꿈을 꾼다. 렘수면 단계는 전체 수면 단계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우리 몸의 거의 모든 근육이 마비된다. 즉 축구하는 꿈을 꿔도 실제로 다리가 버둥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렘수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근육이 마비되지 않는다. 이들은 산책하는 꿈을 꿀 때 걷는 박자에 맞춰 온몸을 움직인다. 혼자 침대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심각한 경우 예를 들어 복싱하는 꿈을 꾼다면 같은 침대에서 자는 상대방에게 매우 위험하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숙고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를 아무런 제약 없이 계속해서 관철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의지의 자유가 있다고 본다. 반대로 행위의 자유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원, 흥미, 성향 등에 따라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약물중독자들은 의지의 자유는 물론 행위의 자유 또한 제한되는데, 예를 들어 법적으로 구류된다면 약물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한다. 뉴욕에 갔을 때, 심한 감기에 걸렸고 2주 동안 머물면서 그 도시를 보고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코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지하철역 구석, , 공사 현장의 타르, 거리의 가판대의 고기 냄새 등 모든 것이었다. 그때까지 뉴욕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 결핍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였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에 불사의 몸으로 수백 년 동안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레몽 포스카를 등장시킨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궁금한 책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이 불사의 몸이 되어 평생 늙지도 죽지도 않으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받은 기분일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철학이 더 이상 변화할 것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시라. 우리가 따라가야 할 하얀토끼는 먼동이 틀 때쯤 이미 잠에서 깨어 해가 질 때쯤 뛰어오른다. 한번 읽고 철학을 이해할 수는 없으니 자주 읽고 사유하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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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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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861년에 출간된 이후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다. 유명한 고전을 이제라도 읽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핍이라는 소년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으면서 겪는 이야기를 핍이 회상하는 서술 형태이다.

 

소설은 부모님과 동생 다섯 명의 묘비에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웬 남자가 족쇄를 차고 나타나 줄칼과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핍은 스무살 차이가 나는 누나와 대장장이 조 가저리와 살고 있고, 누나가 <손수> 키웠다는 이유로 이웃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만 매형과 핍에게 손대는 습관이 있어 조심스럽게 먹을 것을 훔쳐서 남자에게 가져다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였다.

 

어느 날 엄청난 부자이고 무서운 부인인 미스 해비셤이 핍이 거기에서 놀아 주기를 바랐고, 조의 도제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녀의 양녀 에스텔라가 핍에게 비천한 아이라고 말했을 때 한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은 하층민 생활을 가슴속에 새겼다. 그럼에도 예쁘고 도도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하게 된다. 또한 저택에 놀러 온 어린 신사가 한판 붙자고 말했고, 승리했음에도 씁쓰레한 만족감만 느꼈다.

 

핍은 저택의 영향으로 직업을 혐오하고 집을 창피하게 여겼지만 노동자의 삶을 천직으로 알고, 매형과 동업자가 되어 비디와 결혼한다고 마음먹곤 했다. 그러나 미스 해비셤 댁에 아가씨 때문에 신사가 되고 싶다고 비디에게 고백했었다. 재거스라는 변호사가 나타나 핍에게 엄청난 유산 상속이 이뤄지게 되었다고 전했다핍의 꿈이 실현된 것이었다. 공상이 오히려 생생한 현실로 실현된 것이었다.

 

후견인은 핍에게 행운을 준 은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 중대한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친척이나 이웃 사람들은 핍에게 갑자기 공손해지고 친애하는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하는 것을 보니 돈이 지닌 위대함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핍은 신사 교육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청년을 만났는데 바로 저택에 놀러 왔던 어린 신사인 허버트 포켓이었다. 둘은 친구가 되었고, 허버트에게서 미스 해비셤의 집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핍은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허버트의 성실함과 겸손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핍은 돈을 물 쓰듯이 쓰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 들고 있었다. 매형 조가 런던으로 찾아와, 에스텔라가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녀를 만나러 갔던 날 미스 해비셤은 핍과 에스텔라를 짝을 지어주려는지 <저 애를 사랑해라!>를 몇 번을 되풀이하였다.

 

[위대한 유산]에서 유산을 상속 받은 후 핍은 매형을 사랑하지만 그가 못 배운 것을 창피해하고, 진정한 친구를 져버리려는 생각이 못 마땅하다. 고향에 가서 누나와 매형을 포함하여 누구와도 만남을 꺼려 하는 것은 심장에 온기가 없다던 에스텔라를 닮아 가는 것인지 염려가 되었다. 신사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되어가는 핍과 부모님의 결혼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여기면서 빨리 결혼하고 싶어하는 허버트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하권을 빨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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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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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욱 신간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제목만 읽어도 힘이 나고, 책을 읽으면 나를 응원하는 소리 같다. 저자는 출판사 대표이면서 문화 사업을 운영중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지친 마음들에 위로와 응원을 전해 온 저자답게, 다정한 메시지를 가득 담았다.

 

응원했고 응원하고 있고 응원할 것이다. 오늘도 서툴렀고, 실수를 반복했겠지만 그래도 잘 견뎌 낸 나에게 고맙다. , 정말 수고 많았어. 마음도 옷을 입는다. 사람이라는 옷을 입는다. 사람은 혼자 있고 싶다가도 혼자이긴 싫어하는 거다. 맞는 말이다. 삶은 이기적인 마음이 모여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가끔은 사람과의 관계도 잠시 쉬어 가는 것이 해법일 때가 많다. 거리를 두는 것이 어느 정도 관계의 치유에 쉽게 도달하는 방법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 역시도 어릴 땐 아프거나 슬픈일이 있으면 남에게 알려 위로받기 급급했지만 그게 약점이 되어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십년지기라는 말, 꽤 나이 들어서나 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십년지기 친구들이 있더라.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찍은 사진들을 보니 앳된 우리가 거기 있더라. 나 하나 먹고 살자는 비용이 이만큼이나 드는데, 몇 식구 먹여 살려야 했던 부모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조가 아닐까.

 

선택했으면 후회하지 말 것,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가지 못한 길이 아쉬워 보일 것이다. 후회할 시간에 열심히 달릴 것. 나를 믿고, 내 선택을 지지 해 줄 것.p135

 

세상의 두려움은 두 가지다. 너무 몰라서 두려운 것과 아주 알아서 두려운 것. 전자는 상상이 안 가서 그런 것일 테고, 후자는 상상이 너무 잘 돼서 그런 것이겠다. 이 말을 온 몸으로 공감한다. 수술을 하고 예후가 안 좋아서 재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그 공포가 되살아나 죽어도 못하겠다고 미루는 나의 마음이랄까.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기억할 것. 마음 단단히 먹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 것. 그렇다고 또 너무 가볍게 생각하진 말 것. 모든 것은 세상 사는 이치인가. 사람은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없고, 고쳐 쓸 수도 없다. 상대가 소중하다면 고치려고 안간힘 쓰기보다 단점을 눈감아 주려고 노력한다면 다 용서가 된다.





부탁을 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거절을 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의 일이란게 내 마음처럼 되는 게 없어서 나 같으면 빌려주고 하겠지만 단번에 거절을 당하면 두 번 다시 말을 못하게 된다. 아무리 서운하고 섭섭하더라도 자신이 부탁을 한 용기만큼이나 거절한 상대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거리가 멀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가는 게 사람이고, 10분 거리여도 마음이 없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가기 싫은 게 사람이다. 결국, 마음이 문제다.

 

거리가 멀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가는 게 사람이고, 10분 거리여도 마음이 없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가기 싫은 게 사람이다. 결국, 마음이 문제다. 잘 버티다가 뜬금없이 위태로운 날이나 힘들 때 마음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걸어 본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라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날, 힐링이 되는 위로의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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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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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인 [핑거스미스]<티핑 더 벨벳>, <끌림> 다음으로 읽게 되었다. 앞서 읽은 책들보다 두꺼운 800페이지 분량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음모와 배신을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핑거스미스]는 스릴러 소설로 처음으로 부커상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었으며, 2002년 영국 도서상의 '올해의 작가상' 부분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수전의 이야기, 2부는 모드의 이야기, 3부는 다시 수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핑거스미스는 도둑을 뜻하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은어이자 소설 속 주인공인 수의 직업이기도 하다. 랜트 스트리트에 사는 수전 트린더를 사람들은 <>라고 불렀다. 수는 소매치기들의 집단인 석스비 부인의 집에서 자랐다. 장물아비 입스 씨와 아이들이 몇 명 있었지만 부인은 다른 아이들보다 수전을 아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수전이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젠틀먼의 제안을 받는다. 3천 파운드를 받고 상속녀의 하녀로 들어가서 자신이 구혼하는 것을 도와주고 결혼한 뒤 재산을 가로채고 상속녀를 병원에 가둔다는 조건이었다. 수전이 제안을 받아 들인 이유는 17년 동안 키워준 것도 있지만 석스비 부인이 하는 말 때문이기도 했다. <넌 여전히 한몫 잡아야 한단다. 그리고 우리 것도 말이다.>

 

수는 모드의 운명을 알고 있어서 끔찍한 기분이 들기보다 모드에게 상냥하게 대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자매 같았다. 모드와 젠틀먼이 결혼식을 올리고 야반도주를 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정신 병원에 수전이 끌려가는 것으로 1부가 끝난다. 소설 속 반전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어. 모드가 말했다. 내 삶이 어떤지 봤잖아. 난 내가 되어 줄 네가 필요했어.p739


 



2부에서 똑같은 일을 모드의 시점으로 읽으니 색다르게 다가왔다. 모드는 열 살때까지 정신병원에서 키워졌기에 광기 어린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삼촌은 모드를 책을 읽고 베껴 쓰기 위한 일종의 기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드는 삼촌을 떠나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 젠틀먼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젠틀먼은 모든 계획은 석스비 부인이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고 충격을 받지만 믿으려 하지 않았다. 런던을 벗어나서 브라이어로 돌아가야 한다. 가장 선명하게 드는 생각은 반드시 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3부에서 수가 겪은 정신병원의 생활은 비참했다. 수는 자기가 사기꾼인 줄 알았지만 너무나 얼간이였던 브라이어에서의 시절을 떠올렸다. 두 악당과 보냈던 나날을 생각했다. 모드를 멍청이라 생각했다니. 모든 일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뒤틀린 욕망, 운명, 속임수, 위험한 사랑, 배반이 등장하는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레즈비언 소설이지만 그 수위가 약하다. 책 말미에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지독한 악당인 젠틀먼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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