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야자 시간 - 그 오랜 밤의 이야기 위 아 영 We are young 3
김달님 외 지음 / 책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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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번, 매일 반복되는 밤이라는 시간은 무슨 조화인지 평소보다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마음은 유약해지며 분위기에서는 센치함이 한 스푼 더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는 생각도, 상상력도 들쭉날쭉한 기복의 상태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쳐 나를 감싸기에 반나절 새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기시감마저 느끼게 된다.

허나 이 영감이 폭발적으로 터질 것만 같은 창조적인 시간에 십여 년 전 대부분의 학생들은 야간 자율 학습이라 쓰고 진행된 야간 타율 학습을 의무적으로 마치고 귀가해야만 했다.

하여 이 꿈 많고 호기로운 십 대 성장기의 야자 시간이 불러온 이야기들의 모음은 풋풋하고 생동감 있으며 설렘이 머무른 찰나였기에 더욱 흥미롭고 기묘하게 다가온듯하다.

게다가 비단 야자시간만의 이야기만이 아닌 저자들이 각자 밤이라는 공통적 시간적 배경에서 파생된 추억들을 현실감 넘치는 디테일함으로 고백하기에 나의 과거 추억과도 닿아 연결시켜주었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늦은 밤 주파수 107.7mhz에서 나오는 텐텐클럽과 스위트 뮤직 박스를 이어 듣곤 했으며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과 2G폰을 쓰던 아련함에 내가 그려져 묘한 감정들이 일렁였다.

문자의 용량과 글자 수가 한정되어 있던 휴대폰의 추억, ㅋ 의 개수조차 신경 써서 보냈다는 미숙한 첫사랑과 지금보다 여유롭지 못한 경제적 조건에도 그것이 발판이 되어 지금의 내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 과거 역시 추억으로 남아 가끔은 그리운 향수가 되는 이야기들.

가난으로 가세가 기울어 우선순위가 바뀌고 꿈이 좌절되기도 하지만, 삶의 스포일러를 들려준다며 어린 나에게 회고와 대비로 전하는 기발한 발상의 이야기로 과거와 달라진 인생 모토에 나의 세계관이 모종의 계기나 장치로 하여금 깨지게 되는, 마치 데미안의 아브락사스와 같은 깨달음을 주며 톡톡 튀는 발언들과 재치가 한데 엮여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했다.

아련한 흑백의 삽화가 어우러져 더욱 빠져들어 향수와 여운을 함께 느껴 본 너와 나의 야자 시간으로 하여금 오늘 밤은 내 빛바래고 희미해진 추억 안으로 선명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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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그린
마리 베네딕트.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지음, 김지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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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익숙하게 살아간다.

허나 그것이 사라지고 갈증과 필요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위기를 느끼고 종국에는 고통을 경험한다.

이는 과거로부터 뿌리 깊게 각인된 인종 차별과 그 성격을 나란히 한다.

유색인종이 아닌 이들에게는 백인이라는 선천적 권리 또한 그들만의 특권이지만 그들은 스스로가 보호받고 있는 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 경제에 큰 기둥이며 엄청난 파급력의 J.P. 모건 체이스의 설립자 J.P. 모건.

이 이야기는 바로 그 J.P. 모건의 도서관의 관장이었던 벨 그린에 대한 이야기다.

만연한 인종차별로 인한 폭동이 자행되며 남녀평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사회에서 그녀는 J.P. 모건의 사서가 되었고 도서관 건립과 사교계를 섭렵하며 여성인권 신장에 큰 이바지를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J.P. 모건을 현대판 메디치로 만들 거라는 포부를 이루어낸 인물이라는 업적에도 대외적인 활동 이외 사생활이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신분을 숨기고 백인의 삶으로 이루어낸 실상이 아프리카계 유색인종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벨 마리온 그리너가 아닌 벨 다 코스타 그린이라는 백인 여성으로 살아가게 된 기구한 그녀의 삶.

하버드 최초의 유색인 졸업생이자 흑인과 유색인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 아래 태어났지만 현실의 냉혹함에 그녀의 어머니는 백인의 삶을 택하며 아버지와 갈라선다.

가정마저 와해되도록 만든 가혹한 현실 앞에 자녀를 위하여 무릎 꿇은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어쩌면 감시로 느껴질 수 있을 어머니의 품 안에서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자책과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가혹한 현실은 안타까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모든 행실에 신경을 쓰며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죽이며 이어간 파란만장한 삶.

그것은 마치 마를린 먼로와 노마진 베이커의 간극과도 같았다.

또한 유색인이기에 자녀의 피부색까지 생각하며 커리어를 위해 이성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던 이야기와 같이 유색인이기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일화와 부당하게 고군분투하며 편히 누리지 못한 삶, 사랑 이야기들은 그녀로 하여금 페이지터너의 매력을 온전히 갖추어 단숨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탁월한 안목과 사업 수완으로 백인 남성들 안에서 빛을 보이는 면모, 악명 높은 J.P. 모건을 마주하는 데 있어 가족보다도, 연인보다도 특별했던 그들의 긴장감 느껴지는 관계들은 피부색에 감춰진 그녀의 삶을 빛나게 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몇 해 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다.

하지만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비추어 보노라면 아직까지도 저변에 깔린 인종차별은 만연하고 백인들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특권을 망각하고 살아가는듯하다.

이 안타까운 작금의 현실은 본문에서도 다양한 실존 인물과 시대상들의 나열에 더욱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소설이 아닌 현실이기에 더욱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도 색안경을 끼고 있는 이들에게 벨그린을 감상하길 추천하고 싶다.

제발 깨어있는 선각자가 되어 더 이상은 제2의 고통받는 벨 그린이 나오질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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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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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면 자주 언급되는 수능 한파.

이는 대한민국 교육 과정의 종착지라고도 볼 수 있는 수학 능력 시험일이 11월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로, 수험생들과 학부모의 부담과 걱정, 떨림이 전해져 날씨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11월의 여느 날과는 사뭇 다른 매서운 추위가 느껴지는 단어이다.

이처럼 시험이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고 마주하기 껄끄럽고 불편한 존재임이 틀림없는데, 이 감정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1933년 출판된 게르버는 출판된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임에도 오늘날의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날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며, 반복되는 졸업 시험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운 주인공 게르버의 내면을 소름 끼치도록 섬세하게 묘사해 화자의 심적 부담이 직접적으로 전해져왔다.

통칭 쿠퍼 신이라 불리는 수학교사 아르투어 쿠퍼는 학생을 입맛에 맞춰 재단하는 존재로 권력을 앞세워 유치할 만큼 저열하게 학생들을 괴롭혀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낸다.

화자인 게르버는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거나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미성숙함을 보여주는데 이 반복되는 상황들로 하여금 그가 쿠퍼 신과 대비되는 모습을 극대화시켜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독자들은 한마음으로 게르버의 합격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릇된 어른의 모습으로 주객이 전도당하며 희생당하는 학생들의 실상을 참신하고 기발한, 시어와 같은 표현들과 뼈 있는 문장들의 향연으로 각인시켜, 읽는 동안 저자의 유려한 필력은 독자로 하여금 쉴 새 없이 감탄을 자아냈다.

여기에 저자 또한 게르버와 같이 혼돈의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고, 작품을 쓰던 일주일 동안 실제 무려 열 건의 학생 자살 소식이 신문 기사에 실렸다고 하니 고증을 통한 혼란이 더욱 적나라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허나 이는 소설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르버는 오늘날의 현실과 동떨어진 바가 전혀 없다.

참된 교육자로서 지향해야 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허점 투성이의 교육과정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고 반성하게끔 따끔한 충고와 조언을 건네는 현실이 녹아든 우리 눈앞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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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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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이 살아가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이번에 만나 본 주인공 이서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책에 사로잡혀 뜻하지 않게 너무나 성급하게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였다.

아버지와 동생이 함께 떠난 여행.

그 설레는 여행 첫날밤 사라진 아버지와 그들을 죄여오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습격.

숨 가쁘게 턱밑까지 다가오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독자마저도 숨죽이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단순한 추격전이 아닌,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감당키 어려웠기에 각자 꽁꽁 숨겨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트라우마와 상처가 만나 극한의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주며 시너지효과를 만들어 주인공들이 각자 서로를 치유하고 성장하게 만들었다.

시나브로 드러나는 복선들로 상황을 추측게 하는 재미가 돋보였고, 동생 이지의 순수함으로 가족애를 더욱 짙게 그려내거나 위기를 사실적으로 나타내는 등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해 독자를 이끌었다.

여기에 어른들의 나태함, 무능함을 선명한 대비로 그려 책임감이라고는 내팽개쳐지고 당연한 것들이 주객전도된 아이러니한 상황들의 연속이 궁지에 몰리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보여주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나락으로 갈 수 있는지.

입맛에 따라 재단하며 속단하는 인간의 비열함까지 철두철미하게 계산하여 독자에게 선명히 각인시켜주었고, 독특하고 아름다운 표현들까지 갖추어 이번 작품은 신인작가의 작품이라는 타이틀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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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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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을 읽기 전, 제목만으로 기대감과 의심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되었다.

과거 십여 년 전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을 읽고 기이한 형태의 건물의 매력과 충격적인 반전으로 미스터리 소설에 짜릿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연 이 작품은 나에게 그때의 쾌감과 놀라움을 다시 선사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내가 가졌던 기대를 넘어선 기대 그 이상의 작품이었다.

집을 구입하려는 지인의 요청으로 새로운 집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된 화자.

그는 뜻밖에 이 집의 기묘하고 독특한 점을 발견하며 또 다른 그의 지인 건축 설계사 구리하라씨와 수수께끼의 공간이 있는 평면도를 관찰하게 된다.

이 추측의 과정에서 저자는 평면도만으로 마치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제어할 수 없을 만치 빠져드는 몰입도 높은 필력으로 독자를 휘둘러 이야기 안에 녹아들게 만들고야 만다.


주택 도면만으로 이리도 괴기스럽고 경악할 만한 이야기를 추측하다니!

가히 기발한 발상과 소름 끼치는 이야기들이 평면도 속에 숨겨져 삽입된 도면이 겹치고, 확대되어 주목하게 되는 순간, 더욱더 흡입력 있는 강조된 필체가 독자를 경악하게 만든다.

별 감흥 없이 쉬이 지나갈 수 있을 그 집.

그곳에는 저자의 상상력으로 가공된 엄청난 사연과 비밀이 감추어져있었다.

양파와도 같이 벗겨내어도 속 안에 마치 마트료시카와 같은 수수께끼가 또 숨어있는 걸작.

이상한 집을 통해 맛 본 저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최근 보아온 여느 작품들 가운데 가히 으뜸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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