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들려주는 나무에게 배우는 지혜
유영만 지음 / 나무생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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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나무 예찬'이라는 수필을 배운 적이 있었다.

나무는 자기가 선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운명대로 묵묵히 서서 알아주지 않더라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성자와도 같은 존재다.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선생님이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 하고 묻길레 손을 들었다. 무슨 나무가 되고 싶냐고 물어서 그냥 나무이기만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니까.


수필의 내용도 좋았지만 나는 정말로 나무를 좋아했다. 성자와도 같은 기품, 모든걸 주고도 바라지 않는 희생, 묵묵한 운명주의자..이런 수식어에 동의하고 내면을 닮아 가고자 해서가 아니라 한 번 눈여겨 본 나무는 금방 알아 볼 수 있어서였다. 무얼 기억하거나 인식하는 능력이 아주 부족한 내가 나무는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이게 무슨 나무다 알고 나면, 잎이지고 꽃이 피지 않는 겨울에도 나무 줄기의 질감만으로도 금방 알 아 볼 수가 있다는 걸 알고 나무를 좋아했다. (물론, 이것도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나무들은 돌아서면 까먹는다.ㅠ)


나무를 좋아하니 나무를 눈여겨 봐 지게 되고, 관심을 가지니 나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좋았다.

지금도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없다. 그냥 나무이기만 하면 되는 것도 마찬가지고.


지식 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들려주는 나무에게 배우는 지혜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는 생각없이 나무를 좋아해 온 나에게 나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정립해 준 책이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철학적이고 선문답처럼 들리는 제목 만큼이나 내용도 나무에 대한, 나무를 위한, 나무의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바라보는 나무와 원래 나무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비교할 수 있었고, 나무에 대한 지식들과 상식들이 가득한 나무 보고서이자 보고(寶庫) 였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 처럼 '나무를 잘 알지 못하면서 늘 만나서 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을 고쳐주고 나무를 다시 보이게 했다. 삶의 근본과 원리,방식을 모두 나무에게 배운다는 큰 타이틀을 가지고 설명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모든 나무에는 철학적이고도 선현의 자세가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비교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고 흔들리며 버리며 사는 나무들을 설명하는 저자의 인용문구 또한 명 문구들이어서 나무를 표현하고 알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연구를 해 왔는지 책 뒤의 미주가 대변해 주었다.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옹이, 나이테, 해거리.. 이 모든 것에 대한 나무의 특성과 생존해 가는 방법을 생태학자의 지식으로 설명하고 나무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되어 소개했다.

3부에서 소개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나무나 소나무, 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맹그로브나 주목, 자귀, 고욤나무에 대해 새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동요에도 나오는 '너랑 나랑 살구나무~'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보니 옛 사람들이 풍류를 즐기는데 빠지지 않던 꽃이라 이왕이면 풍류를 아는 사람으로 늙어 가고 싶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 온 꽃이고 나무였다.

우리 토종 살구는 개살구인데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을 살구나무로 만드는 목탁에 비유해 더 구슬프고 청명하게 울려 퍼질 것

이라는 설명도 멋졌다.

나무가 추는 다섯 가지 춤- 멈춤, 낮춤, 갖춤, 맞춤, 막춤에 대한 설명도 나무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해 주는 것이어서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책 표지에 쓰인 "나무에게는 모든 순간이결정적인 순간이다" 라는 말은 나태하고 안주하며 사는 나에게 죽비소리와도 같은 깨달음이고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나무로 태어나고 싶으면 나무처럼 살아가는 걸 배워야 한다는 알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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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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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을 떠올렸다.

책을 읽는 내내 비틀즈의 노래가 배경으로 흐르는 것 같았고 혼자서 We all live in a yellow submarine,Yellow submarine, yellow submarine~~흥얼흥얼 거렸다.

성인용품을 팔던 봉고 일명 '육봉 1호'의 무한질주가 목포 바다의 노란 잠수함에 가 닿을 때 까지.


여정을 따라가며 펼쳐지는 영화를 '로드무비'라고 부르니 이 소설은 '로드노블'쯤 될 것 같다.

스물아홉 살, 나름 투철한 직업적 윤리의식을 가진 성인용품 판매자 김현태, 월남 전 상이용사로 하반신을 못쓰는 김난조, 같은 전우이면서 고엽제 피해와 치매를 앓고 있는 나해영, 아이돌을 꿈꾸는 대책없는 막무가내 고딩 일진 모모 - 네 사람의 불협화음 희안한 동행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이 나므로.


월남 참전 두 영감이 제시한 부산까지만 데려다 달라는 협박과 회유에 못이겨 반 강제로 출발한 여정에 하숙집 딸 모모까지 동승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여행은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협박에 못이겨 반강제로 출발했음에도 현태는 유괴범으로 몰리게 되고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했음에도 여정은 쉬이 끝날 생각을 않는다.

그러면서 나노인과 김노인이 가진 월남전의 상처와 트라우마, 숨겨진 이야기와 내면의 아픔들을 알아가면서 지긋지긋하고 떨쳐고 도망가고 싶던 두 노인게게 현태도 '스톡홀름 증후군'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그들의 계획에 동조하게 되는데...


나노인과 김노인이 노란 잠수함을 타고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베트남에서 만난 연인 타잉이 살고 있는 곳, 어쩌면 이 세상과는 다른 낙원의 페퍼랜드로 무사히 도착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무사히 도착한들 그렇지 않다고 한들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궁극의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마지막 희망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갈 때 느끼는 희열과 목적지에 갈 수있다는 가능성의 확인으로도 충분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담과 유머가 잘 버무려진 이야기들은 지루하지 않았고,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와 충분히 있음직한 상황들이 이야기를 더 친근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위급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웃음 포인트를 잊지 않았고  긴장과 스릴이 넘침에도 불안하지 않는 여유가 있는 이야기였다. 네 명의 캐릭터가 갖는 각각의 개성들이 탁월해 묘한 조합을 이루면서 각자의 이야기로 빛을 발할 수 있게 그려낸 것도 좋았다. 그리고 분명 가까운 누군가가 목포에 살고 있어 몸으로 체득된 사투리를 전수해 자연스럽고 스며드는 호남 사투리의 구사가 이 소설의 감칠맛을 더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뒤로 갈 수록 이야기가 산만해져 처음의 집중력과 재미가 분산되어지는 아쉬움과 어디선가 들은 듯한 대화들로 독자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고 싶어한다는 욕심이 느껴졌다.


예를 들면, 연예인이 되고 싶지만 얼굴도 몸매도 안되서 미용기술이라도 배워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모모의 푸념에 김난조 영감이 뭐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뭐라도되게 돼 있다는 얘길 해 주고 모모도 뒤에 두 영감을 회상하면서 이 얘기를 또 한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고 교훈이나 격언의 뜻이 담긴 얘기도 아니다. 너무 평범해서 귓등으로 흘려 버릴 수 있는 얘기지만 이런 말은 강호동이 했고, 김제동이 했고, 거 누구냐? 그래,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 제목 '뭐라도 되겠지'로도 나온 바 있어 식상한 얘기가 되어 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말에 뭔가 의미를 덧 씌워 괜찮은 말로 들리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자주 듣는 람을 약발이 약해진다는 건 슬프지만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열린 결말로 노인들의 생사를 밝히지 않은 건 좋았지만 이것도 배에 가득 술 병을 싣고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비슷한 상황을 또 설정해 내지 말란 법 없으니 그럴 수 있지- 내가 뭘 좀 읽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 그런거라고 생각해 주길. 허허허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했다. 처음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구성도 이야기의 속도 내용도 좋았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있는 힘이 느껴진다는 게 가장 좋은 장점으로 느껴진다. 차기작을 기대해도 좋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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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선 - 영화에 드러난 삶의 속살
윤창욱 지음 / 시그마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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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 만큼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갈 수 없는 세상이 있고, 내가 알 수 없었던 시간이 있으며, 내가 바라는 꿈들이 있어서다. 
'그리워 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영화 속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인지도. 
현실은 잠시 잊고 그들이 그려 놓은 세상으로 들어가서 '호영몽'의 상태로 유영하다 다시 '레드썬!' 다시 돌아왔을 때 내 삶을 비교해보고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비록, 남루하고 비루한 삶이긴 하지만 그런 중에 위로도 받고 성찰로 가기도 한다. 

[마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선]은 저자가 영화에서 느낀 먹먹한 슬픔과 아름다움을 교차시켜 짜 내려간 황홀한 직물같은 매혹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비판 정신으로 상처에 대한 인식과 치유에 대한 극복 가능성 모색의 장으로 읽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고 했다.(바라는 것이 좀 많아요. 선생님.^^)
어느 그물에 걸리든 읽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저자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본다. 

마흔,나이를 앞세운 제목이다.
나이 먹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 서는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더 공감을 하며 읽었다.
저자가 소개한 영화를 모두 본 건 아니다.
다행히 안 본 영화보다 본 영화가 많긴 했지만 같은 영화를 보고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반성하며 읽었다.
젊어 본 영화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관점이나 개인적인 성찰,생각해 볼 문제를 제시 할 때 단순히 재미있군, 내 취향은 아니군,으로 끝내버린 내 짧은 영화 감상평들이 부끄러웠다. 

삶에는 때로 위로가 필요하다, 시대와의 불화,찬란하 탈주의 꿈, 선택은 언제나 치열한 떨림이어라,그토록 서늘했던 폭력의 기억, 만남과 헤어짐의 다섯 가지 얼굴-다섯 챕터로 스물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평을 실었다.
평론가들이 평하는 별 몇 개의 평이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 솔직한 감상평과 삶에 빗댄 성찰, 인상 깊었던 대화, 주인공 분석,독자들에게 던져 생각하게 하는 질문의 내용이었다. 
챕터가 끝난 부분에서 '엮어 읽는 영화이야기' 지면을 통해 영화를 통한 심리 치유와 공감 이끌어 내기 부분을 할애 했다. 어려운 심리 용어와 더불어 영화적 상황을 들어 우리도(혹은 우리는)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방향 제시를 해 주었는데(현직 국어 선생님이시라고..)선생님 다운 지면인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봤던 영화에 대해선 나와 비슷했거나 다른 부분에 대한 비교 읽기로 영화가 한 층 풍성해 지는 느낌이었고 보지 못했던 영화는 내용을 알 수 없어 꼭 봐야겠다는 생각과 내용을 알 지 못해 더 꼼꼼히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들여다 보는 진지함의 시간이었다. 

마흔이 되었을 때,어쩐지 삶을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과 시선으로 살아가야 될 것 같았다.
흥청거리고 비틀거리던 삶에서 다잡고 세워가는 삶이어야 하지 않겠나?하는 사람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 했다고나 할까?ㅎㅎ
귀신을 보지는 못해도 귀신과 대거리 할 정도는 된다는 사십대고 보니 -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이전과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타인이나 상황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것과는 별개로(이건 갈고 닦은 인격의 문제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더라.ㅠ) 내 안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느껴지기 시작했던 거다.
보통은 구질구질하고 칠칠치 못한 나에게 대한 실망이지만, 더러더러 내가 나를 보듬어 주는 연민의 시간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위로로 나를 위로할 때 치유의 속도가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자도 이런 시각으로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설령 아니더라도 저자가 마흔의 시선으로 본 영화들의 깊이는 참 좋았다.

본 영화임에도 새로운 영화를 소개 받는 것처럼 생경해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을 책을 덮을 때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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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채소 자수 - 키친 가든을 수놓는 풍성한 채소 72점
아오키 카즈코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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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스의 손이 있는가 하면 마이너스의 손이 있고 황금 손이 있으면 똥 손도 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 측면의 뛰어난 사람도 있지만 신의 경지에 올라 넘사벽인 사람들도 어느 분야에나 있다.

마이너스 똥 손인 나에게 자수계의 넘사벽은 아오키 카즈코다. 한자로는 靑木和子! (한자를 어떻게 일본어로 읽는 줄 몰랐을 때 청목화자 자수책 있어요?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ㅋㅋ)


처음에 아오키 카즈코의 자수책을 보고 이건 사람이 아니야! 싶었다. 어떻게 이런걸 바늘을 통해 실로 수놓을 수 있단 말인가? 경이와 감탄 그 자체였다. 내가 수를 좀 놓아 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전혀 놓을 줄 몰랐기에 그 감동이 더 컸다. 그러면서 해 본 적은 없지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어디선가 불끈, 솟아 책을 지르기 시작했다. 청목화자씨 것으로만.^^

번역이 되어있지 않아 일본어 뿐인 책을 무슨 생각으로 사쟀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수놓기의 목적보다 힐링의 목적이 더 컸던것 같다.

꼭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실이 그려놓은 예술의 성취를 느끼지 않아도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책이 아오이 가즈코의 수놓기 시리즈다. (실제로 따라 해 본 사람으로써 하는 말인데 직접해 보면 손이 발만 못한 나같은 사람은 바늘을 드는 즉시, 실이자기 갈 길을 알고 있다는 듯 생각과는 다른 모양을 그리고 있어 힐링보다는 스트레스가 훨씬 큼을 깨닫게 된다. 슬픈 일이다.ㅠ) 


 

아오키 카즈코의 여러가지 시리즈가 있지만 이번은 정원 채소 자수다.  

지인이 보내 준 각양각색의 채소를 스케치하면서 시작되어 직접 토마토를 기르고 채소 재배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자수라면 의외로 표현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펴 낸 책이라 했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수채화로 그리기 어려운 채소들을 자수로는 쉽게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흠, 사람이 아닌게야..할 수 밖에.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갖가지의 채소와 야채,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꽃과 곤충, 채소를 기를 때 사용하는 도구와 장비들이 그림처럼 나온다. 이걸 모두 수로 놓았다니 생각하면 책인데도 손으로 쓸어보게 된다. 각각의 특색과 질감을 어떻게나 잘 표현해 놓았는지 현빈의 츄리닝 만든 이탈리아 장인은 장인도 아니군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단순한 듯 하면서도 사실적이고 어디에 포인트를 주어야 수놓기가 살아나는지 오랜 경험과 내공으로 표현해 놓았다. 해 보면 쉽지 않지만 보고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도록 아무렇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장점이자 함정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 마시라.

마이너스 똥 손인 나도 시도를 해 볼 만큼 자세한 설명이 뒤에 첨부 되어 있다.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면 바로 도안을 그려 본격 작업에 들어가면 되고 초보자를 위한 기초 자수 스티지를 그림과 함께 설명해 놓았으니 하나씩 따라해 본 후 시도하면 된다.  자수를 놓을 때 주의해야 할 점과  요령도 알려 주고 있으니 참고하면 실이 제멋대로 가는 걸 통제하는데 도움이 좀 된다.

(출판사가 진선 아트북인데 실용서를 가장 알차고 실생활에 쓰일 수 있도록 실용서 답게 만드는 출판사가 진선이라고 느껴왔다.)


서당 개 삼년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아직은 초보가 확실 하지만 꾸준히 한 보람이 있어 더러 칭찬도 듣기도 하는데 좀 더 열심히 해서 정원 채소로 이어지는 부엌 바란스를 만들어 보는게 목표다.


수를 놓다보면 어느새 생각이 수실처럼 정리되고 마음의 시름이 실을 통해 천으로 옮겨져 그림으로 승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남 발만 못한 손을 가진 내가 수준에도 안 맞는 책을 사 모으고 완성도도 떨어지는 수놓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격도야의 장이자 자기성찰로 이어지는 수도의 시간이 수놓기 시간이라 나는 생각한다.


자, 이젠 도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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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스페셜 에디션)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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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그룹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 그룹안에 이석원이라는 가수가 있는 줄도 몰랐을 때 [보통의 존재]를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악조건을 골고루 갖춘 파란만장 시절을 보냈었구나' 였다.

괜찮았던 어린시절 이후의 우울하고 지난한 그의 이야기는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를 떠올리게 하면서 이런 삶도 있는데 지금의 내가 느끼는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은 상대적 비교로 위로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몇몇의 지인에게 책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이런 삶에 비하면 니가 얘기하던 하소연은 엄살이고 어리광인 줄 알아- 메세지를 담아서.

읽고 나서 좀 잠잠해지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남 팔 잘린 것 보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법이라 술 마실 때마다 나도 그들도 여전히 징징거리며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듯 각자의 처지를 안주 삼는다.


그의 책을 읽고 나서 '언니네 이발관' 그룹 노래를 찾아 들었고 이석원이라는 가수에 대해 검색해 보기도 했다. 뭐 그리 깊은 관심은 아니었다. 팬클럽에 가입한다거나 앨범을 산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으니-

노래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만 글은 참 조근조근 귀에 잘 들어오게 쓰는 사람이구나 했었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건 어쩌면 노래보다 글을 쓰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그 후, 장편 소설을 한 권 내었다는 소식을 들었고(나는 읽질 않았다.)다시 산문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 것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첫 번째 그의 이야기가 솔직해서 마음이 아릿했다면 두 번째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개인의 사생활을 까발려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어린시절 이후 겪은 방황이나 삶의 질곡을 견뎌온 시간들의 이야기에서 이혼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인데 이걸 소설로 읽어야 할지 에세이로 읽어야 할지 읽으면서도 헷갈렸다.

너무 솔직해서 너무 적나라해서.

그치만 솔직이든 적나라든 수위를 조절하하는 건 작가의 영역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거나 이견을 갖거나 각자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건 독자의 영역이다.


내용의 수위가 높았다는 것이지 내용이 나빴다는 건 아니다.(내경우에^^) 오히려 높은 수위 덕분에 휘리릭 잘 읽었다. 

마흔을 넘긴, 결혼의 경험이 있는 남녀의 만남인데 첫키스에 가슴이 떨려 밤을 지새우고 문자 한 통에 만세를 부르며 아이처럼 좋아만 하고 있을리 없잖은가?

이런게 어른들의 사랑이지!  그래서 간간이 같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잘 되었음 싶기도 했고, 동화의 엔딩처럼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지만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아는 게 또 어른의 사랑이다. 

마지막 열린 결말에 그들의 사랑이 이어지길 독자의 한사람으로 진심으로 바랐다.


그의 충격적이고도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한 사랑이야기가 차츰 독자들 손가락의 가시에 밀려 잊혀져 가는 걸 알았던 걸까?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미발표 에필로그 수록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권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나왔다.

2년 만이다.


왜 그러셨어요? 묻고 싶었다.

그의 열린 결말의 끝을 아쉬워하며 내가 그랬듯, 많은 독자들이 응원을 보내고 가슴 아파하고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처럼 떠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가 몰랐을리 없다.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이렇게 다시 색을 입히고 싶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출판사의 상술에 결탁한 것만 아니라면 좋겠다.ㅠ) 굳이 알리지 않아도 달라질 건 없는 에필로그였고 분량이나 성의면에서도 먼저 책을 읽고 재구매를 하는 독자에겐 허탈함만 주는 구성이었다.


스페셜 에디션 이전의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내가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을 수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미발표 에필로그 수록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다시 이 책을 사게 된 독자라면 묘한 배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끝내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끝을 알 수 없어 더 깊이 새겨지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그냥 새로운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고 속상한 스페셜 에디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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