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방 - 개정증보판
오쓰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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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야지 하지만 이미 일부가 되어 떼어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지적도 받고 장식적인 효과도 없지만 떼어 낼 수도 알아서 떨어지지도 않는 쇠고래의 등에 붙은 따개비같은 거랄까.

내 경우엔 미리 미리가 안된다는 거.

그러나, 오늘은 죽을 힘을 다해 '더 좋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 하나쯤 해치워야지' 하는 따개비를 뜯어내는 심정으로 서평을 적는다.

남쪽으로 꽃놀이를 가기로 했으니까. 하하하하.

재밌게 읽은 책이다.

ZOO로 출판 되었던 책을 제목을 달리해 나왔는데 나는 처음 읽었으나 제목을 바꾼게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ㆍ

오츠이치는 17세때 이미 작품을 발표한 아주 유명한 추리 스릴러 작가지만 필명을 달리해 가며 여러장르의 소설을 쓴 작가로도 유명했다.

로맨스를 쓸 때는 오달달, 스릴러를 쓸 때는 오츠이치, 따뜻한 이야기를 쓸 때는 오감동 이런식으로 브랜드화 된 이름이 있다는 건데, 자신이 중학교때 사용했던 계산기 상표 'Z1'에서 따온 오츠이치의 필명으로 낸 소설들이 나는 제일 재밌다.

왜냐하면, 오츠이치로 발표한 작품 밖에 읽어 보지 않았기 때문. 껄껄.

11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 대여섯 편이 영화화 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으나 한 편도 보질 못했다.

( 일본영화는 우리나라에 잘 소개 되지 않고 소개 되더라도 로맨스가 많고 로맨스라도 잘 보게 되지 않는다는 메커니즘같은게 있다. 물론, 나만)

"누나, 우리 이 방에서 나갈 수 있을까?"

작품마다 논란과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천재작가 오츠이치의 귀환!

띠지에 이렇게 적혀 있는데, 표제작인 '일곱 번째 방'에 대한 이야기이자 오츠이치에 대한 한 줄 요약을 잘 나타낸 편집자의 내공이 드러난 한 줄 이다.

추리 소설을 읽을 때면 나름 추리를 해 가며 읽는다.

이 사람은 너무 뻔해서 범인에서 제외, 저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라서 제외, 읽다보면 작가가 알아서 제외...

'일곱 번째 방'에서는 방에 갇힌 남매가 어떻게 탈출을 할 수 있을지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마지막의 반전에서 앗!! 허를 찔린 기분과 함께 "오츠이치!! 천재군, 천재야!!" 진짜로 박수를 쳤다ㆍ

제한적 공간에서 시간이 되면 아웃 당한다는 설정이 영화 '큐브'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짧은 단편이라 훨씬 쫄깃하게 읽었다ㆍ

첫번째 작품이 너무 강렬해 뒤에 나오는 단편들은 고만고만해 보였으나 다른 작가의 최고작보다 휠씬 팩트가 강한 작품들이었다ㆍ

맨 마지막 '옛날 저녁놀지는 공원에서'같은 단편은 두어장 밖에 안되고 어디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와 비슷한데도 이상하게 섬찟해져서 '모래속에 함부로 손 넣을 것도 아니군'싶어진다ㆍ

블랙코미디와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등 뒤가 서늘해 지면서 누군가 나랑 책을 같이 읽고있는 듯한 느낌이 드니 밤에는 읽지 마시라 권하고 싶다ㆍ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상상력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현실안주형인 나같은 사람은 소설 같은 걸 쓰기엔 애초에 틀렸구나ᆢ싶어지기도 한다ㆍ노력을 폄하할 마음없고 재능보다 노력이라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돈오점수라면 천재들의 수월함이야말로 돈오돈수가 아닐까 싶다ㆍ어쩔수 없이 부럽다ㆍ

그리하여 나는,

찌질한 부러움을 끝으로 적기를 마치고 봄이 가득할 남쪽으로 떠난다ㆍ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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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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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받쳐 든 우산 같은 소설. 나를 감싸는 세계가 있어 나는 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구나 싶어지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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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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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뜬금없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렸던 작은 도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늦은 시작은 없다고 하지만 적기는 언제나 있다.

적기가 아닐 때 하는 시작은 성공의 가능성과 효율성을 낮출 뿐 아니라 수행 과정에서도 상황에 따라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한 법이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쓸데없는 일이었다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을 끝낸 나에게 대견하다고 얘기한다. 앞으로의 삶에 무엇이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는 우산이라 생각했다. 비 맞을 일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황정음의 연년세세는 비 속에서 받쳐 든 우산 같은 이야기다.

질척거리고 쉽지 않은 길을 가지만 비가 들이치지 않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던 우산이 있어 걸을만했다는 위로가 있는 이야기다.

2020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라는 타이틀 때문에 샀는데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

같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말이기도 하구나 생각했다.

한 가족 세 모녀의 연작 이야기인데 하나의 단편들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순일씨와 그녀의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를 각각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유순일 씨가 본인의 이름을 순자라고 알고 있었던 시절의 회상으로 기록된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의 대부분이 느꼈을 절대치의 가난이었을 테지만 비슷한 듯 다른 아픔과 상처들을 읽으면서 울컥했다. 인공관절을 넣어야 하는 통증을 견디면서 딸 살림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꿋꿋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는 이순일씨께 괜히 감사했다. 내 엄마도 비슷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기에.

백화점에서 이불을 팔며 감정도 함께 팔아야 하는 늘 피곤한 한영진이 엄마 이순일에게 늘 들어오던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p.82)'의 이야기를 할 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그 한 줄에 눈이 걸려 오래 생각했다.

그래,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었지... 이전에도 지금도. 이순일도 한영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도.

결혼하지 않고 글을 쓰며 사는 한세진의 이야기는 눅진한 생활의 냄새는 덜했으나 생활이 덜어졌다고 삶이 수월한 건 아님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 중에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p.142)이라는 걸 같이 사는 하미영의 말을 통해 대신 이야기해준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일은 녹록지 않은 게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격한 감동이나 찌르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엄마 이순일을 통해 두 자매 각자의 이야기가 살아가는 일을, 살아가게 되는 일을 그러는 중에 우리는 무엇이고 누구이고 무엇을 향해 가는 사람들인가를 생각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쉽게 쓰인 듯한 이야기가 이렇듯 깊게 젖어 오는지 모를 일이다.

빗속을 걸어가는 동안 비 오지 않은 작은 세계를 만들어주는 우산이 든든하기는 하지만, 빗속에서 온전히 우리를 지켜내지 못하는 걸 안다.

그래도 우리 손에 쥐어진 작은 우산이 얼마나 큰 위로이고 따뜻함인지 우산에 의지해 빗속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지치고 힘든 날들의 중간에 읽어 더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잠깐 흘려들은 이야기가 온 밤을 지새우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진 소설이다.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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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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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행, 맛집, 요리 등 자신의 경험을 적는 책이 한참 나왔다.

전문가들이 주로 내다가 유명인들, 일반인들 순으로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와 재미를 담아 과히 홍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는데,

지금은 더 나오고 있다!

고대 로마의 문인이자 철학자, 변론가, 정치가인 키케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세상이 타락했다. 잡것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책을 내려고 한다!"

예를 들 수 있는 잡것들을 거론하자면, 포경선 선원이었던 경험으로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며 성을 쓴 프란츠 카프카, 세관원으로 일하다 주홍 글씨를 쓴 나다니엘 호손, 어린 시절의 고난이 투영된 올리브 트위스터를 쓴 찰스 디킨스 같은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잡것들의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코로나 시대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개인의 경험이나 직업에 대해 적어 책을 출판하는 사람이 엄청 늘어났다는 기사를 봤다.

1인 미디어 시대와 더불어 개인의 직업, 취미, 경험 등을 담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중에는 좋은 반응을 얻어 꾸준히 출판되고 있는 책도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대단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신변잡기를 적은 책들은 거의 읽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지 않기도 하거니와 별로 재미가 없다.

한참 지구 곳곳 한 곳의 오지도 빼놓지 않고 훑은 듯한 여행책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을 때 몇 권 읽기는 했지만, 경험담 위주의 책은 그만 읽고 싶어지고( 내 경험이 아니고 나도 똑같은 경험을 하리란 법이 없어서), 안내서는 딱딱해서 읽기가 싫었다.(방향치에 길치라서 지도를 보여주며 이리 가고 저리 가면 된다가 입력이 되지 않았다.)

암튼,

키케로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이지, 너 나 없이 책을 내고 있다. 나도 한 번 써 봐? 싶을 정도다.

뭣에 대해서?가 잡히지 않아 그냥 앉아 있다.

잡것의 무리 중 누가 세계적인 대 문호의 반열에 오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잡것들의 움직임이야말로 민심이고 또 다른 한 세계를 키우는 원동력이었다. 역사적 고증을 살펴볼 때.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나도 그 잡것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잡것들의 약진을 응원한다. 매우.

하정우의 책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

아이덴티티가 딱 살아있는 책 제목, 좋다.

출판 당시에도 이슈가 되었으나 신변잡기는 별로라 안 읽었는데, 장 보러 갔다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발견한 책이다.

최근 집에서 놀면서 하정우 영화를 스트레이트로 보고 있어 호감도가 급상승해 있는 상태고, 없이 살다 보니 돈 드는 운동 말고 장비가 필요 없는 걷거나 뛰는 쪽에 관심이 있는지라 제목에 혹했다.

결론은 아주, 나이스!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게 되면 그 트로피를 들고 국토 대장정에 오르겠다는 해 본 소리로 정말 팀을 꾸려 서울에서 해남까지의 거리 577km를 걷게 된 577프로젝트의 에피소드, 걷기의 최적화된 도시 하와이, 함께 걷는 친구들, 자신의 영화 이야기, 그림 이야기, 감독 실패기, 음식, 책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사실, 내용은 그냥 그냥 그랬다.

자신이 느낀 대로 있는 대로 쓰는 것이 에세이니 남에게 큰 감동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나이스였냐?

첫 번째는 책 속의 사진에서다.

글. 사진이 하정우니 본인이 다 쓰고 찍었다는 건데,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한 가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걷는 이야기니 주로 운동복에 런닝, 팬츠 사진이 많았는데 이렇게 내츄럴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꾸미지 않고 생활감이 묻어 나오는 사진들이었다. 원래 멋있으니 꾸밀 필요를 못 느꼈겠지만, 분장기가 전혀 없음에도 멋짐이 뚝뚝 흐르더라. (내가 하정우 영화를 열 편 이상 봐서 하정우에 도취되어 있는 영향도 좀 있다.)

두 번째는 정말 걷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시상식에서의 말도 평소에 걷고 있었으니 또 걸으면 되지! 하는 걸어본 자의 경험과 자신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2-3만 보를 걷고 10만 보 걷는 날도 있었다 하니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하면 되지!가 자연스러웠던 거다.

걷는 게 생활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읽을 수 있었고, 걷기의 열정을 샘솟게 해 주었다.

책을 읽고 새로운 결심을 좀체로 하기 힘든 사람인데 이 책이 나에게 걷기의 열망을 심어 주었으니 어찌 땡큐하지 않겠는가?

서울에서 해남까지의 여정을 담은 다큐영화 '577프로젝트'도 네플릭스로 보았는데, 재밌었다.

아, 나도 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코로나만 아니면 당장 나도 지인들을 모아 비슷한 프로젝트를 실행해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다. 기회가 되시면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한다. 강추는 아니지만, 도전욕과 깨알 재미가 있더라.

책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뜻밖에도 알게 해 주어서, 고마운 책이었다.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제주 올레길 도전!!

편도다. 걸을 때까지 걸어보다 도저히 못 걷다 싶을 때 돌아올 것이다.

하루가 될지 열흘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 주엔 서평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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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 강펀치 안전가옥 쇼-트 7
설재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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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다' 또는 '진짜 재밌더라'라는 추천 문구가 달린 책은 일단 장바구니에 담는다.

나도 공감할 만한 승률은 0.2할 정도다.

취향이 달라 실패할 때도 있고 홍보문구에 속아 실패할 때가 많다.

시간도 돈도 아까워 추천한 사람과, 산 책과, 팔랑 귀 나한테 욕을 해 대다 나름 터득한 승률 높이기 자구책이라는 게 생겼는데,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결심. '추천한다고 바로 지르지 말자'였다.

스스로 신중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뿌듯함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한데(껄껄), '다른 매체에서 같은 책을 추천할 때는 지른다'이다.

지난주 인기 블로그( 믿을 수만은 없는 홍보용 블로거들이 많다는 걸 주의)의 침샘 분출 칭찬기를 읽었는데, 이번 주 읽을 만한 책 코너에서 또다시 발견했다면 이건 방점을 찍어 두고, 인기는 없는 블로거들(이런 블로거들은 출판사의 후원없이, 공짜 책의 유혹에 홍보성 서평을 쓰는 일 없는,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는 바위 같은 내돈내산 자의 당당 혹독 후기를 마음껏 쓸 수 있어 신뢰하는 편이다. 나처럼. 하하하)

재밌는 책은 누가 읽어도 재밌다는 게 진리인데 재미없는 책도 재밌다고 혹하게 쓰는 기술이 인기 블로거들의 전략적인 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연마할 생각은 없다.

사뭇 강펀치, 이 책이 그러했다.

두 번의 추천과 비인기 블로거의 솔직 평으로 선택한 책.

꼼꼼한 선택이 가져온 소이불루. 음화화화.

언제나 그렇듯, 사두고 숙성되기를 기다린 책 중 한 권이었는데 선택의 계기가 책이 작고 부피가 얇아서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숨겨가며 빠져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사이즈의 책이어서 네댓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의 예상을 뒤엎고 놀랍게도 서너 시간만에 다 읽었다.

너무 재밌어서!

훅, 강펀치를 맞은 기분- 얼마 만인가.

이 책을 추천한 블로거들을 신뢰하기로 했다.

빛의 속도로 작가 검색 :

외고 수학선생님을 그만두고 복싱 7년 차 체육관 최고참, 자존감의 원천은 넙치근과 전완근.

그럴 줄 알았다. 팔 다리의 남들은 별 신경 안 쓰는 부분 근육에 자존감을 불어 넣은 여자 선생님.

믓찐데!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중생 복서 현진과 그의 친구 윤서가 합심해 체육계의 기득권과 불의를 향해 날리는 [사뭇 강펀치], 사이비 종교 단체 같은 '증마'의 교주를 아버지로 둔 주리가 자신의 외모와 성을 이용해 교세를 확장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남친과 동료를 어떻게 처단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그녀가 말하기를], 전문대를 나오고 악착같이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해가는 쌍둥이 동생과 석사과정의 백수 언니 사이 펼쳐지는 갈등과 무속적인 괴담, 동생의 실종으로 이어지다 훅, 하고 들어오는 반전의 [앙금].

세 편 모두 어퍼컷에 맞은 듯 턱이 얼얼했으나 뒤로 갈수록 강도가 세어지지고 다양한 기술이 들어와 책을 다 읽은 후, 쎈 놈을 만났군! 싶어졌다.

맞고도 희열을 느껴 간만에 나도 승률을 올린 선택이었다.

전작주의 주의보다!

일단, 전작주의 반열에 올라오면 묻따않 팬이 되는지라 마른 오징어에서 엑기스를 짜내는 기분으로 신중해지려 하지만, 이미 안다. 스며들고 말았다는걸.

윤이나 작가의 추천의 말이 있는데,

"[사뭇, 강펀치]를 펼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죽일지언정 죽지는 않으며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젊은 여자들이 가드를 올린 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동의한다ㆍ그리고 그 여자들이 기회를 엿보다 날린 전완근에서 나온 펀치에 맞아 그로기 상태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설재인 작가의 책을 장바구니에 싹 쓸어 담고 보니 이번 달은 책 지출비가 배로 늘었다.

그러나, 재밌는 책은 언제나 옳다. 끗.

...을 낼려다 보니 비루하고 비굴한 내 서평의 흑역사가 돌연 떠올라 변명과 해명의 한 줄을 더 넣기로.

나도 한때 공짜 책에 현혹되어 내 취향도 아니고 재미없는 책에 대해 홍보성 서평은 남긴 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 힘들었고 양심에 가책이 되었으나 끝까지 비굴하지 않았던 것은 7:3으로 홍보용 멘트와 진심인 멘트를 적절히 배치했다는 것.(6:4 나 5:5의 경우도 있었ᆢ각설. 나 아니고는 어디까지가 홍보인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게 함정.)

개과! 천선은 멈. 십여 년 전부터는 공짜에 양심을 파는 글은 안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 진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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