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스페셜 에디션)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그룹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 그룹안에 이석원이라는 가수가 있는 줄도 몰랐을 때 [보통의 존재]를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악조건을 골고루 갖춘 파란만장 시절을 보냈었구나' 였다.

괜찮았던 어린시절 이후의 우울하고 지난한 그의 이야기는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를 떠올리게 하면서 이런 삶도 있는데 지금의 내가 느끼는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은 상대적 비교로 위로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몇몇의 지인에게 책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이런 삶에 비하면 니가 얘기하던 하소연은 엄살이고 어리광인 줄 알아- 메세지를 담아서.

읽고 나서 좀 잠잠해지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남 팔 잘린 것 보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법이라 술 마실 때마다 나도 그들도 여전히 징징거리며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듯 각자의 처지를 안주 삼는다.


그의 책을 읽고 나서 '언니네 이발관' 그룹 노래를 찾아 들었고 이석원이라는 가수에 대해 검색해 보기도 했다. 뭐 그리 깊은 관심은 아니었다. 팬클럽에 가입한다거나 앨범을 산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으니-

노래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만 글은 참 조근조근 귀에 잘 들어오게 쓰는 사람이구나 했었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건 어쩌면 노래보다 글을 쓰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그 후, 장편 소설을 한 권 내었다는 소식을 들었고(나는 읽질 않았다.)다시 산문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 것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첫 번째 그의 이야기가 솔직해서 마음이 아릿했다면 두 번째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개인의 사생활을 까발려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어린시절 이후 겪은 방황이나 삶의 질곡을 견뎌온 시간들의 이야기에서 이혼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인데 이걸 소설로 읽어야 할지 에세이로 읽어야 할지 읽으면서도 헷갈렸다.

너무 솔직해서 너무 적나라해서.

그치만 솔직이든 적나라든 수위를 조절하하는 건 작가의 영역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거나 이견을 갖거나 각자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건 독자의 영역이다.


내용의 수위가 높았다는 것이지 내용이 나빴다는 건 아니다.(내경우에^^) 오히려 높은 수위 덕분에 휘리릭 잘 읽었다. 

마흔을 넘긴, 결혼의 경험이 있는 남녀의 만남인데 첫키스에 가슴이 떨려 밤을 지새우고 문자 한 통에 만세를 부르며 아이처럼 좋아만 하고 있을리 없잖은가?

이런게 어른들의 사랑이지!  그래서 간간이 같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잘 되었음 싶기도 했고, 동화의 엔딩처럼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지만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아는 게 또 어른의 사랑이다. 

마지막 열린 결말에 그들의 사랑이 이어지길 독자의 한사람으로 진심으로 바랐다.


그의 충격적이고도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한 사랑이야기가 차츰 독자들 손가락의 가시에 밀려 잊혀져 가는 걸 알았던 걸까?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미발표 에필로그 수록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권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나왔다.

2년 만이다.


왜 그러셨어요? 묻고 싶었다.

그의 열린 결말의 끝을 아쉬워하며 내가 그랬듯, 많은 독자들이 응원을 보내고 가슴 아파하고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처럼 떠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가 몰랐을리 없다.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이렇게 다시 색을 입히고 싶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출판사의 상술에 결탁한 것만 아니라면 좋겠다.ㅠ) 굳이 알리지 않아도 달라질 건 없는 에필로그였고 분량이나 성의면에서도 먼저 책을 읽고 재구매를 하는 독자에겐 허탈함만 주는 구성이었다.


스페셜 에디션 이전의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내가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을 수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미발표 에필로그 수록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다시 이 책을 사게 된 독자라면 묘한 배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끝내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끝을 알 수 없어 더 깊이 새겨지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그냥 새로운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고 속상한 스페셜 에디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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