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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루이제 린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우선, 예술가를 그가 남긴 예술적 세계로만 평가 하지 못하고 정치적 사건과 연루시켜 평가하는 시대적 상황과 조국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윤이상-
이라는 이름은 백석과 마찬가지로 어느 싯점까지 금기시 되어 오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내가 알게 된 시기는 90년 중반이었고 그 이전엔 세계적으로 이름난 엄청난 음악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이유가 음악에 무관심한 문외한인 탓도 있었지만 이 거장의 음악에 대해 교과서나 음반 시장에서 교육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건 아무래도 1967년 동베를린 간첩 사건(동백림 사건)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이념의 성향이나 이적행위의 경중고하를 막론하고 걸면 걸리는 시대적 배경이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69년 음악가들의 항의와 국제적인 항의와 독일 정부의 조력에 힘입어 석방되었고 베를린으로 귀화한 후 '95년 베를린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 '94년에 서울,부산, 광주 등지에서 '윤이상 음악축제'가 개최되고 나서야 윤이상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최소한 나에게)각인되기 시작했고 아이러니 하지만 그 다음 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대중에게 가까이 느껴지지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방문시 그의 묘에 통영에서 가져간 동백을 식수했다는 뉴스로 그는 또 한 번 이슈가 되었다. 이념과 정치적 성향을 평가하기엔 그를 너무 모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든 간에 그가 남긴 음악적 쾌거는 분리되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적 행위를 했든 간첩이었든 자기 분야에서 명성만 얻으면 그 모든 것이 면죄부를 받아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개개인이 가진 성향으로 인해 함께 공유해야할 공공재까지 빼앗지 말았으면 싶은 이기다.
(사실, 내가 윤이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때 자수 간첩 오길남의 인터뷰를 읽었다. 늘 그런건 아니지만 먼저 들어 온 정보가 똬리를 틀고 있는데 뒤에 들어 온 정보가 그 똬리를 풀어 내쫒은 다음 그 자리에 들어 앉기란 결정적이고도 충격적인 사건이나 제보가 있기전까진 흔들리는게 사실이다.)
책 이야기를 하자.
내가 고등학교때 겉멋으로 읽었던 유리알 유희(고등학생인 내가 이해하기엔 좀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었다는 것 밖에 생각이 안난다.ㅠ)의 저자 루이제 린저가 윤이상과의 대담을 글로 옮긴 책이다.
루이제 린저라는 이름만으로도 동경의 대상이었던 먼 이국의 작가가 한반도 남쪽에서 태어난 (실은 엄청난) 음악가에 대해 글을 썼다는 사실부터 벅차게 다가온 책이었다.
루이제 린저의 남편이 작곡가여서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철학, 문화인류학 등의 영역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의 질문에 이 대담집은 깊은 진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질문자가 대화를 이끌어 간다는 말처럼 루이제 린저의 질문은 윤이상 삶을 관철해 보이고자 하는 집념인 동시에 그의 내면과 정신세계까지 설득해 보이는 날카로움과 이해가 있었다.
보이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부분에서는 힘을 실었고 아프고 힘든 부분은 끄집어 내어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파고들었다.
윤이상의 대답도 진솔했고 꾸밈이 없어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양반 가문에 두번째 아내로 들어 온 어머니의 슬픔과 고향 통영에 대해 느끼는 애잔하고 아름다운 풍경, 어린시절의 에피소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지만 양반가의 체통으로 제를 올리고 시를 읊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 아내와 아이들,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견해, 정치적 희생과 이념의 잣대에 대한 얘기는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더 쉽게 읽혔다. 그도 힘들고 어렵고 가난한 시절을 거쳐 삶을 견디어 왔고 수월치 않은 세월을 견디고 음악적 입지를 굳히기 까지의 시행착오와 주변의 시기어린 험담과 충고를 극복하고 수용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유년시절, 한국과 일본에서의 청춘기, 천직과 자기 발견, 유학, 그리고 첫 성공, 납치,석방과 새출발의 순으로엮어간 윤이상의 일대기는 윤이상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부족했지만 이 거장이 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배경은 충분히 설명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 책을 관통하는 윤이상의 생각이라 믿고 싶다.
그가 무슨 말을 했든 어떤 행동을 했든 집권자의 이념에 맞물려 평가받고 해석되어져 온 증황이 많긴 했지만, 이 책이 그가 베를린으로 귀화한 후 오래지 않아 쓰인 책이고 그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선 쓰일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가 보인 행적들이 순수 예술가의 입지에서인지 핍박 받은 세월에 대한 반대 급부였는지에 대해선 시간이 역사가 재평가 해주리라 생각한다.
대담집의 대부분 내용이 그의 음악적 행보와 쾌거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문외한인 나는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읽고도 가늠할 수없었던 얘기들이 많았다.
다만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입지에 올라있었고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비상하는 용이었음을 느낄 뿐!
'72년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배우들의 모습은 분명 서양인인데 옷과 배경은 한국의 것이라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과 윤이상이 추구했던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융합한 인간애와 민족애를 느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전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음악가인 그를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과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예술가가 생겼다는데 개인적인 의의가 있는 책이다.
어쨌기나 힘든 질곡의 세월 음악으로 이겨내고 음악으로 극복한 그의 한 생애에 하트를 보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