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나 해 볼까? - 몸치인 그대를 위한 그림 에세이
발레 몬스터 지음, 이지수 옮김 / 예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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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것저것 해보다 실패가 예감되거나 시작하려는 일의 성과가 미심쩍을 때 흔히 '다 안되면 농사나 짓지 뭐'하며 자조의 말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사가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런 업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고, 농사를 조금 알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본업을 삼은 적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남들이 보기엔 쉽고 멋있어 보이는 것들이 내 업이 되었을 때의 피눈물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일 게다.  아무나 할 수있다고 덤비는 농사를 정작 평생 농부로 산 사람들은 자식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모두 대처로 도회로 보내는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발레나 해 볼까?]도 그런 맥락에서 읽히는 그림 에세이였다.

위엔위엔이라는 뚱뚱한 아가씨?를 내세워 우아한 발레 세계의 이면과 고충, 생각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뚱뚱'하고 '발레'가 어울리거나 아름다운 조합은 아니지만 뚱뚱한 사람이 발레를 배우지 말라는 법 없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런 속에서 생겨나는 에피소드여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있었다.


저자는 미술반 학생 신분으로 국립타이페이예술대학교 무용과에 지원해 합격하지만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휴학한 경력답게 그림도 재미있게 잘 그리고 발레에 대한 상식과 이해가 깊었다.

짧은 글과 간단한 그림이지만 발레를 아는 사람은 아는사람 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공감을 이끌어 내어 단숨에 읽히게 하는 재미와 흡인력이 있다.

특히, 뚱뚱한 우리의 주인공은 어디서나 빛을 발해 발레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위축을 자연스럽지만 당당하게 표현해 내어 웃음을 짓게 했다. 비단 발레가 아니더라도 일상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 궁금증, 단상들이어서 맞아 맞아 하면서 읽었다.

내 얘기군- 싶은 부분도 많아 웃으면서도 슬펐다. ㅠㅠ


웃으면서 끝나는 에피소드로만 된 것이 아니라 발레하는 사람들을 위한 SNS가이드나 키워드, 발레 초보자용 용어들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어 들을 기회도 없었지만 들어도 어떤 동작을 말하는 건지 모르는 말들을 잘 설명해 주었다.

바를 잡고 다리를 벌렸다 세웠다 하는 동작은 플리에, 고관절에서 시작해 발가락 끝까지 근육을 쭉 뻗어 늘리는 가장 중요한 동작 연습 중 하나인 탕뒤, 다리가 180도로 무릎을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위로뻗어 올리는 데벨로페,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는 동작인 소테 등 외우기 힘들고 직접해 보는건 더 힘들 발레 용어를 익히는 시간이었다.

음, 백조의 호수 군무를 출 때 모두 다리를 공중에서 모으며 날아오르듯 추던 춤이 아살블레였군- 이런 식이긴 했지만.^^


챕트8의 '무대만큼 흥미진진한 무대 뒤 풍경'은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애환이 스며 있어 짠해졌다.

발레복 튀튀가 벗겨질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몇번씩 고정상태를 점검하고 신입 무용수들이 우상을 바라보는 장면, 누구랄 것 없이 튀위톼 타이즈, 토슈즈의 상태를 확인하고 확인하는 강박, 군무 중 통일된 춤이 나오지 않을 경우 일어나는 격한 싸움, 커튼콜의 영광은 솔리스트 이상의 출연자에게만 돌아가는 발레 세계의 냉정함...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그렇고 프로의 세계가 더 가혹한 건 당연하겠지만 그 세계를 알고 경험한 저자가 그린 그림이라 더 애잔하게 다가왔다.


나는 한 번도 감히 '발레나 해 볼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은 해 본 적은 없지만 발레를 (취미로 했건 직업으로 했건) 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달라 보인다. 나에겐 없는 우아함이 광배되어 빛나는 것 같아 단번에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래서 내 친구 중에는 발레를 한 친구가 (다행스럽게?) 한 명도 없다.^^;


발레에 대해 깊이 알기를 원하거나 기술적인 노하우를 배우려는 사람말고 취미로 익히고 싶은 사람이 읽어보면 참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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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루이제 린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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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예술가를 그가 남긴 예술적 세계로만 평가 하지 못하고 정치적 사건과 연루시켜 평가하는 시대적 상황과 조국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윤이상-

이라는 이름은 백석과 마찬가지로 어느 싯점까지 금기시 되어 오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내가 알게 된 시기는 90년 중반이었고 그 이전엔 세계적으로 이름난 엄청난 음악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이유가 음악에 무관심한 문외한인 탓도 있었지만 이 거장의 음악에 대해 교과서나 음반 시장에서 교육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건 아무래도 1967년 동베를린 간첩 사건(동백림 사건)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이념의 성향이나 이적행위의 경중고하를 막론하고 걸면 걸리는 시대적 배경이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69년 음악가들의 항의와 국제적인 항의와 독일 정부의 조력에 힘입어 석방되었고 베를린으로 귀화한 후 '95년 베를린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 '94년에 서울,부산, 광주 등지에서 '윤이상 음악축제'가 개최되고 나서야 윤이상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최소한 나에게)각인되기 시작했고 아이러니 하지만 그 다음 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대중에게 가까이 느껴지지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방문시 그의 묘에 통영에서 가져간 동백을 식수했다는 뉴스로 그는 또 한 번 이슈가 되었다. 이념과 정치적 성향을 평가하기엔 그를 너무 모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든 간에 그가 남긴 음악적 쾌거는 분리되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적 행위를 했든 간첩이었든 자기 분야에서 명성만 얻으면 그 모든 것이 면죄부를 받아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개개인이 가진 성향으로 인해 함께 공유해야할 공공재까지 빼앗지 말았으면 싶은 이기다.

(사실, 내가 윤이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때 자수 간첩 오길남의 인터뷰를 읽었다. 늘 그런건 아니지만 먼저 들어 온 정보가 똬리를 틀고 있는데 뒤에 들어 온 정보가 그 똬리를 풀어 내쫒은 다음 그 자리에 들어 앉기란 결정적이고도 충격적인 사건이나 제보가 있기전까진 흔들리는게 사실이다.)


책 이야기를 하자.

내가 고등학교때 겉멋으로 읽었던 유리알 유희(고등학생인 내가 이해하기엔 좀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었다는 것 밖에 생각이 안난다.ㅠ)의 저자 루이제 린저가 윤이상과의 대담을 글로 옮긴 책이다.

루이제 린저라는 이름만으로도 동경의 대상이었던 먼 이국의 작가가 한반도 남쪽에서 태어난 (실은 엄청난) 음악가에 대해 글을 썼다는 사실부터 벅차게 다가온 책이었다.

루이제 린저의 남편이 작곡가여서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철학, 문화인류학 등의 영역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의 질문에 이 대담집은 깊은 진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질문자가 대화를 이끌어 간다는 말처럼 루이제 린저의 질문은 윤이상 삶을 관철해 보이고자 하는 집념인 동시에 그의 내면과 정신세계까지 설득해 보이는 날카로움과 이해가 있었다.

보이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부분에서는 힘을 실었고 아프고 힘든 부분은 끄집어 내어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파고들었다.

윤이상의 대답도 진솔했고 꾸밈이 없어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양반 가문에 두번째 아내로 들어 온 어머니의 슬픔과 고향 통영에 대해 느끼는 애잔하고 아름다운 풍경, 어린시절의 에피소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지만 양반가의 체통으로 제를 올리고 시를 읊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 아내와 아이들,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견해, 정치적 희생과 이념의 잣대에 대한 얘기는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더 쉽게 읽혔다. 그도 힘들고 어렵고 가난한 시절을 거쳐 삶을 견디어 왔고 수월치 않은 세월을 견디고 음악적 입지를 굳히기 까지의 시행착오와 주변의 시기어린 험담과 충고를 극복하고 수용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유년시절, 한국과 일본에서의 청춘기, 천직과 자기 발견, 유학, 그리고 첫 성공, 납치,석방과 새출발의 순으로엮어간 윤이상의 일대기는 윤이상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부족했지만 이 거장이 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배경은 충분히 설명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 책을 관통하는 윤이상의 생각이라 믿고 싶다.

그가 무슨 말을 했든 어떤 행동을 했든 집권자의 이념에 맞물려 평가받고 해석되어져 온 증황이 많긴 했지만, 이 책이 그가 베를린으로 귀화한 후 오래지 않아 쓰인 책이고 그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선 쓰일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가 보인 행적들이 순수 예술가의 입지에서인지 핍박 받은 세월에 대한 반대 급부였는지에 대해선 시간이 역사가 재평가 해주리라 생각한다.


대담집의 대부분 내용이 그의 음악적 행보와 쾌거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문외한인 나는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읽고도 가늠할 수없었던 얘기들이 많았다.

다만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입지에 올라있었고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비상하는 용이었음을 느낄 뿐!

'72년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배우들의 모습은 분명 서양인인데 옷과 배경은 한국의 것이라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과 윤이상이 추구했던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융합한 인간애와 민족애를 느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전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음악가인 그를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과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예술가가 생겼다는데 개인적인 의의가 있는 책이다.

어쨌기나 힘든 질곡의 세월 음악으로 이겨내고 음악으로 극복한 그의 한 생애에 하트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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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1 달기지 살인사건 - 달기지 알파 1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1
스튜어트 깁스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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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바라보는 동경의 대상이 아닌 사람이 생활하는 주거지의 개념으로 다가오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긴 하나보다.

2041년의 달기지 이야기가 그리 생경하거나 터무니없다고 느껴지지 않는걸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갖가지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와 달기지로 가는 여행 패키지 상품이 시판되는 날도 그리 먼 미래가 아니라는 것과 시골 할배 외국 여행 가 듯, 마음만 먹으면 달에 가는 일이 어렵지 않은 날이 오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건설된 상설 우주기지 달기지 알파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인 12살 소년 대실 깁슨의 달 생활188일째부터 190일째이 이틀 동안의 일을 시간 순서대로 전개해 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실 깁슨(여기선 대시라고 부른다)이 복통으로 화장실에 들럿다 홀츠 박사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되는데 그날 새벽 홀츠 박사는 달표면으로 무단 이탈을 감행 목숨을 잃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달기지 내부의 영향력 있는 지휘자들은 모두 홀츠 박사의 죽음을 실수로 인한 사고사로 일단락 지으려 하지만 대시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은 통화 내용으로 봐서 사고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의혹을 품게 되는데...


사고사를 살인으로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시와 친구들의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접근 방법도 재미있었지만, 중력이 1/6로 감소하는 달에서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알아가는 과학적 지식도 꽤나 유용하고 흥미롭게 읽혔다.

달기지에서 지켜야 하는 수칙들을 알려주는 '달기지 알파 주민들을 위한 공식 안내서'는 소설의 일부로 구성되긴 했지만 달에서 생활하는게 어떤 느낌일지 어떤 부작용과 현상들이 생기는지 과학적 지식으로 알아 두면 좋을 내용들이 많았다.


달기지 알파의 내부 구성표가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어 내용의 이해를 돕게 했고 우주 공간속에 있을 기지가 이런 모양으로 존재하게 되겠구나 하는 상상력을 배가 시켰다. 영화에서 보던 기지와 비슷한 것도 같았지만 평면도를 볼 때마다 영화와는 다른 입체적인 공간으로 리셋되는 느낌도 좋았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시시하거나 싱겁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구성도 탄탄하고 이야기의 전개도 빨라 재미있게 잘 읽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뜻밖의 반전도 신선했고 다음 편으로 계속 된다는 말도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함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청소년 공상과학 이야기는 잘 읽지 않았는데 간만에 재밌게 읽은 수작이었다.


이 이야기가 재밌게 읽힌데는 달기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스릴도 있었지만 작가의 우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한 몫 했다고 본다.

작가에게는 진짜로 우주비행사였고 지금은 우주비행 프로그램 관리자로 일하는 친구가 있고, 우주센터에서 우주선 안의 화장실을 체험할 기회가 있었으며, 열세 살 때 NASA에서 주최한 최초의 십대 우주비행사 선발대회에 지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있었지만 작가의 우주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사랑이 책에 그대로 옮겨져 와 책 내용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골치 아픈 과학적 지식이 생활 밀착형 수칙으로 받아 들여지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달기지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갖가지의 군상들이 존재하고 어딘들 그러하지 않으리 마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한바탕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는 제한된 공간의 이야기를 과학적 지식을 접목시켜 지루할 틈 없이 써 내려간 작가의 필력과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 붙들려 가라앉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시켜가는 능력이 에드거 상 최종후보에 오르게 한 저력이었지 싶다.


대시와 잔의 우정이 어떻게 펼쳐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2편의 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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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유승훈 지음 / 도서출판 가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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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특선 영화로 [국제 시장]을 보았다.

현대사 파란만장의 정점 한국전쟁과 전란 중 임시수도가 된 부산이 클로즈업되는 영화 -

아이고.. 싶다가 울컥해지기도 하고 '저런 세월의 거쳐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왔지' 또 봐도 재밌네 하면서 봤다.

영화의 배경이 된 '꽃분이네'는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촬영으로 인해 주변 상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황정민의 혼자서 현대사 굵직굵직한 소용돌이를 다 겪었다고 하기엔 설정이 과했고 국가공익단체에서 후원한 애국심 발로용 영화는 아닌가 싶은 게 옥의 티로 느껴졌지만 여긴 서평을 적는 곳이니 이제 그만~ 텔레토비 친구들과 꼬꼬마 동산으로 들어가야 겠다.


국제시장을 보고 부산 생각이 나 책을 폈다. 황정민의 (부자연스럽긴 했지만)무뚝뚝하고 억센 부산 사투리를 이명으로 들으며 읽은 책,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부산].

여행자들이 여행지를 염두에 두고 인문학적 접근을 하긴 쉽지않다.

우선 여행이 주는 일탈의 설렘이 앞서 묵직한 주제로 접근하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일테고 여행코스, 맛집, 숙소를 알아보는 것도 진을 빼는 일인데 그 도시의 인문학적 요소까지 파악한다는 건 여행인 듯 여행 아닌 여행같은 현장체험학습 답사가 될 수도 있으므로.

특히, 나같은 유희의 인간은 놀러가는 데도 공부를 해야한다고 누가 그러면 고마 안갈랍니다- 할 게 뻔하니, 이건 여행에 있어선 금기사항이나 마찬가지다. 


여행 갈 생각은 언감생심, 전이나 덜 부치면 다행이겠다 싶은 몇 십 년 만에 오는 긴 추석 연휴  설거지에서 벗어난 틈틈이 읽었다. 여행 떠나기 전에 숙제처럼 읽은 책이 아니어서 그런지 술술 잘 읽혔다.

한때 부산에 적을 두고 좀 살기도 했고 지금도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낯설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쫌 알고 있던 동네라 여겼던 부산이 이 책을 읽고나니 배율이 높은 확대경으로 샅샅이 훑은 기분이 들었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멀수록 더욱 됴은 뭉텅뭉텅한 유화로 보아왔던 동네를 잎맥의 가는 선까지 세세히 보이는 세밀화로 다시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부산의 재구성이었다.


모두 6부로 나누어서 부산의 풍경, 맛, 멋, 동네,명소,역사,사람, 정신에 대해 간략하지만 핵심 팩트를 소개해 주었고 부록으로 '걸어서 부산 인문 여행'추천 코스를 실었다.

저자는 인문여행을 지역의 환경과 역사, 사람까지 살펴보는 것으로 도시의 속살까지 체험해 더 재밌고, 더 오래 기억하고, 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여행방법이라고 어필한다.

역사적으로 항구도시, 문화적으로 용광로와 같은 도시,외부 문화가 토종 문화와 충돌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에너지가 넘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도시로 묘사한 부분에선 맞네, 맞네! 내가 알던 부산 이미지와 딱 맞아 부산을 겉으로만 알고 멋으로만 쓴 책이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신뢰 팍!


조선통신사가 해신제를 지내고 일본으로 출발했던 동래 부산포 영가대의 역사적 의미와 현 주소,고무신으로 시작된 신발 산업의중심지 강서구 송정동 (내가 아는 이도 부산 강서구에서 신발업계에 종사하고 있는데 최상의 품질로 세계 최고를 향한 신발굴기의 신화를 날마다 쓰고 있다고 한다. P씨 화이팅!!^^), 부산 초빼이가 사랑한 산성막걸리, '영화도시' 부산을 각인시킨 부산국제영화제, 최후의 헌책방 보수동 책방 거리,갈매기와 걷는 갈맷길, 원양어선의 꿈 부산 마도로스, 부산 인문 여행 코스에 대한 재미있고도 알찬 정보가 가득하다. 부산에 대한 인문학 지식을 익힌다는 생각은 안들고 골목골목 숨어 있는 이야기를 말빨 좋은 안내자에게 소개 받는 기분이었다. 말이 끝날 때마다 뭐, 더 재밌는 얘기 없어요? 되묻고 싶어지는 내용들이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에 정착한 민속학자다. 어쩐지~


부산에 사는 사람들도 잘 알지 못했을 부산의 속살을 쓰다듬으며 느끼는 기회가 된 책이다.

부산이 매력적인 도시라는 건 알았지만 이전의 부산이 겉보기에 좋은 도시였다면 이 책을 통해 본 부산은 알차면서도 생명력이 충만한 도시라는 거였다. 

부산에 가기 전에 읽으면 부산을 더 깊이 볼 안목을 가지게 해 줄 책이고 갔다 와서 읽으면 '또 가봐야겠다' 예상치 못한 결심을 하게 될 성 싶은 책이다.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하기만 한 부산의 삶에 지쳐있는 P씨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책이다.


P씨, 조방 앞 낙지볶음이 그리 맛있다는데 밥 한 그륵 하입시다. 산성 막걸리 한 뱅 놓고예~

내가 이 책 들고 가가 부산 사람들도 모리는 부산 야그 밤새도록 해 보께예~

됐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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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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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일욜이다.

110만이 해외로 빠져 나간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고 빠져 나가지 못한 나는 저런 사람들은 뭔 복이래? 하며 물끄러미 테레비를 본다.

진짜 조상 잘 만난 사람들은 해외 여행가고 조상 덕 1도 못 본 사람들만 차례상 준비하느라 전 디비고 나물 무치고 설거지 통 앞에서 벗어나질 못하다 집에와서 부부싸움 하는거라는 밴드에 올라온 글을 보며 씁쓸히 웃는다. 맞는말이네ㅠ 


올해 추석상은 간소하게 차리자는 시어머니의 전화가 있었으니 혹시 모르지 진짜 시간이 남아 틈틈이 책 읽을 시간이 있을지도-

추석에 읽을 책을 골라 봐야겠다...싶어 책장을 훑다가 신경숙의 책에서 눈이 멎었다.

아,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가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며 해외 22개국으로 번역이 되어 출간이 되었다, 연극으로 발표되었다, 한국 문학사에 드문 100만부 판매를 올린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린 베스트 셀러라는 문구들이 시들해 질 무렵, 그녀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에 나오는 문장과 흡사하다는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신경숙은 우국을 읽어 본 적도 없는 책이라도 했고 창비는 신경숙을 두둔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누가봐도 문장은 비슷했고 미시마 유키오가 먼저 출판한 책이었기에 신경숙의 말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후, 신경숙의 문학은 갈갈이 해부되어 이것도 저것도 표절이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되었고 신경숙도 창비도 사과를 하는 선에서 일단락 되긴 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과를 하는 신경숙의 인터뷰에서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절필은 하지 않겠노라고, 글쓰는 일이 전부이고 생명인데 글을 쓰지 않으면 죽는것과 같다고 한 말을 읽었다.

그때가 2015년 이맘때쯤이었으니 2년이 지났다. 내가 관심있게 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 후, 어디서도 신경숙의 근황이나 가십성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절필은 하지 않겠노라 했으니 발표를 하고 있지 않을 뿐, 글을 쓰고 있으리라 믿는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1993년 신경숙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때 샀던 책이다. 1985년 문예중앙에 중편 '겨울 우화'로 등단하긴 했지만 우리에게 신경숙의 신화를 알리기 시작한 책은 '풍금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서서 훑어 보리라 생각하며 넘기던 책을 어느새 쇼파로 자리를 옮겨 푹 파묻혀 읽고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불륜의 이야기다.

가정있는 직장 상사를 사랑하게 된 나와 어렸을 적 기억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이야기.

말 줄임표와 소녀 취향적 문장이 난무 하지만, 읽다보면 불륜이라는 게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가? 뭉클해지고 만다.

신경숙의 미려한 문장은 윤리의 벽을 흐물흐물 허물어버리고 불륜의 처지에 서있는 화자의 입장에 동화되어 쥐었던 돌을 슬그머니 놓게 한다.


다리를 다친 후 뚱뚱해진 점촌댁이 다른 여자를 본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절뚝이며 줄넘기를 하는 것과 에어로빅 저녁반 운동 도중 폭삭 무너지며 바람난 남편 때문에 자주 울던 여자의 이미지, 어머니와는 다른 그 여자를 좋아한(아버지와) 내가 그 여자처럼 되려할 때 기억한 '나...... 나처럼은......되지 마.' 하던 그 여자의 말. 인물들의 중첩이 봄이 오기 시작한 시골 풍경과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게 전부다.

큰 사건도 없고 반전도 없는 밋밋한 불륜의 이야기에서 미당의 시처럼 어떤이는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이는 천치를 읽고 가기도 하겠지만, 신경숙의 문장들은 느린 듯 깊고 아련한하지만 스며들어 털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불편한 슬픔을 타자에게 이토록 아름답게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30년간 써 온 신경숙 작품 대부분을 읽어왔다. (빌려 준 책을 돌려받지 못한 게 더 많다. 엄마를 부탁해도 안 보이는군 ㅠ)

톤이 높지 않고 거칠지 않아 답답을 읽기도 했도 거사를 논하거나 시대를 평하는데 약간씩 비켜서있어 비겁을 읽기도 했으나,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릴 수 있는 사소한 감정의 파장을 신경숙만큼 섬세한 필치로 옮겨 쓸 수 있는 이는 드물다고 본다.

한국인이 가진 한의 정서를 가장 잘 옮길 수 있는 문체를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부탁해]가 100만부를 찍어낼 수 있었던 까닭도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았다기 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가진 정서를 신경숙 특유의 감성적인 문장이 덧입혀져 내 얘기로 읽히게 하는 감정의 동화가 가져 온 감동의 쓰나미 덕분이었을 거라 혼자 추측했다. (나는'엄마를 부탁해' 보다는'외딴방'이 신경숙의 대표작이라 본다.)


썰이 길었다.

추석이 목전이고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하는 엄마 생각이 났고 엄마를 부탁하던 신경숙 작가는 지금은 무얼하고 있는지 뜬금없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표절 시비는 작가에게 치명타이고 오명이다.

그렇지만, 궁형을 견뎌낸 사마천이 사기를 썼고 과하지욕을 견딘 한신이 유방을 도와 중국을 통일했듯 지금의 힘든 시간이 언젠간 전화위복의 시간이었음을 말하게 될 날이 올것이다.


신경숙의 글은 우울이 스며있고 맥이 빠져 - 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깊은 심연을 건드릴 줄 알고 남모르게 토하는 한숨을 쓰다듬는 글이었다고 급수정하고 싶다.

어디서라도 부디 건강하고 무슨 글이라도 꼭 쓰고 있어 독자들에게 다시 돌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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