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5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이준영 외 지음 / 마카롱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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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퇴근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신문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도착했다는 말이 맞을거 같다. 어떤 날엔 신문이 나보다 현관문 앞에 먼저 도착 해 있어 '와, 이 아저씨 정말 빠른 걸' 할 때도 있었다. (사실은 성별도 나이도 모른다.)

책이 도착해 있었으나 도착 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들어오자 마자 시체처럼 누웠다가 좀비의 몰골로 출근하기 바빴으니까.


책이 올 때가 되었는데...싶어 경비실에 물어보니 아저씨가 성질을 버럭!

전화를 해도 안받고 찾으로 오지도 않았다고. 일주일째 경비실에 있었다고.....!!!

매번 전화를 해야하는 성가심과 찾아가지 않는 물건을 보관해야 하는 책임과 쌓여가는 물건으로 인해 좁아지는 경비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연설을 10분간 듣다 이 몰골로 이 시간(새벽 3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다 ㅠ)에 들어오는 나에게 할 소린가? 싶어 나도 화를 낼 뻔했다.

그러나,

엘레베이터를 탄 순간 화를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내모습이 어디서 3차까지 하고 쓰러져 자다 어째어째 정신을 차려 '집은 잊어 먹지 않았구나' 하며 들어오는 주정뱅이 비슷한 몰골이었으니.

눈은 풀리고 핏발은 섯고 피부는푸석푸석한데다 머리는 산발.

뭘 위해 이시간까지 일을 하고 안 먹어도 되는 욕을 먹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책은 재밌었다.

재밌어서 아껴 읽고 싶었으나 사실은 아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피곤이 글자를 덮고 내 눈꺼풀도 덮고, 그런 피곤을 밀어올려 정신을 챙기고 책장을 세어보면 세 장을 읽어 내지 못하고 잠든 날들이었으니.

한 권을 들고 일 주일 씩 읽는게 이젠 예사의 일이 되었다. 일 주일 씩 책을 들고 읽지도 않는다고 질책을 해 댔던 과거의 나를 조용히 지우고 싶다. 일주일이 아니라 일 년을 가지고 있어도 읽을 마음이 있는 자는 읽게 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생업으로 인해 힘든날이 많은 만큼 힘든자들의 일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고 위로하는 즈음이다.


교보 스토리 공모전 책이 나온 지 몇해 되었으나 수상작품집은 처음 읽었다.

반짝거리고 신선한 내용들이었다.

S.F 장르와 현실이면서도 몽환적인 내용이 섞인 이야기들 5편 수록되었다.

어디선가 조금씩 읽은 적 있고 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 연상되기도 했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전하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가 재밌어질 수 있고 밋밋해 질 수 있듯 공모전 수상작에 빛나는 단단한 이야기들이었다.


복제인간, 화성탐사, 인간존엄등의 주제를 다룬 [님아, 저 우주를 건너지 마오]

뚱뚱한 임수씨의 아픈 기억과 새로운 사랑을 가져다 줄  매개체, 발톱과 사슴의 특이한 연결이 돋보인 [임수 씨, 맛있습니까?]

구두를 통해 그 사람의 기운을 흡수하고 산다는 신비한 이야기 [야광의 구두 수선 가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디션의 세계를 그린 [팔랑귀의 시계]

아무리 문명이 진화하고 외계를 집 드나들듯 해도 결국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는 사랑이라는 걸 읽게 해 준[ 브람스 -612]


비슷비슷하게 모두 좋았지만 비슷비슷하니 크게 구별이 안가고 각인되는 작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공모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기성작가일리 없으니 이들의 가능성에 가장 큰 점수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음 작이 더 기대되는 작가들이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사고를 당한 애인이 사슴이 되어 밤마다 몰래 발톱을 뜯어 먹어 발톱을 잘라주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몽환의 아름다움과 해피엔딩의 보너스까지 주어서 읽으며 행복했다.

해피엔딩은 뭔가 끝이 맥빠진다고 생각했는데 시체처럼 자고 좀비처럼 일터로 나가는 날들이다 보니 해피엔딩이 주는 위안이 얼마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나.


엔딩은 해피해야 한다는 게 내 인생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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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묘보설림 2
루네이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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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산업화라는 말은 인간미라는 말이 거세된 말처럼 느껴진다.

산업화라는 이미지는 내게 숨쉴틈 없는 바쁨과 휘황한 불빛의 이미지이지만 배면엔 지치고 힘들어하는 노동자의 얼굴이 붙어 있어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 이상 인간적인 걸 기대해서는 안되는 시대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씁쓸할 뿐이다.


산업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고 신분의 이동이 있었으며 생활터전이 바뀌었다는 건 굳이 먼나라의 세계사를 들쳐보지 않고서도 충분히 알 수있다.

농자지천하대본, 농업을 국가 산업의 근간으로 삼던 나라에서 공업을 바탕으로 분골쇄신, 산업화를 이룩해 낸 대한민국의 역사만 봐도 산업화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정서를 바꾸어 왔는지 보면 된다.

산업화로 인해 겪어 내야했던 정신적 아노미 현상은 산업화를시도한 나라라면 어느 나라나 이런 현상에 대해 사회문제가 대두되고그런 문제를 다룬 문학이 있다.


자비는 대기아를 견뎌내고 산업화 시대를 몸으로 겪은 시골 소년 천쉬성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온 가족이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쉬성의 아버지 결단에 따라 마을을 떠나 도회지 삼촌의 집으로 향하지만 도중에 가족과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삼촌에 기대어 겨우 공업학교를 졸업한 쉬성이 취직한 공장은 페놀을 생산하는 전진화학공장이었다.


"페놀에는 독이 있지만 매일 페놀과 함께하면 몸이 적응해서 괜찮아. 그러다가 퇴직을 하면 페놀이 없어져 암이 생기는 거야."

쉬성의 사부 말이다.

암이 안 생기게 퇴직하지 말라는 쉬성의 말에

"나는 반평생을 일했어.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일했지. 퇴직을 안 하면 아마 지쳐 죽을 거야."

라고 답을 한다.

이 대목에서 좀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였지만 고단한 노동자의 얼굴과 열악한 작업환경이 떠오르면서 선문답같은 사부의 대답이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구나 싶었다. 

노동자의 삶은 어디서나 팍팍하고 녹록치 않고 위태롭기까지 하다. 알면서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이 있고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쉬성은 격랑속에서  결혼을 하고 동료를 떠나보내고 우연한 행운도 잡게 되지만...


루이네는 사회주의 중국이 개방개혁으로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면서 변하는 가치와 혼란을 담담한 문장으로 표현해 냈다.

감정의 고조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누구의 편도 아닌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났던 일이니 다만 전달할 뿐이다라는 마음으로 쓴 것 같았다.

후기에 보니 아버지가 설계를 하던 사람이었고 루이네도 공장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으로 부자의 삶이 이 소설에 함께 녹아 있음 읽었다. 청춘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 덕분에 '공장소설가' '성장소설가'의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는 린제이는 자본주의 경쟁시대에 들어선 중국의 성장과 아픔을 [자비]에 담았고역사와 삶에 자비로워야 우리는 비로소 자신에게 자비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문득 신경숙의 [외딴방]이 생각났다.

결이나 문체ㅡ어느것도 닮지 않았지만 경쟁이 살아남는 유일한 수단인 산업자본주의 세상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선택 해야 했던 건 죽음 아니면 변함없는 노동자라는 사실에서 두 소설이 잠깐 오버랩 되었다. 산업화 속에서 어느새 산업형 노동자들로 변해버린 삶의 방식과 생각이 안타까웠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다룬 소설은 더러 읽었지만 중국이 선택한 자본주의 산업화 속의 노동자 소설은 처음이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공명이 커지고 이렇다할 충격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자비]는 글항아리의 중화권 현대소설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시리즈들 속에 낯익은 소설가는 없지만 이 책으로 인해 시리즈들이 모두 궁금해지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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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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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나 사실들이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어, 하는 그런 상황이나 사실.

그럴 때 우린 어디선가 많이 들은 꽤 괜찮은 설득력을 가진 말이라고 생각하는 '틀림'과 '다름'에 대해 이야기 한다.

틀린 게 아니야, 그저 다를 뿐이지!

나와 크게 부딪칠 일 없는 상황이나 사실일 수록 이해하는 척 한다.


그렇지만 그 틀리지 않고 내 생각과 다를뿐인 상황이나 사실, 거기다 그런 사람까지 내 주변에 있다면 당장 불편해진다.

다른 건 인정해 줄테니 내 영역은 침범하지 말아 주었음 좋겠어- 마음 속에 금을 긋고 수시로 내 영역이 무사한지 지린내 풍기는 눈빛으로 경계를 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학습된 사회성으로 인해 선입견과 편견의 굴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가끔 무서워진다.

내 생각이 분명 틀렸는데 다를 뿐이라고 합리화 시키며 다수의 편이 아닌 소수를 향해 말로 마음으로 눈빛으로 린치를 가하며 다름에 대해선 눈꼽만큼도 이해를 하고 싶지도, 할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틀린 내 생각.

갑갑하고 딱딱한 번데기의 갑옷을 벗고 나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나비가 될 수 있음에도 틀에 갇힌 생각을 깨트리기가 애벌레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부끄러워진다.

 

자연의 법칙이라 규정해 놓은 틀에서 비껴나 있을 때 세상이 주는 가학성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 몇이나 될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봐야 소용이 없다. 이목을 끌다가 입장만 더 난처하게 할 뿐이다.

한 쪽 다리가 짧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바로 걸을 수 없는데 모두 너는 왜 버젓이 두 다리가 있으면서 절뚝이며 걷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남의 시선때문에 절뚝이며 걷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것 또한 얼마나 무례하고 오만한 생각인지.

위로와 용기라니?

태어난대로 자연스레 걷고 있는데 자기와 다른 걸음걸이라고 네 걸음에 용기를 가져라, 절뚝이며 걸어 속상하겠구나..하는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하는가 말이다. 생긴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이나 막지 말라고 할 것이다. 아무리 선의라도 그 생각이 내 중심적일 때 상대방은 불편과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자주 잊어버린다.


짐작했겠지만 [딸에 대하여]는 성소수자, 레즈비언, 동성애자로 불리는 딸을 둔 엄마의 독백이다.

남편이 물려 준 재산이라곤 낡은 집 한 채가 전부인데 분가한 딸은 집을 저당잡아 대출한 돈이 필요하고 요양 보호사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는 나는 집을 담보로 딸에게 돈을 마련해 주는 게 싫다.

월세와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들어와 살게 되는 딸은 레인이라는 7년 동안 함께 살아온 친구와 함께 들어오고 딸은 그린으로 불린다. 요양원에서 해외에서 공부하고 사회를 위해 공헌하며 살았으나 핏줄이라고는 없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젠'을 돌보며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보따리 강사인 동성애자 '딸'을 바라보는 교차되는 시선이 절절하다.


끝까지 딸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딸과 친구의 관계가 소꿉장난 같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끝낼 수 있는 관계라고 믿고 싶어한다. 딸이 가진 비정상적(?) 정체성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탓한다. 딸이 떳떳하고 평범한 삶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둘을 이해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기적이 오기전에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성 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가시가 되고 못이 되는 딸의 말을 들으면서도 딸을 이해하는 것은 떳떳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딸의 삶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여긴다. 서로가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향해 가고 있고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의 말로 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해할 수 있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은 똑같으니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성 소수자가 되어버린 낯선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독백은 울림이 깊었다.

이게 성 수수자를 인정하고 사회적인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정책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서 읽으니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내 일이 아닐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막상 내 가족의 일이고 보면 청천벽력같은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화도 나고 허둥대고 누구라도 탓하고 싶어지는 마음.

딸을 이해하기 전에 엄마의 입장을 더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해해 보겠다는 말보다 거짓말이니 이해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엄마.

안다, 안다.

그런 엄마를 알고 있어 더 가슴 아프게 읽힌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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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실천법 - 목표를 향해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단 하나의 공식
캐런 바루크 펠드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보랏빛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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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그릿 여기 저기서 많이 보고 듣는 말이었지만 정확한 어원도 모르고 무얼 얘기하는 건지 몰라 궁금했었다.

자기계발서를 안 읽은지 백만 년이나 되었고 생활도 행동도 점점 나태해져 이러다 소가 되는 건 아닌가? 스스로 한심하던 차에 나를 일으키고 동기부여를 받을 책을 찾다가 선택한 책이다.


그릿은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줄임말로 목표를 향해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단 하나의 공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인내라고 강조하며 그릿을 이해하고 개발하고 행동하고 가질때까지의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 주었다.


그릿을 실천해가라는 단순한 동기부여에 그치지 않고 제시한 주제를 성공적으로 밀고 나가기 위한 점검차트와 실천법, 배울 것들의 지면을 따로 할애해 한번 더 의지를 다지게 하고 부족한 것을 매워갈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실행하는 행동의 강조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해가기 위한 내면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는데 마음가짐에 따라 목표를 향한 실천력이 달라진다는 것을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깨우치게 한 것이 특히 눈에 띄였다.


자기계발서가 주는 피로감은 뭔가 계속 다그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는 것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나태해진 나를 발견하면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고 쉬어가는 삶이 아니라 달려가는 삶만을 지향하는 듯 해서 어느 순간부터 자기계발서를 읽게 되지 않았었다.

한쪽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냐고? 딱달하는 동안 저쪽에서는 좀 느리게 살아도 된다고 유혹하면 힘들고 괴로운 노력보다는 쉽고 편한 게으름에 솔깃해진다.

웰라이프나 느림의 미학을 찬양해서가 아니라 그냥 힘들지 않은 게 좋아서다.

느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은 열심으로 살아온 바쁜 시절을 지나왔기에 느림의 미학도 즐길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내게 쉬지 않는 목표를 향한 매진이란 가혹행위처럼 느껴져 자기계발서를 멀리했다.

실천하지 않는 앎이야 말로 기만 행위니까-


다시 자기계발서를 들게 된 것은 앞서 말했듯 너무 나태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데 있다.

느리게 간다는 허울좋은 말과 타협하고 나니 나태의 만연만 있고 어디서도 열심이라는 단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의 자괴가 들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니 실패를 계속하고 있다는 자기계발서의 핵심 내용에서 크게 벗어난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롤모델을 통해 자신이 이루고 싶어 하는 목표에 근접해가고 달성했을 때의 희열과 성취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미리 느낄 수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릿의 실천을 위한 세세한 디테일한 자기 암시와 실천할 사항들을 적어가며 의지를 다잡게 하는 칸을 비워 둔 것도 돋보이는 방법이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책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구슬을 꿰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섭렵해 나를 빛내 줄 장식품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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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시집 - 오감도와 날개 그리고 권태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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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재의 시는 난해하다.

그리고 권태가 만연해 있다.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사람들이 부딪혀야하는 똑같은 시간들.

그것들을 견디어 내기엔 맨정신이었다면 미쳤을 것이고 미쳐 있다면 더 미치지 않게 정신을 차려야 했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세계를 혼자 볼 수 있다는 것,

아무나 쓸 수없는 글을 혼자 써 낸다는 것은 그렇게 이해받기 힘들고 동정받기 좋은 재능이다.


'이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글이 수능에 출제되고 교과서에 실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고 '이상'의 시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어디선가 '이상(理想) 이상(以上)의 이상(李箱)'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꿈꾸는 이상세계를 언제나 넘나들던 시인이 그가 아니었나를 함축적이면서도 집약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이상의 시는 난해하다.

오감도를 신문에 연재할 때 수많은 독자들의 비난과 항의가 이해되는 것도 독자들의 우매를 탓하기보다 시대적 감수성을 벗어난 그의 천재성에 있음을 지금도 알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시가 표방하는 운율이나 공감 따위는 아랑곳 않고 미친사람처럼 주절대고 문맥이 안맞는 말을 갖다 붙이기도 하고 동음어의 반복이다가 기호와 숫자, 외래어까지 섞은 시들 일색이다.

운율과 결 고운 감정의 동화를 우선으로 하던 그 시대의 시들을 생각해 볼 때 이상의 시는 개짖는 소리로 치부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들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느냐?고 묻는 '날개'의 첫 문장은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이 여기는 세상을 향한 독백처럼 들린다.

슬프다.


그의 시보다 더 궁금증을 가지고 알려했던 건 그의 기행적인 일화나 기생 금홍과의 동거, 손익분깃점을 넘기지 못했던 예술인들의 아지터 다방 '제비', 폐결핵을 앓다 요절한 그의 생애, 마지막엔 공동묘지에 묻힌 유해마저 유실되어버린 가십같은 이야기 들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ㅠ)

하지만,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는 그의 시들은 투명하고 순수하고 시대를 너무 앞서서 이해받지 못했던 천재성과 독창성이 반짝거리고 있다. 가슴 에이며 읽을 시는 아닐지언정 가슴 에이며 적은 시였다는 건 분명하다.


인정받지 못했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 흠, 그의 요절만큼이나 안타깝고 눈물난다.


건축을 전공하고 미술에도 능한 다재다능의 이 천재를,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천재들은 알아 보았고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시집이 출간되어 나왔다.

표지는 또 어쩌자고 이토록 선명한 분홍인지!


나는 아직 다다를 수없는 경지의 - 아직도 나에겐 해독이 불가한 - 시들을 읽으며 문득,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난해와 권태로 가득찬 보물지도구나 싶어진다.

시의 행간행간마다 숨겨져 있는 암호를 읽어내지 못해 아닌길만 헤매다가 결국 눈밝은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말 보물지도.

또,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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