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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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흡인력으로 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다.

습지대 소녀 카야의 성장소설이면서 환경사랑 생명사랑의 자연주의가 깔린 추리소설이랄까.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그렇듯 고난과 멸시, 역경 속에서 꿋꿋이 내 나름의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일어서는 내용을 읽다 보면 애틋함과 기도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곤 한다.

이 소설에도 습지대에서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엄마,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차례로 가출을 하는 언니, 오빠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여섯 살 카야의 고군분투기이자 인생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중간중간 습지대에서 살고 있는 조류와 곤충, 동물들의 이야기가 카야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생명사랑 환경사랑 인간 사랑의 소재로 등장해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 책을 이끌고 가는 힘은 카야의 판잣집이 있는 습지대에서 조금 떨어진 소방망루에서 일어난 추락사에 대한 추리에 있다.

우연한 사고사인지,

계획한 살인 사건인지를 파헤쳐 가는 동안 밋밋했던 이야기가 차츰 파고를 올리고 쓰나미급 흡인력으로 책의 마지막까지 간다.

무서운 입소문을 타고 화제를 만들고 있는 책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정말 그렇다.

나도 어디선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이런 책이 있구나' 지나쳤는데 또 어디선가 가재가 노래를 한다더라, 가재가 그렇게 노래를 잘 한다더라 자꾸 들리니 나도 가재의 노래를 한 번 들어봐야 하는 거 아냐? 싶어졌다.

삼인성호!

세 사람이 증명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지는 법.

종이 호랑이면 어쩌지? 싶었으나 기대 이상의 용맹무쌍하고 주도면밀하나 곶감에 놀라 도망을 치기도 하는 인간적인 호랑이를 만났다고 적는다.

여섯 살 카야가 사랑을 알아가고 습지대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나고 해결될 것인가에 대해 눈이 바빠지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여행 중이었다.

먼 곳에 여행을 가서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생경한 풍경이라든지 사람들의 생활 모습, 문화적인 차이 등... 하나라도 더 보여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핸드폰에 눈을 박고 핸드폰의 밖의 세상에는 관심도 호기심을 나타내지 않은 아이들을 볼 때면 화가 치밀곤 했는데 이번엔 내가 그랬다.

창밖의 생경한 풍경보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 궁금한 쪽에 눈을 뺏기게 되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음을 이번에 깨닫고 반성했다.

문학상을 받을 만큼 문장이 좋거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적 요소가 가미된 건 아니었다.

어린 소녀의 성장기를 지켜보며 잘 자라주기를 연민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사랑이 찾아오고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이야기가 쫄깃해졌다.

점점 이야기가 속도를 내고 무죄를 입증해 가는 과정에 카야의 편이 되다 보니( 안될 수가 없었다.) 스토리에 홀딱 빠져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고 새로운 환경이고 문화고 두루 살필 겨를이 없어 동행과 잠시 마찰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만큼 재밌었다.

입소문 무시할 거 아니더라는 말씀.

문장이 난해하지 않고 스토리도 탄탄, 추리가 가미되어 청소년이 읽어도 재밌게 잘 읽어질 듯하다.

요샌 읽는 책이 다 재미있어 좋다.

문학성보다는 재미다. 불여락지자, 그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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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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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한다'라는 말은 이전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영업 당했다'라는 말은 최근에 자주 듣는 말이다.

경제가 안 좋으니 영업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이 늘어나고 안면에 받쳐 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또는 감언이설에 속아 물건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영업 당했다는' 표현을 주로 썼다.

'당했다'라는 피동사가 주는 말의 어감에서 벌써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데 당해 본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넘어 '더럽다'로 영역을 확장시키는 걸 자주 본다.

좋은 물건일 때는 좀 다르지만, 좋은 물건들은 대체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

홍보만 할 뿐!

이 책은 출판사나 평론가, 서평을 적은 사람들에게 '영업을 당해 산 책'이라고 적는다.

얀 마텔이 누군가?

우리를 경이와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 '파이 이야기'를 쓴 작가가 아닌가?

한 사람이 쓴 책이 모두 내 취향이고 좋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평균치 이상은 할 거라는 기대를 거는 것은 전작에 기대 후속작을 평가하게 되어 있다.

삶의 사투 속에서 펼쳐진 신비하고 기이한 이야기로 전 세계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은 얀 마텔이 쓴 책이라면,

더구나 15년 만에 완성한 경이로운 여정을 담은 책이라면 '파이 이야기'를 넘어서도고 남을 책이라 생각해

홍보 문구와 몇 챕터의 서평 제목을 보고 선뜻 구입한 책이다.

그것도,

난생처음 가 본 파주 출판 단지 내 서점에서.

들고 나올 때의 뿌듯함과 기대감은 책을 읽어가는 동안 '같은 작가 맞아?' 작가명을 확인하고 15년 만에 완성한다고 다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구나.. 했다.

'파이 이야기'가 다 읽은 후에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이건 맞다) 라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읽는 중에 이미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는 띠지에 적힌 문학평론가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남자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여정을 떠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이나 70년을 관통하면서 이야기는 우연처럼 이어지고 인과관계가 형성되는데 3부에서 나오는 남자가 우연히 얻은 집이 2부에 나오는 남자(증조부)가 살던 집이었다. 1부에 나오는 남자가 2부에 나오는 남자의 아들을 자동차로 치여 죽게 한다는 인연이 있다.

각 장마다 침팬지라는 동물이 작게 혹은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나중에는 침팬지가 증조부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된다.

아내를 잃은 남자들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여정인데 종교적인 의미의 구원을 찾기도 하고 부검의의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현상을 보기도 하고 우연히 들린 동물원에서 산 침팬지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살기도 한다.

'파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기이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슬픔에 싸인 남자들의 슬픔 극복기쯤 되는데 다행인 것은

1부 보다 2부가, 2부보 다 3부가 조금씩 더 재밌어 참고 읽을 만했다.

각각의 이야기가 결론이 나지 않고 무단히 끝나는데 '그래서 어쨌다고?' 수없이 묻고 싶었으나, 이것은 늘 말해 왔듯 내 독서가 아직 깊고 우아하지 못해 읽히는 것만 읽을 수 있어 그런 까닭이라 해 두겠다.

지리학적으로 포르투갈에는 높은 산이 없다고 한다.

그래, 그래, 없는 산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읽었어야 했는데 재미만 추구하며 읽으니 높은 산도 못 읽어내고 재미도 못 찾고.

재미가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쓰는 서평이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 십자가를 매는 심정을 쓴다.

기대를 않고 읽는다면 평타는 되겠지만, 얀 마텔의 명성에 기대어 '파이 이야기'를 기억하며 읽는다면 당신도 나처럼 높은 산은 찾지 못할 것이다.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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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강희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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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모르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몰랐던 어제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고치지 못하는 희귀병을 앓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내가 해 줄 수있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전대미문의 희대 살인자의 살인방법을 들었을 때,

억압과 고통으로 생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때...

강희진의 [카니발]은 내가 알고 싶지 않고 몰랐던 어제가 나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다.

다문화 가정의 강박장애를 동반한 외설틱과 동어반복틱,즉 투렛증후군을 앓는 예슬이 이야기다. (틱 장애는 들어봤지만 틱 장애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고 많았을 줄이야.)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은 낯선 용어가 아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가정의 형태이고 사회문제로 심심찮게 대두될 만큼 보편화 되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제이기도 하니.

다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개선되어 가고 그들의 위상도 높아져 가고 있어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지금에 읽는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는 소설이긴 했으나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였다.

필리핀 대학을 다닌 엘리트 엄마와 산촌의 도축업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예슬이가 들려주는 엄마의 삶은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과 존엄은 차치하고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내는 삶이었다.

주변사람들의 편견섞인 시선과 음해, 남편의 학대와 폭력, 가족들의 방관, 따돌림으로 인한 틱 장애로 학교로 부터 추방당한 딸의 탈선.

이 모든것을 감당해 가기엔 이주여성인 예슬이 엄마의 몸부림은 바위에 계란치기였고 끝내 모진 희생을 당하고 마는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리가? 싶어 소설이라는 게 위로 되다가도

진짜 삶이 소설보다 더 끔찍하다는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차라리 모를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작가는 한국사회가 변해야 하고 변화를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라고 우리가 행하는 부당한 대우는 우리보다 더 힘센 상대에게 받을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도 말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라고 소설의 끝에 피력하고 있다.

맞는 말인데 이런 맞는 말을 아직도 해야하는 현실이 참 끔찍하고 가슴아프다.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채로 있으니 당연한 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텐데 그런 날이 오기나 할런지..

르포성 소설이라 사회상을 고발하고 우리 현실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불러 일으켰다는데 대해서는 충분히 읽을만 했으나 문학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작중화자가 동어 반복틱의 장애가 있긴 했으나 대마초를 피우는 예슬이의 푸우, 푸- 하는 대마초 연기를 내뿜는 소리가 책 전반에 깔려있어 책이 온통 뿌옇게 보인 것은 내 착각이리마는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다문화 가정들이 겪는 애환과 고충들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건 이미 기사에서 뉴스에서 많이 봐와서 그런지 새로울 것 없는 기시감 가득한 이야기라 신선함이 부족했다. 신선함이 부족하면 내면을 흔드는 은유가 있어야 했는데 사건을 고발하고야 말겠다는 기자정신만 충만해 어디고 마음을 얹고 공감할 여백이 없어 함께 주먹을 쥐고 싸울 수 없는 사람은 책을 덮어라! 하는 것 같아 까슬한 문장을 읽어내는 게 힘들었다.

문학의 많은 장르 중에서 순수 소설만을 택하는 나같은 사람은 현실에서 위로 받을 수 없는 여백을 책에서 찾고자 함에 있다. 은유가 감싸 안는 끄덕거림의 위로.

분명 은유가 포진한 문장이 많았을 진데 내용이 하도 현실같아 문장마저도 그리 읽혔을 까닭이리.

한 발 물러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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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병자호란 - 하 - 격변하는 동아시아, 길 잃은 조선 만화 병자호란
정재홍 지음, 한명기 원작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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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반도 반만년 역사 중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들이 수도 없지만, 반대로 치욕의 역사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라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일제 강점기 35년이 가장 뼈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병자호란도 일제 강점기에 버금가는 치욕의 역사라 본다.

창비에서 안명기 원작의 병자호란을 정재홍의 만화로 그렸다.
아이들 보는 학습만화가 아니라 연령대 구분없이 볼 수 있는 교양만화다.
병자호란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사실적인 전달에 비중을 둔 내용이었다.
상.하 두 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 권만 보았다.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긴 했으나 [격변하는 동아시아, 길 잃은 조선]이라는 부제를 단 이 만화는 병자호란만을 들여다 보는 것에 나아가 주변국들의 정세와  변화, 새로운 흐름을 함께 싣고 있어 세계사적 안목까지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병자호란의 내용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 많은데, 그 이유가 조선의 왕이 야만족이라 생각했던 청의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를 행한  삼전도의 굴욕이 충격적이면서도 후세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 여긴다. 
최근 매스컴에 이슈가 된 병자호란을 담은 가장 대표적인 장르로는 김 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영화화 된 '영화 남한산성'이 먼저 떠오른다. 인조가 청나라의 군대를 피해 강화도로 가려다 실패하고 남한산성으로 간 46일간의 행적을 그린 내용은 만화 병자호란과 같다. 영화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어서인지 이병헌이 맡은 최명길과  김윤석이 맡은 김상헌의 대립구도에 포커스를 맞춰 척화냐 주화냐 설전으로 영화가 전개되어 둘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역사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지루한 감을 주고 역사적인 흐름을 다 읽어 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해 만화 병자호란은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조선의 상황과 인조의 내면, 됨됨이,판단력을 비중있게 다루었고 병자호란 당시 싸웠거나 비굴했거나 제 몫을 담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다루었다. 왕이나 대신들만 있는게 아니라 백성도 있었고 볼모로 끌려간 왕세자와 수많은 민초들이 있었다는 걸 각인시키는 내용이었다. 단순하게 비교할 건 아니지만 영화에 비해 훨씬 크게 넓게 읽히는 책이었다.

인조 개인적인 비극으로 끝나지 않은 역사여서 더 참혹하지만 볼모로 보낸 소현세자가 돌아왔을 때 소현세자를 대한 인조의 태도와 아들이 죽고 나서 그 가족들을 대한 처사를 보면 비겁하다 못해 비굴해 보인다.
만화가 마무리 되는 즈음에서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과 지금 한반도가 놓인 상황을 비교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역사는 항상 되풀이 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부분이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북중정상회담..한반도 핵으로 인해 정세는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끝없이 새로운 상황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와 어깨를 나란히해 슬기롭게 위태한 국면을 극복해 나갈지는 위정자의 바른 판단에 있음을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7년 된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한다."는 맹자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늦더라도 지금 시작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일침은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이라 느꼈다.
병자호란 당시 추위와 굶주림 속에 절망과 슬픔을 곱씹으며 끌려가야 했던 수많은 선인들의 고통을 추념하며 책을 마무리 한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며 이런 만화를 통해서라도 역사를 알아간다면 치욕스런 과오가 되풀이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가제본으로 읽었으나 정본이 나오면 세트로 구입할 생각이다.
선물로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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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꽃자수 187
아오키 카즈코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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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할 수는 없어도 잘 한 것만 보아도 힐링이 될 때가 있다.

내 경우엔 손으로 꼼지락 거려 만든 것들을 볼 때 좀 더 그렇다.

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게 수 놓은 일인데 아오키 카즈코의 자수책을 보고 있으면 자괴감이 들 정도다.

이게 정말 사람의 손으로 놓은 수가 맞단 말인가? 싶을 정도다. 그리스 신화에 순수한 인간의 실력으로 아테네 여신과 맞짱 뜬 (비록 거미가 되긴 했지만 ㅠ) 아라크네가 생각난다. 신은 아니로되 신의 경지라는 뜻.^^


봄 ,여름, 가을, 겨울 테마에 맞춰 187가지의 꽃을 자수로 놓아 펴 낸 책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도 있지만 이름도 생소하고 모양도 처음 보는 꽃도 많다.

하지만, 수를 놓은 것임에도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디테일이 살아 있어 어떤 것은' 아- 이 꽃 이름이 이거였구나!' 식물도감을 보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진짜로.


완성된 꽃 자수 옆에 그림으로 수 놓은 방법과 실 색깔, 실제로 쓰일 수 있는 도안까지 있어 보고 있으면 해 보고 싶다는 욕구와 할 수 있겠는데..싶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용솟음 치는 것도 이 책을 볼 때만 느끼는 착시 효과다.

'별 거 아닌거 같은데..'하는 생각과 동시에 바늘을 들지만 해 보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별 거 맞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볼 수록 속상해 지는 책이기도 하다.


꽃만 주루룩 자랑하듯 채워 놓았다면 속상함에 주저앉아 감히 바늘 들 생각을 못했을 것이지만, 아오키 카즈코는 이런 나를 안다는 듯 자수의 기본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재료와 도구,예쁘게  수를 놓는 포인트, 자수용 리본 다루는 법, 스티지 종류와 수놓는 법을 자세하고도 쉽게 설명하는 페이지를 첨부했다. 진정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냥 그림책으로 봐라- 할 것 같았다.

물론, 숙련도의 차이로 인한 작품성에는 구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수를 시도하는데 어려움 없이 이해를 시키는데는 부족함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 발만 못한 손을 가진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실용서로서는 합격이다.


하나하나 볼 때도 예뻤으나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작품이다.

아, 언젠간 나도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내고 말리라- 근자감의 정점을 찍게 만든 페이지다.

가까이 봐도 아름답고 오래 봐도 아름답다.


수를 이뿌게 잘 놓아서  뭔가 근사한 작품을 만드는 것도 보람이 있겠지만 수놓는 그 시간을 나는 더 사랑한다.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우울이 실을 타고 내려가 하나의 꽃으로 필 때 마음의 치유는 물론이거니와 잔잔한 기쁨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시간이 되어서다.

힘들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수를 놓는 그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나를 돌아보며 남을 이해하게 되는 선순환 작용이 일어나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아 좋다.

수놓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힐링이자 치유의 시간이다.

좀 더 아름다운 모델을 두고 좀 더 아름다운 수를 놓을 수 있게 해 주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는 책이 아오이 카즈코의 책이다.

그녀의 책은 실용서를 뛰어 넘어 볼 때마다 행복감을 안겨주는 꽃다발같은 책이다.

무딘 손으로 흉내를 낸다.

수놓은 내내 내 마음에도 은은한 라벤더 향기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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