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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꽃자수 187
아오키 카즈코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8년 5월
평점 :

잘 할 수는 없어도 잘 한 것만 보아도 힐링이 될 때가 있다.
내 경우엔 손으로 꼼지락 거려 만든 것들을 볼 때 좀 더 그렇다.
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게 수 놓은 일인데 아오키 카즈코의 자수책을 보고 있으면 자괴감이 들 정도다.
이게 정말 사람의 손으로 놓은 수가 맞단 말인가? 싶을 정도다. 그리스 신화에 순수한 인간의 실력으로 아테네 여신과 맞짱 뜬 (비록 거미가 되긴 했지만 ㅠ) 아라크네가 생각난다. 신은 아니로되 신의 경지라는 뜻.^^
봄 ,여름, 가을, 겨울 테마에 맞춰 187가지의 꽃을 자수로 놓아 펴 낸 책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도 있지만 이름도 생소하고 모양도 처음 보는 꽃도 많다.
하지만, 수를 놓은 것임에도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디테일이 살아 있어 어떤 것은' 아- 이 꽃 이름이 이거였구나!' 식물도감을 보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진짜로.

완성된 꽃 자수 옆에 그림으로 수 놓은 방법과 실 색깔, 실제로 쓰일 수 있는 도안까지 있어 보고 있으면 해 보고 싶다는 욕구와 할 수 있겠는데..싶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용솟음 치는 것도 이 책을 볼 때만 느끼는 착시 효과다.
'별 거 아닌거 같은데..'하는 생각과 동시에 바늘을 들지만 해 보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별 거 맞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볼 수록 속상해 지는 책이기도 하다.

꽃만 주루룩 자랑하듯 채워 놓았다면 속상함에 주저앉아 감히 바늘 들 생각을 못했을 것이지만, 아오키 카즈코는 이런 나를 안다는 듯 자수의 기본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재료와 도구,예쁘게 수를 놓는 포인트, 자수용 리본 다루는 법, 스티지 종류와 수놓는 법을 자세하고도 쉽게 설명하는 페이지를 첨부했다. 진정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냥 그림책으로 봐라- 할 것 같았다.
물론, 숙련도의 차이로 인한 작품성에는 구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수를 시도하는데 어려움 없이 이해를 시키는데는 부족함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 발만 못한 손을 가진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실용서로서는 합격이다.

하나하나 볼 때도 예뻤으나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작품이다.
아, 언젠간 나도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내고 말리라- 근자감의 정점을 찍게 만든 페이지다.
가까이 봐도 아름답고 오래 봐도 아름답다.

수를 이뿌게 잘 놓아서 뭔가 근사한 작품을 만드는 것도 보람이 있겠지만 수놓는 그 시간을 나는 더 사랑한다.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우울이 실을 타고 내려가 하나의 꽃으로 필 때 마음의 치유는 물론이거니와 잔잔한 기쁨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시간이 되어서다.
힘들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수를 놓는 그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나를 돌아보며 남을 이해하게 되는 선순환 작용이 일어나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아 좋다.
수놓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힐링이자 치유의 시간이다.
좀 더 아름다운 모델을 두고 좀 더 아름다운 수를 놓을 수 있게 해 주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는 책이 아오이 카즈코의 책이다.
그녀의 책은 실용서를 뛰어 넘어 볼 때마다 행복감을 안겨주는 꽃다발같은 책이다.

무딘 손으로 흉내를 낸다.
수놓은 내내 내 마음에도 은은한 라벤더 향기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