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영업한다'라는 말은 이전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영업 당했다'라는 말은 최근에 자주 듣는 말이다.

경제가 안 좋으니 영업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이 늘어나고 안면에 받쳐 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또는 감언이설에 속아 물건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영업 당했다는' 표현을 주로 썼다.

'당했다'라는 피동사가 주는 말의 어감에서 벌써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데 당해 본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넘어 '더럽다'로 영역을 확장시키는 걸 자주 본다.

좋은 물건일 때는 좀 다르지만, 좋은 물건들은 대체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

홍보만 할 뿐!

이 책은 출판사나 평론가, 서평을 적은 사람들에게 '영업을 당해 산 책'이라고 적는다.

얀 마텔이 누군가?

우리를 경이와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 '파이 이야기'를 쓴 작가가 아닌가?

한 사람이 쓴 책이 모두 내 취향이고 좋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평균치 이상은 할 거라는 기대를 거는 것은 전작에 기대 후속작을 평가하게 되어 있다.

삶의 사투 속에서 펼쳐진 신비하고 기이한 이야기로 전 세계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은 얀 마텔이 쓴 책이라면,

더구나 15년 만에 완성한 경이로운 여정을 담은 책이라면 '파이 이야기'를 넘어서도고 남을 책이라 생각해

홍보 문구와 몇 챕터의 서평 제목을 보고 선뜻 구입한 책이다.

그것도,

난생처음 가 본 파주 출판 단지 내 서점에서.

들고 나올 때의 뿌듯함과 기대감은 책을 읽어가는 동안 '같은 작가 맞아?' 작가명을 확인하고 15년 만에 완성한다고 다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구나.. 했다.

'파이 이야기'가 다 읽은 후에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이건 맞다) 라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읽는 중에 이미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는 띠지에 적힌 문학평론가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남자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여정을 떠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이나 70년을 관통하면서 이야기는 우연처럼 이어지고 인과관계가 형성되는데 3부에서 나오는 남자가 우연히 얻은 집이 2부에 나오는 남자(증조부)가 살던 집이었다. 1부에 나오는 남자가 2부에 나오는 남자의 아들을 자동차로 치여 죽게 한다는 인연이 있다.

각 장마다 침팬지라는 동물이 작게 혹은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나중에는 침팬지가 증조부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된다.

아내를 잃은 남자들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여정인데 종교적인 의미의 구원을 찾기도 하고 부검의의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현상을 보기도 하고 우연히 들린 동물원에서 산 침팬지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살기도 한다.

'파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기이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슬픔에 싸인 남자들의 슬픔 극복기쯤 되는데 다행인 것은

1부 보다 2부가, 2부보 다 3부가 조금씩 더 재밌어 참고 읽을 만했다.

각각의 이야기가 결론이 나지 않고 무단히 끝나는데 '그래서 어쨌다고?' 수없이 묻고 싶었으나, 이것은 늘 말해 왔듯 내 독서가 아직 깊고 우아하지 못해 읽히는 것만 읽을 수 있어 그런 까닭이라 해 두겠다.

지리학적으로 포르투갈에는 높은 산이 없다고 한다.

그래, 그래, 없는 산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읽었어야 했는데 재미만 추구하며 읽으니 높은 산도 못 읽어내고 재미도 못 찾고.

재미가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쓰는 서평이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 십자가를 매는 심정을 쓴다.

기대를 않고 읽는다면 평타는 되겠지만, 얀 마텔의 명성에 기대어 '파이 이야기'를 기억하며 읽는다면 당신도 나처럼 높은 산은 찾지 못할 것이다.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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