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패닉 -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팬데믹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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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만 해도 우리가 과거에 겪어왔던 메르스 혹은 사스 전염병처럼 혼란은 겪겠지만 곧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의 많은 제한들이 생겨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기약할 수 없는 미래로 미룰 때에도 가을이면, 겨울이 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부의 수많은 정책과 뉴스에서 말하는 지구적 위기에 대해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팬데믹 패닉』에서 그가 주장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지금의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는 방도는 '공산주의'의 형태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발언으로 수많은 비웃음을 샀던 것도 사실이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북한을 떠올릴 것이고, 부조리한 정치 국가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젝이 주장하는 '공산주의'는 이미 고려되고 있고 더러는 일부 시행되기도 한 조치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서의 공산주의, 이것은 장밋빛 미래를 밝혀줄 비전이 아니라 재난 자본주의의 해독제로 쓰일 '재난 공산주의' 전망에 더 가깝다. 동의할 수 있는가?

"국가가 훨씬 더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아 마스크, 진단키트, 산소호흡기같이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들의 생산을 조정하고, 호텔들과 다른 휴양지들을 고립시키며, 이번에 실직한 모든 사람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를 수행해야 함은 물론, 이 모든 일을 시장 매커니즘을 버려가며 해야한다."(p.128)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은 이 책의 저자 지젝이 체감하는 것과 우리가 느끼는 것이 분명 다를 수 있다. 그가 주장하는 공산주의적 형태의 해결책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었고, 결과적으로 코로나 감염병 확산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케이스로 꼽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다소 과도한 면도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와 대비되는 국가들의 대처를 살펴보면, 지젝이 주장하는 대안은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텍사스주 부지사 댄 패트릭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자신은 공공보건 조치들이 미국 경제를 망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전국의 "수많은 조부모들이" 자신과 의견이 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일터로 돌아갑시다. 일상생활로 돌아갑시다. 바이러스에 휘둘리지 맙시다. 우리 중 일흔이 넘은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챙길 것입니다." (p.125)



국민들의 건강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관리하는 의료보험 제도가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동일하게 주어지는 한국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과 이탈리아 국가에서는 코로나 감염병으로 노인과 약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사망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측량 불가능한 인간 목숨과 미국적(즉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것. 이 선택에서 인간의 삶은 반드시 패배한다. 이것이 과연 유일한 선택지일까? 결국 우리 앞의 선택은 이러한 야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젝이 코로나 감염병으로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 공산주의가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지금의 대처 경험이 앞으로 기후 위기로 인하여 반복적으로 닥쳐올 감염병과 여러 재난에 대처할 유일한 경험적 배움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백신이 개발되어 지금의 상황이 조금 나아지더라도 그 이후 또다시 우리는 새로운 위기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자연이 바이러스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메시지를 돌려주는 일이란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일상과 흡사한 것으로 돌아가겠지만 집단감염 이전의 경험과 동일한 일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삶을 대하는 태도, 다른 생명체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 실존을 대하는 태도 전부를 바꿔야 할 것이다.' (p.100)

우리는 근본적 선택에 직면해 있다. 이 감염병에 진지하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젝은 야만적으로 이기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기 전에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시스템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도록 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 이후 한국 국민들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의 국가적 통제에 동의해왔다. 지젝의 주장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이미 재난에 대한 경험을 배워나가고 있다. 무엇이 더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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