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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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어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고자 인사드립니다."


지난주 삼성전자 직원 A 씨의 '고별사'로 추정되는 글이 화제가 됐다. 2억 원으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해 400억 원을 넘게 벌면서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했다고 알려지면서다. 요즘 20-30대 직장인 중에서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현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 중 하나라면, 장류 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만큼 우리 세대를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나도 몇 달 전부터 주식을 다시 시작했다. 없어도 되는 정도의 금액만 투자하려고 했는데, 조금씩 호가로 주문해둔 것들이 체결되다 보니 어느덧 제법 큰 액수를 투자하게 되었다. 내 노동으로 벌 수 있는 소득은 예측 가능하기에, 나에게는 그 외 불로소득이 필요했다.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만큼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음 이사를 할 때 보증금으로 묶어둘 수 있는 돈이 조금 더 모이기를, 갑자기 엄마가 아프셔도 융통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있기를, 가끔 기분 전환 삼아 나를 위한 선물 하나쯤 구입할 수 있는 정도를 원했다. 마흔이 넘어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나도 딱 그 정도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어쩌다가 들어온 이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 아주 조금 쉬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러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평생 놀고먹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은 아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년만 쉬면서 다른 진로를 모색해보고 싶었다. 딱 1년만…… 그렇게 하려면 정말로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아, 그렇다면 욕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p.249)


『달까지 가자』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서로를 '동기'라고 생각하는 스낵 팀의 다해, 구매팀 은상 언니, 회계팀 지송이 겪는 일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들이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p.103) 샤워하면 물이 침대까지 흘러가는 문턱 없는 원룸에서 살면서 부엌과 침실이 조금은 멀어지길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품는 처지, 자기 인생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벅차기만 한 사람들이기에 더욱 끈끈하고 각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은상은 가상화폐의 한 종류인 이더리움에 투자해 큰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우리 같은 애들’한테는 큰돈을 벌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며 이더리움 투자에 함께하자고 설득한다. “가상화폐는 손에 쥘 수도 없다. 코드로만 존재한다. 만약 이걸 다시 되팔 수 없다면 나는 허공에 전 재산을 날려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p.89) 과연 이들은 ‘일확천금’의 미래가 있는 ‘달’까지 갈 수 있을까?


​내심 그런 걱정도 했다. 이런 이야기, 그러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욕망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게 욕심 부리다가 큰코다치고 괘씸죄로 천벌을 받으면서 끝나버리고 마니까. 이욕을 추종한 죄, 주제넘게 재물을 탐한 죄, 분별없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들을 좇은 죄. (p.329)



나도 모르게 이 이야기의 끝은 비트코인으로 일확천금을 노렸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고 성실하게 살기를 결심하는 결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더리움의 그래프가 상승할 때마다, 더 급격하게 추락하게 될 수익률에 마음을 졸였다. 왜 나도 모르게 그런 결말을 예측했을까? 하지만 은상은 33억 정도, 다해와 지송은 3억 정도의 수익을 기록할 때쯤 빠져나왔다. 자신의 전 재산과 퇴직금을 모두 투자한 결과 치고도 꽤 많은 돈을 번 셈이다. 문득 부러웠다. 그리고 내 안에도 일확천금의 욕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나에게 3억 정도의 수익이 생긴다면? 내 인생을 가늠해보았을 때 믿을 수 없이 놀라운 행운이지만, 내 삶이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다음 이사는 전셋집을 구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나중에 퇴사를 하고나면 나는 무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 정도. 그 이상은 감히 꿈도 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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