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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ㅣ 하영 연대기 2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3월
평점 :

‘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사람들은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범죄의 원인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는 타고난 악의 씨를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어떤 특수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과거 사람들은 범죄성이 유전적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범죄 유전자를 찾아내고 싶어 했고, 열성인자를 지닌 범죄자들을 격리하고 그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함으로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범죄자는 진화가 덜 된 종족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들은 이성보다 감정과 본능이 앞서기 때문에 범죄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들의 얼굴에 유전적 특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범죄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자라온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보다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범죄자와 다르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범죄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많은 범죄자들은 재판장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환경과 부모님의 이혼, 아내의 외도 등을 이유로 자신이 범죄자가 되었노라고 주장하며 선처를 받기도 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연구에 의하면 범죄성은 유전적 특이성에 환경적 결핍이 더해져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으니까. 분명 유전적 요인(유전자 혹은 환경 등)도 작용하지만 결국 마지막 방아쇠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은 다른 추리 소설처럼 '범인이 누구인가' 혹은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어요. 무서운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어요. 아줌마 목을 막 조르면서 죽이려고 했어요. 아줌마가 죽을까 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내가 아저씨를 칼로 찔렀어요." (p.86) 서미애 작가의 전작 『잘 자요 엄마』에서, 하영이 집에 침입한 연쇄살인범 이병도를 칼로 찌른 사건이 벌어지고 5년이 지난 열여섯의 하영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후 하영은 지속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으며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여전히 분절된 기억과 서먹한 가족 관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하영이의 내면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당신 때문이잖아. 당신이 임신을 해서 여기로 이사 온 거 아냐. 나는 당신을 위해서 다 버리고 왔는데, 당신은 날 비난하는 거야? 당신을 더 배려했다는 이유로?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했지? 난 적어도 당신이 나한테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왜 이사를 했는데, 신중하지 못했다고? 난 당신과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이야!" _p.160
이 작품에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두 인물에게도 두드러진 '자기중심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많은 범죄자들이 '성폭행을 하려고 했는데 반항해서 죽였어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화가 나서 살해했어요.'라며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한다. 자신이 성폭행을 하려고 한 것은, 결혼 생활 내내 폭력을 휘두른 것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모든 것을 상대 탓으로 돌리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은 환경에 분노한다. 극단적인 예로, 리얼돌이 상용화되면 자연스럽게 욕구 해소가 되어 성폭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범죄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성범죄의 핵심은 '성적 욕구'가 아니라,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그것은 인형으로 충족될 수 없는 삐뚤어진 욕망인 것이다.
하영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아빠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하영은 유리와 달리 탈출에 성공했다. 어쩌면 그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 선생은 친구를 걱정해 달려와주었고 하영을 위해 손을 내밀고 기다려주었다. 하영은 아빠 대신 선경을 선택했다. 이제 선경이 자신의 가족이 될 것이다. _p.368
사람들이 말하는 범죄자의 요건으로 본다면, 하영은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지닌 유전자가, 그가 자라온 환경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하영은 어떤 선택을 할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하영의 선택으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