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악을 오래도록 많이 들었다. 자연히 신뢰하는 평론가가 있게 마련인데 강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강헌의 첫 책이다. 놀랐다. 얼마나 오래도록 활동했으며 유명세도 제법 있는 편인데 이제야 첫 책이라니!(가장 첫 페이지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호는 의박이며 자는 산만이어서 나이 50이 넘도록 책 한 권 내지 못한다. 책 표지에 들어가는 프로필을 쓰게 되어 만감이 교차한다.) 또 하나 딱따구리가 뇌리를 쪼았던 순간은 강헌이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무려 2013년부터! 헉! 나는 그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진작 팟캐스트와 친하게 지내볼 것을!'하는 후회를 더운 여름 밤의 맥주처럼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책이 있어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2013년부터 시작된 팟캐스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한다. 물론 녹취록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고 한 권의 책이라는 완결된 형태로 만들기 위해 내용을 대폭 보완했다고 한다. 나처럼 뒤늦게 팟캐스트(나는 끝까지 팟캐스트가 방송법 적용을 받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방송'이란 용어를 쓰지 않으련다.)의 존재를 알게 된 이를 위해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다.(굳이 '커다란이란 형용사를 쓴 것은 이 책을 통해 정말로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없었다.'고 믿는 강헌은 비록 음악이 인간이 의식과 무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기긴 하였지만 '음악만큼 신비화의 추앙을 받은 예술도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또한 시행착오의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역사적 생산물 중의 하나일 뿐이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 의해 생성되는 예술적 욕망의 결과물일 뿐이다.' 여기서 나는 어떤 문장을 특별히 볼드체로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음악을 투시하는 데 있어 이 책이 취하는 방법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실점이기 때문이다. 강헌은 음악을 사회적 생산물로 바라본다. 아무리 뛰어난 음악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전적으로 천재의 영감이나 내재된 가치의 탁월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사회적 환경의 반향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마치 마르크스의 '생산양식'과도 같이 음악도 일정한 형식의 음악을 탄생시킨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이 중요하기에 그는 역사를 훑는다. 표지에 나오는 'MUSIC IN HISTORY, HISTORY IN MUSIC'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기나긴 음악사 속에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특별히 네 개의 역사적 순간을 담는다. 제목 그대로 과거를 전복하고 음악의 진화를 가져온 대표적인 순간이다. 하나씩 간단히 열거해 본다면 이러하다. 먼저 메이저리티의 전유물이기만 했던 음악을 마이너리티의 손으로 쥐게 만든, 진정한 의미의 전복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재즈와 로큰롤의 탄생, 그리고 우리나라의 60년대, 독재의 시퍼런 칼날 아래서 숨죽인 민중들에게 자유와 저항의 바람을 불어넣었던 통기타 혁명과 그룹 사운드, 여기에다 지금은 가장 대표적인 클래식으로 추앙받으나 당대에는 왕정 중심의 클래식에 반발해 자신의 음악에서 공화주의적 정신을 고취한, 한 마디로 안티클래식이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특히 이 부분에서 살리에르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반전이다. 강헌은 지금 우리의 살리에르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오해에 불과한 지를 여기서 조목조목 밝히고 있는데 거기에 맞춰 모차르트와 베토벤 또한 재평가 된다.)에다 마지막으로 군부시절만큼이나 자유와 희망이 억압되었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어떻게 일본의 엔카가 한국의 트로트가 되어 대중음악사를 비로소 열어젖히게 되었는지 그 '반전'의 순간을 윤심덕의 '사의 찬미'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중심으로 담는다.


 그런데도 페이지는 357이나 되고 글자 폰트도 겨우 9(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무튼 보통의 책 폰트보다는 작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겨우 네 개의 장면을 담는다지만 그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 책은 시쳇말로 '정보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재즈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 형식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태어나게 만든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의 6, 70년대와 일제 시대 사회상에 대한 것까지 페이지마자 정보들이 좁쌀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책도 음식과 같아서 알찬 정보들을 많이 섭취하다 보면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포만감을 느끼는 데 이 책이 정말 그렇다. 어쩌면 너무 많이 먹어서 한동안 책을 내려놓고 숨을 골라야 할 지도 모를 지경이다. 무엇보다 재즈와 로큰롤의 입문자라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이 책엔 빛나는 순간들이 많은데, '역시 강헌이구나!' 느끼게 되는 순간들로 '점원들'이나 '체이싱 아미' 같은 영화로 유명한 감독 케빈 스미스가 톰 크루즈를 인터뷰할 때 호들갑을 떨면서 톰 크루즈 영화엔 톰 크루즈가 빛나는 '톰 크루즈 순간'이 있다고 드립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따와 나도 '강헌 순간'이라 부르련다. 그런 '강헌 순간'에서 가장 눈부신 장면은 역시 김민기의 '아침 이슬'의 곡 전개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아침이슬>에 대한 설명은 138페이지에서 143페이지까지 6페이지에 걸쳐 전개되는데 그 중 절반이 '아침이슬'의 음악적 구조에 대한 설명에 할애되어 있다. 분량만 봐도 얼마나 곡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길어서 인용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인데 간단히 정리해 본다면 원래 대중음악은 형식적으로 A-B-A로 구성된다고 한다. 여기서 A와 B는 테마로 아름다운 선율로 청자를 이상향과도 같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A테마가 있고 그것에 이어 열창을 통해 더욱 드라마틱하게 발전시키는 B테마가 있다는 것이다. 강헌은 이렇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 B테마는 A테마가 그리는 세상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 내 삶의 불안, 고통 같은 것이 반영된 게 아닐까 한다. 결코 열리지 않을 유리창으로 이상향을 바라본다면 내 삶의 누추함이 더 강조될 터이니까 말이다. 강헌은 가요가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가서 다시 A테마로 돌아와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A-B-A인 것이다. 거기엔 현실에서는 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노래로나마 닿고 싶어하는 대중의 마음이 투영된 한 편,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변화시켜 A세상을 추구하겠다는 대중의 의지가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침이슬'은 이 구조를 배반한다. '나 이제 가노라~' 후의 부분은 A테마로 돌아가지 않고 전혀 다른 C테마로 청자를 데려가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 노래의 상업적 가치는 끝난 것이라 강헌은 말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 노래는 7080 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노래이나 당시엔 3천장 밖에는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을 사회적 환경의 반향으로 보는 강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불려줬던 사회적 맥락을 읽어낸다. 바로 그것이 '대학생'이 주축이 되었던 청년 문화가 가진 한계의 반영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실과 끝없이 타협해야 하는 선민 집단의 일원이면서도 기존의 기득권 세력의 비민주적인 전횡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길을 새롭게 모색해야 했던 이 혁명적 낭만주의의 자식들에게, 이 대책없는 C테마로의 도약은 바로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혁명은 낭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다시 A테마로 돌아와서 대중성을 쟁취하고 권력을 쟁취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노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가장 낭만적인 초원의 지평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것이 1970년대 청년문화의 혁명적 낭만주의 감수성과 그 구조가 딱 들어맞았다.(P. 142)


 그렇다고 이게 딱히 그 세대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당시 혁명은 낭만화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혁명이 정말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치열한 고민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을 억압하고 폐를 조이는 군부독재라는 장막만 걷혀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다 누리는 표현의 자유를 조금도 누리지 못한 채, 바보로 살아야 하는 시대를 끝장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낭만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그 시대의 한계가 그대로 정체되어 또 다시 지금 이 시대를 과거로 회귀하게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하도록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노래 하나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이렇게까지 담아내는 것은 내게 무엇보다도 '강헌의 순간'이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이런 이야기로 가득찬 책이다. '아침 이슬'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인용한 것도 이 책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지 보이기 위함이었다. 살리에르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엔카와 트로트의 역사나 음악에 대한 구조적 분석도 그렇고,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참 많은데 리뷰가 너무 길어질까봐 하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한대수와 신중현(신중현은 박정희에게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뮤지션이다. 이유는 너무도 약소했다. 박정희가 일제시대 총독부가 행했던 선동 가요를 본받아 정권 선전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래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하려고 신중현에게 의뢰했는데 신중현이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중현은 그 뒤 '대마초 사범 연예인 1호'가 되어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탄압을 받는데 한 마디로 '괘씸죄'였다. 원래 우리나라는 그 때까지 대마초 흡연이 금지되지 않았다. 박정희의 '복수혈전'으로 비로소 범죄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시절에 이루어졌던 노래 검열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나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가 금지곡이었고 그 이유가 '근로 의욕 저하~'라니. 과연 창조 경제의 전통은 거기서 시작되었나 보다. 검열의 이유들이 참 창조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화수분은 아니었던지 '아침이슬'은 금지된 이유조차 없이 금지되었다. 한 마디로 묻지마 금지곡.


 정말 많은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이처럼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음악과 사회의 연관성을 이만큼 뛰어나게 보여주는 책이 달리 없는 것 같지만 설령 그것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도 제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책이다. 한 마디로 강추할 수 밖에 없는 책. 나는 지금 강헌의 팟캐스트 들으러 간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세기컴맹 2015-08-2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테일한 서평 참 잘읽었습니다

ICE-9 2015-08-24 12:24   좋아요 0 | URL
21세기 컴맹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yamoo 2015-08-23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글만으로도 책의 가치를 알겠습니다. 얼른 구매하도록 하지요~
음악 평론에 관한 책은 좋은 책을 만나기 힘든데, 감사합니다!ㅎ

ICE-9 2015-08-24 12:25   좋아요 0 | URL
정말 음악 평론 책은 만족할만한 것을 찾기 힘든데 이 책은 정말 만족스럽더군요^^ 야무님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도 정말 감사합니다^^

이진 2015-08-3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음악 참 좋아하는데요 ㅎㅎ 이 책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정말 재밌어 보이는데요! 살리에르 부분 읽어보고 싶네요.
후 ㅠㅠ 헤르메스님 저 지금 페이퍼 쓰다가 다 날아가서 기분도 날리고,
에잇 오랜만에 컴백하려고 했는데 그냥 안해야 겠어요!!! ㅠㅠㅠ 엉엉
ㅋㅋㅋㅋ 헤르메스님도 잘 지내시죠?

ICE-9 2015-08-31 22:34   좋아요 0 | URL
와우! 소이진님 정말 반가워요^^ 이렇게 소이진님과 댓글 놀이 할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네요. 하하
살리에르 부분이 관심있다면 더욱 추천합니다. 그간 받은 오해를 생각하니 살리에르가 참 불쌍하더군요.
저도 글 쓰다 많이 날려봐서 그 기분 정말 잘 아는데 그런 땐 그저 쓰는 것 그만두고 딴 일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더군요. 그리고 컴백 꼭 해 주세요~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