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알라딘에 책이 나왔다고 페이퍼를 쓰기가 무지 꺼려졌습니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잘 들어오지도 않다가 갑자기 그런 글을 쓰는 게
책 좀 사달라고 대놓고 읍소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전 무지 소심합니다.
A형이라 소심한 게 아니라, 소심한데 A형입니다.
그러다보니 책에 대해 그냥 모른 체 넘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간 낸 책 중 잘된 게 하나도 없었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저만 가만히 있으면 대부분이 책 출간 사실도 모른 채 넘어갈 것 같았습니다.
제 책이 나온 걸 가장 먼저 아신 다락방님은 “이번엔 잘될 것 같아요!”라고 덕담을 날리셨지만
저번, 저저번, 저저저번에 안된 저자가 이번이라고 해서 갑자기 잘되는 일은
극히 드물지요.
제 책은, 저는 “글발이 좀 올라서 쓴 책이니 과거와 다를 것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책을 낼 때마다 그딴 소리를 했다는 점에서 그리 신빙성은 없습니다.
사실 제가 책을 내는 건 ‘자기만족’입니다.
논문이 없어서 허덕이던 2005년까지만 해도 교양서에 주어지는 50점의 업적점수 때문에 책을 냈지만,
제가 연간 10편의 논문을 내는 다작가가 된 마당에, 게다가 교양서의 업적점수가 30점으로 깎인 마당에-외국논문 1편은 300점입니다-굳이 책을 내는 이유가 자기만족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방송에 얼굴을 비추고 있긴 하지만 제 고향 (터전?)은 어디까지나 책이고
방송에서 우스운 말을 했을 때보다 제가 쓴 글이 여러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게 더 좋습니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제게 있어서 책은 제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지인들에게 전하는 계기 같은 것입니다.
갑자기 보자고 하면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할까봐서 지레 겁을 먹지만
따끈따끈한 새 책이 나오면 지인들에게 직접, 혹은 우편으로 보내주면서
저의 건재함을 아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지요.
그래도 참 난감합니다.
제 마음이 어떻든간에 제가 제 책에 대해 한 줄이라도 쓰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지인들에게 “책을 한 권 사줘야 하나?”는 의무감을 지울 수 있어서입니다.
인세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막연히 상상만 할 뿐입니다만,
책이 많이 팔리고, 그로 인해 돈을 벌면 나쁠 거야 없겠지요.
제가 전업작가였다면 정말 하루가 멀다하고 글을 올리며 책을 사달라고 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소심한 저에겐 다행스럽게 전 튼튼한 직장에 다니고 있고,
알바까지 뛰면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작가가 책을 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책을 사주는 것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작가에게 생계를 잇게 해주고, 작가에게 더 좋은 작품을 쓰도록 격려하는 품앗이 같은 거겠지요.
하지만 알라딘 대주주인 제가 책을 냈을 때 주식이 없는 다른 분들이 책을 한권씩 사주는 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더 결정적으로, 전 저와 십년이 넘게 우정을 쌓아왔고, 수많은 댓글과 추천으로 절 격려해줌으로써 오늘의 저를 만들어 주다시피 한 알라딘 마을 주민들을
판매의 대상으로 삼는 게 영 마뜩잖습니다.
제 마음 같아선 제가 책을 와장창 사서 마을 주민들에게 돌리고
“다 읽고 주위 사람들한테 돌려보세요”라고 하고 싶네요.
실제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저와 일면식만 있는 사람이라면 다 한권씩 사인본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은 제 연구실 책장 위에 쌓인 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지요.
그런데 8년 전과 지금의 제가 다른 건, 아내가 있다는 겁니다.
들어오는 월급이 다 제 거였던 과거와 달리 월급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송금하고
통장에 아주 최소한의 잔액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이스피싱도 제게는 안옵니다)
또한 책값이 15000원으로 책정된 것도 사재기를 할 여력을 많이 줄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하지만,
그냥 딱 10권만 이벤트 비슷하게 상품으로 내놓겠습니다.
물론 이벤트라는 것도 “10권을 내놓음으로써 책을 알려 100권을 팔아먹겠다”라는 사악한 계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저를 오래 알고 지낸 마을 분들과 해보는 ‘게임’ 비슷하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이벤트 방법은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번주 일요일 자정까지 이 글에다 댓글을 달아 주십시오.
어떤 말이든 좋습니다. 그냥 점만 찍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면 제가 월요일날, 휴대폰의 스톱워치를 작동시킨 뒤 스톱을 시키겠습니다.
그 경우 100분의 1초에 해당하는 숫자와 이 글에 달린 댓글의 순서가 일치하는 분께
제 사인본이 들어있는 책을 드리겠습니다.
이 과정을 열 번 해서 당첨자 10분을 뽑겠습니다 (증거사진도 올릴게요!)
단 한분이 두 번 올리는 경우 그냥 하나의 댓글로 카운트 (먼젓번 댓글만 유효)하겠습니다.
저나 다른 사람이 댓글에 댓글을 다는 경우, 제 댓글은 카운트하지 않겠습니다.
즉, 원 댓글만 카운트하겠습니다.
스톱워치의 1/100의 한계상 100번째를 넘는 댓글은 이벤트 상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설마 100개 넘게 달리진 않겠죠.?)
공교롭게도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가 같이 나와 있지만,
애정면에서 단독저서가 앞서는지라 부득이하게 <기생충열전>으로만 이벤트를 하겠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름; 제 사인본 증정 이벤트
기간: 7월 16일 화요일~7월 21일 일요일 자정
당첨자 선정: 스톱워치 100분의 1초를 이용해서 총 10분께
발표: 7월 22일 월요일 아침
참, 죄송하지만 비밀댓글도 댓글로 카운트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댓글 달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