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중 추리 소설과 과학 소설을 조금 보는 편이다. 그 중 재밌고 읽기도 상대적으로 쉬우며 과학이 관심이 좀 있어서 SF 소설은 상대적으로 더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새로 나와 보게 되었다. 테드 창은 유명한 작가인데 그 전에 읽었던 '숨'은 생각만 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읽은 과학소설 중 최고봉은 단연 '삼체'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책으로 제목이 삼체라 그런지 총 3권인데다가 1에서 3권으로 갈수록 더욱 두꺼워진다. 각 권은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중심인물이 마치 세대교체하듯 모두 다르며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삼체행성이 지구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오는 이야기로 그들이 오게된 경위와 오는 과정에서 자신들보다 잠재력이 높은 지구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기 위한 공작 등이 매우 재밌게 펼쳐진다. 결국 지구는 이들에게 당하게 되는데 그 가정도 자못 흥미롭다.

 '멀리가는 이야기'는 한국 작가의 책으로 과학소설을 읽기 시작한 무렵 막 읽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광속으로 여행하며 어떤 문명엔 유전자 단계부터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기제를 넣어놓기도 하며 몸에 나노머신이 있어 웬만한 치명상엔 죽지도 않는 사람의 이야기, 인간의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인간의 육신을 초월해 인공지능과 결합해 영생을 누릴 단계에서 자녀는 그러한 삶은 선택하고 부모는 인간으로써 죽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자녀는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야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한국 작품으로 김초월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도 좋았다. 사실 장편인 지구온실 보단 빛의 속도가 더 좋았는데 단편집이어서 그런지 기발한 이야기들의 엮임과 과학소설이지만 그걸 소재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부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쿼런틴'은 최근 읽은 것으로 나온지 오래되었지만 역시 소재는 매우 창의적이다.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인간이 관측하기 시작하면 확률이 무너지고 대상이 고정되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이상한 사실이 오직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이란 생각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때문에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해 우주의 관측 범위가 넓어질 수록 우주는 다양하고 혼재된 세계에서 하나의 고정된 대상만 남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한 외계문명이 태양계를 둘러싼 거대한 막을 쳐서 제목처럼 인간을 '격리'시켜 버린다.

 '멸망' 3부작 시리즈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모든 것이 크리스털로 결정화되고, 모든 것이 물에 잠겨 세계가 각각 멸망으로 향하는 3가지 책이다. 제목은 시리즈 느낌이 드나 사실 전혀 연결되지 않고 각각의 책이 모두 독립적이다. 이 중 가장 재미난 것은 물 시리즈로 오래전 나온 책임에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상당 부문 수몰되고 기온이 크게 올라 극지방에서 밖에는 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낮이 너무 뜨거워 기온이 겨우 30도 정도인 새벽이나 아침에만 일하는데 한 낮엔 온도가 거의 50-60도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그 지역이 런던이란게 기막힌 설정이다.  

 사람들은 뭔가가 현격히 다른 수준을 보이면 흔히 차원이 다르단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게 소설 '플랫 랜드'다. 제목처럼 이차원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3차원이 얼마나 대단한 존쟁임을 보여준다. 이차원 세계가 있는데 한 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면 모든 것들이 그 쪽으로 쏠리는 힘을 받게 된다. 이들은 이걸 중력처럼 받아들인다. 이차원엔 오각형도 삼각형도 원도, 사각형도 있다. 사람들은 정면만을 볼 수 있기에 이들을 모두 비슷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차원에서도 이들의 다른 모습을 어렴풋이 여긴다. 3차원에선 이차원 도화지의 어느 곳이나 순식간에 갈 수 있다. 또한 이차원을 구부려 서로 만나게 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 이것은 마치 웜홀 같은 일이다. 하여튼 오래되었음에도 정말 재미난 설정의 책이었다. 4차원 세계의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 인간은 플랫랜드 사람들 같은 것이다.

 '더 로드'는 크리스천 베일 주연으로 영화화 된적도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혹은 거대 화산 분출 같은 거대한 불로 인해 세계는 망해버린다. 인간들은 초기 잘 모이기도 했지만 결국 야만화한다. 약탈자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이 와중에 주인공 부부는 아이를 낳는다. 엄마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 세상을 등져 버리고 아버지 홀로 이 아이를 키워 나간다. 영화에선 벙커, 소설에선 한 주택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모처럼 괜찮은 비상식량을 얻어 만찬을 즐기며 잠시만의 평안을 누리고 그 와중에 이들을 노리는 약탈자들의 모습이 긴장감이 넘친다. 

 '숨'은 마치 증기기관 처럼 인간의 뇌와 인지가 기압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를 묘사한다. 그런데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사람이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조사 결과 이는 대기압이 점차 변화하기 때문으로 밝혀진다. 인간 내외부의 기압차가 사라지면 공기의 흐름은 멈추고 인간의 뇌도 멈춰 결국 세계는 지적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만 것이다. 

 '종이 동물원'은 여러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기발하고 매우 재밌으며 과학소설로의 장점도 놓치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부분을 잘 후벼판다. 최근 시류와 맞물려 기억에 남는 부분은 먼 미래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해지며 인류 역사상 일어났던 잔혹한 학살이나 전쟁범죄등에 대한 확인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역사를 부정하던 가해국가들은 초기 충격을 받지만 곧 이조차도 부인하는 놀라운 정신승리를 보여준다. 일본과 한국 보수층의 만행을 보고 있으면 가끔 그들의 머리에 그들 조상이 친일했거나 조선인을 학살하고 괴롭히는 모습을 재생시켜 주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는데 소설을 보다보니 어쩌면 이조차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sf의 힘'은 과학소설 자체는 아니지만 인공지능, 외계인등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논의를 전개시키며 이들을 다룬 과학소설을 소개하고 등장시키며 인간의 생각을 조망한다. 한국 작가가 쓴 책인데 많은 과학소설을 추천 받을 수 있고 이런 시도 자체가 독특하고 인상깊었다.

 마지막은 이번에 본 책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역시 과학소설 단편 모음집으로 바벨탑을 다룬 이야기, 강화 인간 이야기 등이 있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칼리란 도구에 관한 책이다. 이는 인간 뇌 신경 일부를 마비시켜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성적 반응을 사실상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리를 장착한 인간은 어떤 외모를 보아도 어떤 감흥이 없고 철저히 상대방의 내적인 면에 의해 이끌리게 된다. 그래서 외모가 출중한 영화배우, 탤런트, 모델등을 보아도 감흥이 없다. 일부는 칼리를 중단하고 이런 것을 느끼며 처음으로 자신의 외모가 어떤지에 대해 신경쓰게 된다. 

 과학소설을 늘 읽어도 어려지만 재밌고 술술 읽힌다. 소설에 따라 과학적인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서 그것 자체가 주제인 경우도 있으며 과학은 그저 외피이고 인간적인 이야기에 치중하는 것들도 있다. 모두 재밌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더 많은 양질의 과학 소설이 한국에서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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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디드 수업 디자인 - 다양한 수업 경험을 설계하는 디지털 도구 활용과 사례
박영민 외 5명 지음 / 프리렉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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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의 긴 그림자가 마침내 사라져간다. 학교는 작년부터 전면 등교를 시작했고, 올해 초부터는 실내 마스크가 해제 된 데 이어 곧 대중 교통 내에서의 마스크 착용도 해제될 듯 하다. 코로나로 원격 수업을 하면서 그간 교육 현장에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블렌디드 수업이 한창 진행되었다. 블렌디드 수업은 글자 그대로 가상 공간과 실제 세계에서의 수업을 혼합하는 것이다. 코로나 2년 차인 2021년부터는 학교에서 등교와 원격이 병행되었기에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면 등교가 시작된 작년부터 학교 현장은 다시 디지털 도구들과 급격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학교 교육에 디지털은 어렵고 일선 교사들에게 멀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세계는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향하고 있으며 이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교육 현장은 디지털 전환을 한 번 놓친 적이 있다. 2015년 당시도 지금도 교육부 장관인 이주호 장관은 그 당시에 모든 학교 현장에 테블릿 기기를 학생 일인당 한 개 씩 모두 지급하고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고 했었다.(물론 잘 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거기에 당시 불던 코딩 교육 열풍에 2015 개정 교육 과정에도 이게 반영되었다.(하지만 초등과정 전체에 고작 17시간, 중학교는 34시간 고등학교 68시간에 불과했다.)

 이처럼 당시 시기를 놓치다보니 한국 교육 현장은 디지털 전환에 선도적으로 진입할 시기를 크게 뒤로 미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혁신 교육에 갖고 있는 일부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이번 지선에서 보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데는 미래교육을 강조한 점도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때문에 어렵지만 공교육 차원에서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갈 학생들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해줘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곧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도입될 학교자율시간 등을 이용해 학교교육과정 내에 디지털 교육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코딩, 3D프린팅, 메타버스 교육 등에 대한 개념 이해와 활용, 창작 등이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일반 교과교육과정 내에서 이 도구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MS팀즈나 구글클래스룸 같은 도구들은 학생들의 협업이나 글쓰기, 프로젝트 수업 등에 매우 유용한 도구들이다. 

 그리고 메타버스나 코딩, 3D 프린팅, 인공지능 교육 등도 일반 교과에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하는 인공지능, 서양화나 동양화의 화풍을 구분하는 인공지능, 간단한 스케치를 괜찮은 그림으로 바꿔주는 인공지능은 각 교과의 여러 성취기준에 어울린다. 또한 3D 프린팅은 수학과나 미술과에서 많이 활용이 가능하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작품을 만들고 도형을 이용해 여러 이동이나 조형물을 만들 수 있으며 입체도형 자체의 회전 및 관찰에도 좋다. 메타버스는 학생들의 여러 산출물을 전시하여 공유하거나 혹은 메타버스 자체를 구축하여 여러 성취기준을 달성하는데 유용하다. 

 이처럼 교사의 노력으로 학교 현장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 남은 건 생각과 노력 뿐이란 생각이다. 책에는 이런 수업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나와 있다. 도구는 생각보다 무척 많으며 한국에도 쓸만한 것들이 더러 있다. 이런 것에 모두 통달할 필요는 없다. 한 두 개만 잘 활용해도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환한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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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
이호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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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교육이 들어서면서 교육현장에서 교육자의 자율성이 높아졌고, 족쇄도 어느 정도 풀리면서 많은 연구결과물들이 책으로 출간됬다. 당연히 많이 팔리진 않겠지만 교사들이 쓴 책도 상당히 많아졌고 읽을만 해졌는데 '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처럼 교사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책은 더욱 독특했다.

 교사가 책을 쓴다면 당연히 소재는 교육에 관한 것일 것이다. 이론에 충만한 사람은 교육 이론에 대해서 쓰겠지만 이는 아마도 교사보다는 교수쪽이나 전문연구자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은 대개 자신이 실천한 수업연구과정 및 결과나 상담관련 쪽으로 책을 많이 쓰게 될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또는 최근엔 교육과정과 관련한 책도 선생님들에 의해 많이 나오고 있다. 이해중심교육과정이나 교수평 일체화 책, 또는 교육과정 문해력에 관한 책들이다. 평가에 관한 책도 조금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교사의 교직 전문성 중 가장 약한 부분이 평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교육과정과 수업에 상당히 힘을 쓰곤 있지만 그것의 성과나 학생의 성장을 검증하는 평가방법에 대해선 이상스레만치 인색한 편이다. 평가에 관한 책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 책은 수업 실천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2학년 담임을 오랜 기간 맡으면서 그 아이들과 함께 실천한 수업과 교육과정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교사입장에서 책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준다.

 우선 분야를 정해야 한다. 언급한 것처럼 수업연구가 주 소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매일 실천한 수업의 기록이다. 수업일화를 자세히 기록하고 학생 및 교사가 그 과정에서 남긴 과정물과 결과물을 사진등을 잘 축척해 놓아야 책을 쓰기 수월해진다. 이런것들이 많아지면 설계를 잘 해야한다. 각 책의 장마다 어떤 내용을 체계적으로 수록할 것이가를 일목요연히 잘 정리해야 한다. 

 마지막은 독특했는데 책을 완성하고, 쭉 퇴고한 후, 이를 출판사에 투고하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라면 출판사에서 의뢰가 들어오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므로 투고가 유일한 방법이다. 저자는 투고를 할 때 자신의 약력을 자세히 소개했고 이 책이 어떤 선생님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를 상세히 알렸다. 출판사는 책을 파는 것이 목적이기에 나의 책이 팔릴만한 이유를 알린 것이다. 교사로서 책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많은 경험과 강한 내공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은 책을 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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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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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현민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의전비서관이다. 직함이 말하듯 청와대 대통령이 참가하는 의전을 담당한 사람인데 아마 역대 의전비서관 중 가장 유명할 것이다. 유독 문재인 정권에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약간의 흠으로도 트집을 많이 잡긴 했지만 의전 자체에 대해서도 시비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다보니 그 담당자인 비서관도 그 칼끝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책에서 밝히듯 탁현민 비서관은 의전으로 인해 고발도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의전이 기존 역대정부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 어느 집단이든 우두머리 급들은 어느 정도 의전이란게 필요하고 사실 굳이 필요가 없을 만한 위치도 이런 걸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의전은 모두 꼰대 의전에 불과하다. 의전의 진정한 의미는 그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한 국가를 대표하거나 한 지역, 한 기업을 대표한다는 차원에서의 존중이며 또는 그 행사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의전에 참여하는 대통령보다는 대통령이 그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와 행사의 본질에 집중했다. 여기엔 역사와 민족을 중시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한 진정한 민중을 기리는 의식이 반영되었고 아마도 이것이 본능적으로 그것들과 대척점에 있는 보수 야당과 언론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다. 

 책의 제목은 미스터 프레지던트인데 짙푸른 겉표지와 인주처럼 약간 어두운 붉은색의 속지를 썼다. 책의 겉에도 의전의 느낌을 강조한 셈이다. 프레지던트는 문재인 대통령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탁현민 비서관이 활동을 하며 김형석 작곡가와 만들어낸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대통령 음악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선진사회의 각 나라의 왕이나 지도자들은 고유의 상징적 음악이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이 없다. 탁현민 비서관은 이를 만들어 냈던 것인데 그 스스로 아쉬움을 표했듯 윤석렬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위풍당당 행진곡을 썼다. 

 책은 제법 두껍지만 술술 읽힌다.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수많은 의전 행사들과 그것의 의미와 뒷이야기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같가지 노력이 들어가고, 누구를 섭외했으며 어떤 논의를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가 실려있다. 보다보니 무척이나 당연해 보이고 어쩌면 경호만 좀 신경쓰지 않았을까 싶었던 행사들이 상당한 노력과 시행착오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탁현민 비서관은 대놓고는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적잖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중 항상 피곤해보였는데 이는 결과는 둘째 치더라도 항상 맡은 바 직무에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에는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화장실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이야기, 술을 즐김에도 불구하고 항상 군 통수권자로 최상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은 이야기 등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 의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국군의 날 행사와 트럼프에게 대접한 독도새우, bts의 유엔 연설, 홍범도 장군의 귀환이다. 국군의 날 행사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딱딱한 사열이나 퍼레이드 중심에서 젊은 군인들이 현장에서 축제를 즐기고 싸이의 노래에 맞춰 열기를 뿜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트럼프에게 대접한 독도 새우는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으며 책에는 한일관계의 민감성으로 독도 새우를 도화새우라는 이름으로 대접하려다 그대고 갔다고 한다. 항의하는 일본에는 우리가 무엇을 대접할지는 우리가 결정한다라는 말로 일축했다고 한다. bts의 유럽 연설은 그자체로 한국에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유엔 관계자들도 열광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행사에 이렇게 높은 시청률이 나온게 처음이었단다. 그럴만 하다. 홍범도 장군의 귀환도 하나의 명작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카자흐스탄으로 부터의 송환이 결정되었고, 파묘를 통해 조심스레 묘를 찾아내고 장군이 말년 극장 경비를 맡았던 귀한 서류까지 잘 찾아왔다. 

 홍범도 장군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한국전에 사망한 한국군의 유해를 적극적으로 찾아왔는데 북한 장진호 전투에서 사망한 유해들 중 북한에 의해서 미국으로 반환된 것으로 우리가 다시 찾아오는 형식이다. 미국은 한국군이 순식간에 수세에 몰려 급하게 참전하느라 인적구성이 완벽하지 않아 한국인을 차출하여 썼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카투사의 원형이다. 그들이 미군을 따라 북진했다 그 치열했던 겨울 장진호 전투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책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수 많은 의전 하나하나를 복기하며 재밌게 읽었다. 의외로 많은 의전이 떠올랐는데 그 의미는 내가 그것을 시청했다는 의미이며 국경일마다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던 재미없던 의전이 문재인 정부에서 만큼의 의미있고 재미나고 독특하며 개성있게 연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재만큼 독특하고 재미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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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2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재미없는 의전들을 의미있고 볼만한 것으로 만들어내는데서 탁현민씨 참 탁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어요.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 흥미롭네요

닷슈 2023-03-03 14:09   좋아요 1 | URL
내 재미난 책입니다.탁현민 비서관은 대단한 사람이죠.
 
쿼런틴 워프 시리즈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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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쿼런틴은 격리란 뜻이다. 같은 제목의 소설도 무척 많고 좀비 영화도 한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챗gpt에게 쿼런틴에 대해 물어봤는데 같은 제목의 소설이 많아 정보를 더 달라고 했다. 저자 이름까지 입력하니 간단한 정리를 제공해주었다. 

 양자역학은 현대 과학의 기반이면서도 몹시도 어려운데 그 양자역학을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책의 배경은 21세기 후반으로 과학기술이 몹시 발달한 상태다. 책 배경에서 대충 30년도 정도 전에 인류는 밤하늘에서 별을 잃어 버리게 된다. 대충 태양의 80조배 정도 되는 크기의 막이 지구를 중심으로 둘러쌌는데 그 덕에 별들로 부터의 빛이 차단되어 지구에서는 태양계 정도 밖에는 볼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많다. 사실 이는 태양빛을 막은게 아니어서 지구의 생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인간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진다. 

 이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들이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인간이 위해가 된다면 이미 충분히 침공이 가능한데 왜 이런 짓만 하는지, 그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등등이다. 이 사건은 버블이라 불렸고, 많은 인구가 버블열이라는 정신병에 시달렸다. 물론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갖가지 종교 단체와 테러 단체가 생겨났고 이들은 지구 곳곳에서 수 십년째 소동을 일으킨다.

 소설의 장소는 공간적 배경은 호주로 아무래도 작가가 호주출신이라 그런 듯 하다. 미래엔 재밌는 설정이 하나 있는데 중국이 홍콩에 압제를 펼치고 대만마저 침공해 대량의 이주민이 발생하여 이들이 호주 북부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곳이 뉴홍콩이라 불리는데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보면 무척 개연성 있게 느껴지지만 이 소설이 홍콩이 반환되기도 전인 1992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혜안이다.

 미래사회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신경과 뇌를 조절하는게 가능하며 이런 것을 제품으로 팔고 있다. 주인공만 해도 p1-p5에 해당하는 모드를 갖고 있는데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과 감정적 동요를 차단하고 냉정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닉이란 사람으로 전직 경찰인데 아내가 테러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닉은 이 일로 경찰을 그만두고 탐정 일 같은 것으로 하는데 그가 받은 의뢰는 정신병원에 오래 입원하고 있는 로라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다. 로라는 뇌손상을 갖고 태어나 3-4살 수준의 지능에 거동이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라는 행방불명 이전 병원을 무려 두번이나 탈출한 이력이 있다. 

 닉은 로라가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갔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그녀를 모종의 이유로 납치한 것으로 생각한다. 알고보니 로라를 시신의 형태로 반출해갔고 장소는 뉴홍콩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닉은 인간이 양자중첩상태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로라가 이를 토대로 스스로를 개량하고 탈출까지 가능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외계 문명에 의해 버블이 생겨난 것도 인간이 관측을 통해 대상을 수축시켜 우주의 가능성, 즉 양자중첩상태를 없애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책은 외계문명은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고 양자중첩을 노리는 인간들과 그런 상태에 놓은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책은 읽기 쉬운 편이 아니다. 이런 독특한 심리를 좋아한다면 또 모르겠다. 하여튼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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