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꽤 오래 전 중학교 시절, 묘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바닥에 사마귀가 있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가 밟았는데, 그 사마귀 안에서 길고 검은 정체불명의 것이 나와서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사마귀 뱃속의 내장이 사후경직으로 인해 밖으로 삐져나와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근육조직이 거의 없는 사마귀에 사후경직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된다). 그때는 디카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그 기괴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 둔 것은 없지만 그것의 꿈틀거리는 모습은 나의 기억 속에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사마귀 뱃속에서 나왔던 그것이 '연가시(nematomorph, hairworm)'라 불리는 기생충의 일종임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기생충이나 그 외의 곤충류에 약간의 흥미가 생겨,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이라는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확실히 그러한 것들에 대해 흥미는 있지만, 사진 따위를 보면 혐오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 참 이율배반적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읽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원제 : A Field Guide to Household Bugs)>라는 책은, 번역본 제목만 보면 고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치유 책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원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상은 그렇게 따뜻한 내용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서식하는 각종 곤충 종류를 멋지게(!) 확대해놓은 전자현미경 사진들을 곁들여, 어쩌면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 '가정용 곤충'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는 꽤 코믹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곤충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꽤 친숙한(!) 것들이다. 인간을 물어 가렵게 하는, '자유로운 영혼' 빈대, 인간의 머리카락에 주로 서식하는 '미치광이 침입자' 이, 알레르기의 주범인 집먼지 진드기, 역시 피부 트러블의 원인이 되는 '살갗 위의 굿 서퍼' 모낭진드기와 옴진드기, 어쩌면 다른 것들보다는 좀 낭만적일지도 모르는 '도서관의 보헤미안' 서양좀벌레와 집게벌레, 인간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병까지 옮기는 파리, 출몰하는 것만으로 정신적 데미지를 선사하는 '천하무적 몬도가네' 바퀴벌레,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과 흡혈진드기 등 혐오스러우면서도 발랄한(?) 곤충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꽤나 자주 등장하는 '가정용 곤충'들의 전자현미경 확대 사진들은, 상당히 못생기고 혐오스러운 곤충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온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나마 지금은 벼룩과 빈대 따위가 창궐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세시대에만 해도 자다가 그러한 것들에 물리는 일은 너무나도 흔했다. 또한 그러한 곤충들이 어떤 먹이를 좋아하고, 어떤 방식으로 번식하고, 퇴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꽤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만약에 이 책에 나오는 퇴치법들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했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벌레를 퇴치하기 전에, 인간이 먼저 퇴치당한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또한 꽤 인상에 남는 것이 빈대의 번식에 대한 것이었는데, '빈대의 짝짓기는 무척 거칠어서 곤충학자들은 이것을 '외상성 수정'이라고 부른다. 암컷 빈대의 몸에는 생식기 개구부가 없어서 수컷이 암컷의 배를 잘라 벌리고 그 안에 정자를 넣는다.(p.27)'고 한다. 꽤나 거칠고 하드코어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빈대들은 번식을 하는데도 거의 목숨을 걸 정도의 큰 결심을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인간 입장에서는 빈대 같은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그들은 계속 자신들의 종을 열심히 번식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집먼지 진드기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인간과 애완동물의 비듬이라던지,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이 변한 벌레는 아마도 바퀴벌레가 아닐까 하는 가설이라던지, 에드가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에 등장하는 '익명의 나무 먹는 벌레' 이야기 등 벌레와 관련된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에 포진해 있어서, 결코 읽다가 지겨워지거나 할 일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곤충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즐거운 일은 아니다. 벌레를 심하게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이런 녀석들과 함께라니 차라리 혼자인 쪽이 마음이 편할 듯 하다! 아마 벌레 오타쿠(!)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거의 10년쯤 전, 열린책들에서 완역본으로 출간된 도스또예프스끼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이것은 정말 최고라고 열광했던 적이 있다. 그 뒤로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하나둘씩 찾아 읽게 되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이 위에 언급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죄와 벌>이다. 그 둘은 거의 도스또예프스끼의, 그리고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작품들을 쓴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완역본을 출간했던 열린책들에서 이번에는 E.H.카의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원제 Dostoevsky 1821-1881)>을 개정 출간했다.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What Is History)>를 쓴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로, 그는 소련사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였다.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카의 첫 번째 저서로,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그의 문학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역사, 사조, 그리고 종교, 심리 등의 측면에서 매우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대부분의 문필가들의 삶은 평탄하지 못하다.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 거의 학대에 가까운 엄격함 밑에서 성장했고, 지병인 간질 발작은 그를 평생 동안 괴롭혔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황제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마지막 순간에 감형되어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 10년을 보낸다. 처형장에서 눈이 가려진 채 공포가 극도에 달한 순간, 니꼴라이 1세의 칙사가 말을 타고 와서 감형 명령을 전했던 일화는 꽤 유명하다. 이는 일종의 영혼을 흔드는 듯한 체험으로,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또한 비참했던 시베리아 유형 생활은 그의 작품 <죽음의 집의 기록>에 큰 영향을 준다.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의 삶은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다.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드미뜨리예브나가 병으로 죽은 후 그녀의 아들인 빠벨은 방탕한 생활로 도스또예프스끼를 평생 괴롭혔다. 그 뒤로 만나게 된 연인 수슬로바와의 관계는 일종의 애증으로 이어진, 어찌 보면 참 잔혹한 관계였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을 피폐하게 했던 것은 도박이었다. 원고료로 돈을 받는다 해도 도박 등의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전부 날려버리는 일이 잦았고, 두 번째로 맞은 부인 안나와 어린 자녀들, 죽은 형의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의붓아들 빠벨 등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많았기 때문에 삶은 항상 궁핍했다. 그의 도박벽은 꽤 심각해서, 크게 돈을 잃고 나서는 도박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도 돈이 조금만 생기면 또 도박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러한 도박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인 <노름꾼>에 나타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렸고,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원고를 집필하는 조건으로 선금을 받고 지인들에게 빚을 져서 근근히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도스또예프스끼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의외였다거나 그의 이미지가 손상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른 문필가들의 수많은 예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거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집필한다. 초반과 달리 이제는 그가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판매 부수도 많았고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다. 오래 전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알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 평전을 읽으면서 명료하고 확실해지는 느낌이다. 또한 각 작품들이 그의 문학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 책은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가 죽기 직전까지 집필했던, 40만 단어에 달하는 작품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일종의 예언자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라던지, 주인공들을 통해 표현되는 일종의 마조히즘에의 뚜렷한 경향을 알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지병으로 인해 죽기 3일 전까지도 집필을 하고 원고를 인쇄소에 보냈다. 그의 죽음 역시, 지극히 작가다웠던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큰 별이 진 후,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문인들과 군중들이 참석했다.  

이 평전을 읽으며, 문필가의 숙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심한 괴로움과 우울증, 그리고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삶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은 범인(凡人)의 예상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지만, 그것은 너무 큰 대가를 동반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에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천재적인 작가로써 기억되고 있지만, 그의 삶 역시 다섯 번의 동반자살 시도와 약물중독, 방탕한 생활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항상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려서 지인들이나 출판사에 애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일의 연속이었다. 결국 마지막 동반자살에서 그는 성공하여, 짧은 생을 마감한다. 많은 부분에서 도스또예프스끼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기파괴적 경향은 어쩌면 작가와 예술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평전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천재들은 결코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지극히 슬프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욕 레시피 - CIA요리학교에서 만들어가는 달콤한
이준 지음 / 청어람메이트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원래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한 편이기도 하지만, 칼 같은 것을 무서워해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게다가 요리사가 되어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보기에는 꽤 멋져 보이지만, 실상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모 드라마에 등장한 것처럼 실제로 요리 관련 업계에서는 엄격한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상하관계도 철저한, 꽤나 군기를 잡는 분위기 속에서 배우고 일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셰프가 한 말에 대답할 때 꼭 말 끝에 셰프라는 단어를 붙였던 것 같다. 그런 분위기에 꽤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저렇게까지 해서 요리사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결코 겉보기처럼 화려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멋진 셰프가 되기 위하여, 세계무대를 경험하기 위하여 뉴욕 CIA에 입학한 이준의 <뉴욕 레시피>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 느낀 것은, 이 책의 내용이 뉴욕에서의 삶과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뉴욕에서 내내 기숙사와 학교,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레스토랑만 오가는 빡빡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뉴욕의 진정한 분위기와 삶을 느낄 여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물론 뉴욕의 꽤 아름답고 센티함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비중도 작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따로 노는듯한 느낌이 든다. 반면, 뉴욕의 요리학교 CIA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자세하다. 셰프 수서 리의 레스토랑 마들렌에서 일하다가 또다른 꿈을 위하여 CIA에 입학한 저자는 요리학교의 여러 가지 과목들을 들으며 많은 것을 경험한다. 주중에는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셰프 켈러의 레스토랑 퍼세(Per se)에서 무보수로 12시간씩 일한다. 읽으며 내가 요리 업계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게 느끼는지는 몰라도, 역시 이런 것이 불합리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앉지도 못하며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도 괴로운데, 단지 훌륭한 셰프에게 배우기 위해서 기꺼이 무보수로 일한다는 것이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요리라는 분야가 매력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CIA에서 저자는 해산물과 육류의 손질, 육수와 기본 칼질, 소스와 조리법, 그리고 미국 요리, 아시아 요리, 지중해 요리, 대량 조리, Garde Manger(주로 애피타이저 등의 차가운 음식을 만드는 것), 제과제빵, banquet(격식을 차린 디너, 연회), 와인 등 참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이게 참 신기했던게, 요리사들은 양식이면 양식, 일식이면 일식 등 자신의 주 분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배워야만 하는 것을 보고 그저 놀라웠다. 또한 중간쯤 되면 엑스턴(Externship)이라는 것이 있어서, 18주간 학교 밖의 실제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일을 경험하고 그 다음에는 학교에서 지역주민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실제로 일하며 지금까지 배운 기술과 경험을 활용하는 과정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안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많다. 설거지거리가 쌓였다고 셰프에게 혼나기도 하고, 산마늘과 염소치즈를 이용해 김치를 만들어 먹으며 행복해하기도 한다. 플로리다의 부호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나갈 요리를 셰프와 함께 만드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서버(Server) 수업 과정에서 주방을 벗어나 실제로 손님들과 대면하여 서비스를 익히기도 한다.  

읽으면서 역시 이 책은 뉴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요리학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뉴욕 이야기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사진과 짧은 글들이 등장할 뿐, 주된 내용은 요리학교와 자신이 한 요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각종 연회에서 어떤 요리들을 어떤 순서로 냈고, 이러저러한 고안을 해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봤다는 이야기는 사진이 참 예뻐서 재미있긴 하지만, 일종의 식재료 이름이나 전문용어 등이 자주 등장하여 요리를 잘 모르는 경우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요리업계의 엄격한 상하관계와 도제식 교육의 느낌은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이 책에서도 셰프의 말에 대답할 때는 항상 "Yes, Chef" 처럼 셰프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을 보았다. CIA의 셰프들이나 레스토랑에서 만난 셰프들을 보면 부드러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주방에서 학생들을 혹독하게 다뤄서 마치 군대나 조폭을 연상하게 했다. 문학이나 철학 등의 다른 학문을 가르칠 때처럼 점잖고 젠틀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읽으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참 부럽기도 한 것이, 그에게는 하고자 하는 것을 실행하는 힘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열정 하나로 그는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고, CIA 요리학교에 입학해서 빡빡한 일과와 혹독한 훈련 끝에 수료증을 받고, 지금은 레스토랑 링컨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나였다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버텨내지 못했을 것들을, 그는 열정에 차서 해냈던 것이다. 비록 읽으면서 뉴욕 이야기보다 요리 이야기의 비중이 훨씬 커서 요리업계를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질리기도 했지만, 그의 패기와 열정에 대해서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러한 열정이 내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언제쯤에야 나는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넷과 각종 정보통신 기술은 우리의 삶을 여러 측면에서 바꿔 놓았다. 약 20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을 뒤져가며 찾아야 했을 정보를 지금은 구글 같은 검색엔진에서 검색어들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간편하고도 빠르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찾아온 부작용들도 있다. 문학 작품과 같은 긴 글을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거나, 정신이 산만해져서 어떤 것에 집중하기 힘들어지는 것 등이 그에 속한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원제 The Shallows)>은 인터넷 정보사회가 가져온 사람들의 변화된 사고와 그 실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느껴왔던 딱 집어 말하기 힘든 어떤 답답한 것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동안의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나 역시 많은 편리함을 누려 온 것은 사실이다. 굳이 발로 뛰지 않아도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그것으로 유용한 일이나 취미활동 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을 활발하게 사용하지 않던 시절에는 거의 속독에 가까울 정도로 책을 빨리 읽고 또 많이 읽었으나, 인터넷 사용시간이 길어지면서 책을 상대적으로 적게 읽게 되고 또 그 속도 역시 눈에 띄게 느려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읽는 책의 수준이 높아져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원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또한 핸드폰 사용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핸드폰에서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으니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져서인지 전화번호를 포함한 숫자 자체를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나의 두뇌가 둔해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뇌의 가소성(plasticity)에 대해 언급한다. 뇌의 신경 배치나 활성화되는 부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지 않을 때는 활성화되지 않은 부분이, 인터넷에 익숙해지고 많이 사용하게 되면 활성화되어 금새 적응하게 된다. 인터넷으로 무엇인가를 읽을 때는 책이나 출력된 문서에는 없는 화려한 색상이나 동영상, 자막 등을 보며 소리를 듣는 등의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뇌는 그러한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된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나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바로 멀티태스킹(multitasking) 기능이었다. 그 전의 유닉스나 도스 운영체제에서는 지원하지 않던 기능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문서 작업을 하는 등 한 번에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컴퓨터 뿐만 아니라 사람들 역시 멀티태스킹에 강해져서, TV를 보면서 동시에 밥을 먹으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이제는 별로 신기하지도 않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는 과연 좋은 것인가?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점점 진지한 문학 작품과 같은 책을 읽지 않게 되고, 심지어는 인터넷 상에서 글을 읽을 때도 글이 조금만 길면 '스크롤의 압박' 운운하며 제대로 읽을 생각도 하지 않고 스크롤을 내린다(물론 나는 그런 말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몇천자나 되는 글을 태연하게 쓰고 있다).요즘 들어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트위터만 해도 시스템상으로 한 번에 쓸 수 있는 글이 140자를 넘지 못한다. 그러한 짧은 글이라면 진지하고 깊은 소통을 나눌 수도 없고, 그다지 의미없는 잡담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심지어는 공부를 할 때도 '인강'을 보며 공부하는 요즘의 학생들은, 그 속도마저 느리다고 생각해서 1.5배속이나 2배속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는 과연 공부가 될지 의문이다. 실제로 코넬대학과 캔자스주립대학의 학자들이 행한 실험 결과에서도, 고전적인 방식으로 공부한 사람들과 현란한 그래픽과 동영상, 소리 등이 지원되는 방식으로 공부한 사람들의 성취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형식은 시청자의 집중력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한 것 같아도 막상 집중을 거의 못 하기 때문에 그다지 효율적인 방식이 되지 못한다. 

또한 같은 글을 책으로 읽을 때와 인터넷상으로 읽을 때 역시 집중도와 내용의 파악 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사실 컴퓨터 화면으로 뭔가를 읽을 때는 쉽게 눈이 피로해지고, 읽다가도 메일이나 카페 등의 다른 사이트를 클릭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느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온전히 그 책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효율이 높다. 또한 이러한 인터넷과 정보통신 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뭐든지 빠르고 쉬운 것만 찾게 함으로써, 그러한 기기에서 한시도 벗어나 쉬지 못하게 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거나 명상을 하는 등의, 정적인 활동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주의가 산만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뇌는 일종의 '곡예'나 마찬가지인 일을 하게 되어 뇌의 구조 자체가 집중을 잘 못하게 바뀌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원제인 The Shallows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생각하지 않게 된 사람들'과 '깊이가 없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빠르고 쉬운 것만 찾으며 인터넷과 정보기기에만 의존하게 되면, 결국 깊은 사고를 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결국 그만큼 우리는 생각을 덜 하게 된다. 구글로 뭐든지 쉽게 찾아내는 것이, 결국 스스로 어떤 정보를 찾는 힘을 잃게 한다. 또한 점점 문학 작품이나 진지한 글을 멀리하게 되어, 지적 수준 역시 몇십년 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낮아지는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된다. 어쩌면 인터넷이나 핸드폰 같은 것이 없었지만 예술과 낭만이 넘쳐 흐르던 시대가,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러한 가볍기 짝이 없는 모든 것에 염증을 느껴 왔었다. 점점 갈수록 이 모든 것에 깊이가 없어지는 느낌이었고, 정보 기술의 점점 빨라지는 발전은 따라잡기에 너무 큰 노력을 소모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조차 사용하지 않은 채, 2G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으로도 필요하면 무선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 같은 것을 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내가 기계 종류와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인지, 굳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따위의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나의 두뇌를 혹사시키고 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는 않다. 그것 외에도 읽어야 할 문학, 철학, 사회과학 등의 책들과 해야 할 공부가 충분히 많은데, 굳이 내키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이러한 인터넷과 정보기술을 멀리하고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그리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이 글 역시 컴퓨터를 사용해 작성하고 있지 않은가! 만년필로 썼더라면 아마 어깨와 손목이 꽤나 뻐근했을 것이다) 역시 이러한 '원치 않는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기 행동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터넷이나 정보기술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은 사용해서 그 이득을 취하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리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날로그적 인간인 나 역시 이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njoy cafe! 카페 서울 두번째 이야기 - 서울의 숨겨진 보석같은 카페를 찾아 떠나는 여행 enjoy cafe! 시리즈 3
이현주 지음 / 북웨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카페를 사랑한다. 내게 있어서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커피전문점과는 또 느낌이 다른, 고즈넉한 카페를 나는 사랑한다. 얼마 전에 결국 문을 닫았지만 노오란 불빛이 아름다웠던 삼청동의 어떤 북카페, 역시 지금은 없어졌을지도 모르지만 핸드드립 커피가 참 훌륭했던 작은 골목 안의 카페, 10년 전의 나의 로망의 장소였던 분위기가 좋았던 카페, 그 외에도 나의 삶에 위안이 되었던 카페들이 참 많다. 한때 그러한 카페들에 열심히 드나들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며 때로는 공부를 했다. 멋진 카페는, 들어서는 순간 일상과는 또 다른 공간의 느낌이 든다. 그 곳에 있는 동안만은 괴로운 일이 있어도 잊을 수 있고, 잃어버렸던 어떤 것의 일부를 되찾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카페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현주의 <카페 서울 두 번째 이야기>는 서울 곳곳에 자리한 카페들을 탐방하고 그 중 특별히 마음에 드는 곳들을 소개해 놓은, 일종의 카페 가이드북이다.  

책에 소개된 카페들의 분위기는 저마다 다르다. 책을 읽거나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기 좋은 분위기의 카페가 있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카페가 있다. 식사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고, 특별한 테마를 갖고 있는 곳도 있으며 동네 카페와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있다. 위치 역시 유동인구가 많거나 접근성이 좋은 곳에 한정되지 않고, 마을버스를 타거나 골목길을 한참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숨어있는 카페들도 있으며 꽤 다양한 곳의 카페들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지역들에서 멀지 않은 곳도 있고,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가야 할 좀 먼 곳들도 있다.  

읽으며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이, 신촌에 위치한 'La Celtique'였다. 켈트 문화가 살아 숨쉬는 지역인 브루타뉴의 크레이프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프랑스의 전통적인 음식인 tartiflette나 saucisse같은 것들을 맛볼 수 있으며 음료 중에는 사과주스가 참 맛있어 보인다. 덤으로 프랑스인 오너와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삼성동에 위치한 '지유가오카 핫쵸메(自由が丘8丁目)' 역시 꼭 가보고 싶다. 원래 도쿄의 지유가오카에는 7쵸메까지밖에 없는데, 이곳의 오너 쉐프가 지유가오카를 너무 좋아해서 서울에 8쵸메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인테리어도 아기자기하고, 일본에서 베이커리를 공부한 오너의 수제 케이크들은 그 맛이 참으로 훌륭하다고 한다. 책에 실린 케이크 사진들만 봐도 케이크를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이름만 많이 들었을 뿐 아직 가보지 못한 동네인 부암동에 위치한, 굉장히 고즈넉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위기의 'Emil's'와 이국적인 거리 이태원에 위치한, 마치 한낮의 시에스타와도 같은 분위기의 'Cafe Noon', 문인들이 살던 성북동의 저택들 근처에 있는 'Cafe 日常' 등, 정말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카페들이 많았다. 평소에도 블로그 등에서 카페 방문 후기 같은 것을 보면, 꼭 가봐야겠다고 위시리스트에 담아놓는 곳들이 있는데 이 책에 등장한 카페들 역시 그렇다. 이 책에서 다룬 30곳의 카페들을 1주일에 한 곳씩이라도 꾸준히 탐방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들부터 하나씩 정복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전부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부록으로 제공된 이 책에 소개된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들을 사용하는 즐거움도 쏠쏠할 듯 하다. 무엇보다도 그 카페들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가장 큰 계기는, 책에 실려 있는 카페 내부의 아름다운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만으로 이미 나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먼 곳이라도 꼭 찾아가보던,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오래 전의 마음을 잃어버린 채, 어떤 것에 대한 마음이 넘쳐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깊은 우울함에 시달린 듯 하다. 서울에 살면서도 고즈넉한 골목들이나 구석구석의 명소들을 거의 가보지 못했고, 항상 오가는 곳만 오가는 갑갑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독히도 메말라버린 정신이 나를 가슴아프게 한다. 언제쯤에야 나는 잃어버린 그 어떤 것들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한가롭고 안온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카페들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의 조각을 다시 찾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