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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레시피 - CIA요리학교에서 만들어가는 달콤한
이준 지음 / 청어람메이트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원래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한 편이기도 하지만, 칼 같은 것을 무서워해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게다가 요리사가 되어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보기에는 꽤 멋져 보이지만, 실상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모 드라마에 등장한 것처럼 실제로 요리 관련 업계에서는 엄격한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상하관계도 철저한, 꽤나 군기를 잡는 분위기 속에서 배우고 일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셰프가 한 말에 대답할 때 꼭 말 끝에 셰프라는 단어를 붙였던 것 같다. 그런 분위기에 꽤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저렇게까지 해서 요리사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결코 겉보기처럼 화려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멋진 셰프가 되기 위하여, 세계무대를 경험하기 위하여 뉴욕 CIA에 입학한 이준의 <뉴욕 레시피>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 느낀 것은, 이 책의 내용이 뉴욕에서의 삶과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뉴욕에서 내내 기숙사와 학교,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레스토랑만 오가는 빡빡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뉴욕의 진정한 분위기와 삶을 느낄 여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물론 뉴욕의 꽤 아름답고 센티함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비중도 작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따로 노는듯한 느낌이 든다. 반면, 뉴욕의 요리학교 CIA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자세하다. 셰프 수서 리의 레스토랑 마들렌에서 일하다가 또다른 꿈을 위하여 CIA에 입학한 저자는 요리학교의 여러 가지 과목들을 들으며 많은 것을 경험한다. 주중에는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셰프 켈러의 레스토랑 퍼세(Per se)에서 무보수로 12시간씩 일한다. 읽으며 내가 요리 업계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게 느끼는지는 몰라도, 역시 이런 것이 불합리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앉지도 못하며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도 괴로운데, 단지 훌륭한 셰프에게 배우기 위해서 기꺼이 무보수로 일한다는 것이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요리라는 분야가 매력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CIA에서 저자는 해산물과 육류의 손질, 육수와 기본 칼질, 소스와 조리법, 그리고 미국 요리, 아시아 요리, 지중해 요리, 대량 조리, Garde Manger(주로 애피타이저 등의 차가운 음식을 만드는 것), 제과제빵, banquet(격식을 차린 디너, 연회), 와인 등 참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이게 참 신기했던게, 요리사들은 양식이면 양식, 일식이면 일식 등 자신의 주 분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배워야만 하는 것을 보고 그저 놀라웠다. 또한 중간쯤 되면 엑스턴(Externship)이라는 것이 있어서, 18주간 학교 밖의 실제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일을 경험하고 그 다음에는 학교에서 지역주민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실제로 일하며 지금까지 배운 기술과 경험을 활용하는 과정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안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많다. 설거지거리가 쌓였다고 셰프에게 혼나기도 하고, 산마늘과 염소치즈를 이용해 김치를 만들어 먹으며 행복해하기도 한다. 플로리다의 부호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나갈 요리를 셰프와 함께 만드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서버(Server) 수업 과정에서 주방을 벗어나 실제로 손님들과 대면하여 서비스를 익히기도 한다.
읽으면서 역시 이 책은 뉴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요리학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뉴욕 이야기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사진과 짧은 글들이 등장할 뿐, 주된 내용은 요리학교와 자신이 한 요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각종 연회에서 어떤 요리들을 어떤 순서로 냈고, 이러저러한 고안을 해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봤다는 이야기는 사진이 참 예뻐서 재미있긴 하지만, 일종의 식재료 이름이나 전문용어 등이 자주 등장하여 요리를 잘 모르는 경우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요리업계의 엄격한 상하관계와 도제식 교육의 느낌은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이 책에서도 셰프의 말에 대답할 때는 항상 "Yes, Chef" 처럼 셰프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을 보았다. CIA의 셰프들이나 레스토랑에서 만난 셰프들을 보면 부드러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주방에서 학생들을 혹독하게 다뤄서 마치 군대나 조폭을 연상하게 했다. 문학이나 철학 등의 다른 학문을 가르칠 때처럼 점잖고 젠틀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읽으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참 부럽기도 한 것이, 그에게는 하고자 하는 것을 실행하는 힘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열정 하나로 그는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고, CIA 요리학교에 입학해서 빡빡한 일과와 혹독한 훈련 끝에 수료증을 받고, 지금은 레스토랑 링컨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나였다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버텨내지 못했을 것들을, 그는 열정에 차서 해냈던 것이다. 비록 읽으면서 뉴욕 이야기보다 요리 이야기의 비중이 훨씬 커서 요리업계를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질리기도 했지만, 그의 패기와 열정에 대해서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러한 열정이 내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언제쯤에야 나는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