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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평점 :
겨울내내 추위를 이겨낸 새싹들이 고개를 내미는 봄이
왔다.
죽은 것 같던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았던
나무에서도 동그랗고 조그마한 봉우리들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무채색이었던 계절에서 색깔이 입혀지는 봄을 기다리는 어느 날, 상큼한
바람을 실은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책을 보는 순간, 울컥 했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봄이어서, 너무나도 서글퍼지는 봄이 생각나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봄이어서.
책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아껴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은 우습게도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읽는 내내 온통 내 얘기같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우울해했고, 미친듯이
떠오르는 나의 이야기가 자꾸만 과거로 나를 끌고 가는 것을 간신히 밀어내며, 날아다니는 생각들을 놓칠까봐 메모장을 계속 펼쳐놓고 문장을 적고,
느낌을 적었다.
적으면서 이렇게 좋은 문장들을 어찌 다 안고 가나, 걱정이 가득하게 한
책,
제목마저도 봄바람이 벚꽃잎 날리듯 나의 가슴에 봄바람을 넣어 가슴을 때리는
책,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37- 바른 생활만으로는 삶의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에겐 사소한 나쁜 짓이 필요하다. (..)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삐뚤어진 반항처럼 그런 자잘한
일탈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느 날은 정말 삶의 궤도를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 이 책의 저자, 처음부터 마음을 건드린다.
왜 이리 다정한건지, 글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살뜰함이 느껴져 특정
이야기에 가시를 세우는 나를 반성하게 한다.
어른의 사소한 나쁜 짓에 대한 꼭지속에 가정을 책임진 남자의 마음을 엿보는
이야기는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했다.
모든 식구들이 잘 때 외롭게 출근준비하는 남편이 떠올랐고 나에게 살림과
가족의 울타리가 버거울 때가 잦은 것처럼 남편의 어깨도 그리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는 남편의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아침에 눈을 뜬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 듯 하여,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받으면 덜 외로울까 하여.
언제나 서운한 관계의 부부사이, 서운함이 눈덩이처럼 커지지 않게 사소한
일탈을 배려하면서 잘게잘게 서운함을 없애야겠다.
58- 불쾌했다. 당신들의 몸도 아니고, 내 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무례하게 구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 그렇게 나를 꾸며야
아무도 무시하지 않을 것 같았다.
(...) 내향적인 나를 감추고
활달한 척하는 일은 늘 고되고 힘들었다.
- 옷장은 입지 않는 옷들로 넘쳐났다.
옷옷들이 옷장 가득이지만 시즌마다 바뀌는 트랜드를 따라 갈 수 없었고,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나는 형편보다 과한 쇼핑을 했다.
매순간 악순환이었다. 사도 우울했고 안 사도 우울했다.
비단 옷 뿐만이 아니라 몸매, 얼굴등의 보여지는 모습은 내 보기에 좋은
것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더 중요했다.
남에게 좋아 보이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거라고 합리화했다. 모든 게
피곤했다.
그때에 비해 지금 나는 남의 눈을 덜 신경쓴다.
순전히 몸매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아니라 나의 건강이 더 우선시
되어 시작한 운동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할 때, 내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만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하지
그 외에는 머리를 감지 않았어도 모자 하나 뒤집어쓰고 나간다. (손재주가 좋지 않아 화장이라고 해봤자 한건지 안한건지 티도 안나 남들은 느끼지도
못하지만, 스스로는 나름 화장했다고 한다.^^)
남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 하는 화장이 아니라 나의 게으른 성격을 고려하고,
기본만 착실히 하자,고 다짐한다.
의류도 최선을 다해 심플을 강조하려 하고, 화려하거나 트랜드를 따라가거나
예쁜 것 보다는 항상 청결함을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인드를 바꿔나가고 있다.
남의 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남의 눈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생이었다.
'잘 나이 든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의 사소한
단점까지 껴안을 줄 알게 되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 내 단점을 온전히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것.
사랑을 받으려는 존재가 되려 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그렇게 나는 나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나만
바라보며.
278- 질병에 따라 다르겠지만 환자들은 대부분 감정적, 신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삶을 살아낸다. 그들은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삶의 깨달음을 얻는다. (...) 누구보다 더 간절하게
삶을 원하는 그들은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삶을 포기하지 않고 힙겹게 버텨내는 중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조금 더 다정한 친절과 섬세한
배려를 받아야만 한다. 아픈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존중하느냐는
자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엄마가 가신 뒤. 자주 과거로 소환당한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늦게서야 알게 되고 미안한 마음이 새록
솟아나는.
엄마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였다. . 부자유스러운 몸에 비해 정신은
예민했고, 세심했으며, 오직 엄마 당신만을 생각했다.
부자유스러운 몸에 비해 정신은 예민했고, 세심했으며, 오직 엄마 당신만을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이기적이다, 라고 생각했고, 말을 뱉었다.
자식들 생각도 안 하고, 타인 생각도 하지 않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엄마는 환자로서 존중받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병원에서 엄마를 돌봐주는 요양보호사, 간호사, 의사들에게 해가
되면 부메랑이 되어 엄마에게 돌아올까봐 을의 입장으로 납짝 엎드렸다.
엄마는 외로웠다.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챙겼고, 불합리한 상황을 악으로
버텼다.
내 엄마는 환자로서도 존중을 받지 못한 처우를 받고 계셨던 것이다, 환자가
먼저인 병원이라는 곳에서.
종종 후회한다. 내 엄마를 병원의 문제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종사자들에게, 환자를 돈으로밖에 보질 않는 그들에게 따끔히 말하지 못한 것을.
삶 속에서 엄마의 뒷모습이 자꾸만 따라온다.
53- 그러나 삶의 계산이 어디 그렇게 정확하던가. 주는 만큼 되돌아오는
일은 늘 드물다. 애쓴 마음을 몰라주는 일은 다반사고, 노력한 만큼 올라서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어느 날 찾아올
인생무상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어른에겐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하루가 필요하다.
126-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다가 결국 이별하는 존재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그 사실을 잊은 채 시간이 한없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화를 내고 다투고
돌아선다.
150- 인생은 너무나 자주 내가 기대한 엔딩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꾸었던 꿈들 중 몇 가지나 이룰 수 있을까. 아니, 인생이라는 무대에 내 자리가 있기는 한 걸까.
164- 하루에 한 끼를
제대로 차려내는 것도 그토록 고단해했으면서, 나는 왜 매일매일 인생의 진수성찬을 차려야 한다고 안달했던 것일까. 이것도 해야 해, 이것도 이것도. 삶에 늘 부대끼는 기분이 들었던 건 그런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소박하고 부담 없는 한 끼로도 일상은 얼마든지 충만해질 수 있을 텐데.
208- 주름진 얼굴에 희끗한 머리가 되어도, 삶의 무수한 순간들에 필요할
"미안해"라는 말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떨어져 걷고 있는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말은 "사랑해"라는 말보다 "미안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223- 여전히 인생의 크고 작은 파도에 휘청거리며 가야할 길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척'의 기술이 조금 늘었다는 거. 흔들리면서도 아닌 척,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 기분이 나쁘면서도 쿨한 척, 그렇게 이런저런
'척'을 하면 어른스러워 보일 거라고 믿었다. 그럴 때마다 초조했다. 진짜 어른은 언제 되는 건가
싶어서.
259- 삶은 재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관계를 이해하는 법, 시간을 활용하는 능력,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자세, (...) 그리고 그 나이에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추억은 살아가는 내내 위안이 된다.
286- 상대를 정확하게 사랑하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리가 계속해야 하는 공부는 이게 아닐까
싶다.
나는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
-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한 사람의 에세이집이라고 800번의 분류기호를 주기에는 책의 여기저기에
철학이 담겨 있다.
깊이 공감되지 않는 철학분야의 책보다 훨씬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
자꾸 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갈수록 몸은 가벼워지려고 노력하는데, 머리는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아져
무거워지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게 사는 삶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인생이 절대
쉽지가 않다,라는 것이다.
종일 이 책과 함께
했다.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잠깐의
눕방타임때도,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때도.
책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딴짓하지 말고
끝까지 읽어달라고.
읽는 내내 행복했고, 읽고 나서
행복했다.
책의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읽는 내내 불안했고, 읽고 나서
불행했다.
책을 다 읽어내 버리면 허한 마음
가득해질까봐, 책이 주는 위로를 단 하루로 끝내버려서 말이다.
읽고 행복했던, 읽고 아쉬웠던 책을 만나
하루종일 기쁨이 충만한 날이었다.
아직 마음이 춥디추운 겨울날씨와 같다면 이
책은 봄을 불러오는 봄바람과 같을 것이다.
인생을 지내오면서 무수히 많은 물음표들이
떠다니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 살아온 삶 전체가 뭉뚱그려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질 때, 관계를 맺는 것에 버거워질 때, 이 책은 꽤 괜찮은
위안을 줄 것이다.
벚꽃잎이 날리는 나무아래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당연함이라는 것은 느끼게 해줄 것이다.
기분좋은 봄날을 선사해줄 멋진 일을 찾는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라고 감히 권해본다.
설레임 가득한 하루가 될 것이
분명하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