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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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외, 다산, 800 *

* 그때도 지금도 눈이 부실 그녀들의 이야기 *

* 실제 완독한 날 : 20.05.07

 

내 아이들의 할머니인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할머니'와 '엄마'의 연결선이 흐릿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을 소환시켜 나왔다.

'할머니'란 단어는 나에게 '엄마'와도 같은 단어였다.

40대의 엄마에게 '할머니'란 호칭이 따라다녔다.

30대후반 낙상사고로 인해 뇌를 다친 엄마는 왼쪽 전체의 마비로 장애판정을 받았다.

마비된 한 쪽 다리를 끌다시피 걷는 엄마의 모양새와 갈라지는 목소리는 아이들에게 '할머니'같았는지 그렇게 불렸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너희 할머니니?" 라는 물음들이 따라왔다.

할머니라는 명칭은 나에게 엄마란 명칭과 비슷했고, 할머니란 단어는 애틋하거나 푸근한 단어가 아니라 창피하고 듣기 싫은 단어였다.

우리 엄마에게도 어린 나에게도.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부터 할머니란 단어에 그리움과 살가움이 느껴지지 않는 나같은 이들도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두려웠다.

나는 '할머니'란 단어에 꿈쩍하지 않는 인간인데,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하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책을 펼치기 전이었고,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남에게 할머니라 불렸던 그 시절의 엄마가 소환되어 작년의 엄마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그 모습이 나의 모습에 오버랩되어 펼쳐진다.

엄마의 얼굴이 내 얼굴이 되고, 엄마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가는 과정.

엄마도 할머니가 되었고, 나도 할머니가 되겠구나..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다.

할머니가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시간이다.

 

p.67)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 이 문장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진다.

아, 얼마나 어리석고 아둔한 생각으로 살아온 나를 질책했다. 반성했다.

늙어가면 세상에 대한 욕망이나 이성에 대한 갈망 역시 없어질 거라는 선입견이, 사랑은 젊은 사람만의 특권인냥 당연시했던 철없음으로 상처받았을 그들에게 뭐라 사죄를 해야 할까.

이제는 더이상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를 꿰어 차니 이제야 알겠다.

몸이 늙어갈 뿐이지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걸..

몸은 따라갈 수 없지만 마음만으로는 그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걸..

몸은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마음은 둥실둥실 떠다니겠구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젊은 이들이 이런 나이든 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 전에 나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야지, 생각한다.

주책없어 보이고 철없어 보이고 노망났나, 싶겠지만 남을 위해 나를 숨기고 나를 낮추는 일이 있지 않게 해야지, 생각한다.

세상은 젊어도 힘들고, 나이들어도 힘들다.

p.182) 그건 규옥이 지난 60년을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근래 규옥의 몸에는 규옥이 생애 처음 겪는 일들이 어느 때보다도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허리에, 어깨에, 손목에, 혈관에, 어떤 기미처럼, 결과처럼, 시작처럼. 그것은 피부 표면으로 기어코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무슨 일인 것 같았다.

- 사실 겁이 난다.

젊었을 때, 나는 체력전에서 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날 꼬박 새도 출근에 지장이 없었고, 밤이 되면 아침햇살에 꽃봉우리를 여는 나팔꽃마냥 활기가 넘쳤다.

열정을 불살랐고,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30대 어느 시점부터 나는 툭, 꺽어졌다.

모든 신체 기능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거기에 따라오는 것은 달고 사는 약들과 잦은 병원행이며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00 아파..'라는 말까지.

신체가 무너지니 마음도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40대를 맞이했고,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골골댄다.

무릎이 쑤시고, 어깨가 결리고, 담이 오고, 눈이 퍽퍽해지고.....

두려워졌다. 아직 반평생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아파대면 그때는 어떨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자꾸만 찾아오는 것이 적용이 되지 않는 날들이지만, 두려워 죽을 것 같지만, 오늘은 내 인생의 제일 좋은 날이니까 힘을 낸다, 처지는 몸과 마음을 달래가며..

 

'흑설탕 캔디' 할머니의 놓쳐버린 꿈, 잊고 있던 꿈에 대한 아련함.

내 것을 공유했어야만 했던 긴 세월이 회한으로 밀려와도 혼자 지키고만 싶었던 사랑 혹은 우정.

손녀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을 항상 걱정하며 선을 지키라고 당부를 해주던 애틋함이 가득한 '선베드' 할머니.

엄마와 딸과 템플스테이를 떠난 여자, 그녀와 같은 사람일 수 없는 엄마와의 여행기.

그들의 이야기는 삶에서 놓쳤던 것들을 회상하고 얽혔던 것들을 풀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아련함이 묻어나고, 쓸쓸함이 묻어난다.

지나간 것들은 후회를 남기는 것들이 많다.

죽음으로 향해 걸어가는 노년의 이야기가 즐거울 수는 없을 테지.

그럼에도 조금 더 밝은 이야기를 기다렸다.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란 단어 속에서 나는 과거를 뒤적이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에서 들었을 '할머니'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들을 단어,' 할머니'를 그린다.

그래서 6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6편의 다양한 이야깃속에서 나는 '할머니'란 단어가 주는 과거적 모습보다 내가 살아낼 현재의 모습과 다가올 미래적 모습에 더 끌렸다.

그래서, 나는 앞의 이야기들의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미래를 향해 갈 것인지, 어떤 후회가 남을 것인지, 어떤 바램이 남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조슴스럽게 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p.204) 민아는 반평생 자신이 가보지 않은 삶이 혹시 정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과 회한에 시달렸었다. 지윤을 만나 다행한 점은 인생에 정답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p.215) "늙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 변한다는 걸 빼곤 확실한 게 없으니까. 너희가 본 할머니도 마찬가지야. 이름은 지윤이지만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지. 지윤인 가진 게 참 많았었어. 그런데 이제는 그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단다. 자기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이름처럼 말이야."

p.216) 잠이 많아진다는 건, 죽음과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닐까. 죽음. 완전한 끝. 사실 죽음이야말로 민아의 비밀스러운 꿈이다.

p.227) 젊었을 때 짊어졌던 고민들, 절망이 낳은 수많은 포기들, 그때의 사회가, 그때의 선배 세대가 남긴 자국과 굴레에 대해 얘기하며 해명하고 싶었다.

과거의 자신이 앞선 세대의 얘기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민아는 알고 있었다.

 

책은 이야기에 담긴 현실적 조언과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노년- 콕 짚어 '할머니'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노년의 여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흔하게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들의 이야기들이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게 잡아채 준 이 책은 존재만으로도 멋진 책이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게 잡아채 준 이 책은 존재만으로도 멋진 책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찬란하다.

그들의 인생도 찬란했고 지금 현재도 그렇다,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빛일뿐.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빛일뿐.

보이지 않는 빛이라고 눈이 부시지 않으란 법은 없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고달펐던 인생을 살아낸 분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겨드린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점점 빛이 사라지는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리라 마음먹는다. 살아가는내내 나는 눈이 부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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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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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동주 by 안소영 *

* 아름다운 시처럼 빛났던 청년, 동주 *

* 실제 완독한 날 : 20.05.04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처럼 반짝이며 빛나는 아름다운 시, 윤동주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울적하다.

그의 짧디 짧은 생을 알고, 그의 시를 알기에 그를 만나는 것이 쉬워야 하건만, 그와의 만남은 슬픔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던 조국에서 제대로 웃을 수도, 제대로 설레일수도, 온전히 시를 읽을 수도, 써낼 수도 없었던 그의 삼십년도 안 되는 인생 마디마디에 걸린 절절한 슬픔과 사무침이 떠난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안소영 작가의 책은 『책만 보는 바보』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독서모임 지정도서로 정하고 놓고 보니 그렇더라는.

사실 '책만 보는 바보'의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숙제여서 읽어낸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같은 작가라고 아는 순간 당황했고, 잘 읽어낼지 불안감이 달려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책장 넘기는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가봐야했다.

'시인 동주'를 만나기 위해서, 버겁게 내려오는 눈꺼풀과 눈 속으로 스며들지 않는 활자들을 잡아채는데 사력을 다해야했다.

그렇게 노력하며 시인 동주의 연전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때가 1940년 12월이었다.

책의 절반까지 달려오니 점점 그과 헤어져야 할 날이 가까워온다.

저자를 따라 그를 만나러 다니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어쩌나, 어쩌나, 이 시간을 어찌 붙잡을 수 있을까.

 

뜬 눈으로 지샜다.

전 날 마음껏 자고났더니 졸리던 틈을 놓치고 나서는 잠도 들지 못하고 그렇다고 책에 집중을 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닌 시간이었다.

새벽내내  이 책을 붙잡고 있었으나, 그 시간동안 읽어낸 것은 100여페이지정도.

내려놓지도 그렇다고 계속 읽어내지도 못한 긴 시간들.

긴 시간동안 나는 그를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했다.

읽어갈수록 속도는 붙어지나 의도적으로 속도를 줄이는 나를 발견했다.

이유를 굳이 대라하면 그와 쉽게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를 쉽게 보내기 싫어서라고 말해야겠다.

 

책은 천천히 윤동주의 발자국을 잔잔히 따라간다.

그 시절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그 상황을 설명하며 간다.

 

p.73)  이러한 때 일개 젊은이가, 더구나 식민의 땅에서 태어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앞날을 그려 보고 계획해 보는 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갈 꿈을 꾸어도 되는 걸까. 어느 순간 자신들의 삶이 거대한 삽으로 송두리째 떠져, 다른 곳으로 휙 던져지거나 파묻히는 것은 아닐까.

p.117) 주머니에 있는 물건들을 그저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것처럼, 동주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헐벗고 초로한 거지 아이의 얼굴을 한 조선은 그런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이었다.

p.124) 동주는 결심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픔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 수없이 버리고 취하는 연마의 과정이 저렇게 쓰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p.167) 집 앞 어두운 골목길에서, 사람들로 부대끼는 전차 안에서, 저물녘 산책길에서나, 역 앞에서 구걸하는 아이가 내민 손길에서도 문득 마주할 수 있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신은, 식민지가 되어 버린 조선 땅 어디에든 모습을 드러내었고 동주는 그분을 알아보았다.

p.237)  앞날을 그려 볼 수 없다면 현재의 불안한 삶에라도 충실할 수밖에……

- 식민지가 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현재, 미래에 대한 불안이 글마다 넘쳐 흘렀다. 그의 앞에 던져진 현실은 어디든 피할 수가 없었고, 모른 채 할 수도 없는 끔찍한 주홍 글씨였다.

감히 그 시대를 상상할 수 조차 없지만 그럼에도 그 상황을 떠올려본다면 나의 경우는 어땠을지.. 감히 그 불안과 고민과 슬픔을 감내할 수 있었을지, 가당키나 했을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내 조국의 글을 우직하게 써 내고 담담한 문체로 아름답게 써 낸 그가 진정 조선의 국민이었음을, 진정한 애국자였음을..

그래서 '새로운 이면과 구호가 자리 잡기 위해 지식인 사회부터 길들여 나가야'하는 그들에게 반한 윤동주의 행실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보다 더 괴씸하고 용서할 수 없었을 테지..

조선어로 쓴 아름다운 시를 보며 위험하다 생각했을 테지, 자기들도 그의 시에 빠져들까봐.. 무서웠을테지.. 겁이 났을 테지..

 

읽어내 버리면 그의 삶이 저대로 끝나버릴까봐, 일부러 천천히 읽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속에서나마 그를 살리고 싶었다.

그의 삶이 짧디 짧은 생으로 끝났어도 여기서는 끝나지 않기를, 죽을 힘을 다해 어떻게든 버텨내기를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일테지만, 그럼에도 상황이 엎어지길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그와 그의 사촌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눈물이 났다.

조금 더 늦게 형무소로 갔으면 그들의 삶이 달라졌을까.

혹시라도 그럴까 싶어, 재판장에서 혐의를 부인했으면 했다.

간절히 바랐다.

 

이름 모를 주사를 맞은 날, 그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자신에게 생체 실험을 한 것을 모른 채 그렇게 그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안타까움에 목이 메인다.

뭐라 할 말이 없어 자판을 누르지 못한채 코끝만 찡해온다.

예전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었을 때도 이러했다.

눈물밖에 나지 않았고, 슬펐고, 아팠는데 또 그의 인생을 다시 밟으며 같은 행동을 한다.

그의 시간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행동이 언제쯤이면 사그라 질 수 있을까.

 

p.277) 조선어는 쓸 수도, 쓸 곳도 없었다. 어떤 생각을 이어 가려 할 때마다 조선어와 일본어가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뒤엉켜 애를 먹었다. 꿈속에도 조선어와 일본어, 어느 것을 말해야 할지 입을 떼지 못하다 가위눌릴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차츰 꿈도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말이라는 그릇이 없어지니 담아놓을 생각도 뜸해졌다. 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인생을 저리 짓밟고 어찌 너희들이 사람이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죄책감 하나 없이 그렇게 사람을 상대로 그러했는지, 그러고도 얼굴 빳빳하게 들고 살았을 너희는 천벌을 받았을지.....

원통하고 분했다.

끓어오르는 그 무언가를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나는 가슴이 메여왔다.

알고 있는 단어들의 조합들의 시원찮음에 부족한 내 국어 솜씨가 원망스러웠다.

 

그의 인생을 따라 걷는 이 글 속은 적막한 숲길이다.

그의 산책길처럼 잔잔하게 길이 나 있고, 잔잔함 속에 흐느낌도 들어있다.

자꾸만 멈춰서서 그의 그림자를 찾게 된다.

나의 오른편에 있는지, 혹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의 아름다움 시구처럼 그는 글 속에서 다가오는 외롭고 조용한 청년이었다.

아름답고 슬픈 청년의 그림자가 내 곁에 올 때 나는 숨이 멈췄고 그때마다 나는 가만히 책을 엎었다,

그의 슬픔이 진하게 묻어져 그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게 될까봐.

그의 발자국이 슬픔에 잠기지 않고 계속 길을 나아가도록 이 책의 저자는 정성스레 길을 다듬어준다.

 

p.300) 먼저 떠난 두 벗이 꿈에도 그려 보았을 해방이건만, 지금 자신들이 하루하루 보내는 삶은 왜 이리 고단하고 바깥 세상은 왜 저리 질척거리고 어수선한지...'

- 현재의 모습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현재의 모습은 항상 시끄럽고 달콤한 사탕발림의 말들이 날아다닌다.

과거를 청산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진실된 과거를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아 하는 것, 그 잘못된 과거를 만든 장본인들의 진실된 사과와 그에 맞는 대우가 있어야 하는 것, 같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게 잊지 않아야 하는 것..

그런 마땅한 것들이 이루어진 후에 과거 청산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아름답고 보드라운 그의 시를 보며 눈물이 지어지지 않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웃으며 별을 헤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그의 넋이 조국의 땅에서 웃으며 쉬어갈 수 있게 역사에 당당한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아름답고 아름다웠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도 깊이 넣어주고 싶다.

그를 닮아 더 아름다워질 우리 아이들에게,

그를 닮아 더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우리 아이들에게, 가만히 읊어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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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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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by  코너 프란타 *

* 혼자라고 생각될 때 열어보는 포토에세이 *

* 실제 완독한 날 : 20.04.27

 

힘든 4월이었다.

하루 24시간동안 감정은 시시각각 변했고, 무엇때문인지는 알고 있으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4월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은 포기와도 같은 마음이 다였다.

말하고 싶었다,

나의 이 우울함과 슬픔을, 무엇때문에 이런 좌절감을 느끼는지, 외로운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계속 빗금이 가고 있었고, 4월 18일이 다가올수록 더 깊은 수렁속으로 들어갔고, 그 이후로도 나는 헤어나오지 못했다.

 남이 안 봐주는 나를, 나 스스로 지켜내야 했다.

우울함과 슬픔이 나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기 전에 스스로 방어벽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간절히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공감을 해줄 책을 찾아 헤매며 에세이집을 읽어댔고, 4월의 하순을 달려갈 즈음 지금 이 책,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만났다.

 

 

저자의 note to self에는 정체성을 찾지 못한 청소년기와 커밍아웃 후의 사랑과 변화, 마음의 아픔등이 엮어져 있다.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자신을 속이는 삶에 마음이 힘들었을 저자의 내면은 외로움과 고통, 불안함이다.

그 불안함과 우울, 외로움, 고통을 혼자 감내했던 것을 반성하는 그의 이야기에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고통을 위로삼아 나는 일어서는 중이다.

 

300여페이지중 글 사이에 사진이 가득한 포토에세이집이다.

양장으로 편집된 예쁜 표지와 제목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는 책이다.

정성이 가득한 사진과 책은 조금은 시크한 글과 만나 중성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각각의 에피소드 사이마다 수록되어 있는 사진들은 일상적이나 전혀 일상적이 아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인데도, 너무 멋진 시선으로 본 건물과 사물들인데도 사진 속에서 외로움이 보인다.

사진 속에서 나의 우울과 슬픔과 고독함이 보여 눈을 뗄 수가 없다.

보고 또 보느라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어 사진이 절반이상인 이 책을 6일동안 잡고 놓지 못했다.

그렇게 눈을 못 뗄 사진들을 두고서도 5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작가의 이력과 젊은 나이에 대한 이질감 때문일까,

책의 초반부를 읽고 있는 지금 젊은 외국 남성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글보다 사진이 더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이유이다.

나의 감성과 평행선을 걷고 있는 이야기가 교차점이 생기기를 바라본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은 감정의 경험이니까', 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통할 수 있기를 말이다.

 

p.34) 요즘 나는 삶이 버겁고 어떤 감정에 압도될 때면,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 아무리 큰 두려움이 덮친다 해도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은 서로의 곁을 지킨다.

p.46) 다른 사람이 불편해할까 봐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 네가 네 자신에게 '아니'라고 말할수록 포기는 일상이 되고 넌 진정한 너에게서 점점 더 떨어져 나가게 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간 오랫동안 네 자신을 잃게 돼.

p.211) 몸매 가꾸는 데는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면서 마음 가꾸는 데는 시간을 투자하면 안 되는 걸까? 머리를 자르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는 사람은 비난하지 않는데, 마음이 아파 병원에 가면 왜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아야 할까?

 

흐르는 감정을 적어낸 글들부터 불안하고 우울했던 10대와 20대초반 이야기들까지.

생각보다 읽어내기가 버거웠다.

청소년기 소년의 일기장을 열어본 것 같은 느낌, 청년기의 예민한 손길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읽는 내내 따라왔다.

읽으면서 내가 꼰대처럼 느껴져 짜증스러웠고, 내 속의 편견과 선입견이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불편했다.

 

편견없이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이성에게든 동성에게든 '사랑'이라는 감정은 공통적일 테니까.

글 속에 사랑이 애탄다.

사랑에 목말라하고, 사랑에 온 마음을 바치고, 사랑때문에 울어대는.

사랑이 온 우주의 전부인 젊은 이의 마음.

사랑은 젊음의 특권이다

세상을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세대가 되어있는 나는 젊었을 때의 '사랑'과 지금 아는 '사랑'을 같다고 표현하지 않기에.

이제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많은 가치들도 중요함을 알기에.

사랑을 미치도록 외쳐대고, 울어대는 그가 부러우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다시 품고 싶은 마음은 아니라며 자조적 웃음을 내비친다.

 

p.68) 전자기기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휴대용 장벽이다.

(...) 원래 이 기기들은 우리를 연결하려고 존재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장벽이 되어버린다.

p.123) 누구도 친절하게 말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곳은 방구석에 틀어박힌 폐인들이 자신의 비틀린 만족감을 위해 남들을 끌어내려 물고 뜯는 놀이터다. 이러한 온라인 활동은 실제 삶으로 스며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런 혐오는 숨길 수 없다.

- 온라인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크리에이터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비판적이다. 아이러니하다.

그의 글를 통해 세상으로 향한 목소리는 가까이 하면 좋을 것 없는 세상이다.

그러한 곳에 발을 넣고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는 저자,

분명 믿는 구석,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긍정적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 긍정적 이유에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 들어있을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에게 선의를 베풀 능력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사랑, 친절, 공감을 퍼뜨려야 한다'라는 사명감 넘치는 행동처럼 말이다.

 

p.135) 좋은 날들은 절대 잊지 말자. 그런 날들은 목걸이처럼 줄줄이 꿰어 보물처럼 간직하다가 좋지 않은 날에 떠올리면 좋다. 가끔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이렇게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날들이다. 줄에 꿰이지 않고 찾아오는 뜻밖의 날들. 조화롭게 섞인 가운데 톡톡 튀어오르는 날들. 모두 그 자체로 감사하다.

(...) 한동안 나는 멀리 달아나면 문제를 뒤로하고 그 무게를 잊을 수 있다는 그릇된 환상에 빠져 애를 썼다. 틀렸다. 완전히 틀렸다.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문제를 마주하는 것이다.

p.160) 상황이 갑작스레 나아지는 마법은 없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내가 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스스로 반창고를 붙이지 않는 이상 가슴은 아물지 않는다. 스스로 짐을 내려놓지 않으면 홀가분해지지 않는다.

(...) 인생이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여전히 몰라도 새로운 길과 교통편을 찾아내고 도중에 울퉁불퉁한 굽잇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겪어가면서 곳곳에 놓인 온갖 장애물을 만나는 일이다.

-에피소드중 <탈출>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페이지였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피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로든 지금 이 자리를 피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럴때마다 여행은 젊은 시절 여행을 자주 가보지 못한 나에게 환상을 품어주었다.

하지만 여행은 잠시 멈춤이었다.

다른 곳에 있는 사이 일상은 멈춰있다가 복귀하면 시간은 돌아갔다.

해결되는 문제는 없었다. 여행지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수시로 고개를 들어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그저 문제를 잠시 뒤로 미뤄 놓을 뿐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지금은 여행이라는 과정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다.

잠시의 위안과 안도감을 위한 도망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나의 자리에서 문제는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의 인생길이 굽이길이 나와 한참을 돌아가더라도, 낭떠러지같은 내리막길이어서 앞이 캄캄해지더라도, 생각지 못한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 심하게 다치더라도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만 한다면 방향은 몰라도 괜찮다. 중간에 나타나는 퍼즐 조각을 줍고 지식을 쌓고 배워가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p.222)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무한 끄덕임으로 공감을 표시한다.

 

- 나의 5년 후, 10년 후는 어떨지 알 수 없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내일이 어떨지도 모르는데 1년, 5년, 10년이 가늠이나 될까.

숫자의 변화로 지금보다 더 우울감이 가득할지도 모르겠고, 그동안 생각해온 것들을 이루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꾸준히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나아간다고 믿으면 되지 않을까.

나도 note to self를 작성해볼까.

나 자신을 신뢰하자.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믿자.

나를 조금 더 사랑하자.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자.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저자의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을지, 미래의 그에게 보낸 편지의 모습처럼 지냈을까,하는.

누군가의 미래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 것은 애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시 나올 그의 note to self 두번째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조금은 덜 흔들리고 덜 외로워하며 더 성숙해진 모습을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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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드라마 방영 기념 한정판)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책리뷰)

*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by 이도우 *

* 행복해지고 싶은 날 펼치고 싶은 책 *

* 평점 : ★★★★★

* 실제 완독한 날 : 20.04.04

 

파릇한 연두빛 싹들이 돋아나는 계절이다.

온 몸과 마음까지 움츠러드는 계절이 지나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입가에 걸리는 계절이다.

날이 좋아 행복하고 좋은 날이 계속되니 또 행복해지는, 그런..

마음 속에 간직한 소중한 이에게 "날씨가 좋아서 보고싶어져. 보러갈께."라고 멘트 한 번 날려주고 싶은, 날이 좋아 기분까지 환해지는 날들이다.

그렇게 좋은 날들 속에 날이 좋아 소중한 이가 생각나서 기분이 우울해지는 날 또한 찾아온다.

그럴때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책 속에 숨는 방법을 찾는다.

무겁지 않고 최대한 머리가 가벼워질 수 있는 책을 찾아 숨는다.

딱 지금 만날 책이다.

숨기 위해 만난 책에서 나는 행복하고, 위안을 받는다.

따뜻한 말과 문장에 나는 힘든 마음을 잊었다.

그 마음을 마음 드는 문장이 있는 페이지에 쏙 넣어둔다.

예쁜 글 속에서 깨끗하게 정화되어 다시 내 마음으로 들어올 수 있게.

 

책의 문장을 뽑으러 다시 책을 펴든 순간 나는 다시 설레인다.

어느 문장을 내 리뷰에 담을 수 있을까, 하고서 말이다.

책을 펼칠 때 몸으로 전달되는 미미한 떨림과 두근거림,

기분좋은 흥분감이 온 몸을 찌릿하게 만든다.

책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다독보다는 정독, 재독으로 조금씩 옮겨간다.

좋았던 책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이러하고,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때의 감정이 분명 이러할테니.

 

26- 별거 아니라고, 이런 데 연연하면 일 못하나고 다들 말했지만 더는 잘 되지 않았다. 없었던 일인 셈 치라고 해도 언제나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이니까. 생각해보면 꼭 그 아이 탓만도 아니었다. 그간 차곡차곡 누적돼온 것들이 넘쳐버렸기 때문이고, 타이밍이 마침 그때였을 뿐.

119-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 그렇게 섞여 있는 진짜와 거짓은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니까.

134- "보지 말라고 하면 안 보면 좋잖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안 해야 하는 거잖아. 왜 어기는 걸까?"

"금기는 지키기가 어려우니까."

190- 인간은 지도를 바라보는 판타지가 있다. 꼭 보물섬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더라도, 어딘가 내가 꿈꾸던 완벽한 장소와 대상이 존재할 것만 같은 절실하고 아름다운 오해가 있다.

257- 그때만 해도 건강했는데.

아니, 그때도 몸에는 병이 있었지만 저는 몰랐으니까 건강하다고 믿을 때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병을 알 때까지는 건강한 사람이니까요.

268- 타인의 배려를 받고 신세를 진다는 건 고마운 일이면서도, 결국은 인생에서 크고 작은 빚을 만들어가는 일일 테니까.

271- 하지만 아픔의 크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이 아프다고 누구나 세상을 버리는 건 아니었고, 남은 사람은 덜 아파서가 아니라 살아가려고 끝까지 애썼기 때문이었다.

330- 아이가 여러 번 읽은 책을 또 골라 온 걸 보면, 어른이나 아이나 마음이 힘들 때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이 진짜 '인생 책'이 아닐까 싶었다.

375- 멈추지 않는 적의는 언젠가는 뒤틀리기 마련인 걸까. 좀처럼 행복할 수 없는 인간들이 가장 손쉽게 자기 인생을 합리화하는 방법.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집요히 미워하고 질투하고 원망하는 것….

 

책방? 알 게 뭐야. 사랑하는데 책 따위가 필요할 리 없잖아.(p.278)

- 은섭의 이런 표현, 아.. 너무 좋다...

사랑하는데 책이 대수인가 뭐....

이렇게 심플하면서 세련되면서 츤데레같은 멘트,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잖아.

물질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사랑'이란 감정에 도끼눈을 치켜뜨는 나를 질책하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내는 은섭이를 어쩔까.

정말 얼마만에 탐나는 이성인지, 해원이가 부러워지니 어쩐다.....

 

253- 책들을 기획하고 쓰고, 그리고, 사진 찍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성 들여 제작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 소중해 보인다. 진심이나 진정성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세상에 좌절할 일이 없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으니 결국은 추릴 수밖에 없다. 모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기뻐하거나 실망하거나,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 작가를 꿈꾸고, 1인출판사를 꿈꾸는 나에게 책의 소중함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책 한 권마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과 시간이 들어있음을 자꾸 잊어버리는 나에게 위의 문장은 다시 한 번 무겁게 다가왔다.

 

요즘은 가끔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을 한다. 분야를 나누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까,하는.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자기계발서에서 본 것 같은 문장들이 툭, 툭 튀어나온다.

또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니 굳이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단, 이야기속에서 그 어떤 문장들을 찾아내는 것은 '마치 한밤에 푸는 두근거리는 수수께끼'(p.208)와 같아서 쉽지 않은 과정이긴 하다.

그 험한 과정을 조금 쉽게 가기 위해 분야를 나눠놓을 수도 있겠구나.

 (궁금해 하는 것들에 스스로 답을 다는 자급자족의 글쓰기를 하는 나는 내 행동에 어처구니없어 나도모르게 콧방귀를 뀐다,허허...)

 

인연이라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나 해 온 일들에 당위성을 부여하여 스스로 한 선택을 합리화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나 물건과의 관계, 그 외 살아있는 생명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해 인연론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유독 '책'이란 사물에게는 너그러운 내가 된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첫 만남때 이 책을 완독해내지 못했다.

남녀의 살짝 오글거리는 이야기, 전혀 읽어내지 못할 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척이나 기대했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조금은 실망하며 읽었던 기억과 함께 그때의 나는 현실에 치여 가슴을 간질이며 다가오는 그런 류의 이야기에 날을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는 세상은 저렇게 순수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럽지가 않았다.

때가 덜 묻은 듯한 사랑, 세상과 담 쌓은 듯한 사랑 이야기가 어색했다.

노련함과 세련미가 가득한 어른들의 사랑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은 나를 손가락질하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못난 생각들과 마음들이 들춰지는 것 같았다.

반절도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그렇게 패스했던 책을 드라마로 방영하는 것을 보며 원작에 다시 도전해보고 볼까, 싶었다.

그러고서는 '인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나의 마음과 그 인연될 것과의 마음이 연결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구나.

그때 못 읽어낸 이 책에 나는 무수히도 많은 포스트잇을 붙여대며 끝나는 것이 아쉬워 최대한 천천히 마지막으로 달려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반 다름이 없고, 나는 좀 더 세속에 빠져 있지만 이 책의 순수함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시간 사이 '바쁘게 살다 보니 잘 안 되는'(p.296)것도 있지만, 기분에 취해서 던지는 말들에 어느 용량이든지 진실은 항상 섞이는 법이니 관계에 연연하지 말자며 의연해진다.

 

책방지기가 밤마다 날려주는 굿나잇 인사처럼 인생에 날려주는 굿데이 인사를 마지막에 넣어본다.

우리 사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디 행복하자.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미리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떠나.

 그러니 그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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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 이제는 엄마나 딸이 아닌 오롯한 나로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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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by 최문희 *

* 닮고 싶은 찐어른을 발견한 순간 *

* 실제 완독한 날 : 20.04.20

 

글에서 세월이 읽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설헌'으로 익히 이름을 알고 있던 작가의 에세이집을 만나고 글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다가 문득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아,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으시구나.

나는 글 속의 하나하나 드러나 있는 저자의 세월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세월속에는 단순히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시간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한, 울분, 차별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자의 반절의 시간을 보낸 나의 세월에도 붙어 있을 그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울감이 밀려왔다.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소설의 한 귀퉁이인 것 같아 헷갈리는 글들을.

 

p.83) 어디에선가 읽었다. 나이드는 것은 성장 과정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긍정하든 부정하든 늙음은 남루한 쇠락의 흔적이다.

- '절제의 미학'편을 읽으며 어르신들의 수다가 유쾌하면서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현실대화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늙음은 서러움이 팔할이다. 자식들이 무슨 말을 해도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둥글둥글 다가오는 법이 없다. 어느 말이든지 가슴에 밝힌다.

정작 본인들께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혼자 감정이입해서 서운해하고 서글퍼한다.

참 방정맞은 중년이다, 난.

'한낮에 침대는 아니올시다. 세상 사람들 모두 땀 흘리며 일하는 대낮에 사지를 뻗고 드러누워 평안을 도모하는 일은 안 된다'(p.91)는 이야기에 뜨금해진다.

입버릇처럼 '반나절체력'이라고 자칭하며 오후시간,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이상 등을 대고 누워 쉬거나 낮잠을 청하는 나는 과연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정상적인 습관으로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일까.

남보다 많은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자책을 자주 하는 나를 생각하면 썩 좋은 습관은 아닌 듯 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누구도 집어주지 않았던 것에 따끔한 충고를 받고 나는 어른의 존재를 깨닫는다.

이처럼 건강한 충고를 해주는 어른이 '찐'어른이 아닐까 하고서.

 

p.96) 화채 그릇에 담긴 그 오묘한 향이나 맛의 유혹은 노년을 흔들지 못한다.

p.97) 너무 오그리고 산 것 같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는 동안 미간에 가로질린 주름살 골이 깊어졌다. 하지만 누군들 그만한 굽이가 없었을까? 집집마다 방문 열어보면 숨겨둔 한숨 보따리 한두 개는 있지 않을까?

"너무 탓하지 말고 너무 속앓이하지 말고 주어진 만큼 살면 될 것 같아." 누가 누구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내가 나를 타이르고 나를 부추기고 나를 평정하는 말이다. 그래서 평온의 나날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p.107) 내리막길. 자연이 시키는 순리다. 산에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

-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노년에 대해.

노년의 맛은 씁쓸하다고나 할까.

담담히 표현하는 저자의 글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후회, 아쉬움이 남겨져 있는 듯 하다.

저자의 말대로 감정의 퇴적물이 흘러가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순화된 글로 나온다해도 한이 있으리라.

이토록 노년을 가까이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중년을 넘어선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감정과 느낌들이 달려든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슬픔도 있는 당연함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내리막길로 들어서려는 나는 온갖 잡다한 감정들이 쏟아오른다.

이처럼 다양한 감정들을 젊을 때 느꼈었던가?

세월을 앞서 가는 저자의 뒷모습을 보며 서글픔을 지울 수는 없지만, 저자처럼 인생을 깨어 있는 건강한 노년으로 들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p.129) 지금도 꿈속에서 좁고 깊은 골목 끄트머리에 서 있는 작은 계집아이, 호롱불을 높이 들고 자박자박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환등처럼 어른댄다. 같은 자궁에서 배태, 세상에 내놓은 자식이라도 그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쓰임새하고 자정 나눔은 한결같지 않다는 것도 그 무렵 눈치챈 사실이다.

- 3장에는 작가의 어린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어 있다.

글 속 열 살 남짓의 어린 소녀는 짠하다.

그 어린 소녀만 짠할까, 저자의 세월속에 갇힌 다양한 나이대의 소녀들을 넘어 여자는 역시 슬픔이었다.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 그 아이,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모습, 저자의 설움, 한 속에 '부모'의 자리 또한 큼이 보인다.

상처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나 상처받는 사람은 있다.

읽으며 내 두 아이를 돌아본다.

나도 저 아이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끊임없이 나의 행동, 생각을 단속해야겠다.

 감정에 휩싸여 말과 행동으로 가슴에 빗금을 그어대지 않도록 말이다.

 

p.23)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인 밀폐 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고 접시에 담고 다시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어두는 과정. 일 같지도 않은 일들이 전업주부의 하루를 몰수한다.

p.38) 누구도 내 일과에 걸림돌이 되는 건 편하지 않다. 아무리 귀여운 손자라고 해도 세 시간 지나면 힘들어진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어린아이도 자기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 멀수록 보고 싶지만, 자주 보면 각자의 일정이 부스러지기 십상이다.

p.49) 훈계나 조언은 금물, 부모 자식 간에는 함부로 위하는 척 입을 놀리면 모자지간 틈새가 더 벌어진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아들도 손님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살아온 만큼의 지혜라는 걸 알았다. 어차피 내 자궁에서 꺼낸 자식이라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할 것을. 매달리고 구걸할수록 피차 부담감과 피로만 보태질 뿐이다.

p.238~239) "(...) 나이 들면서 터득한 건, '조금 사이를 두자'에 방점을 찍자는 거예요. 자녀, 친지, 친구까지도 내 곁에서 얼마쯤 일어냈어요. 거기 있겠거니 하면서 그들의 기척을 느껴요. 먼발치에서도 그들이 뿜어내는 고른 숨결을, 은은하게 스미는 체취를 감지할 수 있어요. 듣고, 보고, 만지지 않아도 서로 속내의 문양을 기척으로 알아요."

"난 이제 말랑말랑한 말로 나 자신을 너무 구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착한 체, 겸손한 체, 순한 양의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입술을 깨무는 따위는 이제 안 하고 싶어요. 그냥 생긴 대로 살래요. 마구잡이로 살자는 건 아니고, 내 방식대로, 80년 동안 눈치코치 보면서 길들여온 그 양보와 겸손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질 거예요."

 

p.212) "전 그냥 상황에 따라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지불하고 적당히 움직일 겁니다."

- 이 얼마나 현명한 삶의 자세인가.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는 '적당히'의 선을 아는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세월을 먹는다고 다 알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을 듣고 '똑똑한 바보'라고 '늘 뒤처지고 미움은 미움대로 받는'거라는 이의 말에 우리는, 저자는 힘들게 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찌 최소의 손해를 보면서 '적당히 이기적으로 삶'을 사는 것보다 스스로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바보이고 미움받을 일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세상은 이처럼 자기방어적이고 이기적인 이들에게 관대한지 이해할 수 없다.

저자가 신념이 틀린 것이 아닌데 왜 세상은 저자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던 것일까.

단순한 미움일지, 세상의 방식일지, 아마 저자는 모르겠지.

 

'1995년 예순한 살의 문학 지망생은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p.57)

대단하다.

61살에 작가가 되셨다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사실 글을 쓰고 싶고, 작가라는 직함을 갖고 싶은 마음 한가득인데 마음에 비해 몸은 열정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이유중 하나가 적지 않은 나이를 어느새 꿰차고 있어서기도 하다.

햇병아리처럼 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부지런한 활보에 주눅이 든다.

할 수 없는 핑계거리만 자꾸 찾아대는 나에게 작가의 등단 나이는 흥분하게 만든다. 나도 노력을 한다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긍정적 희망.

이러한 끄적거림도 글이라 할 수 있다면 나도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도 되나, 하며 욕심을 부려 보지만 아직은 부족한 끄적거림을 글이라 하기엔 내 자존감은 그리 강하지 못한 듯 하다.

우선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 보기로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희망이 둥실둥실 떠오르게 힘찬 바람이 불지도 모르니 말이다.

책을 덮기 전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편이라 죽도록 필사하고 죽도록 읽지 않았다면 소설가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p.286) 라는 문장으로 나는 힘을 얻는다.

나역시 재능이 부족하면 죽도록 따라쓰고 죽도록 읽고 죽도록 써봐야지 않겠는가.

과욕이었다, 재능이 특출나기를 바란 건.

욕심이었다, 특출나지 않은데 그리 되기를 바라기만 한 건.

이상만 가득한 바보였다, 죽을 만큼 간절히 하지 않으면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건.

노년에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현역 작가로 매일 글을 써 내려가는 것, 참 멋진 작가라 깨닫는다.

그를 닮아 나도 그러하고 싶다.

그의 세월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방식대로 닮고 싶어진다.

그의 신념, 그의 일상, 이렇게 나이 들고 싶어졌다.

진실로 닮고 싶은 진짜어른을 만났다.

중년을 넘어서며 이제는 안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는 어른인데, 생각과 행동은 초등학생만도 못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미처 몰랐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판치는 세상에 이렇게 건전하고 깨어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찐어른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살포시 들이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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