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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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의 눈 by 딘 쿤츠 *

* 끔찍한 진실을 찾아가는 사흘간의 이야기 *

* 실제 완독한 날 : 20.04.17

 

2020년의 봄은 오래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 날아온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었다.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했는데, 퍼져나가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삽시간에 온 나라는 마비가 되었고, 난생 처음 보이지 않는 세균과의 전쟁이 공포스러웠다.

중국 우한이라는 나에게는 생소했던 지역에서 최초 발생한 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해 순식간에 중국 전역과 우리 나라에 상륙을 했으며, WHO에서 사상 세 번째로 팬데믹을 선언하였고, 지금은 세계의 216개국에 발생되어 현재진행중이다.

현 전 세계를 전염성바이러스의 공포로 몰아 넣고 있는 '코로나19',

'40년 전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건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12월 30일부터 1월 2일, 총 4일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티나 에번스는 1년 전 사고로 아들을 잃고, 같은 해 남편과도 헤어졌다.

P.12) 슬픔에 겨우면 사람이 미칠 수도 있다. 어디선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이젠 그 말을 믿는다.하지만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현실을 직시하도록 스스로를 거세게 밀어붙일 것이다. 그 현실이 제아무리 불행하다 하더라도.

슬픔과 충격이 컸으나 일에 매진하며 잊으려 노력했고 그랬다 생각했는데, 악몽을 꾸는 횟수가 잦아지고 아들의 방에서는 고약한 장난질을 발견된다.

'죽지 않았어.'

P.29) 아니, 우연의 일치다.

티나는 죽은 아이가 편안히 잠들게 보내주기로 하고 연휴에 방을 정리하기로 한다.

고약한 장난질은 사무실에서까지 이어지고 티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다.

공연 관계자의 소개로 알게 된 변호사 엘리엇에게 아들 대니와 최근의 일까지 이야기하며 용의자를 추론하고 가능성을 따져보며 아이의 무덤을 열어 시신을 확인하기로 한다.

엘리엇은 자신의 상사였고 지금은 판사인 지인에게 이 사건에 동의를 받고자 하는데..

P.190) 이 사람들이 여기 온 건 대니가 죽은 사고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P.249)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P.263) "(...) 우리가 진실을 알아낸다면, 그 진실이 우리 목숨을 구해줄 거예요. 살아남을 희망은 그뿐입니다."

P.273) "(...)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낸 것도, 마일클이 보낸 것도 아니에요. 이건 정확히 있는 그대로의 말이라고요!"

P.434) "(...) 그럼 우리 역시 괴물인 것 아닙니까? 적이 무섭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까?"

 

끔찍한 악몽을 쫓아가는 사흘간의 시간,

악몽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한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마주보는 진실은 너무나도 무섭다.

 끔찍, 공포라는 단어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별한 능력의 아이를 죽여가는 과정이 머릿속에 실시간으로 그려져 고통스럽다.

읽는 나조차도 이러한데, 소설세계의 대니와 티나는 어쩌란 말인가.

마지막까지 페이지를 놓을 수 없고, 벗어나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하다.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이 있는지 열심히 살펴본다.

활자 하나하나 의심을 품는다.

무언가로 연결되는 손짓들일거라고 믿으며.

긴장감 넘치고 빠른 전개와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서스펜스에 초자연요소가 가미되어 읽는 시간이 버겁지 않고 즐겁다.

솔직히 쫓는 자들의 마지막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어떤 단어든 조심스러운 요즘이다.

확진자도 적게는 수십, 많게는 몇 천명의 확진자가 발생, 사망자도 수만에 이르고 치료제도 아직 없는 진행형이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어서.

코로나19와 거의 흡사한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놀라운 소설이다.

현실과 흡사한 이야기의 등장에 숨이 턱 막힌다.

읽으면서 소름이 돋는다.

현 상황이 힘들지만, 이 소설처럼 우리의 미래는 분명 변해버렸다.

코로나19로 '앞길에 어떤 일이 닥쳐올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극한의 상황을 똑바로 직시하고 믿음을 잃지 않고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끝내 대니를 찾아냈던 티나처럼 말이다.

오랫만에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이 소설은 그 시간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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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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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by 이도우 *

* 오늘밤에 만나요, 밤은 이야기를 읽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 평점 : ★★★★

* 실제 완독한 날 : 20.04.13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드라마 방송으로 역주행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지금 이도우 저자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다작을 하지 않으시는 작가여서 이번 산문집은 참 반갑다.

더욱 더 반가운 것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명여이모와 은섭이가 소설 배틀을 할 때 나왔던 '나뭇잎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 궁금해..

젊은 은섭이가 쓴 나뭇잎소설은 어떨지, 중년의 명여이모의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많고 많은 비밀스런 이야기가 봄처럼 상큼한 분홍빛과 잔잔히 흘러나올 저녁빛을 띄고 살랑살랑 나뭇잎에 실려 날아왔다.

 

 

 

사실 산문집이라고 나온 이 책을 읽어보면 단편 소설집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작가의 이야기가 단순히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정말 은섭이 말 한대로 엽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이야기의 한 중간에 들어가 헤매는 내가 보인다.

이야기는 자꾸 나의 눈꺼풀을 내려오게 만들고, 나를 이야기 속으로 자꾸만 데리고 들어간다.

끌려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이야기 속에 머물러서 저자가 소환해 놓은 등장인물들과 마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자꾸만 꿈과 현실을 오가느라 책장은 자꾸만 멈춰선다.

멈춰선나를 보면 그 곳은 '둘녕'이가 살던 모암마을이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은섭이의 책방이 있는 북현리였다.

일상적인 일들과 일상적이지 않은 생각들이 짚으로 새끼를 꼬듯이 이러저리 엮여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7- 소설을 쓰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정든 대상을 혼자서 보고 느끼기엔 아쉬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 기왕 들려준다면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우리 마을에 작고 아담한, 무슨 사연이 숨은 듯한 폐가가 있습니다. 그 폐가를 어떤 청년이 빌려서 책방을 열었습니다.'라고 쓰고 싶었다.

186- 같은 밀도의 이야기를 할 때도 가능한 한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과장하지 않고 진솔할 수 있기를. 그저 첫 마음을 잃지 않기를.

231- 어떤 방식이든 잘 풀어나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 닿았다면 기쁜 일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반대일 뿐.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 글을 쓰는 일을 동경한다.

세월을 겪어 나갈수록 하고는 싶으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일.

최선을 다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점검하려고 노력한다.

자판을 누르기 시작하면 구구절절 흘러나오는 말에 글을 지나치게 늘어진다. 그런 나에게 위의 문장들은 나를 채찍질한다. 너 참 글 못 쓴다고.

다시 반성한다, '가능한 한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겠다고...

 

22-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고. 기록하지 않은 날이 기록한 날보다는 훨씬 많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면 그 많은 날은 쓸쓸하지 않았던 날들이니까.

미처 쓸쓸할 새도 없이 살아낸 비어 있는 날짜들을 기억해 주기로 한다. 기록하지 않았던 이름표 없는 보통의 날들. 여리고 풋풋했던.

42-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의 끝은 그런 걸까. 마음이 묶이지 않으면 우연을 빙자한 인연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 걸까.

213-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보고 결말에 이르러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차라리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만드는 게 낫겠다.

261- 살아가는 건 끊임없이 기억을 쌓는 일이고 때로 그 기억이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누적된 무게에 피로해질 때 한 번쯤 스스로 리셋 버튼을 눌러 아무도 나를 모르는, 추억이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270- 누구에게나 숨겨놓은 소라고둥 하나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인연 맺은 사람들과의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과 파도의 속삭임 사이에서 애써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것일 뿐.

295- 애정이 있는 가까운 이들에겐 언제나 그 말 그대로, 어떤 함의나 간접적인 가시가 없는 담백한 언어를 건네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뿌듯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최근에 읽어낸 것이, 두 달 전에 『잠옷을 입으렴』을 읽어낸 것에.

이 두 이야기를 안 읽어냈으면 이 산문집이 이토록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을까 싶어 참 다행이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323페이지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으며 또 한 번 가슴이 시큰하다.

앞에서 꼭꼭 씹어 읽어낸 것들이 이 문장, 저 문장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모습을 드러내니 쓸모없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의미있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읽어낸 나의 시간을 인정받는 기분에 책을 덮으며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책의 마디마디마다 다닥다닥 붙인 색깔스티커가 예뻐 보였다.

얼른 이 책의 느낌을 적고 싶어졌다.

 

이도우작가의 이야기는 읽는 즐거움이 있다.

'157번 종점의 좀머씨'의 '동쪽으로 휙 서쪽으로 휙' 행동이 저자의 일상에 들어와 슬프기도, 따뜻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즐거움이었다.

초록빛이 머무는 싱그러움에 쓸쓸함이 묻어 있다.

일상의 반복속의 수많은 고민과 슬픔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수집 강박의 호더증후군을 가진 이들의 행동에 대해 덜 비난받고 덜 손가락질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디킨시언의 집'은 짠한 슬픔이었다.

문장을 수집하는 뿌듯함이 있다.

' 갈 곳을 모르는 적의는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치환된다는 부끄러움을 알게 한 그 여름날들의 현기증.(p.160)'이라니,

'한 번 동망가보니 거기에도 길이 없더라는 걸 알았으니까.(p.148)'이라니,

 문장 하나로 하나의 에피소드가 모두 설명이 되고야 마는.

'금빛 먼지들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p.269)',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표현일까.

저자의 말대로 '여러 겹의 생을 살아보는 일'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의 이야기를 좋아했다면 이 산문집도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픽션의 다양하고 달콤한 세계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이니, 부디 놓치지 말았음 좋겠다.

 

에피소드 사이에 핑크빛을 발하며 자리하고 있는 9편의 나뭇잎 소설.

쉽게 읽고 끝내기 싫어 의도적으로 넘겼다.

책을 다 읽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넘겨보며 나뭇잎 소설들만 만나볼 생각이어서다.

모아서 읽고 싶었다, 반짝이는 아홉 개의 이야기를.

아홉 개의 이야기가 앞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단어들과 연결되는 것을 후반부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 읽으면서 다시 앞의 이야기도 재회하겠구나.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것 역시 행복하겠구나.

아껴 둔 이야기, 더 미룰 수 없을 듯 하다.

오늘 밤에 만나야겠다.

밤은 이야기를 읽기에 좋은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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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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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트 by 알베르 카뮈 *

* 우리가 지금 읽어야 할 책,페스트 *

 

지금 이 시점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펼쳐보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대를 읽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지금 시대를 이해한다.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별 반 다르지 않은 인간들의 민낯을 눈으로 확인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서든지 영웅은 반드시 있고, 그들은 대단한 권력을 쥔 자들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마주치는 그들이었다.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한 못생기고 메마른 도시 '오랑'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오랑은 그저 평범한 도시의 일상 모습이었다는 말이다.

4월 16일, 그 일상적인 도시에서 의사 리유는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 연대기를 기록하고자 하는 중대한 사건의 첫 신호였다.

쥐 한 마리를 시작이 되어 비정상적으로 죽어가는 쥐를 발견한 리유는 불안해지고, 거리마다 기이하게 죽은 쥐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28- 이 도시에서 매일같이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의 분명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그 숫자는 마음속의 혼란을 더욱 가중했다. 지금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저 좀 불쾌한 사건이라고 투덜거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직 그 전모를 분명히 헤아릴 수도 없고 그 원인도 규명할 수 없는 형편인 그 현상에 어딘가 무시무시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죽은 쥐들을 처리하던 수위의 갑작스런 몸의 증상들과 죽음이후 원인 불명의 열병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으면서 사람들은 사태를 인지하게 되고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심사숙고 하느라 시민들에게 제대로 행동조치를 발동하지 않는 행정 조치들과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는 이들로 인해 그것은 나흘 동안 네 단계까지 상승세를 떨쳤고,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는 전보가 왔다.

 

"우리가 전에는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뿐이죠. 그렇지만 나는 흥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럼요, 단연 흥미 있는 일이지요." (p.24)

- 그렇다, 저들도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겪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사태도 우리는 본 적도 겪은 적이 없다. 그러나 저들의 이야기처럼 이 일은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결코.

단지 이러한 일이 한 번도 없어 심각함과 우리에게 직면된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저들과 같이 보이는 문제를 흥미로운 일로 여길지도 모른다.

우리 나라에서 코로나가 우후죽순 늘어갈 때 전 세계가 취했던 행동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한국만 막으면 전 세계는 문제없는 일이고, 그들은 아마도 우리의 문제를 멀리떨어져서 흥미롭게 보았을테니 말이다.

 

46- 아닌 게 아니라 푹푹 찌고 있었다. 그러나 열병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더위였다. 도시 전체가 열병을 앓고 있었다.

-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현실을 바로 보지 않으려 한다.

 외면하는 것이 제일 쉽기 때문이다, 심신적으로 모든 것이 말이다.

이 열병은 푹푹 찌는 날씨에게 책임이 넘겨졌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했다.

p.55-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었다.

 

p.71- " (...) 병이 퍼지고 있는 추세로 보아서는 , 이 상태가 중지되지 않는 한 이 개월 내에 이 도시의 반수가 생명을 잃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페스트라 부르건 지혜열이라 부르건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반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저지하는 일입니다."

p.72- "법률에 규정된 조치가 중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이 도시 인구의 반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조치를 내려야 하느냐 아니냐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 밖의 것은 행정적인 문제인데,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현행 제도는 도청의 지사직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 아, 읽으면서 짜증이 난다.

형식적인 것, 법적인 것에 치우쳐 행정조치를 하는 이들의 행태에 대해서.

병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병을 표현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 말인가.

그들이 위에서 심사숙고와 정확한 표현, 정확한 진단등을 내세우면서 책임질 소지를 줄여나가려 애쓰고 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은 죽어나가는 현실인데 말이다.

지금의 행태도 똑같다.

사태가 순식간에 퍼져 긴급을 따질 때, 중국인 입국금지를 안해서 그렇다, 정부가 무능해서 그렇다,등등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게 된다.

지금 당장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힘을 합쳐 이 사태를 잡은 이후 문제론, 책임론을 따져도 될텐데, 그저 서로 물어뜯기에 정신없는 육식동물의 본능만 살아남은 저 볼품없는 모습이란..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기회주의자들은 고개를 내미니 이 책은 알려준다.

과연 누가 앞뒤 안 가리고 일어난 문제만을 제대로 바라보는지, 누가 문제의 책임과 후폭풍을 계산하고 발을 빼려하는지 정확히 보라고 말이다.

 '신문과 당국은 페세트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이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의 오랑시의 상황과 비슷하게도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들은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기도 하고, 가짜 뉴스가 성행하기도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은 국민들이 동요되지 않고 불안감을 갖지 않되, 위기의식은 지니고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현 사태에 사망자의 수치는 숫자가 아니라 백분율로 표시하여 불안감을 없애되, 매일매일의 정부브리핑으로 전 국민들에게 위기상황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차지는 않으나, 가짜 뉴스를 없애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려는 정부의 모습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p.54-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해 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 전율이 느껴지는가.

1947년에 출간된 이 책의 내용이 70년이 넘은 지금의 상황과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재앙을 마주친 인간들의 내면성을 어찌 이렇게 섬세하고 정확하게 열거를 해 놓았다니.

현재 재앙이 '페스트'가 '코로나'로 바턴체인지를 했을 뿐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인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처럼 한결같을 수가 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다.

 

171- "(...)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

179- 문제는 오로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는다든가 결정적인 이별을 겪는 것을 막아 주자는 데에 있었다. 그러려면 유일한 방법은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었다.

180- "제일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뻔한 이치입니다. (...)"

209- "두고 보아야 압니다."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말이죠."

216- "(...)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거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307- '기진맥진하도록까지 노력을 쏟고 있던 의사들이나 조수들'이었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요하는 상황을 상상해 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다만 규칙적으로 그 초인적인 일들을 계속해야만 했다.

- 페스트가 창궐하여 폐쇄된 도시를 야금야금 먹어갈 때, 리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또 그의 옆에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소한 이웃들이다.

생사를 가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손을 보태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성실함과 이들이 말하는 당연함이 왜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걸까?

이렇게 대단한 영웅들이 페스트와 싸우는 동안 페스트를 이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고, 자기 밥그릇만 지키는 악인들도 등장한다.

위기의 사태가 찐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우리는 누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영웅들인지 잘 살펴야 한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p.272)

 

306- 페스트는 이제 그 정점에 편안히 자리 잡고 앉아서, 착실한 관리처럼 매일매일의 살인에서 정확성과 규칙성을 과시했다. 원칙적으로는, 그리고 당국의 견해로는, 그것은 좋은 징조라는 것이었다.

333- "... 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죠.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하겠어요?"

- 페스트도 코로나로 무한정 길어진다.

금방 이 사태가 진정되고 끝날 것 같았는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4부에서는 '밤낮으로 자기네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을 뿐 신문도 보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는 그들의 무관심과 피곤으로 모든 것이 지쳐 요행에 자신의 안위를 거는 의료진들의 무신경해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은 대목대목마다 가슴으로 전해왔고, 깊은 공감을 하니 단순한 소설이 아닌 시사비평을 접하는 것 같은 헷갈림이 느껴졌다.

이야기를 읽으며 무신경해지고 점점 무관심해지는 나를 그리고 주위 분들을 보며 깜짝 놀란다.

이야기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모습이라니..

이야기는 술술 넘어갔지만, 마음은 자꾸만 콩밭에 가 있었다.

페스트가 종식되었을까?라는 단어가 나올 거라는 기대와 함께 마지막 페이지의 콩밭말이다.

그 마음은 지금의 코로나가 얼른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되어서겠지.

하지만 결론은 너무나도 허무하다.

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이토록 잔인한 것이 사람의 힘으로서 어찌 할 수 없는 전염병 '페스트'인건지 작가의 의도인건지 아님 그 두가지 다인지도 모른다.

이 책과는 많이 다른 결말을 기대하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다시 넘겨보고 또 넘겨보며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 책에서는 경고한다.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결코 종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모습으로 숨어 있다가 우리의 곁으로 올지 모른다.

페스트의 이름으로 올 수도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불행과 교훈을 주려고 할 지 모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중국을 시작으로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는 3월 중반을 달려가는 시점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후죽순 퍼져 걱정되었고, 불안했고, 무서웠다.

그보다 30여일정도 지난 지금 리뷰를 적으며 현재를 바라본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기간이 길어지고, 지역감염이 심각하지 않은 상태가 유지되다보니 점점 생활의 긴장감이 무뎌진다.

마치 전염바이러스와 평행선을 가는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일상생활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이 툭툭 튀어나온다.

 페스트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괜찮아졌다는 안도과 마음에 닫아놓은 빗장을 풀어버리는 방심이 도리어 그들을 덮쳤음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이기에 서로간의 거리를 두어 나 뿐만이 아니라 내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들의 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괜찮겠지, 라는 생각은 나를 죽이고, 남을 죽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 페스트도 코로나도 감히 넘어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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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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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by 김누리 *

* 불안과 불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기형적인 사회를 말하다 *

 

저자가 말하는 독일교육에 대한 방송이 인상깊었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아이들이 교육이 고등교육으로 넘어가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초등때는 교육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바라보면서 선택지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지금 현 사회와 다른 방식의 교육을 받아들이거나 아니거나..

우리 나라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달려 있는데도 그들의 교육에 대해 모 아니면 도라니.. 어쩜 이렇게 획일적인 사회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름의 고민과 고민을 한 끝에 큰 아이의 고등학교를 결정했으나, 최선보다는 차선이었다고 해야 할 듯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아이 학교를 정하고 나니 교육이란 분야에 더욱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가짐의 나에게 '독일'이라는 나라의 교육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렇게 손에 든 책은 교육뿐 아니라 심리, 정치, 사회분야에 이르기까지 나를 끌어들였다.

 

42- 우리나라의 갑질은 그 개개인의 인성이 잘못돼서 그런 명도 물론 있겠으나, 제도적으로 그걸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행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49- 거창한 존칭과 수식어를 걷어내고 이름만을 부르는 순간 사람들의 관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시작됩니다.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지요.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 아, 이런..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산다고 생각해서 모든 것이 그러하려니 살았는데, 정치만 민주화가 있던 것이 아니었다.

요즘 내가 시도때도없이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의 대부분이 일상의 민주화가 되지 않아서였음을,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말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싶어 그렇게 화가 끓어올랐음을 깨달았다.

일상의 화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나는 읽으면서 가슴이 떨려온다. 설레어온다.

경제 민주화가 된 사회라니, 문화 민주화가 된 사회라니..

너무나도 당연하여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받아내며 과연 이런 사회가 가능한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알던 사회의 모습은 도대체 얼마나 좁고 좁은 우물 안의 모습이었을까.

 

* 1969년 빌리 브란트 정부

→ 과거 청산을 잘한 나라 : '더이상 아우슈비츠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표를 가진 교육.

'비판 교육' : '적응'보다 '비판'을 더 중시.

: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것,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p.69- 독일의 비판 교육은 비판적 사유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평가 방식도 우리와는 상이합니다. 우리처럼 사지선다, 오지선다 하는 '선다형'문제는 전혀 없고, 단순한 지식을 묻는 '단답형' 문제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식의 평가 방식 자체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선다형 문제는 모르고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라기보다는 '사기'에 가깝다고 봅니다. 단순한 지식을 묻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주입식 교육에 상응하는 평가 방식이고,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 교육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 복지 정책을 잘한 나라 :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바푁' (대학생 생활비 지원 제도) - 바푁을 통해 모든 아이들이 집안 형편과 관계없이 최고의 교육을 받고, 그럼으로써 독일 사회가 '교양 사회'가 되기를 꿈꾼 것.

p.65-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가 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채 사립 학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직무유기입니다. 이제는 대학교까지 학비를 모두 없애야 합니다. 독일은 전후의 배상금 지불까지 포함해서 그야말로 재정적으로 파산이 난 나라였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인 거지요.

 

95- 한국인 대다수는 '내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억압의 문화, 부조리의 상황을 하나의 문제로서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물의 정석', '세상의 이치', '자연 상태'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 이제껏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내 안의 파시즘'을 깨달으면서 허탈해졌다.

내가 나라고 믿었던 모습속에 권위주의는 어느새 뿌리 박혀 있었고, 부조리에 입 뻥긋 하지 못하게 길러진 나의 모습을 보며 나의 사고는 도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사고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부족함과 무능함을 느꼈다.

내가 잘 하는 것이 없어서, 내가 능력이 없어서 안 되는 것이라고, 이제는 내가 나이가 많아서 안되는거라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스스로 굴욕적인 단어를 서슴치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를 탓했는데, 망할.

비정상적인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처럼 느끼게끔 세뇌시킨 것들 때문이었다.

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계속 눌러야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나를 이해하는 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179- 정말이지 한국은 한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가 너무도 힘든 사회입니다. 정부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교육, 주거 등에 있어 너무나 많은 것을 시장에 맡겨두고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모습을 세계 최저의 재정지출이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189- 정권이 바뀐다 해도 사회가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의 정서가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좌절감과 절망감의 표현입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내가 가장 인상깊게 살펴본 꼭지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구멍'중 <경쟁의 덫에 걸린 한국교육>편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상들이 그대로 아이들에 전달되어 교육되어지고 있다는 것에 무서움을 느꼈다.

몰랐을 때는 몰라서 괜찮다 넘어갔는데, 팩트를 짚어주니 이제는 몰랐다고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① 인권 감수성의 부재

② 소비주의 문화

③ 자아를 유린하고 파괴하는 강압, 폭력적 교육의 실태 - 성숙하지 못한 성교육과 생태교육의 부재

④ 뿌리박혀 있는 권위주의 사회와 승자독식의 논리와 연결되는 살인적인 경쟁 시스템

125- 한국은 너무도 많은 재능들이 발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사회이지요.

한국은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일 뿐만 아니라,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이중의 박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128- 이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를 착취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착취의 결과로 생긱는 온갖 불행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합니다. 정말 이상한 사회입니다.

 

- 인권을 무시하는 현재의 교육이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인권을 돌 보듯 하고, 극에 달하는 소비형태는 소위 '예쁜쓰레기'들을 사모으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으며, 최근 떠들썩한 n번방은 말그대로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활개치고 다니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되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웃고 떠들며 누가 더 많이 사나, 내기하듯 경쟁적으로 소비를 하는 것으로 그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뻐긴다. 그 꼴이 마치 졸부를 연상케 한다.

내가 받은 교육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그때를 아련하게 추억하는 세대들이 또다시 아이들을 당연하게 그런 교육으로 밀어넣고 있다. 눈곱 만큼의 망설임도 없이 공장에서 돌아가는 레일위에 아이들을 올려 놓고 있다.

미친듯이 공부, 공부를 외치는 한국의 부모들.

우리는 어쩌다 공부에 미치고, 취업에 미친 국민들이 되었을까.

사회 전체를 떠다니는 불안, 공포, 경쟁같은 단어들은 먼지처럼 사람들에게 달라붙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재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들을 '기업 살인'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어떻게 정의로운 과세를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을 이 살인적인 경쟁에서 해방시킬 것인가, 어떻게 이 학벌 계급사회를 혁파할 것인가?'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우리 사회가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날들이 올 수 있을까?

위와 같은 문제들이 정치판에서 논의가 되는 날, 덩실덩실 춤추고 폭죽을 팡팡 터트려야 할 것 같다.

우리 나라에도 68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라본다.

평화체제의 남과 북이 시스템를 정비하여 누구의 종속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본다.

내 아이들이 현재에 집중하며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을 응원해주는 사회가 오기를,

하루 꼬박 볕도 안 드는 실내공간에서 8시간이상의 시간을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종이쪼가리를 쳐다보고, 사유없이 설명만 듣는 폭력이 사라지는 교육개혁이 일어나기를.

사유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현재'를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 행복감을 느낄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스스로를 정신없이 굴려야 덜 불안한 사회.

북유럽의 복지정책을 부러워하고,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를 부러워하면서 왜 지금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저자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과 비슷한 조건의 독일의 통일에 대해, 복지정책에 대해, 과거 청산에 대해 자세하게 짚어준다.

인권감수성, 성교육의 부재와 직진적 소비문화, 그리고 권위주의가 팽배한 사회는 우리를 우울과 불행속으로 밀어 넣는 촉진제였고, 비정상인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라고 둔갑시켰다. 이런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제대로 인지하여 일상의 민주주의가 이룰 수 있는 방향성과 더불어 남과 북이 함께 웃으며 통일의 길을 제시한다.

 

다가오는 국회의원선거, 그 나물에 그 나물이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투표를 해야 하는 우리.

투표를 했다해서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차선의 선택이었음을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분명 우리가 바꿔나가야 한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정치판을 만들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에서든 교육에서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화없이 돌아가는 모습에 회의를 느끼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강력한 한 방이 아닌 강력한 여러 방이 들어있어 수시로 화를 내게 되고,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해 스스로가 힘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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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학교를 구하라! - 비교하지 않고 ‘나’를 찾아가는 어린이,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2020 신학기 추천도서, 2020 문학나눔 선정 도서 파랑새 사과문고 92
범유진 지음, 김유강 그림 / 파랑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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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학교를 구하라! by 범유진 *

* 진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는 비법책 *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둘째가 생각났다.

히어로 시리즈를 좋아하는 아이에다 가상의 적들과 전쟁을 해대는 아이의 독서 입맛에 딱 맞을 것 같았다.

 

 믿음이는 아빠를 영웅이라고 말했다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아빠를 영웅이라고 믿는 믿음이는 친구들에게 아빠가 영웅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다.

어렸을때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 혼자 노는 믿음이에게 세계영웅모임의  <영웅학교>의 초대권이 쥐어지고, 영웅학교에 가게 된 믿음이, 슬기와 힘찬이와 친구가 된다.

영웅학교 입학식, 악당이 나타나 악몽 공으로 친구들에게 최면을 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1등을 해야 하고 꼴지가 되거나 공부에 방해되는 일을 하면 벌칙 방에 가야 한다.

'무관심 방', '바빠요 바빠 방', '달달 암기 방'이 벌칙 방이다.

최면에 걸리지 않는 믿음이와 슬기, 힘찬이는 벙글벙글 선생님과 힘을 합해 악당의 음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무관심 방' - 방에서 나온 아이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미소 짓지 않는 아이가 된다.

'바빠요 바빠 방'  숙제를 하면서도 달려야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달려야 한다. 숨이 차올라 헉헉거려도 멈출 수가 없다. 레일은 점점 빨라진다.

'달달 암기 방' - 방에 적힌 글을 몽땅 외워야 방에서 나올 수 있다.

 

72- 최면에 걸린 애들은 '성적을 잘 받는 것'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어떤 방법을 쓰든 시험만 잘 보면 된다는 듯 행동했다.

 

- 마음이 복잡미묘하다.

벌칙 방이라고 칭해진 것들이 주위의 아이들이 하는 일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다.

학원가의 아이들이 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 공부하느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말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과연 지금 사회가 단체로 벌칙 방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지경이다.

이야기의 소재에 흔하게 나오는 현실의 교육관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스럽다.

 

63- 악당에게 잡아먹힐까 봐 무서운 게 아니었다. 내가 그 교장 선생님의 지시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을 할까 봐, 그런 영웅이 될까 봐 덜컷 겁이 나기 시작했다.

116-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웅은……, 그림자 같은 영웅이야! 화려한 옷도 없고, 만화에도 안 나와. 그렇지만 사람들을 구하려고 아주 바쁘게 뛰어다니는, 그런 영웅!"

- 지금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흔들었고,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생활을 하게 만들며, 인류를 위기로 몰아놓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내가 확진자 혹은 의료진이 아니고, 우리 지역은 긴급재난지역이 아니다보니 피부로 와닿는 정도가 낮았다.

그러다 2주 전에 한 예능에서 다룬 전장으로 달려간 의료진들의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저 위치였다면 과연 달려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사를 가를 정도의 위험성을 알고서도 코로나의 치료를 위해 생업도 놓고 재난지역으로 달려간 의료진들, 그들이 진정으로 히어로였다.

수고로움도 감내하고, 전염의 위험도 인지하고 죽음의 현장으로 뛰어든 그들, 믿음이가 말한 것처럼 '화려한 옷도 없고, 만화에도 안 나오지만 사람들을 구하려고 아주 바쁘게 뛰어다니는 그런 영웅'이 그들이다.

화려한 옷 대신 온 몸을 꽁꽁 싸맨 방호복에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만화에 나오는 대신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영웅들,

영화에서 나오는 어밴져스들이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저들이 바로 영웅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지금 나타난 영웅들은 경쟁자를 제치며 1등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아니었음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줘야겠다.

진짜 영웅을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을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기억해야겠다.

이 책은 진정한 영웅이란 어떤 모습인지 알려주는 마음 단단히 만들어주는 비법책이다.

 

책의 뒷면에 적힌 문장들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이기는 쪽에게 플러스 10점을 주지!

그래. 그렇게 싸우는 거야. 너희는 친구가 아니야.

경쟁자일 뿐이라고."

- 친구가 아닌 경쟁자들이라고 내뱉는 저 말이 왠지 자주 들어본 것 같았다.

행동으로 저 문장과 같이 표현을 한 것은 아닌지 뜨끔했다.

같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등수가 있어야 자극이 된다고 당연하듯 여기는 마음,

성격이나 체력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학력 우대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는 악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스로가 악당인 줄 모르는 세계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일매일을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비교 없는' 세상에서 너희는 모두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악당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도 나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여정을 응원해본다.

응원속에 쉽게 뱉는 말 속에 서로를 비교하는 말을 담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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