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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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by 이도우 *

* 오늘밤에 만나요, 밤은 이야기를 읽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 평점 : ★★★★

* 실제 완독한 날 : 20.04.13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드라마 방송으로 역주행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지금 이도우 저자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다작을 하지 않으시는 작가여서 이번 산문집은 참 반갑다.

더욱 더 반가운 것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명여이모와 은섭이가 소설 배틀을 할 때 나왔던 '나뭇잎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 궁금해..

젊은 은섭이가 쓴 나뭇잎소설은 어떨지, 중년의 명여이모의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많고 많은 비밀스런 이야기가 봄처럼 상큼한 분홍빛과 잔잔히 흘러나올 저녁빛을 띄고 살랑살랑 나뭇잎에 실려 날아왔다.

 

 

 

사실 산문집이라고 나온 이 책을 읽어보면 단편 소설집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작가의 이야기가 단순히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정말 은섭이 말 한대로 엽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이야기의 한 중간에 들어가 헤매는 내가 보인다.

이야기는 자꾸 나의 눈꺼풀을 내려오게 만들고, 나를 이야기 속으로 자꾸만 데리고 들어간다.

끌려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이야기 속에 머물러서 저자가 소환해 놓은 등장인물들과 마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자꾸만 꿈과 현실을 오가느라 책장은 자꾸만 멈춰선다.

멈춰선나를 보면 그 곳은 '둘녕'이가 살던 모암마을이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은섭이의 책방이 있는 북현리였다.

일상적인 일들과 일상적이지 않은 생각들이 짚으로 새끼를 꼬듯이 이러저리 엮여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7- 소설을 쓰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정든 대상을 혼자서 보고 느끼기엔 아쉬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 기왕 들려준다면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우리 마을에 작고 아담한, 무슨 사연이 숨은 듯한 폐가가 있습니다. 그 폐가를 어떤 청년이 빌려서 책방을 열었습니다.'라고 쓰고 싶었다.

186- 같은 밀도의 이야기를 할 때도 가능한 한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과장하지 않고 진솔할 수 있기를. 그저 첫 마음을 잃지 않기를.

231- 어떤 방식이든 잘 풀어나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 닿았다면 기쁜 일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반대일 뿐.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 글을 쓰는 일을 동경한다.

세월을 겪어 나갈수록 하고는 싶으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일.

최선을 다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점검하려고 노력한다.

자판을 누르기 시작하면 구구절절 흘러나오는 말에 글을 지나치게 늘어진다. 그런 나에게 위의 문장들은 나를 채찍질한다. 너 참 글 못 쓴다고.

다시 반성한다, '가능한 한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겠다고...

 

22-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고. 기록하지 않은 날이 기록한 날보다는 훨씬 많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면 그 많은 날은 쓸쓸하지 않았던 날들이니까.

미처 쓸쓸할 새도 없이 살아낸 비어 있는 날짜들을 기억해 주기로 한다. 기록하지 않았던 이름표 없는 보통의 날들. 여리고 풋풋했던.

42-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의 끝은 그런 걸까. 마음이 묶이지 않으면 우연을 빙자한 인연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 걸까.

213-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보고 결말에 이르러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차라리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만드는 게 낫겠다.

261- 살아가는 건 끊임없이 기억을 쌓는 일이고 때로 그 기억이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누적된 무게에 피로해질 때 한 번쯤 스스로 리셋 버튼을 눌러 아무도 나를 모르는, 추억이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270- 누구에게나 숨겨놓은 소라고둥 하나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인연 맺은 사람들과의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과 파도의 속삭임 사이에서 애써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것일 뿐.

295- 애정이 있는 가까운 이들에겐 언제나 그 말 그대로, 어떤 함의나 간접적인 가시가 없는 담백한 언어를 건네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뿌듯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최근에 읽어낸 것이, 두 달 전에 『잠옷을 입으렴』을 읽어낸 것에.

이 두 이야기를 안 읽어냈으면 이 산문집이 이토록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을까 싶어 참 다행이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323페이지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으며 또 한 번 가슴이 시큰하다.

앞에서 꼭꼭 씹어 읽어낸 것들이 이 문장, 저 문장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모습을 드러내니 쓸모없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의미있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읽어낸 나의 시간을 인정받는 기분에 책을 덮으며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책의 마디마디마다 다닥다닥 붙인 색깔스티커가 예뻐 보였다.

얼른 이 책의 느낌을 적고 싶어졌다.

 

이도우작가의 이야기는 읽는 즐거움이 있다.

'157번 종점의 좀머씨'의 '동쪽으로 휙 서쪽으로 휙' 행동이 저자의 일상에 들어와 슬프기도, 따뜻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즐거움이었다.

초록빛이 머무는 싱그러움에 쓸쓸함이 묻어 있다.

일상의 반복속의 수많은 고민과 슬픔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수집 강박의 호더증후군을 가진 이들의 행동에 대해 덜 비난받고 덜 손가락질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디킨시언의 집'은 짠한 슬픔이었다.

문장을 수집하는 뿌듯함이 있다.

' 갈 곳을 모르는 적의는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치환된다는 부끄러움을 알게 한 그 여름날들의 현기증.(p.160)'이라니,

'한 번 동망가보니 거기에도 길이 없더라는 걸 알았으니까.(p.148)'이라니,

 문장 하나로 하나의 에피소드가 모두 설명이 되고야 마는.

'금빛 먼지들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p.269)',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표현일까.

저자의 말대로 '여러 겹의 생을 살아보는 일'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의 이야기를 좋아했다면 이 산문집도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픽션의 다양하고 달콤한 세계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이니, 부디 놓치지 말았음 좋겠다.

 

에피소드 사이에 핑크빛을 발하며 자리하고 있는 9편의 나뭇잎 소설.

쉽게 읽고 끝내기 싫어 의도적으로 넘겼다.

책을 다 읽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넘겨보며 나뭇잎 소설들만 만나볼 생각이어서다.

모아서 읽고 싶었다, 반짝이는 아홉 개의 이야기를.

아홉 개의 이야기가 앞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단어들과 연결되는 것을 후반부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 읽으면서 다시 앞의 이야기도 재회하겠구나.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것 역시 행복하겠구나.

아껴 둔 이야기, 더 미룰 수 없을 듯 하다.

오늘 밤에 만나야겠다.

밤은 이야기를 읽기에 좋은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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