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양동근'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캐릭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후 다른 드라마나 영화, 노래에서 만나게 되는 양동근은 (그의 어눌한 시선 처리가 항상 맘에 들기는 하지만) 맘에 들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 이상형은 고복수지만 드라마 속에나 존재하고, 현실에선 양동근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제 아침에 김어준과 인정옥이 오랜 연인 사이라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는 내내 배가 아프고 심통이 났다.
인정옥이라고 하면 '네멋대로 해라'의 '고복수'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이니,
그런 인정옥과 김어준이 오랜 연인 사이라고 하면, 인정옥이 김어준에게서 혹 고복수의 캐릭터를 읽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드라마 속에나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땐 체념하게 되던 그 마음이, 혹여 현실에 존재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영 심기가 불편했다.
복수 : 닭을 먹으러 왔으면 닭을 먹구 가야죠.
그냥 가면 어떡해요? 우리 엄마 벙찌게...
전경 : 닭 먹으러 온거... 아니에요.
복수 : 나 찾아 왔어요?
전경 : ...... 네.
복수 : ..... 왜요?
전경 : 그냥요. 그,그냥요. 그냥.. 찾아 왔어요.
복수 : 내가... 뭐해줄까요. 전경씨.
전경 : 내가... 좋아해도 되나요?
복수 : ... 네. 나도... 그래도 되죠?
전경 : 예.
전경 : 난 누가 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음악한다고 해요.
TV에 나오냐고 물으면 아직 앨범
못냈다고 얘기하고요.
그럼 사람들은 딱하게 보거나 한심하게 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음악을 한다는건 내 직업이니까요.
왜 내가 직업을 숨겨야 되나요?
한기자님의 직업 의식 때문에
왜 내 직업이 함부로 아무데나 버려지나요?
내 직업은 한동진씨의 애인이 아니라
밴드 키보디스트에요.
난 그걸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요.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전경 : 복수씨. 그냥... 사는동안 살고
죽는동안 죽어요.
살때 죽어있지 말고 죽을때 살아있지 마요.
남자인 동안에 남자로 살고
장애인인 동안에 장애인으로 살아요.
내가...내가 애인인 동안에 애인으로 살고
내가 보호자인 동안에 보호자로 살래요.
그냥 그렇게 살면 되요.
전경 : 근데 그 사람한테선 마음을 봤어요.
처음부터.
성격 좋은 사람은 많이 봤지만
그게 마음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사람의 마음은 내 마음을 울려요.
1분1초도 안쉬고 내 마음을 울려요.
그 사람은 나한테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처음 봤어요. 한기자님.
난... 최고의 사람을 만난 거에요.
최고의 마음을 지금... 만나고 있어요.
복 수 : 금붕어 두마리 애인 삼으면 괜찮은데
여자 둘을 다 좋아하면 안되나?
아버지 : 안되지.
복 수 : 그냥 좋아만 하는건데 왜 안돼?
나쁜 일 안하고 똑같이 잘해주면 되잖아.
아버지 : 똑같이? 한치도 치우치지 않고 좋아할수가 있어?
한쪽으로 코딱지만큼만 기울어도 좀 모자라는 사람은 외롭잖아.
너 사람 외롭게 하는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알어. 이놈아.
내가 내내 툴툴거리자...남편이 이렇게 한마디 한다.
"정말 메뚜기가 뛰는 방향이랑 니 상상력의 비약이 튀는 방향은 알 수가 없다.
김어준보다 더 김어준스러운 남자가 어디 있다고 김어준에게 고복수를 끌어다 붙이냐?
건 그렇고...고복수 같은 남자를 감당하려면 전경 같은 여자여야 하는데...
니 가슴에다 손을 얹고 돌이켜 봐, 너 전경 같을 수 있어?
니가 먼저 전경이 되고나서 고복수를 기다리는 게 조금이라도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난 아무 말 못하고 깨갱할 수밖에...OTL.
그런 내게 남편이 던져 준 책은 이 책이었다.
닥치고 정치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폼잡는 이론이나 용어 빌리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정칠 이야기해보자고.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쿨한 건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사람들에게. 좌우 개념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당들 형태가 이해 안 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이 아주 막막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정치를 멀리하는 모두에게 이번만은 닥치고 정치, 를 외치고 싶거든. 시국이 아주 엄중하거든, 아주.
2.
'닥치고...'
하여 생각난 것은...
말을 안 하고도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다.
텔레비젼은 잘 보지 않고, 집에 케이블이 안나와서 '슈스케3'는 더 볼 여건이 되지 않는데,
얼마전 넷상에서 '버스커 버스커'의 <동경소녀>란 곡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이들이 노래를 통하여 하려고 하는 얘기의 정수를 읽을 수 있었다.
경연인데...'잘 해야겠다'가 아니라 무대 자체를 즐기는 그들이 어느 별보다 빛나 보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보컬리스트를 위한 스테이징 테크닉
하마다“Peco”미와코 지음 /
SRM(SRmusic) / 2011년 8월
너의 꿈을 캐스팅하라
손남원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8월
3.
연인들이 꽃으로 대화하던 시대가 있었다 한다.
붉은 장미로 사랑을 고백했고 산사나무로 희망을 주었으며, 알로에로 슬픔을 표현했고 안개꽃으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단다.
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부처님이 들어올린 연꽃을 보고 미소 짓는 가섭을 닮을 수 없을지니,
이 비 내리는 가을날 닥치고 책이나 읽어야겠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