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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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라는 도시와 범죄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 마지막 반전도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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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트버그의 선택 훈련 - 매 순간이 하나님의 '열린 문'이다
존 오트버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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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갈지, 누구를 만나 결혼을 할지, 점심으로 뭘 먹을지 등등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인생은 자신이 내린 모든 선택의 총합이다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그런 선택의 문제는 믿음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찾아온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 기도회를 갈 것인가 라는 문제에서부터 선교의 부름을 받아 오지로 향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그런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이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저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이 되지 않을 때가 너무도 많다. 그러다보니 선택을 한 후에도 자신이 없어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선택의 상황과 하나님의 뜻에 관해 전하고 있다. 저자는 열린 문닫힌 문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이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열린 문이란 위대한 모험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기회를 말한다.

 

오호, 맞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기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여태껏 내가 알면서도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믿음의 초점은 외적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적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는 데 있다.(p.104)

 

열린 문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내적 변화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p.108)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다. 엄청난 부도 아니다. 사람들의 높임을 받는 명예도 아니다. 우리가 추구할 바는 우리의 내적 변화이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은 일에도, 사소한 일에도,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가라하시면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 분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선택의 문에서 그 분의 뜻에 따라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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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나서영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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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소설이다. 독자를 소설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하지도 않지만 소설에서 벗어나게 하지도 않는다. 그 기묘함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한계라고 해야 할까? 글쎄, 뭐라고 평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 책은 소설 속 소설가 서영과 서영이 쓴 소설 속 얼굴이 희고 작은 입술이 붉은 아이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설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뿐 아니다. 서영이 만난 보라, 보라의 이야기를 쓴 소설, 서영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책이 준 상처를 말하며 죽음을 예고한 편지 이야기 등 한 권 소설 속에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있어 혼란이 점점 커져만 간다.

 

도대체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일까? 책을 다 읽는 순간까지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아이와의 만남을 그린 부분에서 무언가 가슴을 후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 하나의 생채기도 없는 소설을 쓰고 싶은 소설가 서영. 과거는 미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신념을 가진 서영. 하지만 이는 모두 그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오늘을 살기 위해 생채기 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서영이지만 오히려 그는 과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그가 그린 얼굴이 희고 작은 입술이 붉은 아이를 통해 그의 과거가 어떻게 그에게 영향을 주었는지가 드러난다. 결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 그런 그의 모습은 와의 만남에서도 드러난다.

 

제발 부탁할게. 오빠는 행복한 소설을 쓰지 못하니까 나도 불행한 모습일 게 아니야. (p.352)

 

생채기 하나 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독자 는 그가 결코 행복한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가 행복한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은 결국 그가 가진 과거의 상처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상처를 상처로만 둔 것은 아니다. 그를 향해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라는 아이의 말에 너도 부디 행복하렴이라고 말하며 아이를 향해 사랑을 전한 사람들, 또한 아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따뜻함이 그의 마음속 상처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려준다. 그제야 그가 생채기 하나 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한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내 마음이 그제야 이해된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 줄만 알았던 삶에서 어떤 순간, 어떤 시간은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p.284)

 

마음에 남아있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소설을 쓰고 싶었던 서영. 그리고 작가 서영. 아픔 속에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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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인지 말해
신중선 지음 / 문이당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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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구인지 말해보세요,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 세상에 다시없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분명 그건 내 자신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못난이 찌질이 삼촌처럼 표현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사람을 나타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름이다. 이름으로 그 사람의 본질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소개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이 소설은 바로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아 혹은 정체성을 찾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스로를 몽상가물고기라 부르며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찾아 나선 소년, 헤어진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 나선 만화가 페이,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 의미를 파악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탐정 B. 앞서 말했듯이 이들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띈다. 평범한 이들과 다른 이들의 이름이 삶과 유리된 이들의 삶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자신을 찾아 나선 소년의 이야기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과거의 어떤 사건에 다다른다. 백화점 쇼핑백에 들어 있던 아이가 광장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던 그 사건.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아이는 누구인지, 그 아이는 왜 그런 곳에 버려진 것인지.....

 

신중선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다. 현실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상을 그려낸 듯한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자신을 찾아 헤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독특하게 그려져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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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 꽃잎보다 붉던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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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내 입술에 품을 수 없는 그 말, <<당신>>

 

모든 말이 그렇겠지만 당신이라는 말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진다. “당신 같은 사람이 도대체 뭘 알겠어.”라는 표현에서의 당신은 상대방을 은근히 깔아뭉개는 심리가 담겨있다. 반면에 당신 사랑하는 내 당신 둘도 없는 내 당신, 당신 없는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당신이라는 표현에는 가벼운 음조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깊게 깔려있다. 마치 주호백과 윤희옥의 사랑을 말해주듯이 말이다.

 

소설 초반부를 읽을 때에는 사실 울컥하는 마음이 앞섰다. 주호백을 대하는 윤희옥의 매몰찬 모습 때문이다. 물론 윤희옥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김가인과의 아픔이 남아있는데 어찌 쉽게 다른 사람이 마음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나 역시,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와 같은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 그녀를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이마저 내팽개치고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에는 솔직히 공감보다는 반감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점차 묘해진다. 치매로 깊은 숨겨두었던 주호백의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윤희옥의 깊은 사랑이 시작된다.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는.

 

깊은 사랑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아는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p.15-16)

 

무의식중에 드러난 주호백의 고백이 무엇이었기에 윤희옥의 얼음장 같았던 마음이 돌아설 수 있었을까? 어떻게 모든 것을 바치는 열정적인 사랑을 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렇게 경멸해마지 않았던 사람인데.

 

인혜와 내가 공통으로 가진 회한이 있다면 사랑이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희생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그 점일 터였다. (p.193)

 

단지 나를 행복하게 하려고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고난에 맞서 내가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는지, 상처에 맞서 내가 얼마나 관용할 수 있는지, 그로써 어떤 법열을 얻어내는지 증명해 보이려고 사랑을 하는 거지요. (p.231)

 

그렇다. 주호백이라고 왜 마음에 상처가 없었겠는가. 그 마음에 얼마나 거센 분노의 불길이 솟구쳤겠는가.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거세게 일어나겠는가.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 이는 그 모든 풍랑을 가라앉힌다. 철저하게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모든 고통을, 걷잡을 수 없는 아픔을 견뎌낸다. 그것이 그에게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에 걸쳐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자신의 집을 지었기에 말이다.

 

당신 가슴속에 내가 집 하나를 지었소. 고대광실로다가. 죽은 다음에도 들어가 살 집. (p.267)

 

온갖 풍파 속에서 평생에 걸쳐 가슴 한견에 세운 집, 바로 당신. 그러니 당신이라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녹아내려있을까. 얼마나 많은 아픔이, 고통이, 행복이, 사랑이 어우러져 있을까.

 

그런 당신을 향한 사랑이기에 결국은 생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죽음 뒤에서도 함께 하는 그런 사랑.

 

사랑은 단지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게 아니라 생명 자체를 함께하는 거라는 사실을 배운 거지. 나는 그의 숨결이 되었고 아빠 역시 나의 숨결이었어. (p.217)

 

내게도 그런 당신이 있다. 아직은 주호백처럼 당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 정말 불러보고 싶다. 당신이라고. 나의 또 다른 생명 당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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