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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드디어 신영복 교수님의 담론을 읽었다.
귀찮아서 계속 미루다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심리학 독서의 연장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엄청 재미있게 읽었다. 결과적으로 인간학, 관계에 촛점을 맞춘 책이기 때문에 심리학 독서의 연장이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고 나서 무엇인가 남아서 계속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신영복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를 엮은 책인데, 마치 강의실에 가서 직접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노트와 펜을 꺼내서 뭔가 기록을 해야 하는 듯한 생각을 한다. 난 책에 펜을 꽂아 놓고, 수시로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다. 이런 책은 평생 간직할 만큼 좋고, 나의 생각도 구석구석 남겨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내 생각을 적어 놓을만큼 사유의 깊지 않아서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밑줄만 그었다.
책은 크게 두 내용으로 나누어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순서와 상관없이 구성된 내용은 3가지이다. 그 3가지는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 감옥 생활을 통한 인간 이해와 관계의 이해, 마지막으로 여행기를 통한 우리 역사의 이해이다.
나는 제자백가로 이야기되는 춘추전국시대를 잘 모른다. 교훈적인 많은 일화가 있었고, 많은 고리타분한 사상가들이 있었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공자, 맹자, 장자, 노자, 묵자, 한비자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결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사상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양보다 훨씬 앞선 그들의 사상에 깊은 존경심이 생겼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극히 작은 일부분이고, 더 많은 책을 읽어야 비로소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상은 변한 것이 없는데, 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달라졌을까? 결국,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자어가 많아서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독서하기에 아주 난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역 부분이 좀 어려웠는데, 그래도 저자가 득위와 실위를 설명할 때 정말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내용이 있었다.
'70%의 자리'가 득위의 비결입니다. "70%의 자리에 가라!"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게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
회사에서 능력에 맞지 않게 업무를 맡으면, 본인 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특히, 윗사람이 기대하는 바가 클 것이기 때문에 그걸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더 혹사하지만, 좌절감을 느낄 뿐이다. 비슷한 일이 회사에서 있었다. 난 열심히 한다고 준비했지만, 결국 스트레스와 상실감으로 괴로웠다. 70의 능력밖에 안되는데, 100인 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내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채우면 된다. 그리고, 내 능력으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어찌 보면, 저자가 계속 일깨워 주고 싶어하는 관계의 모습이기도 하고, 양삼의 모습이기로 할 것이다. 내 능력을 계속 키우지만, 능력보다 낮은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서 일하는 것이 어찌 보면 장기적으로 성공의 길일지도 모른다.
내가 존경하는 조선의 인물이 몇 명 있다.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정조가 그분들이다. 조선의 진정한 임금님은 세종대왕, 정조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임금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협소한 나의 사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객관성은 없다.
저자가 언급한 인물들은 여기에 정도전이 포함된다. 난 정도전에 대해 아는바가 없기 때문에 뭐라 의견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저 정몽주를 배신한 개혁의 아이콘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정도전에 대한 책을 읽어 보아야겠다.
난 조선의 역사에 대해 자꾸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한심한 인물들에 의한 한심한 역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자꾸 우리 역사를 폄하하려는 나쁜 자세이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를 알수록 마음이 답답해진다. 지금 우리 정치를 알수록 마음이 답답해지니 자꾸 외면하려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 할 지 모른다. 잘못된 태도이다. 저자의 '우엘바와 바라나시', '반구정과 압구정' 여행 기행문을 통해 반성하게 되었다. 안타깝고, 답답하더라도 사실을 마주해야 하는, 어찌 보면 실천의 모습이다.
신영복 교수님은 참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주었다.
중국 고전과 감옥 일화와 여행기를 넘나 들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움을 준다.
인식의 틀을 깨고, 세계를 볼 수 있는 추상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성장, 상품, 자본에 매몰되지 말고, 인간학을 공부하며 매일 깨달음을 얻어 '자기의 이유'를 결코 버리지 말고, 여정을 떠나라는 이야기이다.
여행의 3단계, '떠나기' - '만나기' - '돌아오기'를 나 자신 대상으로도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떠나서 나 자신을 만나고,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나 자신을 만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을 돌아와서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진행하기에는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만큼 실천할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서 엄첨 많은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제자백가 사상에 대한 책도 읽고 싶고, 인간학, 관계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자본론이라고 책도 읽고 싶다. 세계 역사,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의를 재수강해야 할거 같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험을 봤다면, 학점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의를 시험으로 테스트한다는 것은 강의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강의록을 들춰 보도록 만드는 강의가 좋은 강의가 아닐까 한다.
신영복 교수님의 '담론'을 적극 추천하는 이유이다.
2016.10.31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