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의 존재는 우리에게 무겁고 유일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인생의 참된 의미란 얼마나 깊이 감춰져 있는가? - P49

그 의미를 깨달은 지혜로운 사람은 도리어 오해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바보 취급을 당한다. - P49

그 의미를 품고 살아가는 강자는 도리어 약자 취급을 당한다. 그 의미를 먹고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은 오히려 환자 취급을 당한다. - P49

용서, 곧 죄의 용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삶 속에서 얽히고설킨 모든 혼란의 해명과 해결이 갖는 가장 심오한 의미를 짚어주는 단어가 아닐까? - P63

그들의 무한한 격정은 오히려 생명이 무한함을 암시하고, 그들이 겪는 거대한 곤경은 그들을 괴롭히는 존재의 거대함에 대한 지식을 전한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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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이념에 매혹됐다. 그런데 인간이 여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격정의 폭풍이 일어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극도의 무모함을 불러일으키며, 거인처럼 하늘로 솟구쳤다가 사탄처럼 지옥으로 떨어져 버린다. 매혹의 정점은 에로스로 인한 매혹이다. - P42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 P38

그의 책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혁명가도 아니고 평화주의자도 아니며, 특별히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도 아니고 순교자나 성자도 아니며, 탐미주의자나 개혁가, 혹은 철저하게 회심한 사람도 아니고-"오로지" 한 사람,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을 얻은 한 사람이다. - P38

그는 여전히 그의 본성이 지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새로운 직관의 심판과 약속 아래에서,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 P38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저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한 명의 죄인으로 인해 더 많은 기쁨이 있다. - P38

여인의 아름다움은 모든 논리적·윤리적 인과관계를 무너뜨리고, 그 밖의 모든 납득할 만한 연관성을 뛰어넘어 폭발하듯 도드라진다. - P43

처음부터 인간에게는 매혹과 도취의 가능성과 함께 그보다 나은 가능성, 즉 마법에 저항하고 유혹에서 벗어나며 경계선을 거룩하게 지켜낼 수 있는 가능성, 요컨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도 주어져 있다. - P44

그러므로 카라마조프 가문의 비극적인 소용돌이 안에도 어떤 깊은 의미, 최종적인 구원의 의미가 있다고 믿었던 알료샤의 믿음은 결코 허무맹랑한 믿음이 아니다. 카라마조프 가문의피가 흐른다고 해서 무조건 구제불능의 운명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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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의로울 수 있는가 - ‘칭의’의 의미를 살피다
김서령 지음 / 좋은땅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칭의'는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신앙고백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주요한 논점은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칭의'와 인간의 반응으로서 '믿음' 혹은 '순종'을 어떻게 연결하는가의 문제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룩한 삶'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행위'를 어떻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결부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 연구에 관심이 많은 평신도로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이 문제로 17년간 씨름했다. 그리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의 의미를 다각도로 살핀다. 결국 칭의는 그동안의 도식처럼 여겨졌던 '믿음 대 행위'의 문제가 아님을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들을 종합하고, 그간 성경을 연구하며 정리한 '언약과 의'에 대한 주제를 풀어낸다. 흥미로운 지점은 팔머 로벗슨(O. Palmer Robertson, 1937~), 브루스 데머리스트(Bruce Demarest, 1935),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1953~)로부터 N.T 라이트(N.T Wright, 1948~)와 제임스 던(James D.G. Dunn, 1939~ 2020), 김용규까지 그야말로 폭넓은 스펙트럼의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료의 취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자신이 선택한 결론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노아 언약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노아 언약의 역사성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을 들여 진지하게 논의한다. 더불어 '창조, 타락, 회복'의 구원사관보다는 '창조, 타락, 새 창조'의 구원사관에 동의함을 직접적으로 밝힌다. 


놀라운 점은 저자가 어떤 노선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폭넓고 깊은 주제 연구를 통하여 도출된 결과를 통해 자신만의 결론을 주장한다. 때로는 그것이 개혁파의 입장이 될 수도 있고, 새 관점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전제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성경에서 사용된 '언약'뿐만 아니라 '언약'을 이해하고 풍성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개념들을 명확하게 하길 원한다. 그리하여 '죄', '죄 사함', '속량', '칭의' 등의 단어의 개념과 용례들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이 단어들이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칭의론', '해석학', '언약과 의', '칭의론의 역사' 등 '칭의와 언약' 안에 논의될 수 있는 여러 질문들을 아우른다. 성서신학과 조직신학, 역사신학 등의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주어진 질문에 세밀하게 접근한다. 칭의와 언약,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반응에 대한 성경의 핵심적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라면 많은 통찰을 얻을 것 같다. 


언약은 소망과 믿음과 순종이 사람의 이해와 인격 안에서 ‘어떻게’ 결부되는지를 드러내는 개념적 장치다. 사람이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결부의 상태에 이르는데, 하나님은 그 상태를 그의 의로 여기신다. 언약은 의가 사람의 이해와 인격에 입체적인 의미와 실체로 짜여져 들어가도록 고안된 개념적 장치다. 언약은 하나님과사람의 그런 관계가 ‘왜‘ 진정한 것인가를 밝혀 주는 개념적 장치다 - P26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사용하고 있던 조약의 구성을 당신의 언약에 반영하셨을까? 아마도 양쪽의 차이점이 유사점을 압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형식의 유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내 언약"을 쉽게 이해하면서도 내용의 차이 앞에서 경외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 P59

성경이 서술하는 언약백성의 역사는 교리집을 계승하는 역사가 아니라, 삶 속에서 의에 관한 성공과 실패와 회복을 반복하는 역사다 - P61

하나님은 당신의 초월성과 절대성을 양보하여 언약에 담으시고, 반면에 내 실존을 언약으로 확장하신다. 언약은 하나님의 양보와 인간의 확장으로써 실존적 만남을 이루는 개념적 인격적 장치다 - P80

노아 언약에서 의는 ‘세상이 윤리적 죄로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언약으로 구원을 받는 준거‘가 된다. 노아는 언약으로써 세상의 ‘윤리적 타락‘을 정죄하지 않고 ‘믿음과 순종이 없음‘을 정죄한다. 세상은 아마도 노아의 윤리에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에는 너무나 관심이 많아서 떠들썩하게 조롱했을 것이다. 홍수의 날에 세상은 자신들에게 없는 근본적인 것이 ‘어떤 높은 윤리‘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윤리적 불의를 심판하실 때 세상으로 하여금 노아의 언약적 의를 보게 하신다. 언약적 의를 보게 하신다. 언약적 의가 윤리적 의보다 상위에 있다. 언약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에 있어서, 윤리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P93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언약의 의도는 믿음과 순종의 철저한 결부다. 그 철저함 때문에 우리는 그 결부의 이면적 의도를 생각할 수 있다. 즉 언약은 믿음과 순종의 해리(풀려서 떨어짐)를 막고자 한다. 언약은 우선 말한다. 인격 안에 둘 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 인격 안에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 이 둘은 서로를 통해서 자기 본질에 이르기 때문에 하나를 잃으면 남은 것은 본질을 잃는다. 사실은 그 이상이다.
본질을 잃은 채로, 홀로 있는 믿음이나 홀로 있는 순종은 거짓이다. 둘 다 없으면 그저 없는 것이지만 하나만 있으면 거짓이 있는 것이다. - P102

하나님의 구원은 언약적 구원이다. 언약적 구원은 다음과 같이 양상을 보여 준다.
ㄱ) 하나님은 사람에게 약속과 명령으로 언약을 세우신다.
ㄴ) 하나님은 사람을 품으시고 소망과 믿음과 순종에 이르도록 기르신다.
ㄷ) 하나님은 그렇게 기르신 사람에게 ‘너는 의롭다‘고 하신다.
ㄹ) 하나님은 언약 백성과 자신의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권위, 능력, 돌봄, 신실로 통치하신다.
ㅁ) 하나님은 의로운 자에게 약속을 성취하시는 방식으로 구원하신다.
한 사람의 구원을 넘어선 공동체의 구원은 아브라함 언약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 한 사람이 맺은 언약 관계로 시작해서 그의공동체가 함께 맺는 언약 관계로 확장한다. 이 언약에서부터 공동체적 소망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 P156

속량은 서사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속량되는 사람은 옮겨지고 소유권이 이전된다. 출애굽은 속량의 서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출애굽을 통해서 ‘건져 냄, 옮겨짐, 들어감, 소유됨‘이라는 목표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출애굽이라는 속량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 이미지를 대표한다 - P395

속량(구속)‘은 좁은 의미로서는 죄 사함을 함의하고 넓은 의미로서는 ‘구원‘을 함의하는 말이다. 속량은 ‘언약- 죄- 죄 사함- 속량-새 언약-칭의- 약속된 것을 받음‘이라는 흐름 속에 위치함으로써, 구원이 언약적 서사‘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해서, 그리스도의 피는 속죄의 피, 속전(속량)의 피, 언약의 피다.
"
- P409

율법의 행위는 율법의 본래적 무능이나 인간의 본래적 무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의의 율법(롬9:31)’을 죽이는 조문으로 전락시켜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만들었음을 비판하는 말이다. 즉 약속, 소망, 믿음을 상실한 인간이 율법을 하나님의 속량이 벌어지지 않는 조문으로 타락시킨 것이다.
"
- P437

성경의 하나님은 약속과 명령으로써 우리를 부르신다.
하나님은 이 방식을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 명령에 순종해야만 믿을 수 있는 약속, 약속을 믿어야만 순종할 수 있는 명령, 이 공교한 이중결부. 이 기이한 지혜로써 하나님은 우리의 실존을 당신의 신성을 향해 확장하신다. 그렇게 그분은 인격적인 관계를 넘어서 사랑의 관계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사랑을 위해 언약으로 당신을 축소하시고 언약으로 인간을 확장하신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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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은 언약적 구원이다. 언약적 구원은 다음과 같이 양상을 보여 준다. - P156

하나님은 사람에게 약속과 명령으로 언약을 세우신다. - P156

하나님은 사람을 품으시고 소망과 믿음과 순종에 이르도록 기르신다. - P156

하나님은 그렇게 기르신 사람에게 ‘너는 의롭다‘고 하신다. - P156

하나님은 언약 백성과 자신의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권위, 능력, 돌봄, 신실로 통치하신다. - P156

하나님은 의로운 자에게 약속을 성취하시는 방식으로 구원하신다. - P156

한 사람의 구원을 넘어선 공동체의 구원은 아브라함 언약에서부터 시작된다. - P159

이 언약은 아브라함 한 사람이 맺은 언약 관계로 시작해서 그의공동체가 함께 맺는 언약 관계로 확장한다. 이 언약에서부터 공동체적 소망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 P156

구약 성서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약을 세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메시아의 성취에 의하여 그 언약적 구원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 - P294

신약 성서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예수가 메시아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 언약을 세우시는 이도예수다. 예수가 세운 새 언약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은 완성될 것이다. - P294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의로운 언약 백성이 출현하기를 구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 능력, 돌봄, 신실‘이 그들에게, 그들을 위해 드러나기를 구하는 것이다. - P315

속량은 서사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속량되는 사람은 옮겨지고 소유권이 이전된다. - P395

출애굽은 속량의 서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출애굽을 통해서 ‘건져 냄, 옮겨짐, 들어감, 소유됨‘이라는 목표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출애굽이라는 속량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 이미지를 대표한다. - P395

‘속량(구속)‘은 좁은 의미로서는 죄 사함을 함의하고 넓은 의미로서는 ‘구원‘을 함의하는 말이다. - P409

속량은 ‘언약- 죄- 죄 사함- 속량-새 언약-칭의- 약속된 것을 받음‘이라는 흐름 속에 위치함으로써, 구원이 언약적 서사‘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해서, 그리스도의 피는 속죄의 피, 속전(속량)의 피, 언약의 피다. - P409

율법의 행위는 율법의 본래적 무능이나 인간의 본래적 무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의의 율법(롬9:31)’을 죽이는 조문으로 전락시켜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만들었음을 비판하는 말이다. - P437

즉 약속, 소망, 믿음을 상실한 인간이 율법을 하나님의 속량이 벌어지지 않는 조문으로 타락시킨 것이다. - P437

성경의 하나님은 약속과 명령으로써 우리를 부르신다.
하나님은 이 방식을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 - P461

명령에 순종해야만 믿을 수 있는 약속, 약속을 믿어야만 순종할 수 있는 명령, 이 공교한 이중결부. - P461

이 기이한 지혜로써 하나님은 우리의 실존을 당신의 신성을 향해 확장하신다. 그렇게 그분은 인격적인 관계를 넘어서 사랑의 관계를 원하신다. - P461

하나님은 인간과의 사랑을 위해 언약으로 당신을 축소하시고 언약으로 인간을 확장하신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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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을 아주 단순하게 정의하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유지해가는 능력이다. - P7

관계를 맺는 사람은 누구든 괜찮다. 또래여도 되고, 또래가 아니어도 된다. - P7

어느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면 사회성의 기본은 갖추고 있는 것이다. - P7

또한 사회성은 때와 장소 등 사회적 상황에 맞게 적절하고 분별 있게 행동하는 능력이다. - P7

한두 사람의 친구를 사귀고 진실한 관계를 유지해나간다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 P7

사람은 개개인이 모두 달라서 한두 사람과 오래도록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다. - P7

그래서 아들에겐 친구 같은 부모보다 ‘권위 있는 대장 부모가 필요하다. - P10

힘의 욕구를 타고난 남자아이들은 어른이 어른답게 자리를 잡아주지 못하면 자기가 힘을 휘두르려고 한다. - P10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때 가서 친구가 돼도 늦지 않다. - P10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이 가진 대장의 개념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하는 상대적 의미의 우월함과 열등함이라는 개념과 많이 다르다. - P27

아이들의 대장 개념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남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 P27

아이들은 상대적이기보다 절대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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