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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지음, 손성현 옮김, 김진혁 / 포이에마 / 2018년 10월
평점 :
도스토옙스키는 신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어떤 신학 책보다 인간의 실존을 신학적으로 탁월하게 묘사했음을 경험한다. 그의 글은 그 자체로 신학적 완성도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신학자들이 그의 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신학적 영감과 통찰을 자극했다. 하지만 방대한 그의 소설에서 명료하게 그의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Eduard Thurneysen, 1888 ~1974)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신학적으로 탁월하게 해석해냈다. 그는 스위스의 개신교 목사이자 신학자다. 아마 투르나이젠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 ~ 1968)의 친구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르나이젠의 이 작품이 없었다면, 바르트의 위대한 작품(자유주의자들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이었던 《로마서》2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은 당시 유럽의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큰 파급을 가져왔다. 당시 신학을 주도했던 자유주의는 인간의 종교심과 문화, 역사와 윤리로 세계의 역사는 계속적으로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여파와 자유주의자 스승들의 실망스러운 행동과 선택(이들은 적극적으로 히틀러를 옹호하며 지지했고 힘을 보태었다)은 새로운 언어와 논리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투르나이젠은 바르트와 함께 인간으로부터의 신학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의 신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신학을 전개하기에 이르었다. 그러한 변증법적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결정적 통찰을 준 것이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다. 투르나이젠과 바르트는 이 시기에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넓고 깊은 문학 세계를 통해 '타락 가운데 빠져들어가는 인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신학적 해석은 그의 강연을 다듬어서 나온 단행본이다. 이 책은 그렇기에 강연에서의 열정이 느껴진다. 짧지만 강력한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연구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이 얇은 책에 담겨 있는 저자의 통찰과 이해는 도스토옙스키의 문학만큼이나 예리하고 신선하며, 풍성하다.
총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질문과 해답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기묘한 인간들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실존에서 시작하여 결국 도스토옙스키가 그리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신학적 해석까지 나아간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가장 유명한 대심문관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대심문관"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종교와 교회 안에 숨어 있는 깊은 불신앙을,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런데 이러한 폭로의 목적은 그 반역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고 긍정하는 것이다(115).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 물론 이 책만 읽더라도 날카롭고 명료한 신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지만, 더욱 풍성하게 이 글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 책의 인용빈도와 중요도를 생각했을 때, 최소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읽고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부분이 더욱 풍성하게 이해된다. 더불어 『죄와 벌』을 함께 읽었다면 더 좋고, 『백치』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이 세 소설을 중심으로 하여 논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성의 불가사의함이 기묘한 방식으로 돌출되는 모습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는데 거기에는 무언가 심히 우려스러운 것, 불안한 것이 있다. - P12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방금 전까지는 똑바로 잘 걷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휘청하면서, 달리는 기차 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갈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의 인물들과 만나는 느낌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마치 환상 속의 인물들처럼 낯설고 거대한 모습으로, 그러나 기묘하리만큼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마치 우리의 분신分身처럼 똑같은 방향으로 밀착해서 걷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란에 빠져 자기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그 인물들과 절대로 얽히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의 삶에 나타난 수수께끼 속에서 내 삶의 수수께끼가 나를 응시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뚫어질 듯 마주본다. 당황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묻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만난 것은 바로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인간과 만났다. - P14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완결된 하나의 답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해법은 거대한 해체 속에 있다. 그의 대답은 질문, 곧 인간 존재에 대한치열한 질문, 오직 하나의 질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그 질문이야말로 한 아름의 대답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P23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책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혁명가도 아니고 평화주의자도 아니며, 특별히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도 아니고 순교자나 성자도 아니며, 탐미주의자나 개혁가, 혹은 철저하게 회심한 사람도 아니고-"오로지" 한 사람,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을 얻은 한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그의 본성이 지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새로운 직관의 심판과 약속 아래에서,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저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한 명의 죄인으로 인해 더 많은 기쁨이 있다. - P38
백치의 존재는 우리에게 무겁고 유일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인생의 참된 의미란 얼마나 깊이 감춰져 있는가? 그 의미를 깨달은 지혜로운 사람은 도리어 오해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바보 취급을 당한다. 그 의미를 품고 살아가는 강자는 도리어 약자 취급을 당한다. 그 의미를 먹고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은 오히려 환자 취급을 당한다 - P49
도스토옙스키는 수많은 예술가 중에서 최고의 심리학자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불러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의 심리학은 하나의 심리학이 될 수가 없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그가 인간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분석해낸 최종적인 결과, 모든 인간적인 것이 결국 모든 심리학적 실재 너머에 있는 소실점과 종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 P75
그가 말하는 초월 세계는 저 위 어딘가에 있는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저 아래 영혼의 세계도 아니다. 모든 것의 기초, 토대, 운명은 어떤 식으로든 규정된 것이 아니며 또 규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그림의 원근遠近을 만들어내는 시점視點이 그림 안에 있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 점은 상상의 점이다. 현실 너머에 있다. 가장 바깥에 있으며, 가장 나중에 있으며, 아예 저편에 있는 그 점은 역사적·심리학적 실재의 세계를 벗어나 있다. 그 실재의 세계가 아무리 이상적으로 높고 심리적으로 깊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고 비밀스럽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있을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실재 바깥에 있는 시점에 의해 인간의 삶 전체가 규정되어 있음을 보고 있다. 모든 점들과 이어지는 그 점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 P76
교회는 인간이 오로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만을 향해 부르짖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곳, 그 깊은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크신 권능과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용서와 진실한 기적으로 계시하시는 저 높은 곳으로 인도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종교의 거짓말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함이다. - P105
"이제 마지막 한 가지만 말하면 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 속에서 이 세상과 인생을 대대적이고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해명하는 위대한 힘이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통해서도 견지된다는 점이다. 그 특징이란 생명을 향한 적극적인 관심, 인간에 대한 이해, 모든 피조물의 고통과 희망을 한없는 연민으로 품어 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독보적이고 위대한 증언의 기록이다. " - P129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궁극적인 것, 하나님의 해법, 곧 "부활"을 지향하는 곳에서는 지금 이 시간과 세상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놀라운 부활의 전령이 나타난다. 부활의 비유가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이 존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만들어내는 반항적인 자기 방어 기제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변혁적이다. - P145
자유의 여정은 인생의 바닥에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가시화된다. 결정적인 변화는 우리가 발버둥치고 억지를 써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그분의 영원한 능력에서 흘러나온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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