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국사 : 근대편 쟁점 한국사
이기훈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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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한국사' 얼마나 흥미로운 제목인가! 한국사의 여러 쟁점들을 전문가들이 흥미롭게 서술한 책이다. 박근혜 정권의 '역사쿠데타'에 대항해서 역사학자들이 창비학당에서 강좌를 열고 이를 책으로 엮었다. 그래서 관련 주제에 대해서 상당히 깊이있는 서술이 이뤄졌다. 물론, 배항섭의 '동학농민전쟁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의 경우, 서구학자들의 이름이 난무하고, 그들의 이론이 소개되고 있어 난해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후반부의 주제들은 상당히 흥미로 곱씹어봐야할 서술들이 많았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주제들을 다시 읽는 것은 역사해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접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나에게 어떠한 관점을 접하게 해주었을까?

 

1. 동학농민운동은 근대민족운동이었을까? 봉건적 근왕운동이었을까?

  뉴라이트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동학농민운동을 근왕운동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적이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 반외세의 민족운동이라고 가르치고 배웠던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국적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이 책의 제1장 '동학농민전쟁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저자 배항섭은 근대민족운동이었다는 평가와 봉건적 근왕운동이었다는 평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을 제시햇다.

 

  "민중의식은 지배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중들도 지배이념을 전유하고 그에 입각해 '반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동학농민전쟁이다."-44쪽

 

  사람의 생각이 한순간에 100% 변하기는 힘들다. 피지배층도 지배층이 주입한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혁명적으로 사용되어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기도한다. 고괭이가 평화시에는 농부의 농기구가 되지만, 사회적 분노가 쌓이면 봉기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동학농민운동이 근대민족운동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농민들이 사용했던 표현들을 애써 무시했다. 그에 반해서 동학농민운동이 전근대적 근왕운동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농민들의 언어표현만을 보고 애써 혁명성을 무시했다. 두가지 시각에서 벗어나 배항섭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새로운 관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 그것이 역사를 잘읽는 사람의 안목일 것이다.

 

2. 고종의 외교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고종을 '무능한 군주'라고 평가하는 사람과 조선 중립화를 추구했던 명군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메이지 천황과 동갑내기이면서 먼저 왕위에 올랐으나, 한쪽은 망국의 군주가 되었고, 한쪽은 중흥의 군주가 되었다.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고종은 '무능한 군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제2장 대한제국 외교의 가능성과 한계에서 저자 은정태는 고종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을미사변 이후에도 고종은 친미, 친러, 친일 외교를 전개한다. 심지어는 중립화 외교를 시도한다. 그러나 고종의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은 패망하게 된다. 은정태는 고종의 필사의 외교적 노력을 소개하며 무척 안타까워한다. 현란한 고종의 외교도 국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실을 맺을 수 없었다. 서희의 외교담판을 보면서 담판만 잘 벌이면 국력이 약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천하의 서희라도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담판의 결과가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힘을 기르지 못한 나라의 비극은 너무도 비극적이다.

 

3. 사회주의자들은 "종파분자"였는가?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수많은 당과 이념, 독립운동 노선을 두고 다투었다. 한국 정치를 보더라도 진보적인 정당은 수많은 세포분열을 했다. 그에 비해서 보수는 이익에 뭉친다. 그리고 그 이익을 더 갖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부패로 망하고 만다. 이러한 비극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세력에서도 나타난다. 사회주의 세력의 분파적인 모습을 저자 최규진은 어떻게 평가할까?

 

  "북한에서는 국내 사회주의자들을 '종파분자'라고 재단한다. (중략) 그러나 '전략과 전술'에서 서로 차이가 있어서 따로 했던 것이지 무턱대고 편 가르기를 하는 '종파'는 아니었다. 또 그 '분파'는 일제에 맞서 서로 공동투쟁을 모색한 일도 많다. 북한의 역사인식은 국내 사회주의운동을 깎아내려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을 돋보이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의 역사, 다른 해석을 가로 막고, 여러 목소리를 잠재우는 역사", 그것이 바로 독재사회의 징표임을 북한이 명확하게 보여준다."-199~200쪽

 

  국내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최규진의 평가를 따른다하더라도, 자유시 참변을 일으키는 원인 중에 하나였던, 이르츠쿠파 고려공산당과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대립은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과거를 무조건 미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나로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을 했던 지난날의 비극을 직시하는 용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4. 청산하지 못한 역사! 비극을 잉태하다.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 근현대 역사속에는 수많은 비극이 있다. 너무도 많은 비극들 속에서 가장 큰 비극은 '일본군'위안부''문제일 것이다. 일제에 의해서 조선인 여성을 비롯해서 중국, 필리핀 등지의 여성들이 성노예로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한번은 박정희가 1965년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로 인해서, 또한번의 그의 딸이 일본 아베와 맺은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로 인해서 제대로된 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비극의 역사가 다시 잉태될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가 저지른 굴욕보다 더 심각한 굴욕은 반민족행위자 처벌 특별법을 만들고서도 친일파 처단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다시 반복되는 불행을 만들었다. 그 비극은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으로 반복되었다.

  육군본부에서 편찬한 '후방전사'에는 충격적인 '한국군 '위안부''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후방에서 이성에 대한 동경에서 야기되는 생리작용에 대한 성격의 이상등을 예방하기 위해서 특수위안대를 설치한다."-260쪽

 

  일본육사와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친일군인들이 주류를 형성한 한국군의 머릿속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군인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소위 '공산주의자'로 지목된 집안의 여성을 군인들의 성 노리개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생각은 일본제국의 황군이었던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한홍구 교수의 '유신'이라는 책에는 '한국군 '위안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서술이 있다. 차마 이를 믿어야할지, 어찌 대처해야할지 분간하기 힘든 고통이 다가온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 문제가 공론화될 경우 일본 우익에 이용되고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저자 소현숙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이(일본군 출신 한국군) 일본으로부터 배운 위안소 정책을 한국전쟁기에 한국군에서 실현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는 감추어야할 일이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라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더 많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261쪽

 

  일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댓가는 또다른 모습의 비극을 낳았다. 다시는 한국군 '위안부' 피해자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한홍구 교수는 '유신'이라는 책에서 박정희가 베트남 파병을 하면서 한국군 '위안부'도 같이 보내려했으나, 다행히도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황군에게 '위안부'는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었나 보다. 그들에게 여성은 성의 배수구였지,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소현숙은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의 연장선에서 서술하고 있다. 과연 기지촌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소현숙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취업사기 혹은 인신매매라는 불법성과 관의 개입, 무엇보다 군대의 유지를 위해 도구화한 여성의 성이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공통분모도 발견할 수 있다."-263쪽

 

  박정희 정권은 성매매가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남한 주둔을 유지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종의 포주 노릇'을 했다. 심지어는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에게 '교양'교육까지 했다는 사실은 황군 출신의 정치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모습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생각까지 갖게한다.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는다면, 비극은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 된다.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직시해야한다. 가장 큰 고통을 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나비기금'을 만들어 한군군에 의해 강간 피해를 당한 베트남 여성을 지원하는 것도 비극의 역사를 직시하려는 고귀한 노력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노력이 나치 유대인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졌던 유대인 여성들의 강제 성노동에 관한 연구를 촉발시키는 한가지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과거를 직시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길고긴 여정을 왜해야하는지를 잘말해주고 있다.

 

 

  하나의 언어를 배우면 새로운 또하나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새로운 관점이 담긴 역사책을 읽는다면, 새로운 역사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쟁점 한국사'근대편''은 나에게 새로운 한국 근대사와 만나게 해주었다. 동의하지 못하는 관점도 있지만, 신선한 충격을 준 견해도 많았다. 특히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교훈을 가슴속에 새기게 해주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ps. 위안소의 형태 : 군 직영(일본군이 직접 만들어 운영), 군 전용(군이 설치했지만, 민간업자들이 위탁), 군지정 위안소(주둔지 주변 유곽을 일시적으로 점거해 군인만 이용)

1919년 10월 임시정부가 대내외에 알린 민족대표 30인 선언서

  대한민국 원년 3월 1일에 이미 우리 민족의 자유민임을 선언하고 이에 따라 금년 4월 10일에 임시의정원과 임시국무원이 성립되니, 이에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의 일치된 의사와 희망에서 나온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지라. 일본이 아직 무력으로 우리 3천리의 국토를 점령했거니와 이는 벨기에의 국토가 일직이 독일의 무력하에 점령되었음과 같은 지라 (중략) 우리 민족은 대한민국의 국민이요, 우리 민족을 통치하는 자는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니, 우리 민족은 영원히 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지라(중략) 일본정부에 대하여 조선총독부와 그에 소속된 모든 관청과 육해군을 철거하고 대한민국의 완전한 독립을 확인하기를 요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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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라이브 -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33년간의 Q&A 지상 중계
대니얼 피컷.코리 렌 지음, 이건 옮김, 신진오 감수 / 에프엔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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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런 버핏을 처음 알게된 것은 딸아이가 읽는 만화 '워런 버핏'을 통해서였다. 세계적 투자자인 그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그의 지혜를 담고있는 책을 찾기는 힘들었다. 팟캐스트 '신과함께'시간에 '워런버핏 라이브'라는 책을 어느 투자자가 추천해주었다. 단순한 투자에 대한 안내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추천사에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6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를 보며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딸아이가 투자에 관심이 있어하기에, '옆에 두고 하루 한줄이라도 읽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딸아이는 어떠한 책인지 보여주고, 정식으로 책을 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딸은 이해안되는 내용이 많아 읽지 못하겠다며 나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하는수 없이 나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통회 33년간의 Q&A에는 어떠한 인생의 지혜가 담겨있을까?

 

1. 훌륭한 삶이란 무엇인가?

  한주주의 질문에 찰리 멍거가 답한다. "훌륭한 삶이란 항상 배우고 또 배우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투자자로 살아왔으며, 남들이 뛰어 넘기 힘든 성과를 이룬 그의 말이라기 보다는 어느 노학자의 말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의 대답이다.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가 탁월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배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워런 버핏에게서도 드러난다. '새로운 투자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라는 질문에 대해서, 워런 버핏은 "읽을 수 있는 책을 모두 읽어야합니다."라고 조언한다. 그는 10살에 오마하 시립도서관에 있는 투자 서적을 모두 읽었고, 일부는 두번 읽기도 했다고 밝힌다. '10세 소년이 돈을 버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찰리 멍거는 "지능도 복리로 늘려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내 지능 개발에 투자했"다라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돈을 복리로 늘릴 생각을 하면서도 지능을 복리로 늘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할까? 워런 버핏은 투자에 관한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읽고나서 '소액투자'를 시작했다. 실전경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는 위인을 만나 대화를 한다. 존경하는 인물과 한시간 대화가 대학원 과정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는 배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전과 먼저 삶을 살아간 선배들의 조언에서 지식을 또 쌓았다. 논어 위정편에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이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령되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말을 버핏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버핏은 구순의 나이에도 책을 읽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얻으며 자신을 갈고 닦고 있다. '정관정요'에 당태종이 '창업과 수성중에서 어느 것이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하자, 위징이 '수성이 힘들다.'라는 답을 했다. 부를 많이 축적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 부를 오래도록 지키는 사람은 적다. 롯또에 당첨되어 행복한 삶을 살기보다는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는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를 지키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 그 부를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끊임 없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책을 읽어야할까? 찰리 멍거는 "나는 위인전 마니아 입니다. 위인전을 통해서 역사적 인물과 친구가 되십시오"라고 답한다. 위인을 영웅화하고 심지어는 신격화하는 우리의 위인전을 나는 경멸한다. 그런데, 찰리 멍거는 위인전을 추천하고 있다. 아마도 초등학생을 위한 과장이 심한 위인전보다는 어른을 위한 평전류를 추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 한인물에 대한 비평이 녹아있는 평전류를 통해서 나의 지능을 복리로 늘려보자.

 

2. 책만 읽으면 탁월한 투자자가 될 수 있을까?

 독서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으면, 자신의 부를 지킬 수 있을까? 워런 버핏은 "과거만 공부해서 투자해도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대부호 명단은 사서들이 차지할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책속의 모든 정보를 그대로 믿기만 할뿐,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잘못된 과거의 지식과 선입견에 워런 버핏은 과감히 도전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워런 버핏은 과거에 정크 펀드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다고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고 버핏은 단언한다. 과거의 지식에만 근거한다면 시대조건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과거의 지식에 창의성과 투자자로서의 기본을 함께 가져야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일치해야 내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다. 내 데이터와 추론이 옳다면, 내 판단이 옳은 것이다."-버핏, 192쪽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말며, 과거의 잘못된 지식에 속지말라고 버핏은 당부한다. 버핏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레이엄의 책을 한구절 인용한다. "시장은 스승이 아니라 하인이다. 시장이 멍청한 짓을 벌일 때가 시장을 이용할 기회이다."라는 말은 과거에 얼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투자 정도를 걷는 버핏의 당당함을 대변한다.

  버핏은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경영이론과 경제 이론에도 마음껏 하이킥을 날린다. '블랙 숄즈 공식'은 100번 중에 99번은 정확하지만, 한번은 부정확하며, 워런 버핏은 그 1번을 통해서 돈을 번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뿐이 아니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한다. 현실과 맞지 않으며, 현실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현대의 경제, 경영 이론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현대인들에게 그는 과감히 말한다. 당신들이 믿는 신주단지가 실수할 때, 나는 투자하고 이익을 얻는다.!! 그 어떠한 이론도 현실을 100%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꿰뚤어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서 대학 진학은 포기한 채 독서를 했다면 내 실적은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버핏, 656쪽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 중 50% 이상이 헛소리입니다.-멍거, 252쪽

 "변동성은 위험이 아니다."-버핏, 252쪽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으려는 그의 긍정적 투자 마인드로 시장을 지배했다. 투자로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안정적인 투자를 통해서 착실히 부를 축적한다.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기에 그는 엄청난 투자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끊임없이 공부하지만, 과거의 지식에 얽매이지 말자, 심지어는 대학 교수의 말과 시장의 소문에도 흔들리지말자.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말을 읽다보면, '숫타니 파타'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 

 

3. 나의 성공비결은 행운인가? 나의 노력 때문인가?

  워런 버핏은 재산 상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능력주의가 옳다고 확신합니다. 단지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로 인생이 훨씬 유리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버핏, 116쪽

 

  대기업의 총수가 불법 상속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한국의 현실과 비교한다면, 워런 버핏의 말은 과히 충격적이다. 그는 모든 사람은 행운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부를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이득세율에 대해서도 찰리 멍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거론하며 '자본이득세 부과에 대찬성'하지만, 지금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 공정하고 말한다. 자본이득세율 자체를 찬성하지만, 세율은 조금 낮았으면 좋겠다는 찰리 멍거에 반해서, 워런 버핏은 "난소복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당신이 난소 복권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 시스템을 원할 것"이라면서, '현행 자본이득세율이 거의 적정 수준(자본이득세율 28%)'이라고 주장한다. 역시, 워런 버핏은 부자이다. 보통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이다. 자신이 가진 부를 대물림하고, 한푼이라도 세금으로 내지 않기를 바라는 천민자본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다고, 워런 버핏이 능력 만능주의자는 아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행운아라고 말한다. 미국에 남자로 태어났으며, 수많은 성공 기회가 주어진 것도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특권'으로 인식하지 않고, '행운'으로 얻은 댓가로 여기고 있다. 워런 버핏이 '1942년 1만달러를 인덱스 펀드에 묻어두었다면 지금쯤 5,100만 달러가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좋은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워런 버핏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났다는 전제에서만 참일 수 있다. 국가 부도위기인 베네수엘라나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그러한 부를 축적할 수 없었다. 워런 버핏의 성공은 워런 버핏 혼자만이 이룬 결과가 아니라, 미국 사회라는 시스템 덕분에 얻은 행운이었다.

  미국이라는 땅에 태어난 행운덕분에 워런 버핏은 성공을 할 수 있었다. 행운이 자신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셈이다. 그러나, 같은 미국이라는 땅에 태어난 행운을 얻었다면, 그 기회를 살리는 노력은 각자에게 달려 있어야한다는 것이 버핏의 생각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국의 일부 부자들이 편법 증여와 탈세를 하는 반면, 버핏은 자선 단체에 자신의 재산 상당수를 기부했다.  "난소복권"에 당첨되는 것만으로 부가 세습된다면, 이는 불공평하다는 버핏의 생각을 한국의 부자들도 알아야한다. 그럴 때만이 그들도 버핏처럼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다.

 

4. 투자에 성공하는데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성공에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묻는 주주에게, 찰리 멍거는 '겸손함'이라고 말한다.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과 동업한다면 심각한 곤경에 빠지지 않는다고 찰리 멍거는 말한다. 갖종 특수 효과로 무장한 프레젠테이션에 현혹되어 알맹이 없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위험에 빠지지 말라고 찰리 멍거는 조언한다.

 

"최악의 실수는 근사한 그래프 때문에 발생합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건전한 상식입니다."-멍거, 31쪽

 

 컴퓨터로 산출된 정보는 정확하다는 선입견에 빠져서 잘못된 투자를 하는 요즘의 펀드 매니저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찰리 멍거가 말하는 겸손함은 단순히 자신만을 낮추는 겸손함이 아니다. 첨단 컴퓨터 산출물도 시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찰리 멍거는 요구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겸손함'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투자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분야에 오만이 쌓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찰리 멍거는 말하고 있다.

  두번째 덕목은 무엇일까? 찰리 멍고와 워런 버핏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교훈을 얻으라 말한다. 워런 버핏은 9.11 테러를 통해서 "투자와 보험 영업의 핵심은 현실을 직시하며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석면 채무문제 때문에 회사들이 파산했지만, 버핏은 석면 채무가 없는 기업을 인수할 기회를 얻었다. 실패와 위기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기회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탁월한 투자자의 덕목이다.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은 위기에서 교훈을 배우고,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지금의 탁월한 투자자가 될 수 있었다.

  세번째 덕목은 무엇일까? "영구 보유 종목의 기준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워런 버핏은 다음의 세가지 특성을 제시했다.

 

 "1)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높고, 2) 경영진이 유능하고 정직하며 3) 우리가 좋아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버핏, 43쪽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탁월한 안목이 돋보인다. '경영진이 유능하고 정직'해야한다는 조건은 '오너 리스크'가 높은 한국의 상황에서 너무도 탁월한 영구 보유 종목의 특성이다. 그런데, 버핏은 답변의 말미에 "좋은 사람과 어울릴 수 없다면 부자가 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라는 말을 덧붙인다. 돈에 노예가 되어 돈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돈을 벌어 들이는 워런 버핏의 인간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한 세번째 덕목은 돈만을 쫓기 보다는 좋은 사람(좋은 경영진)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다.

  네번째 덕목은 무엇일까? 단기적 시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결정하라. 라고 말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의 전망을 묻는 주주의 질문에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며,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시즈캔디는 1년 중 8개월은 적자를 기록합니다. 그러나 버크셔는 크리스마스 대목이 사라질까 봐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업의 향후 20년 실적을 생각합니다."-워런 버핏, 362쪽

 

  단타 주식 매매를 하며,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한국의 일부투자자와는 달리 워런 버핏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본다. 가치있는 기업의 주식을 장기보유하고, 단기 실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본다. 이러한 거시적 관점은 경영진을 평가할 때도 적용된다. 계열사 CEO에게 자율권을 주고, 단순히 수익만으로 업무를 평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단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회사에 피해를 주는 거래를 하는 사원도 자연히 없어지게된다. 거시적,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과 시장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는 보통의 투자자밖에 되지 않는다. 워런 버핏의 거시적, 장기적 관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도 적용된다.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며, 지금의 일이 미래를 위해서 유익한지를 판단해야한다는 교훈을 준다.

  겸손하라,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라, 좋은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아라, 거시적 관점을 갖아라 라는 워런 버핏의 투자 덕목은 투자의 세계를 뛰어 넘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도 많은 지혜를 제공해 준다. 이것이 '워런 버핏 라이브'를 읽는 이유일 것이다.

 

5. 투자시에 유의해야할 점은 무엇인가?

  한때 잘 알고 지냈던 체육쌤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주식에 자신의 재산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주식이 2천을 넘어 3천을 바라보고 있던 시절이라 모두가 주식을 하면 성공할 것 같은 신기루를 보고 있었다. 그 체육쌤은 자신의 전세를 주식에 투자했다. 주변 사람들이 '기어들어가 잠잘 집은 있어야한다'라고 말렸지만, '분산투자하면 돈을 못번다. 한방에 몰빵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라고 항변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에도 체육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체육쌤은 주식을 돈을 날렸다. 운동부 학생들의 합숙소에 들어가 잠을 자야하는 처지에 처해졌다. 여름에 너무도 더워서 자신의 돈으로 합숙소에 에어콘을 달기도 했다. 그 체육쌤에게 들려주고 싶은 워런 버핏의 조언이 있다.

 

  "잘 모르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워런 버핏, 102쪽

 

  잘 모르면, 투자하지 말라는 워런 버핏의 조언은 묻지마 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투자의 기본은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아야한다. 만약 이해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알 때까지, 이해할 때까지 투자를 미루면 된다. 이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워런 버핏은 기술주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기술발전에 의해 비즈니스 모델이 바뀔 위험이 있는 기업은 피하려고 노력합니다."-워런 버핏, 114쪽

 

  '이해하지 못한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의 연장선에서 신중한 투자를 하고 있다. 신기술을 파악하고 신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까지 예측하기란 힘들다. 그러하기에 워런 버핏은 기술주에 쉽게 투자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빌 게이츠가 추천해준 주식도 사지 않았다. 물론, 검증된 IBM, 아마존, 아이폰에만 최근 투자를 시작했다. 워런 버핏은 보수적 투자자였다. 세간에, 워런 버핏의 투자 1원칙은 '원금을 일치마라'이고 '2원칙은 1원칙을 잊지 마라'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는 주식과 회사를 잘 알 때까지 투자를 유보하자. 수영을 하지 못하면서 물에 뛰어든다면, 불행한 결과만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먼저 수영을 배우자.

  그렇다면, 투자를 하고 싶은데,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찰리 멍거는 이에 대한 조언을 다음과 같이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투자자라면 분산 투자를 해야 하지만, 전문가가 분산 투자를 한다면 미친짓입니다."찰리 멍거, 281쪽

 

  '투자의 목적은 분산 투자를 하지 않아도 안전한 투자 기회를 찾아 내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인덱스 펀드처럼 수익을 낼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계란은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투자 겪언을 리셋해야한다. 투자자의 전문서에 따라 분산투자와 집중 투자가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6. 현대 경제에는 부정한 방법이 난무하지 안나요?

  월가를 점령하라! 라는 시위가 전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적이 있다. 탐욕스러운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전세계를 위기에 빠뜨렸다. 미국 금융위기의 핵심 고리는 '파생상품'이다. 워런 버핏은 팟생상품의 위험성을 일찍부터 경고하고 있다.

 

  "파생 상품 거래량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폭발적인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서 금융시장이 커다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생 상품 시장 붕괴 위험을 피해 갈 방법은 없습니다."-워런 버핏, 1993년, 57쪽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정도를 지키지 않은 월가의 탐욕이 만든 비극이다.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는 오바마 행정보의 대책은 월가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월가에게 돈을 쏟아 부었다. 월가는 그 돈으로 많은 상여금을 주었다. 도덕적 해이가 심해진 그들의 탐욕스런 모습을 워런 버핏은 경고했다.

  월가의 악행은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었다.

 

  "대부분 악행은 악의가 아니라 잠재의식에서 비롯됩니다."-워런 버핏, 336쪽

 

  "남들이 모두 그렇게 했기"때문에 해도 된다는 관행이 악행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우리는 '관행'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관행'에 시비를 걸어야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있다. '파생상품'을 팔면서 이를 부도덕한 일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그들의 탐욕은, '기존 회계 시스템'에도 나타난다.

  상여금을 비용으로 처리 하지 않고, '옵션'은 주석에 밝혔다고 변명한다. 감가상각 비용을 회계에서 제외하는 "속임수에 가까"운 처리를 하며, "EBITDA 이익(이자비용(Interest), 세금(Tax), 감가상각비용(Depreciation&Amortization) 등을 빼기 전 순이익을)"을 기업의 이익이라 고 "뻥튀기"한다.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은 관행으로 굳어져 '문제 없다.'라고 인식되는 문제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기존 시스템의 오류를 정확해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에 존경심이 든다.

 

 

워런 버핏은 버크셔에서 성과보수를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미 돈이 많은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보수를 받을 이유가 있난요"-버핏, 160쪽

  "(빌게이츠, 스티브 발머) 이들은 주주를 이용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주주와 함께 부자가 되었습니다." 버핏, 160쪽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들여하는 버핏은 다시 태어난다 할지라도 '플레이보이'보다는 투자 서적에 더 흥분할 것이라며, 투자자로서의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 사랑과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기에 그는 훌륭한 투자자를 넘어서 위대한 투자자가 되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타인과 함께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그러면서 '동경하는 조직에서 근무하거나 존경하는 사람 밑에서 일하라.', '배우자를 올바르게 선택하라(완벽한 여성을 찾는 남성이 완벽한 여성을 만났으나, 그녀도 완벽한 남자를 착고 있음을 알아라)', '열정적으로 살아가라'라는 조언을 첨부한다. 주변 사람과 조직을 자신이 사랑하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관계로 만들라는 조언이다. 그래, 세상을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자. 이것이 워런 버핏이 우리에게 던져준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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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독립의 역사 - 독립기념일로 살펴보는
알파고 시나씨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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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매불쑈'를 통해서 알파고 시나씨의 목소리를 처음들었다. 박식하면서도 재미있는 캐릭터의 그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알파고는 왜? 한국에 왔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던중, 우연히 'YTN 세계를 만나는 시간, Now'에서 알파고 시나의 목소리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박식한 그의 방송은 금방 그가 쓴 책을 읽게 만들었다. '독립기념일로 살펴보는 세계 독립의 역사'라는 주제와 영국에서 부터 아프리카의 나미비아까지 독립을 위한 그들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와 관련시켜 설명하는 내용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자, 그럼 알파고의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애국계몽운동과 실력양성운동을 다시 바라보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살피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항일 무장 투쟁이다. 그에 비해서 소극적이며, 심지어는 일제에 타협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던 애국계몽운동 혹은 실력양성운동에 대해서 평가절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예를 들어 애국계몽운동 혹은 실력양성운동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알파고 시나의 주장은 달랐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중심으로 그리스를 비롯한 강대국에 군사적으로 맞서 승리를 거둔 터기와 무장 투쟁과 실력양성운동을 동시에 펼친 한국을 비교한다. 타국의 독립운동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우리는 교육을 강조했다는 점이라 알파고 시나는 주장한다. 항일 무장 투쟁에 비해서 가시적인 행동이나 성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기에 교육을 중심으로한 실력양성운동은 평가 절하를 당하기 쉽다. 그래서, 실력양성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일제와 타협하려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강한 나라가 약한나라를 식민지로 삼는 것을 합리화시켜주는 사회진화론에 매몰되었던 운동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일제에 비해서 앞도적으로 열악한 무기와 경제력 차이는 극복되어야할 과제였다. 일제와 맞서 싸울 경제력을 길러내고, 일제와 맞서 싸울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장기적 항일운동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운동이다. 이스라엘이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렸지만, 국가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교육에 있었다. 낮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로 장사를 했고, 밤이면 히브리어로된 토라와 탈무드를 읽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역사를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교육시켰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교육이었다. 숲안에 있는 사람은 나무는 볼 수 있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숲밖에 있는 자는 나무는 자세히 볼 수 없으나 숲은 볼 수 있다. 알파고 시나는 우리에게 한국 독립운동의 숲을 보여주었다.

 

2.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독립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항일운동을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은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독립할 수 있었을까?"라는 반론을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알파고 시나는 일본이 패망했어도 독립하지 못한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1945년 이승만은 "류큐국도 언젠가는 독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독립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차별을 받으며 류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채 일본의 부속품으로 살고 있다.

 

  "오키나와 상황만 보더라도 일본군의 철수가 독립을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군사 철수 이전에 민족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삼일절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한국의 민족의식을 탄생시킨 사건이자 독립으로 가는 첫발이었던 것이다."

 

  알파고 시나는 '한국의 민족의식'이라고 표현했으나, 나는 '독립정신'이라 표현하고 싶다.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정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제가 패망했다하더라도 일본의 부속품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류큐왕국이라는 독립국가로 존속했던 오키나와는1879년 일본에 병합되고 1945년 이후 미국의 영토였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역사이다. '민족의식'이 없었던 류큐는 독립국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피흘리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숭고한 피를 흘린 우리 독립운동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3. 알파고의 '옥의 티'!!

 알파고 시나가 우리의 역사를 서술하다보니 '옥의 티'가 보인다. 그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명성황후의 사진으로 인정받은 사진은 현존하지 않는다. 일부학자들은 일제의 암살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알파고 시나는 과거 진위논쟁이 벌어지다가, 명성황후의 사진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진을 책에 실었다.

  둘째, "쇄국정책"이라는 용어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으로 수정해야한다. 우리는 중국을 비롯한 일본과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단지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포함외교에 저항하며 그들이 요구한 '통상 수교'를 거부했을 뿐이다. "쇄국정책"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제 식민사학의 냄새가 나는 용어이다.

  셋째, "구한말"이라는 용어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일제가 '대한제국' 시기를 낮추어 부르기 위해서 사용한 단어가 "구한말"이라는 용어이다. 즉, '한말'이라는 말은 '대한제국 말기'라는 듯이다. '구한말'은 '옛날 대한제국 말기"라는 뜻으로 이미 망해버린 대한제국에 대한 경멸적인 의미가 담긴 용어이기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넷째, 한국의 항일 무장 투쟁을 설명하면서 1920년대의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전투, 1930년대 대전자령 전투와 흥경성 전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 항일 투쟁도 언급했다면 책의 깊이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알파고 시나는 책을 마무리하면 우리가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투쟁하던 시기의 역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나라를 잃은 1910년 8월 29일부터 전국으로 독립을 외쳤던 1919년 3월 1일 그리고 독립전쟁을 하고 광복을 획득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수치스러운 사건부터 자랑스러운 일 등 그 기간에 일어난 모든 일을 다 기억해야한다. 그래야 오늘날 떳떳하게 휘날리는 태극기와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246쪽

 

  오늘 우리 자신을 바로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한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나의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기억 때문이다. 바로 우리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할때 역사는 살아 숨쉴 수 있다. 알파고 시나는 그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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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와 만나다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3
전호태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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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만주벌판을 호령하는 고구려인!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기를 많은 사람들이 고대한다. 웅장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남긴 무덤속에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그 속에는 천여년 동안 잠들어 있는 고구려인들이 다시 깨어나 우리 앞에서 살아 숨쉰다. 그렇게 만나고 싶은 고구려인들이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의 절반은 북한에, 나머지 절반은 중국에 있다. 북한은 분단 때문에, 중국은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 때문에 자유로이 고분벽화에 다가갈 수 없다. 이제 '고구려 고분벽화와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서라도 채울 수 없는 갈증을 채워보자.

 

1. 중국과 다른 또 다른 천하!

우리들은 흔히, 고구려 고분벽화도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활발히 교류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그러나, 중국 남북조 고분 벽화와 고구려 고분벽화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지안 국내성 지역 후기 고분벽화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하늘의 신인과 문명신들이 같은 시기 중국 남북조 고분벽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에서는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이었으나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중략) 6세기 이후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제가 사신이었던 것과 달리 중국에서는 여전히 생활풍속이었고 사신은 주요한 제재의 하나로만 여겨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우주적 방위신이 보호하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가 묘사되었지만 중국 고분벽화에는 현실의 연장에 존재하는 내세가 그려진다." -96쪽

 

고구려인의 정신세계는 중국과 달랐다. 고구려인들은 주변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 세계를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렸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주장하는 중국학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구려가 고구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광활한 만주 벌판을 누비며 초원길을 비롯한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주변의 문화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풍성한 식재료가 더해진다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수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분벽화에서 하늘 세계를 받쳐 드는 우주역사라는 존재도 불교문화와 함께 동방에 전해진 관념이자 표현이다. 삼실총과 장천1호분 벽화의 우주역사는 전형적인 서역계 인물이다. 간다라 불교 사원 장식의 일부를 이루는 역사들과도 모습이 일맥상통한다. 조형 특징상 중국 한나라 시기 비단그림 속의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중략) 이런 식의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인물 표현을 같은 시기 중국의 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초원길을 통해 동방세계에 전해진 서역미술의 영향으로 볼 수밖에 없다."-78~79쪽

 

만약 고구려가 중국에서만 문화를 수입했다면, 고구려인들의 세계관은 중국에 얽매여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인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들의 유연하면서도 힘찬 모습은 중국뿐만 아니라 초원길을 통해서 중앙아시아와 서역의 문화를 흡수했다. 그리고 그 문화를 고구려인들만의 방식으로 융화시켰다. 이것이 고구려인들만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2. 사라지고 있는 고구려인의 모습들

천여년을 무덤속에서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 있었던 고분벽화가 20세기 초부터 이뤄진 조사와 발굴로 인해서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발굴 조사를 계기로 벽화고분 보존 환경이 이전처럼 유지되지 못하자 고분벽화는 빠른 속도로 훼손되면서 원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무덤 칸 온습도의 심한 변화였다. 보존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무덤 칸의 벽과 천장, 바닥에 이슬이 맺혔다가 마르는 현상이 되풀이되었다. 이 과정에서 안료가 녹아내리거나 변색되고 벽화가 그려진 곳에 곰팡이가 피어났다. 수분과 백회, 안료가 상호 반응을 일으키면서 염화칼슘과 탄산칼슘이 생성되어 벽화를 덮어 버리는 현상도 나타났다."-38쪽

 

발굴은 파괴라는 말이 있다. 발굴을 하지 않으면 고구려인들과 만날 수 없고, 발굴을 통해서 고구려인을 만나면 고구려인들이 남겨 놓은 벽화를 훼손시킨다. 발굴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학술적 발굴을 하고 나서는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철저한 보존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중국 학자들이 화학안료를 뿌려 얇은 막을 형성시켜 보존하려 했다가, 고분벽화가 변색되고 사라지는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보존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고분벽화를 철저히 파괴시켰다. 그렇다면 근본적 대책은 무엇인가?

 

"고구려 벽화고분 보존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처음 만들어지던 상태로 돌이키는 것이다. 고분과 벽화에 대해 가능한 상세한 기록을 확보한 뒤,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하도록 폐쇄하는 것이다. 무덤 칸 내부의 온습도가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려면 불가피한 방법이다. 수산리벽화분의 사례와 같이 이미 훼손의 정도가 심해 벽화층이 벽과 천장에서 떨어져 나왔을 경우, 장기간 원형 복구 작업을 진행하여 석회층을 벽과 천장에 접합시키고 무덤을 폐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39쪽

 

'무덤을 폐쇄'하는 것이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존하는 가장 근본적이 대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분벽화를 직접 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는 우리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귀중한 보물일지라도, 우리 문화재는 반드시 후손에게 전해져야한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 고구려인과 만났다.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도 고구려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한다. 근본적인 보존대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라스코 벽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일반인들은 라스코 벽화를 모사해 놓은 곳을 보도록 하여 벽화를 보존하는 외국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분벽화는 강서대묘의 사신도이다. 힘차게 혀를 내밀며 하늘을 바라보는 거북과 뱀의 모습이 대립되어 보이면서도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는 현무의 모습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고구려인들만의 방법으로 융화시키는 고구려인의 문화적 포용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힘차게 앞발을 내밀며 날아가는 청룡과 백호는 힘찬 고구려인의 기상을 떠오르게 한다. 벼슬을 높이 치켜들고 힘차게 날개짓하는 주작의 모습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 동북아를 호령하는 고구려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들과 대화하듯 그들과 만나게한다. 중국과 다른 고구려인들만의 아름다움과 힘찬 기상을 우리 가슴에 새겨준다. 그 고분벽화가 과감한 보존정책이 수립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지기를 두손 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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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동화 - 고민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우에사카 도루 지음, 방승조 그림, 장윤정 옮김 / 나무한그루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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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에 대한 재해석이 진행되고 있다. '선녀와 나뭇꾼'은 선녀의 입장에서는 여성 납치 결혼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효녀 심청'은 효를 이용한 인신매매와 살인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같은 책이라하더라도 시대에 따라서,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반전동화'를 선택했다.

 

1. '토끼와 거북이'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선

  '토끼와 거북이'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동화이다. 노력이 중시되는 산업화 시대에 알맞은 동화인다. 그런데, '토끼와 거북이'는 많은 재해석이 가능한 동화이다. 이 책의 저자 우에사카 도루는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토끼가 거북이만을 보고 달린데 반해서, 거북이는 목표지점을 보고 달린 차이가 있다. 이 동화의 교훈은 '목표를 주시하라',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라'라이다. 이것이 우에사카 도루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해석도 산업화시대의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해석이라는 느낌이 든다.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목표지점만을 보며 열심히 달리라는 말은 산업화시대에 딱 어울린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른 해석이 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반전 동화이다. 토끼는 거북이를 사랑했다. 항상 패배를하며 어깨가 축쳐진 거북이를 위해서 토끼는 경주를 제안한다. 경주가 시작되고 얼마후, 한참 뒤쳐진 거북이를 위해서 토끼는 낯잠을 자는 척한다. 거북이가 결승선에 다다를때쯤, 토끼는 일어난 허겁지겁 뛰었다. 그리고 거북이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 뒤따라 결승선을 통과했다. 승리에 기뻐하는 거북이를 보면서 토끼는 기뿜의 눈물을 토끼몰래 흘린다. 거북이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배려하는 토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재해석이다. 진정한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하는 이 반전동화가 가슴에 와 닿는다.

 

2. '개미와 베짱이'를 달리해석해보기.

  '개미와 베짱이'도 산업화 시대에 알맞은 동화이다. 열심히 노동해서 생산량을 늘려야한다는 자본가의 관점이 녹아있다. 우에사카 도루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즐기는 베짱이 모두를 이룰 수 있는 '소득을 계속 창출해 낼 수 있는 기술의 습득'과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석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에사카 도루가 주로 경제인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영향으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동화를 해석하다보니 한계점이 분명히 보인다.

  개미는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이며, 베짱이는 지금의 욜로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개미의 삶을 권장했다. 그러나, 고도성장이 멈춘 현실에서 개미의 삶을 강요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젊은이가 얼마나될까? 열심히 준비한다고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베짱이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문화 예술 산업을 발전시킨다. 굳이 BTS를 예로들 필요도 없다. 새로운 산업의 먹거리가 된, 문화 예술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베짱이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필요하다. 이것이 나의 관점이다.

  우에사카 도루는 '저축만이 능사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일본인은 죽을 때에 평균 약3천만엔의 유산을 남긴다."고하니, 일본인의 개미근성은 놀랍기만하다. 그러나, 모으기만하고 쓰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의 어머니 세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만취해서 세간살이를 부수어도 어머니는 남편을 달래며 가정을 지켰다. 남편이 떠나고 난 후에도 어머니는 모아 놓은 돈을 쓰시지 못한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오면서 만약을 대비해야한다는 그분들의 "교훈"을 벗어던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도 소비를 잘하는 자녀세대의 모습을 바라보며 훈계하는 어머니를 보며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 아득함이 든다.

 

3. '지푸라기 백만장자' 읽기

  한국에 좁쌀 하나로 정승집 딸과 결혼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도 지푸라기 하나로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한 이야기가 있다. 이 동화를 통해서 우에사카 도루는 "장기적인 계획 없이도 화려한 직업 경력을 쌓다."라는 교훈을 이끌어 낸다.

  성공하는 길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준비하고 경로를 밟아 성공하는 경우이다. 보통 우리가 성공을 하려면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들 생각한다. 대부분의 성공관련 서적들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두번째는 하루하루를 열심히하는 방법이다. 치밀한 계획과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덧 높은 자리에 이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사실 나의 인생을 보더라도 청소년시절 나의 꿈은 역사학자였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역사학자로 귀착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니, 역사 교사라는 직업을 얻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할지라도 현실은 냉혹하다. 수많은 변수들 사이에서 새로운 경로 수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에사카 도루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적어도 목표는 설정해야하지않을까? 배가 항구를 출발했는데, 목표가 없다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절차와 경로는 때에 따라서 수정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

 

  '반전동화'는 간단히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우에사카 도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많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기뿜도 만만치 않다. 우리 동화라고 알고 있었던 '금도끼 은도끼'는 외국 동화였으며, '혹부리 영감'은 일본 동화였다.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오늘!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동화를 읽으면서도 이 동화의 국적을 따져야만할까? 동화를 통해서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에사카 도루의 글귀에서 가장 동의하기 힘든 구절이 있다.

 

  "유전자를 분석해봐도 일본인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데, 보수적 성향이 강할 수록 배타적이 되기 쉽다."-45쪽

 

  '유전자를 분석'해서 어떻게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를 알 수 있는가? 우에사카 도루의 주장데로라면, 사람은 태어나면서 보수와 진보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단 말인가? 과학을 가장한 매우 편협한 선입견을 보면서, 저자의 수준에 한숨을 내쉰다. 새로운 관점에서, 다른 시선으로 동화를 해석한다는 이 책의 취지가 이 글귀 하나로 심각하게 퇴색했다. 우에사카 도루의 글귀에서 '우생학'과 '진화론'이라는 과학을 이용해서, 아프리카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은 백인 제국주의 국가와 '사회적으로 열등한 자'는 '독일인을 위해서 죽어야한다.'는 히틀러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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