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정도를 달렸다. 강변의 조깅 코스에 사람이 1도 보이지 않고 바람이 없으면 그나마 뭔가에 수긍하며 적응을 하며 달리겠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면 아무 생각이 없다. 진정 아무런,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정말 머리에서 생각자체를 아예 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한파 속, 바람이 심한 날 달려보는 걸 권합니다.
여기는 남부지방이고 눈은 거의 볼 수 없는 곳이라 윗지방의 한파보다는 덜 춥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조깅을 할 때 다리는 얇은 레깅스 한 장에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데 조깅을 하면 몸이 달아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런데 며칠 동안은 정말 추웠다. 장갑을 끼고 조깅을 했지만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프고 감각이 없어서 조깅이 끝나고 들어와서 손이 녹으면서 검지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아직까지 불에 댄 것처럼 꾸덕꾸덕한 느낌이 드는 게, 여기서 심해지면 동상이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건, 참으로 이상한 건 2018년에도 한파가 왔고, 그때에도 몇 년 만에 한파 같은 뉴스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그때에도 조깅을 했다. 조깅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글을 보면 강에 얼음이 꽁꽁 얼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정말 추워! 가 절로 나와는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조깅을 하면 몸이 후끈해져서 마지막 까지 훅훅하며 달려서 들어왔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춥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요 며칠 한파라고 하지만 2018년처럼 강물에 심하게 꽁꽁 얼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때보다 이렇게 추운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이다.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사람들도 그때보다 지금이 더 춥다고 하는데 이유는 그때에 집 안의 보일러 온도가 요즘처럼 이렇게 내려간 적은 없었다고 한다. 2018년의 한파에는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지만 요즘의 한파에는 저 어디서 불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체감이 더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엊그제는(검지 손가락의 감각이 없을 때) 얼마나 추웠는지 조깅을 하고 들어오면서 찐빵을 사 왔는데 사들고 들어오는 10분 만에 그 뜨거운 찐빵이 싸늘하게 죽어 버렸다. 게임오버였다. 아무튼 추운 것이다. 추운 날 조깅을 하면 분명 그에 대한 보상이 따랐다. 몸이 달아오르며 심장이 펌프질 하여 뿜어내는 피가 혈관을 타고 마구 돌아다니며 손끝과 발끝으로 퍼지는 그 기분을 느끼는 것도 아주 좋고, 다리가 추웠다가 한파에 적응이 되어 가는 것도 좋고, 한파가 불어닥쳐 모든 것이 차갑게 변하는 강변의 풍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요 며칠 동안 폰 화면 터치는 하고 싶고 장갑은 벗기 싫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그저 달리는 와중에 근간에 들은 이야기들이 추위와 함께 떠 다녔다. 3교대를 하는 직업이거나 밤을 새우는 직업을 가진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멋있음을 따라한 사람이 박영규가 아닌가. 박영규가 예전 카멜레온을 부를 때는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의 한국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뻐꾸기는 탁란을 한다. 욕정이 타오르는 여자의 해소가 불가피할 때 여성은 비극의 시인이 된다. 삶은 포기하는 게 아니야.
이런 맥락도 없고 근간에 들은 이야기들이 이미지가 되어 한파 속 조깅을 하는데 나의 동무가 되어 주었다. 뻐꾸기 얘기가 나왔으니 세상에서 가장 얄미운 생물이 있다면 뻐꾸기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뻐꾸기는 탁란을 한다. 자신이 알을 품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뻐꾸기 지 알을 맡긴다.
그런데 아무 새의 둥지에 맡기는 게 아니라 모성애가 아주 깊은 새의 둥지를 골라서 그 안에 자신의 알을 넣어둔다. 그때 자신을 알을 넣는 대신 원래의 알을 밖으로 버려서 깨버린다. 참 못된 놈이다. 더 기묘한 건 그 안에서 뻐꾸기 새끼가 부화를 하잖아? 그러면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갔을 때 원래 새의 새끼를 뻐꾸기 새끼가 밀어 내서 떨어트려 죽여 버린다.
본능적으로 그 짓을 하는 것이다. 그때 다른 새끼를 밀어 내기 좋게 뻐꾸기 새끼의 등에 오목하게 되어 있어서 그 오목한 곳으로 원래 새의 새끼를 담아서 밀어낸다. 유전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은 새가 뻐꾸기다. 그렇게 붉은 머리오목눈이 같은 모성애가 강한 새가 뻐꾸기 새끼를 자기 아기로 알고 열심히 키우는데 다 크고 나면 새끼가 어미의 몸 세 배나 된다. 그래도 먹이를 찾아와서 먹이는 아주 이상하고 얄궂은 세계에 뻐꾸기라는 놈이 있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는 키도 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데다 노래까지 너무나 멋지게 부른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가 '헤이'를 영어보다 더 꼬부라진 스페인어로 부르면 뭇여성들이 그저 넘어가버린다. 여성들이 모이면 홀리오 이글레시아의 칭찬을 하는 바람에 뿔이 나버린 사람이 하루키가 아닌가.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나는 그 인가 있다는 가수가 싫다’라는 챕터에서 홀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멋지고 잘 생긴 탓도 있고 노래도 잘 부르지만 사상적으로 텅 비어 있다는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사실 근본 없이 하는 게 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근본 없는 음식이라든가. 근본 없이 처음 시도하는 영화라든가, 즉 형식의 굴레에 들어가 있지 않고 비록 하늘에 한 번 선을 긋고 사라질지라도 궤도에서 이탈하는 별똥별에 사람들은 열광할지도 모른다. 옆에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삽화가 더 적극적으로 비꼬움을 웃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루키: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홀리오 증후군의 여성들은 “그럼요, 무라카미 씨야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고 악의에 찬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왠지 내가 유달리 미남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맞다(웃음). 하루키는 미남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건 비록 하루키뿐만 아니라 보통의 얼굴?을 가진 남자들은 미남 연예인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여자들은 끊임없이 김태히와 송해교를 자신과 비교하며 누가 더 우월한 얼굴을 가진 지 꼭 묻지만 남자들은 또 그러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있는 진실을 입 밖으로 전부 내뱉을 수 없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의 아들 이야기다. 아들도 스페인의 유명 가수인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다. 얼굴도 잘 생기고 명문 캠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종횡무진 활동한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키도 190이 넘고 멋지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수지만 아버지만큼 인기가 없다.
그런 엔리케는 아버지와 사이가 무척 안 좋기로 유명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엔리케라는 이름이 우리가 들으면 그럴싸하고 멋있지만 우리로 친다면 철수, 만수처럼 그저 재빨리 지어 버린 그런 이름이다. 아키코, 러시아의 쏘냐 같은 이름이다. 명자, 순자처럼 촌스럽다고 느끼는 이름이 엔리케 라는 이름이다. 홀리오 같은 슈퍼스타는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한다. 그러다 보면 여성들과 많은 만남을 가진다. 그러다 보면, 까지만 말하자.
아무튼 하루키는 이래저래 홀리오 이글레시아시를 질투한다. 여성들이 모이기만 하면 하루키 얘기가 아닌 홀리오 얘기를 하니까. 어쨌거나 올해도 남은 날들을 쉬지 않고 조깅을 한다면 360일 이상 매일 한 시간 이상 조깅을 한 셈이다. 나는 그렇게 빠르게 달리지 않아서 조깅을 하다 보면 열심히 달리는 조깅무리에게 따라 잡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끝까지 걷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날씨에 굴복하지 않고 아직까지는 매일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