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단팥죽보다 팥죽이 좋았던 나는 일주일 내내 팥죽만 먹으라고 해도 넵! 하며 대답을 할 정도였다. 나에게는 그런 음식이 몇 있다. 사람들은 질린다는데 절대 질리지 않고 몇 날 며칠을 매일 먹어도 좋을 음식들.


나는 카레도 그런 음식이라 일주일 내내 질리지 않고 먹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대학교 때 자취할 땐데 친구들은 일주일 내내 카레만 먹는 나를 보며 몸에서 카레 냄새난다고 실부라 했지만 자취에 찌든 홀아비냄새나는지들보다 나았다. 고 생각했다. 뭐 도긴개긴이지만.


팥죽에 동치미 무는 정말 찰떡궁합이다. 따뜻한 팥죽을 먹고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고 무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나에게 있어 가장 완벽한 팥죽먹기다. 팥죽을 먹을 때에는 붉은 김치 말고 열무김치나 동치미가 잘 어울린다. 뭔가 과학적이거나 이유는 없다. 그저 그런 느낌일 뿐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팥죽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 말은 어릴 때에도 팥죽은 집에서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에도 단팥죽이나 호박죽보다는 그냥 팥죽을 좋아했다. 역시 외할머니 때문이었다. 나의 외할머니.


이 세상에 외할머니는 딱 한 명뿐이다. 할머니는 많지만 외할머니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


나의 외할머니에게는 많은 손주들이 있었지만 유독 나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은 내가 4, 5살 즈음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2년 정도를 같이 살게 되었다. 매일 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그럴 때 외할머니는 나를 달래야 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사진을 보면 나는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하면 나는 멀리서 온 엄마 없는 놈이라고 따돌림을 당해서 아이들에게 덤벼들다 맞아서 울었다. 그럴 때 외할머니가 원더우먼처럼 나타나서 나를 구해 주었다.


할머니는 울고 있는 나의 등을 슬슬 문질러 주며 팥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 주었다. 처음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고 싫어 죽을 것 같은, 팥 맛만 나는 팥죽이었는데 어느 순간 외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팥죽을 맛있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3,40분 정도 걸어서 전통시장까지 가서 팥죽 골목에 앉아서 팥죽을 먹곤 했다.


그 팥죽골목이 아직까지 있어서 조깅을 하고 오면서 둘러 오더라도 그곳으로 오곤한다. 그곳에 가면 외할머니의 등이 보이기도 하고, 나란히 앉아서 팥죽을 먹으며 웃던 외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팥죽을 한 숟가락 떠먹고 나면 외할머니는 동치미 국물을 꼭 먹였다. 혹여 팥죽이 목 막히게 하지나 않을까 싶어 동치미 국물을 떠 나를 먹였다. 나의 완벽한 팥죽 먹기는 이렇게 형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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