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밖은 몹시 춥고 내가 있는  안은 아주 따뜻해서 창밖의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함이 드는커피를 홀짝이며 흘러나오는   없는 음악을 듣는 오전의 시간이 아주 좋다하루  오전 10시에서 11 30 사이의 시간이 하루  제일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라디오를 들으면 오전의 디제이들이 오전에 어울리는 멘트를 마치 친구처럼 한다커피를 마시며 맨하탄스나 시카고의 음악을 들으며 창을 투과하는 햇빛에 잠시 졸음에 겨워 노곤함이 들다가 오래된 팝에 추억에 젖기도 한다 시간에 나오는 음악은 소녀스럽다요란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고 들으면 미소 짓게 한다.

이 시간이 더 좋으려면 아직 이불 안이어야 한다. 창으로 바람이 와서 부딪혀 비명을 지르고 커튼을 조금 걷은 창으로 해가 들어와 방 안에 요만큼의 자리를 만든다. 햇빛 따위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이불 안에서 몸을 말고 오전 9시부터 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미미하게 잠에서 깨었다 들었다 한다.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나직하게 멘트를 한다. 나는 몸을 한 번 옆으로 뒤집는다.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이불에 닿는 감촉이 좋다. 디제이는 오전에 계란 프라이를 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기름에 계란이 그러데이션을 이루며 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을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지글지글 계란이 부풀어 오르면 노른자를 깨트리지 않고 밥 위에 올려 맛간장을 위에서 몇 방울 떨어트려, 까지 말했을 때 침이 꼴깍 넘어간다. 곧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 나온다. 그러면서 나는 기반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상은이 부르는 ‘삶은 여행’은 깊이 있는 노래다. 이 정도의 노래를 만들려면 경. 험.을 하지 않고서는 가사를 만들 수 없다. 좌절을 맛보고 절망을 벌리고 들어가서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희망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가사다. 삶은 여행과 삶은 계란의 ‘삶’이라는 글자는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명사와 ‘삶다’라는 동사는 비슷한데 다르다. 따지고 보면 ‘삶’과 ‘삶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익어가면서 영글어 가는 명확함이 있다. 그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하고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명확함의 관념은 달라진다. 거기에 ‘기반’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보통 ‘기반을 잡는다’라는 말을 왕왕한다. 기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반이라는 단어와 의미에 대해서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며 기반이란 계란 프라이 같은 기. 본. 반. 찬.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기본 반찬을 챙겨 먹는 것이 기반이 좀 잡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기본 반찬을 매일 챙겨 먹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 끝나는 ‘삶은 여행’을 계속 듣고 있으면 조금은 불안하다.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두려움이 따라붙는 것처럼 행복 속에 싹트는 껄끄러운 불안이 고개를 든다. 늘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해지는 게 나은 삶일까, 썩 행복하지 않다가 한 번 행복해지는 것이 나은 삶일까.


‘삶‘이라는 단어를 떨어트려 놓으면 ‘사람‘이 된다. 사람의 ‘ㅁ’과 ‘ㅁ’이 만나면 부딪혀 깎이고 깎여 시간이 흘러야 ‘ㅁ’이 ‘ㅇ’이 되어 사람은 사랑이 된다. 삶이란 하루를 삶아 가는 행위가 모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인간의 긴 여행이고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난다. 소중한 널 잃는 게 두려워서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 만은 않다.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도 없다. 하지만 노래처럼 이젠 알 수 있을 때가 온다.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는 걸.


이상은의 노래가 끝이 나고 팝이 나온다. 러쉬러쉬다. 폴라 압둘의 노래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에 아주 젊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다. 물론 폴라 압둘도 예쁘고 섹시하다. 어린 키아누 리브스와 폴라 압둘의 사랑 이야기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다. 아침에 이불속에서 듣기에 좋은 노래다. 오전의 디제이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까지 집에 있다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시간을 이렇게 즐기는 건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 시절까지 간다. 겨울방학이면 늦게까지 잠을 잤다. 라디오를 달고 살았기에 오전의 라디오 소리에 눈을 반쯤 뜨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멘트와 노래를 들으며 오전 10시를 즐긴다. 그때에도 오전의 그 시간에는 팝이 흘러나왔다. 비틀스가 나왔고, 라이쳐스 브라더스가 나왔고, 건스 앤 로지스의 패인션스가 나왔고, 머틀리 크루의 홈 스위트 홈이 나왔고, 마이클 볼튼이 나왔고 리처드 막스가 나왔다. 그때 들었던 팝들을 지금도 지치지 않고 듣고 있다니.


오전에 듣던 음악을 오후에 친구와 만나 팝에 대해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각자 앨범을 들고 와서 하나씩 교환해서 들어본다. 녀석은 핑크 플로이드를 들고 왔다. 로저 워터스가 나가고 데이빗 길무어가 이끄는 핑크 플로이드 야. 하며 나에게 들어보라며 준다. 나는 제랄드 졸링을 준다. 녀석의 눈빛이 변하며 뭐지? 왜지? 같은 말을 계속 내뱉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메탈리카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메가데쓰를 만들어 록을 박살 내는 데이비드 머스테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히스테리아 앨범을 세계적으로 팔아치운 록의 전설 데프 레퍼드의 드러머 릭 엘런이 교통사고로 팔이 한쪽 잘려 나가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 되기 일쑤다.


내가 사진부라서 우리는 학교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 몰래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음악을 들었다. 암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캡틴큐나 소주를 홀짝이며 듣고 싶은 팝을 열심히 들었다. 학교에서 쫓겨나면 단골 투다리에서 술을 마시며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도대체 몇 살 때부터 마신 것일까. 우리는 XX여고 문예부 아이들과 교류를 하고 있어서 그 애들과 일주일에 삼사일은 같이 보냈다. 사진을 찍고 인화 작업을 하고(흑백 사진은 물약 두 개로도 인화가 가능하기에) 사진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만들고 그걸 각 학교의 교지에 들어가게 편집을 했다. 그런 작업을 어딘가에 모여서 해야 한다. 단골집을 만들어야 했고 자주 가는 카페와 투다리와 카나리아 통닭집에서 우리는 맥주나 소주를 마시며 작업에 매달렸다. 일종의 거창하지 않은 사교모임인 것이다. 우리의 모임을 부러워했던 몇몇이 끼었다가 대화에 가제보니, 제니스 이안이니, 귄터 그라스니, 하루키 따위의 시시한 이야기가 이어지니 가버린 녀석들도 있었다. 모이면 겨울방학의 오전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불속에서 아코디언처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지치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우리는 그런 데서 재미를 찾았다. 그 속에는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의 행복한 오전의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병실생활을 할 때 간이침대에서 선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면 9세의 기운 좋은 남자아이가 몽둥이로 여기저기 때린 것처럼 몸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일을 하러 나가는 사이에 라디오를 들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팝인데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마치 나의 비참함을 놀리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노래들이 나왔지만 그저 흘러가는 물에 종이배를 띄워놓은 것처럼 그렇게 시간을 따라 의식이 이동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중환자 가족이 지낼 수 있는 방에서 잠이 들었다. 겨울이었다. 아버지가 12월 31일에 눈을 감았는데 그 주에 몹시 추운 한파가 몰아쳤다. 중환자 가족이 지내는 방은 마치 자연재해로 인해 동네 체육관이나 마을 회관이나 노인정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과 흡사했다. 그저 큰 방이 하나 달랑 있다. 보일러를 켜놔서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저 심하게 추운 밖보다는 괜찮은 정도였다.


방의 저쪽에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작은 플래시를 켜서 공부를 하는 학생의 모습도 보였고 그 옆에서 엄마가 잠이 들어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뜨거운 물을 마시는 가족도 있고 귤을 까먹고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도 있고, 할머니가 손주가 잠든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덩그마한 방에는 인터폰 전화기가 있었는데 그 인터폰을 받고 가족이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 반 이상은 그대로 집으로 갔다. 이미 인터폰으로 전화를 받을 때 반응하는 환자가족의 목소리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났다. 12월이라 중환자실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병원 밖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시기였다. 12월은 춥지만 따뜻한 계절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기에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들과 더 가까이 붙을 수 있는 계절이 12월이다. 하지만 중환자 가족에게는 그 모든 게 사치다.


그 방은,

병원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작은 현관 같은 곳이 있어서 신발을 벗고 단을 올라가서 이불을 깔고 잠이 들면 된다. 나는 이불이 없어서 신발을 벗지 않고 신은 채 현관에 다리를 내고 겨울 패딩의 자크를 목까지 올리고 잠이 들었다. 말 그대로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다. 새벽 5시가 되면 방안에 돌던 보일러가 꺼진다. 그러면 냉기가 온몸을 침투해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온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불이 없는데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손주가 덮었던 이불을 나에게 덮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 중환자실의 생활도 2주나 했다. 그때에도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의 라디오를 들었다. 그때 팝을 들으며 이 시기가 지나 다시 듣는 오전의 라디오를 행복하게 생각하리라. 그런 다짐 같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오늘도 지디(정지영 디제이)를 지나 현디(김현철 디제이)의 골든 디스크를 들으며 아아 좋은 시간이다.라고 생각을 한다. 악착같이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에 커피를 마신다. 샷을 추가한 텀블러의 커피를 홀짝이며 라디오를 듣는다. 삶은 여행이고 좋은 여행도 있고 기분 안 좋은 여행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 안에서 오전 10시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하루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라디오에서 반 헤일런이 캔 스탑 러빙 유를 부른다.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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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팡지게 추운 날이라고 분 당 간격으로 예보가 나왔다. 춥긴 추웠다. 시린 냉기에 머리가 띵 해지는 날이다. 하지만 늘 생각하건대 겨울에는 이렇게 추워야 맛이다. 머리가 띵하게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겨울에만 가능하다. 이런 느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겨울에 목욕탕에서 뜨겁게 목욕을 하고 창에 얼굴을 대면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목욕을 다 끝내고 아버지와 밖으로 나오면 머리가 띵 한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무척 추운데 시원한 느낌. 그래서 겨울에는 며칠이라도 욕이 나올 정도로 추워야 좋다.


영화 속에도 그런 느낌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 영화 ‘환상의 빛’에서 유미코가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여니 설원이 펼쳐졌다. 겨울의 하이얀 그 차가운 냉기가 뜨거운 방 안으로 들어와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 또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영화 ‘클래식’에서도 준하가 주희와 편지를 주고받는데 시골집에서 방문을 열면 겨울의 냉기가 준하의 까까머리를 시원하게 한다. 무척이나 추운데 시원한 느낌은 겨울에만 가능하다.


한파가 오기 바로 전 날에는 초미세먼지가 최악이라고 분 당 간격으로 예보가 나왔다. 미세먼지가 점령한 날은 대기에 가스층이 두터워 밤인데도 밤하늘이 까맣지 않고 뿌연 청록색이었다. 그런 날에는 달리면 땀이 너무 났는데 한파가 온 날에는 등이 조금 젖을 정도다. 그래서 땀이 식기 전에 들어와야 해서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한파가 오는 날에는 달릴 때 힘과 보폭 같은 것을 계산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반환점까지 달리는데 기운을 다 써버려 돌아올 때 걷거나 천천히 와버리면 땀이 식어서 감기에 걸릴지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 년 전 한파가 왔을 때보다는 덜 추웠다.이때에는 강물이 꽝꽝 얼었고 마스크 위로 입에서 올라오는 김이 눈썹에 닿아 얼었다. 그리고 레깅스를 두 장을 껴 입고 조깅을 한 덕분에 다리를 잘 구부릴 수도 없었다. 너무 추워서 음악 따위 듣게 되지도 않았다. 그저 등에 땀이나 났으면 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렸다.


그에 비하면 이번 한파는 엄청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람도 덜 해서 10분만 달리면 몸이 후끈하면서 차가운 냉기와 몸에서 나오는 열기가 마찰을 일으켜 묘한 온도 감을 느낄 수 있어서 겨울에도 달리는 묘미가 있다.


한파가 와서 사람들이 안 나올 것 같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많이 나와서 걷거나 달린다.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묘미를 아는 사람은 한파가 오는 날이라고 해서 아이구 추우니 집에서 쉬어야지, 하지는 않는다. 강변을 영차영차 달려 종합운동장으로 가면 더 달리는 맛이 난다. 이곳은 비가 오나, 한파이거나 폭염이거나 코로나가 덮치거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열심히 트랙을 달리고 있다. 그저 뒤에 껴서 같이 달리면 된다.

마치 초원의 말들이 달리는 것처럼 슉슉 허연 김을 내뿜으며  시간 내내 영차영차 달린다재미라고는 1 없을  같지만 조깅 꽤나 재미있다이렇게 추운  마음을 잡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냉기가 가득한 자연과 맞선다그리고 절대 이길  없을  같은 절대자에게 대항하여 짜릿함을 맛본다  편의 영화 같은 재미를 느낄  있다영화는 시각적인 재미지만조깅은 온몸의 세포를  사용해서 느끼는 재미가 있다.

사진으로만 봐도 냉기가 흐른다. 이렇게 한파가 오면 늘 생각하는 건 강변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다. 한파가 오기 전의 추운 날에는 몸을 웅크리고 강변의 곳곳에 앉아서 겨울밤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파가 오면 그런 모습도 볼 수 없다. 고양이들은 어디에서 이 추운 겨울밤을 견디는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는 늘 전통시장으로 온다. 회귀성이 강한 나는 어릴 때에 자주 다니던 전통 시장이 좋아서 이곳으로 지나온다. 모습이 아직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 시장 안의 작은 골목이 그렇다. 이 자리에서 보는 저 메리야스 집의 모습이 좋다. 한때는 겨울이 오고, 명절 전에는 사람들이 몰려 가족의 내복을 구입하던 호시절이 있었다. 이 골목으로 자주 오는 이유도 고양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간 조깅을 하면서 길고양이들과의 인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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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1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사진은 얼마 전에도 본 것 같습니다.
또 찍으신 건가요?ㅋ
1년 전 겨울을 기억하는 게 사람마다 다른가 봅니다.
제가 기억하는 1년 전 겨울은 유난히 안 추워서 이것도
지구온난화겠지 앞으로 겨울다운 겨울이 있을까 했습니다.
이렇게 안 추운 겨울을 따뜻한 겨울이라고 해서 난동이라고 한다더군요.
올겨울은 그래도 제법 추운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또 추워진다는군요. 물론 여느 겨울에 비하면 견딜만한 것 같긴해요.

저도 거리를 나서면 길냥이들은 어디서 자고 이 추운 겨울을 보낼까
궁금하기도 하고 찡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좀처럼 곁을 내어주질 않으니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고.ㅠ

교관 2022-01-16 12:18   좋아요 1 | URL
달리고 돌아오면 매일 찍죠 비슷한데 다른 사진들 ㅋㅋ 어제 예보에서는 오늘 부터 엄청 춥다는데 오늘 정말 온화하네요 ㅋㅋㅋ 바람이 없어서 밖은 온통 초봄 같은 날입니다. 오늘은 달리면 땀이 엄청 날 것 같아요
 

휘트니 휴스턴은 나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가 회사에서 오시는 시간에는 동생 손을 잡고 종종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다, 버스가 내리는 곳에는 ‘제일 레코드’가 있어서 늘 음악이 나왔는데 주로 팝송이었다. 게 중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가 많이 나왔다.


생각해보면 안 그럴 것 같지만 바다가 있는 이 도시에도 예전에는 거리에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가 가득 울려 퍼졌다. 요즘 미용실만큼 많은 레코드 가게 앞의 스피커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휘트니 휴스턴이 멋지게 노래를 불렀다. 후에 알았지만 우리라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가 온 도시에서 울려 퍼졌다. 심지어 사담 후세인도 휘트니의 노래가 좋아서 아랍어 버전으로 선거 운동 곡으로 사용했다.


아버지가 도착할 때까지 스피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흘러나오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들었다. 주인아저씨는 60대로 얼굴에 큰 사마귀가 있었고 레코드 가게 안에서 천천히 걷고 움직였다. 아직 할아버지는 아닌데 할아버지들이 입는 바둑판무늬의 조끼를 늘 입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팝에 대한 지식이 많았고 늘 팝을 틀었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오시는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운 좋게도 사마귀가 난 주인아저씨가 들어오라고 해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어 보라고 했다. 


내가 초교시절에 마을의 통장 집에 가면 가구풍 전축이 있었는데 거기서 통장 집 아들내미와 음악을 듣곤 했다. 통장 집에 가면 꽤 많은 레코드가 있었다. 통장 아늘 내미의 누나가 대학생이라 시카고, 로보 같은 음악이 잔뜩 있었다. 우리는 바늘을 걸고 듣는 걸 좋아했다. 요즘 초등생인 나의 조카가 엔 마리의 노래에 빠져있는 것과 비슷할까.

제일 레코드 주인아저씨는 거의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 내가 신기했던지 곧잘 과자도 주고, 듣고 있는 팝이나 팝가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이야기는 린다 론스테드와 아론 네빌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알까 싶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는 어떻게든 귀에 들어오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일 레코드사는 나의 단골집이 되었고 덕분에 거기서 어린 시절에 구입한 카세트테이프를 아직도 듣고 있다. 이건 무척 신기하고 고무되는 일이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회식을 하며 기분 좋게 술이 취하면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틀어 달라고 했다. 그럼 우리 네 가족은 소중한 저녁 시간에 티브이를 보지 않고 앉아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들었다. 드라마니, 뉴스니 오직 티브이를 통해서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였지만 어쩐지 오래된 석상처럼 앉아서 우리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들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앨범을 구입하고는 수업 시간 빼고는 노래를 들었다. 가방에는 늘 여분의 건전지가 있어야 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는데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꽉 움켜잡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다니. 내가 만약 흑인이고, 거리에서 흑인은 늘 핍박당하고 놀림당하고, 커서 취직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일자리는 없고 청소를 하거나 잡일을 해야만 하고. 그런데 교회에 가면 작은 어린 흑인 여자아이가 영혼을 건드리는 목소리로 가스펠송을 부르는 걸 듣는다면 어떻게든 이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근래에 휘트니 휴스턴의 다큐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남편의 폭력과 마약으로 점점 망가져가는, 엉망으로 변해가는 휘트니의 모습을 보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어제 방구석 1열에서 휘트니 휴스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유영석도 나와서 그녀에 대한,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영화 보디가드를 제작하고 주연을 한 케빈 코스트너가 휘트니의 장례식에서 연설을 했다. 케빈 코스트너는 휘트니에게 연기 수업을 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와서 연기를 해달라고 했다. 억지로 연기를 배워서 할 필요가 없다, 너의 있는 그 모습으로 그대로 화면에 담길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투어를 하고 있었는데 케빈 코스트너는 그녀를 위해 일 년을 기다린 끝에 보드가드의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 속에는 휘트니의 노래가 잔뜩 나온다. 마법의 손 데이비드 포스터가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처음에 휘트니의 그 목소리로 무반주로 하기로 했어요, 모두가 조금 망설였지만 우리에겐 자신이 있었죠. 그리고 중간에 잠깐 멈춥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휘트니가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불러요.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슈퍼볼 경기에서 국가를 불렀다. 거기서 박자를 바꿔서 부르기로 하고 연습을 했다. 국가의 음을 건드린다는 건 무모하기도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죠. 휘트니는 그렇게 연습을 하고 슈퍼볼 경기에서 국가를 부르는데 남의 나라 국가임에도 듣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아이러니하게도 휘트니가 부른 국가는 빌보드 20위까지 하게 된다. 그랬던 휘트니 휴스턴이 말도 안 되는 나이 42살에 죽고 만다. 욕조에서 익사된 채로.


영화 ‘휘트니’를 보면 휘트니 휴스턴의 모습을 카메라로 들이대는 방식이 아니라 휘트니를 알고 지냈던, 휘트니와 가장 가까웠던 주위의 사람들, 가족 내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휘트니의 성장과 나락을 보여준다. 휘트니는 음악계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씨씨 휴스턴으로 가수였다. 어머니는 가스펠의 대모라고 불리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백보컬이었다. 이모가 디온 워익이다. 엄청난 음악 집안에서 태어난 휘트니는 엄마의 공연에서 코러스를 하며 자랐다. 엄마는 가수로써 인기가 그다지 없어서 노래를 잘 부르는 휘트니를 하드 트레이닝시킨다. 그렇게 탄탄하게 노래에 대한 교육을 받은 휘트니가 스무 살, 공식 첫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무대가 무섭고 떨리기도 할 법 한데 휘트니는 맑고 깨끗한 고음을 시원하게 뽑아내며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바닷가의 한 구석에서 휘트니의 음악을 들으며 이 작은 곳에서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앞으로도 노래를 많이 불러 주세요.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죽고 난 후 3년 뒤에 그녀의 딸이 22살에 엄마와 똑같이 약에 중독되어 욕조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지만 뇌사상태에 이르렀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곳에서는 약 같은 거 하지 말고 딸과 함께 행복하기를. 케빈 코스트너는 휘트니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눈물을 닦고 슬픔을 멈추고 가능하면 오랫동안 휘트니가 남긴 달콤한 기적을 기억합시다. 나는 한때 당신의 보디가드였지만 당신은 너무 빨리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천사들이 보디가드가 되어 줄 것이며 신 앞에서 노래할 때도 당신은 충분히 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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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미국 국가를 부른 휘트니 휴스턴. 기존의 4분의 3박자의 국가를 4분의 4박자로 편곡을 했다. 그래서 더 의미적으로 다가올 수 있게 바꾸었다. 가스펠 풍으로 불러 근엄하기만 한 국가의 분위기를 다르게 불렀다. 휘트니의 시원한 고음과 애드리브로 국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이후의 국가를 부르는 여가수들은 이 버전을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그 노래를 들어보자.


https://youtu.be/N_lCmBvYM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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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곡이 되어 버린  i will always love you의 조회수가 무려 11억 뷰가 되었다. 원곡을 부른 돌리 파튼은 라디오에서 휘트니가 부르는 자신의 노래를 듣자마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이 노래는 휘트니의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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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시애틀 1호점에서 구입한 스벅 텀블러가 있다. 별다른 건 없고 로고와 사이렌의 모습이 지금과 좀 다르다. 그래서 스벅 텀블러에 빠진 사람들은 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바닷가에도 스벅이 있어서 일 년 정도는 오전에 거기서 커피를 마셨다. 이른 아침에 가면 좋다. 바가 있는데 사람도 별로 없어서 바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매니저와 가끔 나오는 음악이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며 이야기도 하고.


매니저도 스벅 1호점의 추억이 있어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주며 추억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바가 있던 스벅도 리모델링에 들어가고, 코로나도 오고, 이래저래 기분도 그렇고 해서(웃음) 안 가게 되었다. 시애틀 스벅에는 와인도 잔 술에 담아서 파는데 한국은 아직 카페에서 술은 팔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텀블러에 커피도 담아 마시고, 물도 담아 마시고, 맥주도 담아 마시고, 시고르자브종 와인도 담아서 마신다. 그래서 카페에 갈 때 텀블러에 와인을 사부지기 부어서 커피를 주문해서 같이 마시기도 한다. 아니면 제임슨을 부어서 커피와 함께 홀짝이기도 한다. 일행은 처음에는 커피에 무슨 위스키냐고 하지만 제임슨은 끝 맛이 캐러멜 맛이라 아주 좋다. 그리고 커피에 타 마시면 커피 맛도, 제임슨 맛도 확 끌어 오른다.


제임슨을 커피에 타 마시는 건, 마블 미드 시리즈에 데어데블이나 루크 케이지에서도 경찰들이 그렇게 마시는 모습이 왕왕 나온다. 데어데블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시리즈가 끝나고 뭔가 아쉬웠는데 멧 머독이 이번 스파이더맨에 나왔다.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미드 마블 시리즈는 뭐니 뭐니 해도 퍼니셔가.....


나는 심지어 텀블러에 어묵 국물도 받아 마신다. 그게 묘미다. 어묵 국물은 정말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시원하고 맛있다. 어묵 국물에 국수를 아직 말아먹어 보지 못했다면 오늘 당장 그렇게 먹어보기 바랍니다. 요즘은 로컬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 마신다. 커피 천오백 원, 샷을 추가하면 이천 원이다. 나는 항상 샷을 하나 더 넣어서 마신다. 7잔을 마시면 쿠폰 적립으로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쿠폰을 애용하고 이 쿠폰은 여기 로컬 카페에서만 가능하다.


매일 하는 것들이 있다. 분명 의지로 움직이는데 습관이 되어 버려 마치 무의식적 행동처럼 한다. 요컨대 팬티를 입을 때 왼쪽 다리부터 밀어 넣는다던지, 일어나서 잠결에 좀비처럼 걸어서 변기에 앉는다던지, 이불 끝을 침대 끝에 맞춘다던지, 그리고 비슷한 시간에 같은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는 것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2021년에도 지치지 않고 습관적 무의식으로 매일 했던 것이 커피를 마시는 것, 그리고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조깅을 했고, 매일  일정량의 글을 적었고, 매일 한 끼를 먹었다. 조깅은 사실 4일을 못 뛰었으니 361일을 달렸기에 매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상주는 것도 아니니 그냥 매일 달렸음,으로 하겠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 책을 좀 읽었다. 그리고 한 끼를 챙겨 먹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조깅을 하는 건 시간이 날 때 하는 것들이 아니다. 어떻든 내 일상에서 시간의 틈을 벌려,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매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매일 습관적으로 하는 이런 것들이 하나씩 모여 문명을 이룬다. 문명이란 그런 것이다. 떼놓고 보면 보잘것없고 허무하고 허망할 것 같아도 조금씩 퍼즐처럼 들어맞아 인류의 문명이라는 체재와 양태(樣態)를 이룬다.


여하튼 매일 커피를 오전에 로컬 카페에서 한 잔 마신다. 나는 늘 아무 생각이 없다가 대체로 쿠폰이 3개가 쌓이면 사장님이나 직원(따님)이 이번에는 쿠폰으로 해드릴게요, 라며 알아서 해준다. 왜냐하면 쿠폰은 한 달 안에 사용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멸되고 만다. 쿠폰으로 마실 때는 오백 원만 내면 된다. 나는 샷을 추가하기 때문에.


어제도 늘 그렇듯이, 그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받아 마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한 아주머니(50대 정도)가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매장 안에서 주문하지 않고 밖으로 난 카운터로 주문을 한다. 아주머니는 선캡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주문을 하면서 자신이 쿠폰을 하나 사용할 것이 있어서 그걸로 하겠다고 했다.


직원이 아주머니에게 전화번호를 앞에 보이는 태블릿에 입력을 해 달라고 했고 아주머니가 폰 번호를 입력했다. 직원은 쿠폰으로 적립이 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상하네, 하나가 있는데. 라면서 쿠폰은 소멸이 되는지 물어봤다. 직원이 한 달 이내로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에 그런 문구를 안내했다. 그리고 직원은 주방으로 들어가 아주머니와 나의 음료와 앱으로 배달 주문이 들어온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 아주머니는 직원을 불렀다. 나는 한 달 안에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며 쿠폰으로 사용해야 할 커피 한 잔이 없어진 건, 여기 직원들과 카페 측의 잘못이 아니냐고 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커졌다. 카랑카랑하고 높아졌다. 화를 내는 것이다.


여기 카페 측에서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주머니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주위 상가 사람들이 무슨 일이지? 라며 한 둘 씩 모여들었다. 아마 본인이 말을 하면서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직원은 그다음부터 멘붕이다. 일단 아주머니에게 직원이 하는 설명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하필 사장님-엄마도 카페에 없었다. 당황하니 준비해야 할 음료를 제때에 준비하지 못했다. 아주머니는 그 뒤에 오는 손님들은 주문도 하지 못할 정도로 카운터에 붙어서 쿠폰 사용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다리다가 그냥 가버리는 손님도 있었다. 나에게 쿠폰이 있다면 아주머니에게 줬을 텐데 나도 쿠폰을 다 써버린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 내 커피가 나와서 나는 받아서 돌아왔다. 뒤돌아보니 나무에 매미가 붙은 것처럼 바짝 달라붙어 직원을 쏘아붙였다. 그 불똥은 말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튀었다.

 

이 죽일 놈의 쿠폰 적립. 이게 뭐라고.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는데, 전통시장에서 콩나물의 가격 200원은 죽으라 깎으려 하면서 백화점에서는 정가 다 주고 산다는 이야기. 이렇게 너의 기분이나 입장이 망가지더라도 나는 해야 할 말은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 낮추는 경우도 있다.


사진을 찍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며 푸념과 한탄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얼굴이 못생기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너무 못생겨서 사진이 안 나온다느니, 이렇게 못생겨서 어떡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나이가 들지도 않았는데 나는 늙어서, 나는 너무 늙어 버려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 모든 말 끝에 자신을 엄청 낮추어서 말한다. 마치 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존재처럼 자신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자기를 격하게 낮추어서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타인에게는 자신이 한 말보다 나은 말을 듣게 되니까 그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더없이 낮춰서 말을 해버리니까 상대방이 “아이구 아닙니다. 늙었다니요. 이렇게나 피부도 좋고 예쁜뎁쇼" 같은 말을 듣고 안 그런 척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주위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처음 보거나 얼굴을 모르는 sns상에서 주로 그런다. 아닐 것 같지만 인터넷 상은 오프라인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무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굴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팔로워들에게 자기 자신을 격하게 낮춰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들은 그보다는 높게 말을 하니까 띄워주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 주위 사람이 내가 그렇다는 걸 아는 걸 본인도 알기에 주위에는 그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애가 강한 것일까, 자존감이 높은 것일까.

텀블러 하면 추억들이 몇 개 있는데, 극장을 좋아해서 극장에 자주 갔다. 그리고 타지방으로 여행을 가면 그 지방의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고 나왔다. 여행 중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일상에서 극장에 가는 것보다 일탈 속 확실한 재미가 있다. 영화를 보고 상영관 밖으로 나오면 극장의 모습에서 아아 맞다, 우리는 여행 중이었지, 라며 영화에 빠져서 마치 일탈 속이라는 걸 잊고 있다가 다시 알게 된다. 그 때문에 여행이라는 기분이 두 배는 더 든다.


극장에서 파는 음료와 음식물 이외에 못 먹게 하던 때가 있었다. 보통 집에서 영화를 볼 때는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보는 재미가 있다. 극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텀블러에 맥주와 소주를 적당히 섞어서 팝콘 통에 생라면을 부셔서 넣어서 들고 가서 왕왕 먹으며 영화를 봤다. 사람들이 잘 없을 시간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영화(지만 우리는 좋아하는-이를테면 ‘존 말코비치 되기’라든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같은)를 보면서 소맥을 홀짝이며 생라면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극장에서 생라면을 먹는 묘미는 와그작 씹어 먹기보다 입 안에서 살살 녹여 먹는다. 그런 맛이 있다.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맛. 살살 녹이면 이와 이 사이에 스프의 그 맛이 침으로 묽어질 때 라면도 흐믈흐믈하게 된다. 영화를 본다. 소맥을 마신다. 완벽한 영화보기다. 우리는 보통 자리를 잡을 때 뒤쪽 사이드를 잡는다. 중간보다 영화보기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팝콘과 생라면을 같이 섞어서 먹어도 맛있다. 말 그대로 단짠단짠의 매력덩어리다. 텀블러가 습관적 무의식이 되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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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인가, 4학년인가.

초봄의 어느 날.

부는 바람에 아직 쌀쌀함이 깃들어 있어서 기분 좋은 날,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하늘이 하늘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유주의 말처럼 햇살이 바삭바삭했고,

하늘은 사랑의 열병을 앓던 미술가가 아픔 끝에 그려놓은 하늘처럼 보이던 날,

처음으로 독감에 걸렸다.


입안이 이내 마르기 시작했고 독감에 몸이 점점 침잠되어 갔다.

뜨거운 물에 푹 삶긴 시금치처럼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러다간 몸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약 기운에 세상인지 아닌지 구분도 가지 않고 눈을 잠시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반복.


엄마는 나를 안고 죽을 쑤어 숟가락으로 떠 입안에 넣어 주었다.

입안에 퍼지는 간장 맛의 부드러운 죽의 느낌.

음식을 넘기는 쾌락이라든가 맛은 느낄 수 없었다.

본능의 기운도 발휘되지 않았다.

그저 인후를 통해 연하게 죽이 내려가는 느낌 그것뿐이었다.


 보드라운 엄마의 품.

 엄마의 희미한 냄새.


 어린 동생에게 늘 엄마를 빼앗겼는데 모처럼 엄마를 오롯이 독차지했다.

독감이 계속 이어졌으면, 나는 마냥 아이가 되어 눈을 반쯤 뜨고 나직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주사 맞았으니까 죽 먹고 약 먹고 나면 나을 거야.


나는 배태한 것처럼 엄마의 품에 안겨 소록소록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파랗게 질린 하늘 밑에서 코로나 예방 접종 후 어머니는 근육통과 소화불량으로 마냥 아이가 되었다.

이틀 만에 조금 나아진 어머니는 소화가 안 되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닭죽이 생각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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