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시애틀 1호점에서 구입한 스벅 텀블러가 있다. 별다른 건 없고 로고와 사이렌의 모습이 지금과 좀 다르다. 그래서 스벅 텀블러에 빠진 사람들은 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바닷가에도 스벅이 있어서 일 년 정도는 오전에 거기서 커피를 마셨다. 이른 아침에 가면 좋다. 바가 있는데 사람도 별로 없어서 바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매니저와 가끔 나오는 음악이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며 이야기도 하고.


매니저도 스벅 1호점의 추억이 있어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주며 추억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바가 있던 스벅도 리모델링에 들어가고, 코로나도 오고, 이래저래 기분도 그렇고 해서(웃음) 안 가게 되었다. 시애틀 스벅에는 와인도 잔 술에 담아서 파는데 한국은 아직 카페에서 술은 팔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텀블러에 커피도 담아 마시고, 물도 담아 마시고, 맥주도 담아 마시고, 시고르자브종 와인도 담아서 마신다. 그래서 카페에 갈 때 텀블러에 와인을 사부지기 부어서 커피를 주문해서 같이 마시기도 한다. 아니면 제임슨을 부어서 커피와 함께 홀짝이기도 한다. 일행은 처음에는 커피에 무슨 위스키냐고 하지만 제임슨은 끝 맛이 캐러멜 맛이라 아주 좋다. 그리고 커피에 타 마시면 커피 맛도, 제임슨 맛도 확 끌어 오른다.


제임슨을 커피에 타 마시는 건, 마블 미드 시리즈에 데어데블이나 루크 케이지에서도 경찰들이 그렇게 마시는 모습이 왕왕 나온다. 데어데블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시리즈가 끝나고 뭔가 아쉬웠는데 멧 머독이 이번 스파이더맨에 나왔다.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미드 마블 시리즈는 뭐니 뭐니 해도 퍼니셔가.....


나는 심지어 텀블러에 어묵 국물도 받아 마신다. 그게 묘미다. 어묵 국물은 정말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시원하고 맛있다. 어묵 국물에 국수를 아직 말아먹어 보지 못했다면 오늘 당장 그렇게 먹어보기 바랍니다. 요즘은 로컬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 마신다. 커피 천오백 원, 샷을 추가하면 이천 원이다. 나는 항상 샷을 하나 더 넣어서 마신다. 7잔을 마시면 쿠폰 적립으로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쿠폰을 애용하고 이 쿠폰은 여기 로컬 카페에서만 가능하다.


매일 하는 것들이 있다. 분명 의지로 움직이는데 습관이 되어 버려 마치 무의식적 행동처럼 한다. 요컨대 팬티를 입을 때 왼쪽 다리부터 밀어 넣는다던지, 일어나서 잠결에 좀비처럼 걸어서 변기에 앉는다던지, 이불 끝을 침대 끝에 맞춘다던지, 그리고 비슷한 시간에 같은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는 것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2021년에도 지치지 않고 습관적 무의식으로 매일 했던 것이 커피를 마시는 것, 그리고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조깅을 했고, 매일  일정량의 글을 적었고, 매일 한 끼를 먹었다. 조깅은 사실 4일을 못 뛰었으니 361일을 달렸기에 매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상주는 것도 아니니 그냥 매일 달렸음,으로 하겠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 책을 좀 읽었다. 그리고 한 끼를 챙겨 먹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조깅을 하는 건 시간이 날 때 하는 것들이 아니다. 어떻든 내 일상에서 시간의 틈을 벌려,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매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매일 습관적으로 하는 이런 것들이 하나씩 모여 문명을 이룬다. 문명이란 그런 것이다. 떼놓고 보면 보잘것없고 허무하고 허망할 것 같아도 조금씩 퍼즐처럼 들어맞아 인류의 문명이라는 체재와 양태(樣態)를 이룬다.


여하튼 매일 커피를 오전에 로컬 카페에서 한 잔 마신다. 나는 늘 아무 생각이 없다가 대체로 쿠폰이 3개가 쌓이면 사장님이나 직원(따님)이 이번에는 쿠폰으로 해드릴게요, 라며 알아서 해준다. 왜냐하면 쿠폰은 한 달 안에 사용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멸되고 만다. 쿠폰으로 마실 때는 오백 원만 내면 된다. 나는 샷을 추가하기 때문에.


어제도 늘 그렇듯이, 그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받아 마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한 아주머니(50대 정도)가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매장 안에서 주문하지 않고 밖으로 난 카운터로 주문을 한다. 아주머니는 선캡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주문을 하면서 자신이 쿠폰을 하나 사용할 것이 있어서 그걸로 하겠다고 했다.


직원이 아주머니에게 전화번호를 앞에 보이는 태블릿에 입력을 해 달라고 했고 아주머니가 폰 번호를 입력했다. 직원은 쿠폰으로 적립이 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상하네, 하나가 있는데. 라면서 쿠폰은 소멸이 되는지 물어봤다. 직원이 한 달 이내로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에 그런 문구를 안내했다. 그리고 직원은 주방으로 들어가 아주머니와 나의 음료와 앱으로 배달 주문이 들어온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 아주머니는 직원을 불렀다. 나는 한 달 안에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며 쿠폰으로 사용해야 할 커피 한 잔이 없어진 건, 여기 직원들과 카페 측의 잘못이 아니냐고 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커졌다. 카랑카랑하고 높아졌다. 화를 내는 것이다.


여기 카페 측에서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주머니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주위 상가 사람들이 무슨 일이지? 라며 한 둘 씩 모여들었다. 아마 본인이 말을 하면서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직원은 그다음부터 멘붕이다. 일단 아주머니에게 직원이 하는 설명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하필 사장님-엄마도 카페에 없었다. 당황하니 준비해야 할 음료를 제때에 준비하지 못했다. 아주머니는 그 뒤에 오는 손님들은 주문도 하지 못할 정도로 카운터에 붙어서 쿠폰 사용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다리다가 그냥 가버리는 손님도 있었다. 나에게 쿠폰이 있다면 아주머니에게 줬을 텐데 나도 쿠폰을 다 써버린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 내 커피가 나와서 나는 받아서 돌아왔다. 뒤돌아보니 나무에 매미가 붙은 것처럼 바짝 달라붙어 직원을 쏘아붙였다. 그 불똥은 말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튀었다.

 

이 죽일 놈의 쿠폰 적립. 이게 뭐라고.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는데, 전통시장에서 콩나물의 가격 200원은 죽으라 깎으려 하면서 백화점에서는 정가 다 주고 산다는 이야기. 이렇게 너의 기분이나 입장이 망가지더라도 나는 해야 할 말은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 낮추는 경우도 있다.


사진을 찍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며 푸념과 한탄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얼굴이 못생기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너무 못생겨서 사진이 안 나온다느니, 이렇게 못생겨서 어떡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나이가 들지도 않았는데 나는 늙어서, 나는 너무 늙어 버려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 모든 말 끝에 자신을 엄청 낮추어서 말한다. 마치 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존재처럼 자신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자기를 격하게 낮추어서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타인에게는 자신이 한 말보다 나은 말을 듣게 되니까 그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더없이 낮춰서 말을 해버리니까 상대방이 “아이구 아닙니다. 늙었다니요. 이렇게나 피부도 좋고 예쁜뎁쇼" 같은 말을 듣고 안 그런 척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주위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처음 보거나 얼굴을 모르는 sns상에서 주로 그런다. 아닐 것 같지만 인터넷 상은 오프라인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무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굴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팔로워들에게 자기 자신을 격하게 낮춰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들은 그보다는 높게 말을 하니까 띄워주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 주위 사람이 내가 그렇다는 걸 아는 걸 본인도 알기에 주위에는 그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애가 강한 것일까, 자존감이 높은 것일까.

텀블러 하면 추억들이 몇 개 있는데, 극장을 좋아해서 극장에 자주 갔다. 그리고 타지방으로 여행을 가면 그 지방의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고 나왔다. 여행 중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일상에서 극장에 가는 것보다 일탈 속 확실한 재미가 있다. 영화를 보고 상영관 밖으로 나오면 극장의 모습에서 아아 맞다, 우리는 여행 중이었지, 라며 영화에 빠져서 마치 일탈 속이라는 걸 잊고 있다가 다시 알게 된다. 그 때문에 여행이라는 기분이 두 배는 더 든다.


극장에서 파는 음료와 음식물 이외에 못 먹게 하던 때가 있었다. 보통 집에서 영화를 볼 때는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보는 재미가 있다. 극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텀블러에 맥주와 소주를 적당히 섞어서 팝콘 통에 생라면을 부셔서 넣어서 들고 가서 왕왕 먹으며 영화를 봤다. 사람들이 잘 없을 시간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영화(지만 우리는 좋아하는-이를테면 ‘존 말코비치 되기’라든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같은)를 보면서 소맥을 홀짝이며 생라면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극장에서 생라면을 먹는 묘미는 와그작 씹어 먹기보다 입 안에서 살살 녹여 먹는다. 그런 맛이 있다.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맛. 살살 녹이면 이와 이 사이에 스프의 그 맛이 침으로 묽어질 때 라면도 흐믈흐믈하게 된다. 영화를 본다. 소맥을 마신다. 완벽한 영화보기다. 우리는 보통 자리를 잡을 때 뒤쪽 사이드를 잡는다. 중간보다 영화보기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팝콘과 생라면을 같이 섞어서 먹어도 맛있다. 말 그대로 단짠단짠의 매력덩어리다. 텀블러가 습관적 무의식이 되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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