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71 | 172 | 173 | 17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닭똥집


대학교 때 가을이면 찬란한 가을 축제가 열린다. 며칠 동안 축제의 분위기에 취해서 대학가의 낭만을 즐긴다. 밤이 도래하기 전의 하늘은 파랗게 질려있고, 바다는 파랗게 멍들어 모든 세상이 컬러풀하게 뒤덮여 있다. 학교 주위의 산은 알록달록 색동옷으로 갈아입는다. 정말 찬란하다.


학교에는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고 각 과마다 그동안 준비했던 결과물을 전시하고 밤이 시작되면,

인생이란 정말 한 번 미치도록 즐기고 끝나도 좋을 만큼 아이들은 축제를 즐겼다. 오직 축제를 즐기기 위해 태어난 녀석들처럼 보였다. 젊음이라는 것을 마치 불꽃처럼 한 번에 연소시켜버릴 것 같았다.


웃고, 울고, 쓴맛, 단맛 다 보며 대학생활을 아낌없이 보냈다.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즐기는 것이다. 다른 건 없다. 축제기간에 이것저것 고민이나 나르시시즘이나 정치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과마다 준비한 주점에 오는 손님들 유치에 생각만 할 뿐이었다.


즐기자, 즐기다 보면 그 안에서 뭔가가 나온다. 그것이 축제기간 중 우리의 모토였다. 우리의 주점은 좀 특별했다.라고 생각했다. 다른 과의 주점에서는 축제기간 동안 만들어 파는 안주가 대부분 비슷했다. 파전이라든가, 계란말이라든가. 게다가 아마추어라 파전은 먹다 보면 밀가루가 덜 풀렸거나 맛이 떨어졌다.


우리 주점에서는 닭똥집 구이를 만들어서 팔았다. 나의 적극적인 의견이 반영이 되었다. 과대가 허락을 한 것은 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에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 과에는 우리 고등학교 후배들이 들어와서 닭똥집을 씻는 것은 녀석들에게 시킬 수 있었다. 부려먹을 수 있었던 거지. 한 후배 녀석은 찬물에 잘 씻고, 또 한 녀석은 청주를 푼 물에 닭똥집을 삶았다. 소금 간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함께 잘 볶기만 하면 끝이다. 그럼 어지간하면 맛있다. 땡초를 썰어서 옆에 놓고 서비스 안주로는 어묵국에 계란물을 풀어서 휘휘 저어 주었다.


다른 주점에는 없는 안주라 인기가 좋았다. 물론 맛있었다. 닭똥집 구이의 맛은 오독오독 씹히는 재미있는 맛이다. 술을 부른다. 소금 간 때문에 짭조름하면서 기름장의 고소한 맛이 닭똥집의 맛 대부분 일지는 모르지만 오독오독 씹어 먹다가 소주를 넘기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추억에 갇힌 음식을 꺼내서 먹으면 추억의 맛은 나지 않는다. ‘닭똥집 클럽‘이 있다면 우리는 당장 가입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닭똥집을 많이 먹었다. 또 우리는 단골 주점에서 김치를 공수해서 안주로 내놓았다. 그래서 닭똥집은 꽤나 비쌌지만 김치에 돌돌 말아먹는 닭똥집 맛이 일품이었다.


밤이 되면 학교는 춥다. 곳곳에 술에 잠식된 녀석들이 노래를 부르고 잔디에 엎어져서 외계어를 난무했고 사랑을 부르짖었다. 그날이 꽤나 추워서 가스레인지 위에서 양말을 말리다가 양말을 태워버리기도 했다.


어제는 작년에 입학한 전문대 생을 만났는데 학교는 가보지도 못하고 졸업을 하게 생겼다고 했다. 물론 축제 같은 건 전혀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사회에 떠밀리듯 나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청년은 밝고 명랑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 사이에서 어떤 무엇인가를 찾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아마 그 청년도 그걸 찾아가는 방법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태엽 감는 새를 꺼내서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꼭 마크 로스코 그림 같았다.  


마우스로 마크 로스코의 그림 몇 개를 오마주 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 형태는 없다. 형태가 아닌데 형태가 있다.


그건 바로 풍부한 색감이다.


흘러넘치는 색감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새 매료되어 초현실 세계에 빠져들고 만다.


글을 쓴다면 이런 초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발끝부터 지우개로 지우듯 어둠 속에 조금씩 내 몸이 융해되어 사라지는 기쁨을 느끼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색감으로 나는 남는다.


이처럼 풍부함이 가득한 색감도 사라지고 만다.


따스하면서도 늙어가는 햇살이 아련하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젖어드는 것이다.


그렇게 형태는 사라지고 명상만이 남는다.


태엽 감는 새는 형태는 없지만 형태를 이룬다.


경험으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터프한 세계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옆 집의 초딩이 이무진의 신호등 노래를 제법 이무진스럽게 부르고 있다. 이무진의 그 특유의 음색을 비슷하게 따라 불렀다. 듣고 있으니 아니 참 잘 따라 부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딩들에게 이무진의 신호등은 인기 노래라고 한다. 노래도 좋다. 목소리도 좋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 노래는 자고로 그래야 한다. 가사도 참 좋다.


건반처럼 생긴 도로 위 수많은 동그라미들 모두가 멈췄다 굴렀다 하는 모습이 정말 우리 일상을 잘 보여준다. 붉은색과 푸른색 그 사이의 짧은 시간 속에는 그간 인간이 살아온 긴 시간이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라디오를 매일 들으니까 이무진의 노래들이 주룩주룩 나온다. 가을 타나 봐, 한영애의 누구 없소 등 이곳저곳에서 거의 매일 들을 수 있다. 대단하다.


이무진을 보면, 이무진의 노래를 들으면 예전의 장재인이 떠오른다. 장재인도 특유의 음색과 싱어송라이트 같은 음악성과 무엇보다 노래를 아주 잘 불러 나오자마자 수면 그 위로 빵 떠버렸다. 장재인은 지금도 꾸준하게 공연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뭐랄까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나가버렸다. 요즘은 미술전시회도 하는 것 같고, 그간 남자 문제도 있고, 그래서 어쩐지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일반적인 대중은 장재인을 거의 잊어버린 것처럼 되었다.


그건 김예림도 그렇다. 물론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근래에는 림킴으로 이름을 바꾸고 음악 스타일이 확 달라져서 활동을 하지만 역시 찐팬들이 아니고서는 대중은 받아들이기 꽤 힘든 음악과 스타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거리가 멀어졌다.


이들이 대중의 지대한 관심 밖에서 활동하며 자기 하고 싶은 예술을 하는 것에 만족하면 괜찮지만 소속사와 이해관계 때문인지 어떤지 몰라도 수순은 복면가왕을 한 번씩 거치게 된다. 그 짝에 몸을 담고 있지 않는 한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무진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 단물을 빨아먹듯 물 빠지고 나면 대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쟁을 통해서 음악성을 인정받은 아티스트다. 발탁이 되어서 연습생활을 거쳐 가수로 데뷔하는 이들과는 좀 다르다. 아티스트는 말 그대로 직접 작사 작곡을 하여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멘토들, 이미 유명한 프로듀서들은 그런 점들을 높이 사고 또 언론으로 노출을 시킨다. 굉장한 신인이다,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 같은 말들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음악 씬에서, 아니 대중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꾸준하게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대중도 이런 아티스트의 면모를 갖춘 신인들을 좋아하며 그들이 꾸준하게 음악을 만들어서 직접 부르기를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를 가진다.


좀 벗어난 얘기로 마돈나를 보면 철저하게 타인의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부른다. 작곡된 곡을 받아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돈나는 타인의 곡이지만 자신이 소화를 할 수 있고 곡이 좋으면 소화하는 자세를 취했다. 자신의 곡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게 힘들 수 있으나 마돈나는 아마도 그걸 극복한 것 같다. 마돈나는 지금도 노래를 발표하면 그 노래는 톱을 차지한다.


예전 마돈나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두고 브리트니와 키스를 하며 마치 브리트니가 나의 후계자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브리트니와 아길레라는 우리나라로 친다면 에스엠 뽀뽀뽀 같은, 디즈니 채널에서 꼬꼬마 때부터 같이 연예인 활동을 해왔다. 그 사이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있다. 그러다가 커서 다 가수가 되었는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철저하게 싱어송 라이트 길을 걸었다. 폭발적인 성량을 살려 자신의 곡으로 대중을 맞이했고 브리트니는 마돈나처럼 타인의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불렀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유명하게 만든 노래가 뷰티플인데 그 노래는 린다 페리의 자전적인 곡을 받아서 부른 곡이다. 린다 페리는 포 넌 블론즈의 그녀다. 벗어난 얘기였지만 꼭 싱어송 라이터가 마치 모든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는 별로다. 왜냐하면 대중은 싱어송 라이터도 좋아하지만 그저 대중가수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현장에서 지속성을 가진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다는 건 안다. 좀 더 넓게 보면 우리처럼 일반인들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만큼 있는 힘을 다해서 버티고 있다. 하물며 예술의 세계에서는 더 힘이 들겠지.


서서히 오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산 정상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빨리 오른다면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짝에서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자본회수에 눈이 돌아가 있다면 이무진도 어쩌면 다음을 준비한다며 곡을 쓰러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이무진의 곡들은 지금도 흘러나오고 있고, 이무진을 보면 장재인이 떠오른다. 이런 나의 생각이 모두 기우였으면 좋겠다. 모두 후회 없는 예술 활동으로 자신도, 그리고 대중도 사로잡기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얄라알라 2021-10-09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고 옆집 초딩님 노래좀, 들어보고 싶네요. 10세 언저리의 아이가 얼마나 이무진스럽게 부를지^^ 좋아하는 노래인데 교관님은 노래하나로 이런 멋진 글을 뽑아내시네요. ^^

교관 2021-10-10 11:56   좋아요 0 | URL
요즘 초딩들은, 아니 유딩들마저 동요를 부르지는 않아요 ㅋㅋㅋ 전부 트롯이나 가요를 열심히 부르고 있네요 :(
 

백신을 맞고 심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해서 맞은 그날은 좀 걷고 그다음 날부터는 평소대로 죽 달렸다. 2021년에도 착살하게 달렸다. 백신 맞은 그날 걷는 정도를 친다면 올해는 2월 구정에 이틀을 빼고 다 달렸다.


꾸준하게 달린 것이다. 하루키는 하루에 10킬로씩 달린 것에 비한다면 나는 6킬로에서 7킬로 정도를 달렸다. 그런데도 보통 2시간 정도 걸린다. 이유는 정해놓은 코스에 계단이나 오르막길, 산쓰장 같은 곳을 넣어서 그곳에서 근력 운동을 40분 정도 하기 때문이다.


근력운동을 하던, 조깅을 하던 시작할 때와 끝날 때는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팔 굽혀 펴기를 할 때에는 더 이상 못 하겠다 싶을 때 몇 개를 더 하고, 마지막 코스에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 더 이를 앙 다문다.


이런 고통은 기분이 상쾌하다. 기분 좋은 고통이다. 그리고 달리기가 끝났을 때는 모든 걸 다 털어 내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에 남아돈다. 그래서 달리기 전까지는 달리기 싫은 이유 99가지가 나를 붙잡지만 이 즐거운 고통 뒤에 따라오는 상쾌함을 느끼는 이유 1가지 때문에 진지하게 달리게 된다.


매일 ‘착실하게’ 달리다 보면 ‘진지하게’ 달리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이 비교적 평안한 얼굴로 바뀌게 된다. 이는 생활 전반에 걸쳐 있는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특히 의자에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다.


한 개인에 있어서 매일 조깅을 하는 것은 나쁘지는 않지만 흔해빠진 얘기잖아,라고 할 수 있지만 흔해빠진 이야기가 모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되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처럼.


쓸데없을 수 있으나 쓸모없지 않은 흔해빠진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간다는 건,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하는 일광의 흔적과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밤의 시작이 마주하면 코스모스 오렌지빛이 대기에 물감을 쏟은 것처럼 퍼지는 모습을 보며 달린다는 건 멋진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검은 버섯을 보니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 생각난다. 음식은 인간 생존에 밀접하게 닿아있고 거기서 사람들은 몽상을 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림 시인은 시만 쓰다가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계가 아닌 생존에 부딪히면서 하루를 견디다가 죽고 말았다. 그의 찬란한 시들을 친구인 시인이자 대학 교수인 ###이 여림 시인의 시들을 묶어서 시집으로 출판을 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은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미세먼지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지금 내가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보다 덜 하기 때문에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신형철의 글에서 본 것 같다. 신형철의 평론을 읽으면 평론도 문학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신형철 이전에 먼저 평론이 문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89년 문지에서 나온 ‘입 속의 검은 잎’라는 시집이 있다. 바로 기형도의 시집이다. 이 시집의 제목은 기형도가 지은 것이 아니다. 다 알겠지만 기형도는 자신이 적은 시를 아기처럼 안고 출판의 길로 가던 도중 제목도 짓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기형도의 이 시집의 제목은 문지에서 활동하는 평론가 김현 선생이 지었다. 이 김현 평론가의 평론을 듣던 80년대 대학생들은 딱딱할 줄로만 알았던 평론이 문학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기형도가 파고다극장인가 종로의 심야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을 당시 김현 평론가가 기형도의 가방을 보니 시집을 내기 위한 시들이 있었다. 그때 그 시들을 보고 김현 선생이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제목을 붙여 시집을 출간했다.


잎은 혀를 말하며 그 혀는 이미 검게 되었고 그 입은 죽은 자의 입속을 말하는 것이다. 기형도와 기형도의 시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와 그의 시를 말하자면,


두터운 모호함, 이성의 손길로도 잡히지 않는 무의식의 신호, 예측 불가의 미지를 향한 구애, 두려움의 대상인 낯선 것들에 대한 애정, 우리는 어둠 속 미아로 헤매는 존재, 죽음과 상실을 미치도록 탐닉했던 시인과 시였다. 유난히 기형도의 젊은 죽음은 비극적이다.


기형도의 시는 기형도의 몽상과 심연에서 나온다. 고 생각이 든다. 김현 평론가가 이런 기형도의 내면을 들어가 본 것처럼 알고 제목을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지은 것은 김현 평론가 역시 기형도와 같은 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기형도의 시가 세상에 나온 그다음 해 김현 평론가도 기형도를 따라갔다. 김현 선생은 기형도를 무척 좋아했다.


기형도의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으면 인간은 사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존재 같은 기분이 든다.


인간은 어떤 극단적인 일을 당하지만 조금 지나면 허기짐을 참지 못하고 배를 채우는 것에 달려드는 존재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망각으로 인해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요즘 뉴스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잔뜩 나온다. 우리는 대체로 우주의 중심은 ‘나’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강하다.


‘나’가 중심이 아니라 ‘우리’라고 느낄 수 있게 시는 그 길을 인도해준다. 기형도의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으면서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갈 곳이 없음에도 버스에는 계속 사람들이 올라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작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21-10-07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전 치과 치료를 받으며 혀에 대한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되었어요.
제 혀가 제 말을 안 들으니 정말 난감했지요. 기형도의 시를 생각하며...
페이퍼 잘 읽고 갑니다.

교관 2021-10-08 13: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71 | 172 | 173 | 17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