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팡지게 추운 날이라고 분 당 간격으로 예보가 나왔다. 춥긴 추웠다. 시린 냉기에 머리가 띵 해지는 날이다. 하지만 늘 생각하건대 겨울에는 이렇게 추워야 맛이다. 머리가 띵하게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겨울에만 가능하다. 이런 느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겨울에 목욕탕에서 뜨겁게 목욕을 하고 창에 얼굴을 대면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목욕을 다 끝내고 아버지와 밖으로 나오면 머리가 띵 한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무척 추운데 시원한 느낌. 그래서 겨울에는 며칠이라도 욕이 나올 정도로 추워야 좋다.


영화 속에도 그런 느낌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 영화 ‘환상의 빛’에서 유미코가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여니 설원이 펼쳐졌다. 겨울의 하이얀 그 차가운 냉기가 뜨거운 방 안으로 들어와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 또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영화 ‘클래식’에서도 준하가 주희와 편지를 주고받는데 시골집에서 방문을 열면 겨울의 냉기가 준하의 까까머리를 시원하게 한다. 무척이나 추운데 시원한 느낌은 겨울에만 가능하다.


한파가 오기 바로 전 날에는 초미세먼지가 최악이라고 분 당 간격으로 예보가 나왔다. 미세먼지가 점령한 날은 대기에 가스층이 두터워 밤인데도 밤하늘이 까맣지 않고 뿌연 청록색이었다. 그런 날에는 달리면 땀이 너무 났는데 한파가 온 날에는 등이 조금 젖을 정도다. 그래서 땀이 식기 전에 들어와야 해서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한파가 오는 날에는 달릴 때 힘과 보폭 같은 것을 계산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반환점까지 달리는데 기운을 다 써버려 돌아올 때 걷거나 천천히 와버리면 땀이 식어서 감기에 걸릴지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 년 전 한파가 왔을 때보다는 덜 추웠다.이때에는 강물이 꽝꽝 얼었고 마스크 위로 입에서 올라오는 김이 눈썹에 닿아 얼었다. 그리고 레깅스를 두 장을 껴 입고 조깅을 한 덕분에 다리를 잘 구부릴 수도 없었다. 너무 추워서 음악 따위 듣게 되지도 않았다. 그저 등에 땀이나 났으면 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렸다.


그에 비하면 이번 한파는 엄청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람도 덜 해서 10분만 달리면 몸이 후끈하면서 차가운 냉기와 몸에서 나오는 열기가 마찰을 일으켜 묘한 온도 감을 느낄 수 있어서 겨울에도 달리는 묘미가 있다.


한파가 와서 사람들이 안 나올 것 같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많이 나와서 걷거나 달린다.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묘미를 아는 사람은 한파가 오는 날이라고 해서 아이구 추우니 집에서 쉬어야지, 하지는 않는다. 강변을 영차영차 달려 종합운동장으로 가면 더 달리는 맛이 난다. 이곳은 비가 오나, 한파이거나 폭염이거나 코로나가 덮치거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열심히 트랙을 달리고 있다. 그저 뒤에 껴서 같이 달리면 된다.

마치 초원의 말들이 달리는 것처럼 슉슉 허연 김을 내뿜으며  시간 내내 영차영차 달린다재미라고는 1 없을  같지만 조깅 꽤나 재미있다이렇게 추운  마음을 잡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냉기가 가득한 자연과 맞선다그리고 절대 이길  없을  같은 절대자에게 대항하여 짜릿함을 맛본다  편의 영화 같은 재미를 느낄  있다영화는 시각적인 재미지만조깅은 온몸의 세포를  사용해서 느끼는 재미가 있다.

사진으로만 봐도 냉기가 흐른다. 이렇게 한파가 오면 늘 생각하는 건 강변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다. 한파가 오기 전의 추운 날에는 몸을 웅크리고 강변의 곳곳에 앉아서 겨울밤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파가 오면 그런 모습도 볼 수 없다. 고양이들은 어디에서 이 추운 겨울밤을 견디는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는 늘 전통시장으로 온다. 회귀성이 강한 나는 어릴 때에 자주 다니던 전통 시장이 좋아서 이곳으로 지나온다. 모습이 아직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 시장 안의 작은 골목이 그렇다. 이 자리에서 보는 저 메리야스 집의 모습이 좋다. 한때는 겨울이 오고, 명절 전에는 사람들이 몰려 가족의 내복을 구입하던 호시절이 있었다. 이 골목으로 자주 오는 이유도 고양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간 조깅을 하면서 길고양이들과의 인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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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1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사진은 얼마 전에도 본 것 같습니다.
또 찍으신 건가요?ㅋ
1년 전 겨울을 기억하는 게 사람마다 다른가 봅니다.
제가 기억하는 1년 전 겨울은 유난히 안 추워서 이것도
지구온난화겠지 앞으로 겨울다운 겨울이 있을까 했습니다.
이렇게 안 추운 겨울을 따뜻한 겨울이라고 해서 난동이라고 한다더군요.
올겨울은 그래도 제법 추운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또 추워진다는군요. 물론 여느 겨울에 비하면 견딜만한 것 같긴해요.

저도 거리를 나서면 길냥이들은 어디서 자고 이 추운 겨울을 보낼까
궁금하기도 하고 찡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좀처럼 곁을 내어주질 않으니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고.ㅠ

교관 2022-01-16 12:18   좋아요 1 | URL
달리고 돌아오면 매일 찍죠 비슷한데 다른 사진들 ㅋㅋ 어제 예보에서는 오늘 부터 엄청 춥다는데 오늘 정말 온화하네요 ㅋㅋㅋ 바람이 없어서 밖은 온통 초봄 같은 날입니다. 오늘은 달리면 땀이 엄청 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