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이후 뭐 보는 영화들이 재미가 없다, 시시하다, 할 때에는 만달로리안을 보자.

영화가 생긴 이래 역사상 가장 못생긴 수백 살인 요다가 50살 아가였을 적에는 이렇게 귀욤귀욤 터지는 아이였다는 걸, 이 정도로 미친 귀여움을 장착하고 포스를 사용하는 걸 본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눈이 하트로 변한다.

만달로라안에서 요다는 우리가 아는 요다의 어린 시절은 아니고 그냥 같은 종족인 아기 요다인데 이름은 그로구. 만달로리안은 만달로어인 중에서 딘 자린과 베베 요다인 그로구의 티키타카 로드무비다. 기존의 스타워즈와 접점이 없기 때문에 스타워즈 생각지 않고 보면 됨.

시작부터 재미있다. 시즌 1만 해도 한 편당 보통 극장의 영화에서 볼 정도의 엄청난 볼거리가 터져 나온다.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볼 수 있는 기상천외한 존재들의 모습과 드로이드들의 총질, 그리고 은하철도 999에서 차장을 닮은 듯한 난쟁이들, 자와의 움직임과 그들의 언어는 마치 미니언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만달로리안의 갑옷 속에 숨겨진 여러 무기들의 사용과 아가아가 요다와의 캐미는 보는 재미를 더 한다. 또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여자 지나 카라노의 액션도 보는 재미가 있다. 지나 카라노의 정말 멋진 액션은 2012년 영화 ‘헤이와이어’에서다. 그게 아마 종합격투기에서 패배하고 은퇴 후 처음 찍은 액션 영화로 알고 있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 지나 카라노 빼고 이완 맥거리그, 마이클 패스벤더, 마이클 더글라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엄청난 배우들이 나오는데, 지나 카리노에게 다 터진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일대일 격투신은 와우 정말 끝장난다.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여지없이 멋진 액션을 보여준다.

지금 만달로리안 시즌 3이 하고 있다. 시즌 1부터 보면 재미있다. 스타워즈 팬이 아니더라도 보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스타워즈 영화 버전으로 나온 시리즈보다 훨씬 재미있다. 귀요미 요다를 뺏으려는 자들과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는 만달로리안의 전투가 볼 만한 시즌 1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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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우나기에서 야쿠쇼 코지가 바람피우는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내는 마치 불꽃처럼 쾌락과 동시에 소멸하는 죽음을 동시에 맛보았다. 불꽃은 벚꽃의 미학을 닮았다.

야마시타 타쿠로는 아내를 죽인 칼을 들고 곧바로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한다. 그리고 복역을 하는 동안 한 마리의 장어를 키운다. 가석방되어서 치바 현의 시골에서 이발소를 하는데 케이코라는 기묘한 여인이 이발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야마시타는 케이코가 자신의 아내와 너무 닮았다는 것을 알고 케이코에게 거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야마시타가 마음을 터놓는 존재는 우나기, 장어뿐이다. 이 영화에는 초현실적인 존재와 장면이 꽤 나온다.

유에프오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전기공, 붉은 스포츠카를 모는 만화에서나 볼법한 양아치와 그 외의 마을 사람들. 마음을 열지 않는 야마시타는 자신에게 애정을 품은 케이코에게 어느 날 형무소의 동료가 밤에 찾아와 케이코에게 야마시타의 과거를 말한다.

초현실 존재 같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수족관에서 나온 장어를 구하려 하고, 야마시타를 대신해서 싸움을 하고 케이코를 아낀다.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들이 장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야마시타는 케이코의 일에 휘말리고, 기쁘지는 않지만 슬프지 않게 끝나서 좋다. 시미즈 미사는 아내와 케이코 1인 2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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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것을 흡수해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것도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행복으로 충만했던 나의 모든 것과 나는 커 갈수록 고통을 알게 되고, 상처를 받고, 그 상처는 흉터가 되어 영원히 나의 마음 어느 구석에 남아 있다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부모는 이혼하고, 여자 친구는 떠나고, 여동생들은 엄마를 따라 가버리고, 아버지는 초췌한 모습으로 일에만 몰두하고 나는 공황장애를 겪으며 그런 아버지 옆에 남아서 나의 모든 것인 영화에서도 멀어져 버렸다.

처음 영화를 보고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을 때의 나는 지금 없어지고, 그때의 나를 데리고 극장에 왔던 사랑하는 엄마는 아빠의 친구에게로 가버렸다.

구원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절망 끝에 가니 희망이라는 빛이 쪼그리고 앉아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만들어져야 하고, 사람들은 나의 영화를 봐야 한다.

나는 낙관을 보았다. 배고프지 않았다면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특별함은 특별하지 않는 평범한 것에서 나온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는 영사기 속의 나의 밝은 고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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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15회까지 봤다. 1회 남았다. 2004년부터 뚜벅뚜벅 15회까지 왔다. 연진아 존나, 재밌어. 사라 욕하는 거 들었지. 자는 사람도 벌떡벌떡 일으키게 할 만큼 찰지고 쫙쫙 달라붙는 게.

내내 아름답던 벽도 없이 드디어 폐허에 섰네 박연진,

황량할끄야, 캄캄할끄야, 웰컴해 연진아.

나 아직 1화 남았다. 스포로 나를 채찍질하지 마라. 주위에서 나에게 마지막 회 말하고 싶어서 죽으려고 하는 몇몇 벌레들아 입 다물어.

근데 글로리에 나오는 주인공들 몸들은 왜 그렇게 다 좋은 거야. 이 녀석들 운동하는 모습이 1도 안 나오는데 하루 종일 운동하는 짐종국이나 윤성빈만큼은 아니지만 너무 몸이 좋다.

전재준도 몸 멋지고, 그저 깡 말랐을것만 같은 손명호는 뭔데, 풍만하게만 보였던 최혜정은 또 뭐고. 하도영은 건설회사 대푠데 권투 하는 거 봤지. 물병 내미는 문동은 안아주는 주여정은 달콤 달콤하고.

학폭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는 상처받고 폭력이라 하는데 가해자는 즐거움이라 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인간에게는 원래 좋다 와 싫다의 개념만 있었다. 애초에 옳고 그름이 없었다. 내가 좋으면 좋은 것, 싫으면 싫은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타인에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노예제도가 생기면서 노예의 입장에서는 좋다 싫다가 아니라 주인이 하는 행동이나 말, 의식이 옳고 그름으로 보였다. 니체는 이런 관념이 왜 생겨났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랬더니 이 모든 것들이 기독교가 생겨나서 옳고 그름이 인간이 판단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나눠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옳은 것이 너에게는 그른 것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옳고 그름이 기독교 때문에, 하느님이라는 매개를 통해 옳고 그름을 임의로 나누는 것이다. 당하는 쪽은 그른 것이라 여기지만 행하는 쪽은 옳은 것이라 여긴다. 주인은 노예들이 더럽다고 하지만 노예는 소박하다 여겼다. 그래서 니체는 신이 죽으면 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인간이 인간을 옳고 그르다고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무튼 나 아직 1회 남았다. 그나저나 학폭 복수극 감독도 학폭에 연루되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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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심부름은 일본의 관찰 예능으로 2008년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미미하게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을 건드리는 게 느껴진다. 2세에서 5세 정도의 아이에게 생애 첫 심부름을 시키고 잘 하는지 그걸 보는 프로그램이다. 한 편당 짧은 분량은 7분짜리부터 길면 20분 정도 된다.

우리는, 현대인들은 방송과 유튜브 영상으로 너무 자극적인 일들에 노출되어 있고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아, 나 좀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때 ‘나의 첫 심부름’을 보라.

고작 3세 정도 아이가 심부름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잠깐 있었는데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이미 방송과 카메라에 적응이 되었고 아빠를 따라 많이 노출이 된 아이들이고, 일본의 아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심부름을 하게 되는 일이다. 신밧드의 모험인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이제 엄마랑 같이 갈 수 없다는 말에 이미 울기 시작하는 아이부터, 또 엄마 마다 달래주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이제 너는 3살이야, 애가 아니잖아, 너는 2살이 아니고 3살이야. 그러면 아이가 그걸 받아들이고 눈빛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 할 수 있어!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세상을 알아 간다. 아이들은 심부름을 하다가 길거리에 핀 꽃이 있으면 주저앉아서 꽃을 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똑바로 가기를 본능적으로 피해 간다. 옆길로 샌다. 어떤 아이는 아빠의 심부름으로 물고기를 들고 오다가 다 쏟기도 하고, 자판기에 동전까지는 넣었는데 버튼을 누르지 못해서 20분 정도를 고민만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보고 느끼고 반응한다. 그리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래서 매회 기대감과 함께 또 이번 아이는 어떤 기상천외하고 천진난만함으로 우리를 웃고 울릴까 하게 된다.

10분짜리 2화에서는 엄마 심부름하다가 하지 않고 놀다가 전화로 엄마에게 거짓말하다 걸리기도 하고, 11분짜리 3화에서는 심부름으로 양배추와 양파를 가져오는데 밭에서 뽑아오기도 하는 등 정말 대견한 모습도 있다.

이런 아이들의 관찰 예능이 가능한 것은 이웃 어른들이 전부 이 아이들의 역사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커가는 모습을 알기에 심부름을 오면 아니, 이 귀여운 아이가 벌써 이렇게 심부름을 왔나, 하며 이웃 어른들 모두가 아이들을 바라보고 지켜준다.

도쿄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이라 가능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심부름을 적극적으로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위에서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것 까지는 성공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웃 어른이 다가가서 직접 버튼을 누르지 않고 아이가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그렇게 이웃 어른들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 준다.

아이는 부모만이 키우는 게 아니라 한 사회가 같이 키운다는 말을 아주 잘 알 수 있는 방송이다.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고 아이들의 성장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아이의 실패가 실력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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