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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한번 읽다가 중간 정도에서 멈추었던 책을 다시 뒤적거리며 읽는다.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내가 결국 나일수 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시기도 없다. 소심하고, 유약하고, 우유부단하여, 무슨 일을 결정하기 전에는 홀로 생각에 잠겨야 할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모습 말이다. 군대에서 성질을 버려놓아서 한 번, 회사를 이직하면서 또 한 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서 그동안의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보고자 무척이나 노력했었다. 웅얼대는 목소리를 힘있게 바꾸고, 게슴츠레한 눈을 크게 뜨고 미간에 힘을 주며 다니고, 남에게 욕을 먹더라도 내 분명한 의견을 강변하며, 조금 더 강해보이기 위해 몸도 만들고자 했었는데, 그랬던 것들이 '변화'이 아닌 '가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약한 것으로 취급되는 내향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허세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내 올바른 모습을 파악하는데 이 책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 라는 것이 책을 다시 펴게 된 동기이다.
이 책은 총 4부 11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의 제목은 그다지 와닿지가 않아, 차라리 세부 장의 제목을 토대로 전체 구성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외향성이 어떻게 우리 문화의 이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는가에 대한 운을 띠우고(1장),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의 신화와 그 신화를 양산하고 있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수업과 학생들을 분석하면서(2장), 사실은 이러한 팀워크가 개인이 홀로 작업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다(3장). 그러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간다. 외향성은 '선(善)'인가? 예상했겠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기질은 불변의 천성인지에 대한 실험을 소개한다(4장),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내향성 기질을 넘어선 사례를 제시한다(5장). 앨리너 루스벨트의 섬세함이 완성시킨 루스벨트의 정치적 성공 사례를 통하여 내향성의 긍정적 면모를 탐구한다(6장). 이 내향성의 기질을 가진 사람에는 워런 버핏도 포함된다. '오하마의 현인'이라 불리는 이 고전적 투자가는 데일 카네기 코스에 참가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중 강연을 할 수 있게되었다고 한다(7장).
후반부에는 동양과 서양에서의 외향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제시한다(8장). 동양인에게 부족한 외향성이 뛰어날 결과를 드러내는 분야를 살펴보면서, 간디의 예를 통하여 부드러운 힘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도 검토한다. 한편,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가 있음을, 그리고 이것이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내향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추어 외향적 언행의 유인을 제시하고, 이런 행동으로 인한 과잉이 발생하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다시 평소의 자신으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지를 다룬다(9장). 결국 외향성과 내향성은 각각의 특성에 따른 소통의 선호가 있을 뿐이며, 이 상반된 성격의 조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10장), 내향적인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함으로써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부드러운 힘을 긍정적으로 발현하도록 도울 수 있는지를 밝힌다(11장).
저자가 책 서두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외향성 지향의 시대에서 내향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각종 스피치나 프레젠테이션, 회의석상에서의 언행이 곧 자신에 대한 +/- 평가가 된다. 혹시라도 수줍어하거나 머뭇거리며 어려워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 자체로 능력에 대한 평가에도 감점이 생긴다. 발언에 대한 내용이 아닌 태도로 이미 긍정/부정에 대한 결론이 나기도 한다. 목소리를 높여야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내향성을 숨기고 외향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어찌보면 우리사회에서도 하나의 생존방법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성격에 맞지 않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사교적인 멘트로 시작하여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다보면, 원래 그렇지 못한 내향적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거나 세뇌시키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그래야 하는가? 내향성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이 타개해야 할 어떤 부족한 기질 같은 것인가? 세상의 3분의 1은 내향적인 사람들임에도?
저자는 한마디로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초반부에 제시된 이 결론이 내겐 무척 위안이 되었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스스로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한 마디는 얼마나 큰 위안인가. 사회가 전반적으로 외향성을 추구하도록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도 내향적인)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외향성과 내향성을 비교.분석하고 '외향성=리더십'으로 고정화 되어 있는 관념의 껍질을 벗겨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반박해 나가는데, 강변이나 달변이 반드시 좋은 아이디어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거나, 팀워크나 브레인스토밍이 사실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않으며, 홀로 일한 것에 대한 결과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분석함으로써, 외향성과 내향성의 차이는 근본적인 우열이 아닌,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의 민감도임을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어떠한 업무에 있어서는 내향성이 오류를 줄이고, 과도함을 억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외향성과 내향성은 타고난 기질임은 분명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내향적인 사람이 매우 외향적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향성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내향적인 사람이 비사교적이거나 부적응자라는 고정된 인식들은 생산해낸다. 나도 20대에는 종종 스스로를 '사회부적응자'라고 칭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내가 속한 조직에 정을 붙이고 생활할 수가 없었는데, 이러한 인식들은 내향적 개인들이 회피적인 행동을 하게끔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외향적/내향적 사람들이 모두 다 사회적임을, 타인과 친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는 주말에 친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쉽사리 피로함을 느끼는 성격이지만, 페이스북에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게시하는 나 같은 사람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분석이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가끔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피곤을 느낀다'면서 페이스북 활동을 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인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는데, 이 책을 통하여 내향적인 사람들이 직접 대면을 하고 대화를 하는 것보다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간접적인 장을 통하여 글로 표현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적에서는 저자는 독자들에게 삶에서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기를 권하고 있다. 그곳은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일 수도 있고 등불을 켠 책상일 수도 있다. 타고난 장점(끈기, 집중, 통찰, 섬세함)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어떠한 장소가 더 적합한지를 선택하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특히 내향적인 사람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외향적인 일(공개 강연, 인맥쌓기 등)을 해야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는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자신에게 해줌으로써 지치거나 소진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을 권하고 있는데, 자신의 기질에 맞는 적절한 '회복 환경'을 통하여 노출된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하여 이론적이기도 하지만 실증적인 면이 상당히 많이 제시되어 있는 이 책은 내향적인 내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들을 어느 정도 제거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단순히 외향성과 내향성의 공존이나 생각의 다양성의 인정과 같은 추상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통하여 다른 내향적인 사람들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으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도 제공하고 있다.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라'라는 말이 위안이 될 정도로 획일적인 사회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부정하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위안이 되는 여러 요소들을 찾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 책을 통하여 스스로의 기질과 특성을 깊이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자신마저 속이는 것도 납득이 간다. 내가 ‘외향적 이상’이라고 이름붙여본 신념 체계에 따라 우리는 살고 있다. 이상적인 자아란, 사교적이고 지배적이며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한 외향적인 존재일 거라고 생각하는 만연한 믿음이다. 전형적인 외향인은 숙고보다는 행동을, 의심보다는 확신을 좋아하고, 조심하기 보다는 위험을 무릅쓴다. 틀릴 위험이 있을 때조차 빠른 판단을 선호한다. 팀으로 일할 때 능률이 높아지고 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린다. 타인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할 줄 안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알고 보면 한 가지 유형만 찬양한다. 자신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데 익숙한 유형 말이다. 물론 차고에 회사를 차린 기술적으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라면 성격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드문 예외일 뿐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며, 그런 사람을 용인하는 마음도 어마어마하게 부유하거나 그럴 만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한다. - 20, 21쪽
내향성은 (그 친척뻘인 섬세함, 진지함, 수줍음과 함께) 이류로 여겨지고 있는 성격 특성으로, 실망스러운 일 아니면 병적인 것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외향성 이상’을 떠받드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내향적인 사람은 남자들의 세상에 사는 여자처럼,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특성 때문에 무시당한다. 외향성은 대단히 매력적인 성격 유형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동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억압적인 기준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 21쪽
그래도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은 있다. 예를 들어,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 자극의 수준이 다르다. 내향적인 사람은 훨씬 적은 자극, 그러니까 가까운 친구와 와인을 한잔 홀짝이거나, 가로세로 낱말 맞추기를 풀거나, 책을 읽는 정도가 ‘딱 맞다’고 느낀다.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가파른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고, 오디오 볼륨을 높이는 등 좀 더 강력한 자극을 즐긴다. 데이비드 윈터(David Winter)라는 성격 심리학자는, 왜 전형적인 내향성의 사람이 유람선에서 파티를 벌이느니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고 싶어하는지 설명한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매우 강한 자극이다. 위협, 두려움, 도주,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사람 100명은 책 100권이나 모래알 100개와 비교하면 매우 자극적이다." - 31, 32쪽
여러분이 이 책에서 가져갈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통찰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느낌이라면 좋겠다. 장담하건대 그런 관점은 우리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 38쪽
‘애빌린으로 가는 버스’ 일화는 행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을 따라가려는 성향을 보여준다. 그 행동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역동적인 연사에게 권한을 주는 경향이 있다. 매우 성공한 한 벤처 자본가는 나에게, 자기가 젊은 기업가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주기적으로 듣는데, 그 친구들이 훌륭한 프레젠테이션 기술과 진정한 리더십을 구분하지 못해서 속이 터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걱정스럽게도 말은 잘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잡담 능력과 재능은 혼동하기가 아주 쉽죠. 어떤 사람이 프레젠테이션도 잘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그런 특성 때문에 보상을 받아요. 왜 그런 걸까요? 그런 특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린 프레젠테이션에는 지나치게 무게를 싣고 내용과 비판적 사고에는 별로 무게를 싣질 않고 있어요." - 92, 93쪽
그랜트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첫째, 성격과 리더십에 관한 현재의 연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외향성과 리더십 사이와 상관관계는 미미했다. 둘째, 이런 연구들은 실제 결과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좋은 지도자라고 느꼈는지를 토대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인식은 문화적 편견이 반영된 것을 불과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랜트가 보기에 가장 흥미로운 점은 현재의 연구들이, 지도자가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상황들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특정 조직이나 상황은 내향적인 지도자 유형에 잘 맞는 반면 다른 상황은 외향적인 지도자 유형에 잘 맞을 수도 있는데, 기존의 연구들은 이런 점을 구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98, 99쪽
직원들이 수동적이거나 능동적이라는 사실에 지도자들의 실적이 좌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랜트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능동적인 사람들을 이끄는 데 유달리 잘 맞는다고 지적한다. 상대의 말을 듣고 상황을 지배하는 데 무관심하다는 성향 때문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제안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시도해볼 확률이 높다. 이들은 사람들의 재능에서 도움을 받고 나서 더더욱 그들에게 능동적으로 행동하도록 독려하기 쉽다. 바꿔 말해서 내향적인 지도자들은 능동성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 100쪽
반면 외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데 몰두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놓치고 사람들이 수동성에 빠져들도록 할 소지가 있다. 프란체스카 지노는 말한다. "결국 지도자들은 말은 엄청 많이 하게 되고 사람들이 제시하려고 하는 아이디어를 전혀 듣지 않게 될 때가 많더군요." 하지만 영감을 주는 타고난 능력으로, 외향적인 지도자들은 수동적인 일꾼들과 함께할 때 훨씬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 - 100, 101쪽
정말로, 연구 결과들을 보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에 관한 깊은 사실들, 가족과 친구들이 보면 놀랄 만한 사실들을 온라인에 표현하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온라인에서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하며, 몇몇 온라인 논의에 시간을 더 많이 쓰기 쉽다. 이들은 디지털로 소통하는 기회를 환영한다. 200명이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라면 절대로 손을 들지 않을 사람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2천 명, 아니 200만 명이 보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한다. 낯선 사람 앞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데 어색해하는 바로 그 사람이, 온라인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이 관계를 현실 세계로 넓히기도 한다. - 109쪽
내향적인 사람들의 창의성에 관해 그보다는 덜 명백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가설이 있다. 모두가 이 설명을 듣고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내향적인 사람들은 홀로 일하기를 좋아하고, 고독은 혁신에 촉매가 될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한스 아이젱크(Hans Eyesenck)도 지적했듯이 내향성은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게 하고, 일과 무관한 사회적.성적 문제에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방지한다." 바꿔 말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테라스에서 술잔을 부딪치고 있는데 여러분 혼자 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면, 여러분 머리에 사과가 떨어질 확률이 더 높다. (뉴턴은 세계적으로 대단히 내향적인 사람에 해당한다. 윌리엄 위즈워스는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영원히 항해하는 마음/생각이라는 기이한 바다를 헤치며.") - 125쪽
협력 모형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서 배울 때 학습에 주인의식이 생긴다는 이론을 내세우는 정치적 진보 성향에 뿌리를 두지만 내가 뉴욕, 미시건, 조지아 주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서 면담한 초등학교 교사들에 따르면 그 방식은 기업계의 팀 문화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도록 아이들을 길들이기도 한다. 맨해튼의 한 공립학교 5학년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교육 방식은 독창성이나 통찰력이 아니라 언어 구사력에 따라 사람을 존중하는 기업계를 따른 겁니다. 말을 잘해서 이목을 끌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 거죠. 능력이 아닌 다른 뭔가를 토대로 하는 엘리트주의입니다." - 129쪽
고독의 어떤 점에 그런 마법이 숨어 있는 것일까? 에릭슨에 따르면, 여러 분야에서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의도적 연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연습은 그가 보기에 탁월한 성과의 문을 여는 열쇠다. 의도적으로 연습할 때, 우리는 자신이 도달해야 할 정확한 지점을 알고 자기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애쓰며, 자신의 진전 정도를 점검하고, 그에 따라 방향을 조정한다. 이런 기준에 못 미치는 연습 시간은 덜 유용할 뿐 아니라 거꾸로 역효과를 낳는다. 기존의 인지 기제를 개선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기 때문이다. - 134, 135쪽
‘의도적 연습’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강한 집중력이 필요한데 다른 사람이 있으면 산만해질 소지가 있다. 강력한 동기도 필요하다(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그 사람 자신’에게 가장 힘겨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 에릭슨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자신에게 힘겨운 일에 곧바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잘하려면, 상황을 ‘자기가’ 주도해야 하죠. 그룹 수업을 상상해보세요. 그때는 전체 중에서 아주 작은 시간만을 주도하게 됩니다." - 135쪽
실제로 과도한 자극은 사람들의 학습을 저해하는 듯 보인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도심의 거리에서 시끄럽게 걷기보다는 숲에서 조용히 산책할 때 더 잘 배운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노동자 3만 8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다른 연구는 단순히 방해받는 것 자체가 생산성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점을 밝혔다. 현대의 사무실 전사(戰士)들의 귀중한 능력인 멀티태스킹조차 신화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제 과학자들은 두뇌가 두 가지 일에 동시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을 안다. 멀티태스킹처럼 보이는 행동은 사실 여러 가지 일을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실수가 일어날 비율을 50퍼센트까지 높인다. - 140쪽
<스티브 워즈니악>에서 그는 휴랫팩커드가 능력주위 사회였다고 회고하면서 외모도 상관없고, 사내 정치를 벌여봐야 혜택도 없고, 누구도 그가 사랑하던 엔지니어 일을 그만두고 관리직으로 가라고 밀어붙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워즈니악에게는 협력이 뜻하는 바였다. 동료들과 도넛과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것 말이다. 태평스럽고 비판적이지 않고 옷도 엉성하게 입는 동료들, 진짜 일을 하려고 칸막이 안으로 사라져도 신경도 안 쓰는 그런 동료들 말이다. - 154쪽
케이건은 특별히 자극을 잘 받는 편도체를 타고난 아이들이 낯선 물체를 보게 되면 꿈틀거리고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좀 더 경계해야 한다고 느끼는 아이로 자라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바꿔 말해서, 펑크 로커처럼 팔다리를 휘두르던 4개월짜리 아기들, 즉 ‘고 반응성’ 아이들은 외향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작은 몸이 새로운 물체와 소리와 냄새에 강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조용한 아기들이 조용했던 이유도 앞으로 내향적으로 될 아이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는 정반대로 신경계가 새로운 것에 별 감흥이 없기 때문이었다. - 164쪽
반응성에 관한 케이건의 발견과 결합해보면, 이러한 연구들은 우리 성격을 들여다볼 매우 강력한 렌즈가 되어준다. 일단 내향성과 외향성을 자극 수준에 대한 선호도 정도로 이해하고 나면, 자신의 성격에 잘맞는 환경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자극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지루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게 만드는 것이다. 성격 심리학자들이 ‘최적 수준의 각성’이라고 하고 내가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고 하는 것에 따라서 생활을 구성하고, 그림으로써 전보다 더 활력 있고 생동감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스위트 스폿’은 최적으로 자극되는 지점이다 자기도 모르는 새 이미 그 지점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이 해먹에 만족스레 누워서 멋진 소설을 읽는다고 상상해보라. 이것이 ‘스위트 스폿’이다. - 196, 197쪽
"내향적인 사람은 ‘조사하게 되어’ 있고 외향적인 사람은 ‘반응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수수께끼 같은 행동에서 더 흥미로운 면은 외향적인 사람들이 잘못된 버튼을 누르기 ‘전에’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후에’ 무엇을 하느냐는 점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숫자 9에 버튼을 눌러서 자기가 점수를 잃었다는 점을 알면, 잘못을 되돌아보기라도 하듯 다음 숫자로 넘어가기 전에 속도를 늦춘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은 속도를 늦추지도 않을뿐더러, 반대로 ‘속도를 높인다.’- 256, 257쪽
이상한 일이다. 왜 이런 행동을 할까? 뉴먼은 이것이 완벽하게 이치에 맞는다고 설명한다. 보상에 민감한 외향적인 사람처럼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하면, 그것이 회의론자든, 숫자 9든 그 무엇도 자기 길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장벽을 쓰러뜨려버리려고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것은 결정적인 과오다. 놀랍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만났을 때 더 오래 멈추었다가 시작할수록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뉴먼에 따르면, 외향적인 사람에게 ‘강제로’ 멈췄다가 하라고 하면 이들도 내향적인 사람만큼 게임을 잘한다. 하지만 혼자서 하게 내버려두면,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 빤히 보이는 곤경을 피하지 못한다. - 256, 257쪽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똑똑한 것은 아니다. 지능지수 결과를 보면 두 유형은 지능이 동등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임무에서, 특히 시간에 쫓기거나 사회적 압박을 받거나 멀티태스킹을 해야 할 경우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뛰어나다.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정보 과부하를 잘 처리한다. 조셉 뉴먼의 말로는 내향적인 사람은 반성에 인지능력의 상당 부분을 활용한다. 어떤 임무에서든 "우리에게 인지능력이 100퍼센트 있다고 할 때 내향적인 사람은 약75퍼센트만을 임무에 쓰고 나머지 25퍼센트를 다른 데 쓰는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임무에 90퍼센트를 쓸 수 있죠." 이것은 임무라는 것이 대체로 목표 지향적인 까닭이다. 외향적인 사람은 인지능력의 대부분을 눈앞의 목표에 할당하는 듯한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는 데 인지능력을 사용한다. - 259쪽
하지만 ‘천성인가, 양육인가’하는 논쟁이 상호작용론으로, 즉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우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며 실제로 양쪽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으로 대체되었듯이 ‘성격인가, 상황인가’하는 논쟁도 좀 더 섬세한 이론으로 바뀌었다. 성격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오후 6시에는 사교적인 기분이 들다가도 오후 10시가 되면 혼자 지내고 싶어질 수 있다는 점과, 이러한 변동이 실제로 존재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고정된 성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산더미처럼 많다는 점 역시 강조한다. - 316쪽
리틀 교수처럼 철저하게 내향적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대중 앞에서 효과적으로 연설할 수 있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들려주는 답은 간단한데, 그것은 그가 거의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자유특성이론(Free Traits Theory)’이라는 새로운 심리학 분야와 연관된다. 자유특성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성격 특성(이를테면 내향성)을 타고나거나 문화적으로 함양되지만, "개인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위해 거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내향적인 사람들도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자기가 아끼는 사람, 혹은 다른 귀중한 것을 위해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다. 자유특성이론은 어째서 내향적인 남편이 외향적인 아내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하거나 딸의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회의에 참여할 수도 있는지 설명해준다. - 319쪽
언뜻 보기에 자유특성이론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에 역행하는 듯 보인다. 흔히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조언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우리의 철학적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사람들은 일정 시간 이상 ‘거짓된’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에 거리낌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거짓된 자아가 진짜라고 우리 자신을 설득함으로써 성격에서 벗어난 행동을 시도해보지만, 이유도 모르는 채 결국 소진되어버리고 만다. 리틀 교수의 이론이 천재적인 부분은 이러한 불편함을 깔끔하게 해결해준다는 점이다. 그렇다. 우리는 외향적인 척만 하고 있을 뿐이고, 그러한 진실하지 않은 행위는 도덕적으로 모호할 수도 있지만(지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이나 직업적 소명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조언한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 320, 321쪽
나 스스로 직업을 변경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보냈고 사람들이 자기 직업을 찾아나가도록 돕는 데도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자신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알아내려면 세 가지 중요한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첫째, 어린아이일 때 무엇을 좋아했는지 회상해보라. 어릴 적에, 크면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가? 그때 했던 구체적인 답변은 표적에서 빗나갔을 수도 있지만, 그 아래 깔려 있던 충동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때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면, 소방관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좋은 사람? 저돌적인 사람? 아니면 그저 트럭을 모는 것이 좋았는가? (...) 둘째, 자신이 끌리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자. 법률회사에서 일할 때 나는 기업법에 관련해서는 가외로 일을 맡겠다고 자원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비영리 여성 리더십 조직을 위해서는 무료로 봉사한 적이 무척 많다. 그리고 법률회사의 젊은 변호사들을 위해 멘토링과 훈련과 자기계발을 맡은 위원회에 참여한 적도 많았다. - 333쪽
셋째, 자신이 부러워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자. 질투는 추한 감정이지만, 진실을 알게 해준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갈망하는 것이 있는 사람을 시샘한다. 내가 나의 질투를 알게 된 것은 예전 법대 동기들이 모여서 동문들의 경력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후였다. 동기들은 감탄하며, 그리고 질투하며, 주기적으로 대법원에서 변호하던 한 학우에 관해 얘기했다. 처음에 나는 비판하고 싶었다. 이내 ‘잘됐네!’하고 생각하며, 내 관대함을 칭찬했다. 그러다가 그렇게 쉽게 관대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내가 대법원에서 변호를 하고 싶은 열망도 없고 변호사 업무에 따라오는 다른 포상을 얻고 싶은 열망도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가 부러운 것인지 생각해보니, 즉각 답이 튀어나왔다. 내 대학 동기들 중 나중에 작가가 되거나 심리학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요즘 나는 이 두 가지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다. - 334쪽
하지만 핵심 프로젝트를 위해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너무 자신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거나 너무 오래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다. 리틀 교수가 강연이 끝난 뒤에 화장실에 가서 숨었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런 행동을 보면 역설적이게도,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되도록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것이다. 그러자면 일상생활에서 되도록 ‘회복 환경(restorative niche)’을 많이 만들어두는 일부터 해야 한다. ‘회복 환경’이란 리틀 교수가 만든 말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가는 장소를 가리킨다. 리슐리외 강처럼 물리적인 장소일 수도 있고, 판매를 위해 전화하는 사이사이에 조용히 쉬는 것처럼 시간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 334, 335쪽
어쩌면 성격 유형에 관한 가장 흔하고도 파괴적인 오해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반사회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친사회적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살펴보았듯, 양쪽 다 옳지 않다.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은 서로 다르게 사회적이다. 심리학자들이 ‘친밀감 욕구’라고 부르는 것은 내향적인 사람에게나 외향적인 사람에게나 다 있다. - 346,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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