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염천 -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서영 옮김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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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목하 무라카미 하루키를 탐독중이다.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은 것이 아마 89년인가 90년인가 그럴 것이다. 군대 제대하고 복학해서이니 그 언저리 어디쯤 될 것이다. 줄거리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다만 그런대로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는 단편적인 감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류의 청춘소설이자 흔히 말하는 성장소설이었지 싶다. 또 그 당시에 장정일, 박일문, 이인화 등 일군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표절시비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는 것도 덤으로 불쑥 떠오른다.

<상실의 시대>가 수십만부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고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유명작가의 반열로 뛰어날아 오르면서 한심한 것이 이상한 오기같은 것이 발동해서 그 후로는 하루끼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던 것이 본인의 그간 독서사정 되겠다. 그래저래 세월흘러 요즘들어 늦바람 불어 이런저런 여행기를 탐독하게 되면서 다시 하루끼를 만나게 되었던 것인데, 그 첫 번째 책이 <먼 북소리>이다. <먼 북소리>를 하 재미있게 읽고나니 자연 물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우천염천>으로 눈길이 가고 손길이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우천염천>은 그리스, 터기여행기이다.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는 유럽일대를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동안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그중 '1988년 공백기'에 해당되는 부분이 아마도 <우천염천>의 시간적 배경인 것 같다. 중간중간 서울올림픽 이야기가 잠깐잠깐 나온다. (뭐 별이야기는 아니고 아무개가 TV로 서울올림픽 중개를 보고 있다 정도이다.). 전작이 그러했듯이 본 책도 문화유적이나 박물관, 미술관 답사와는 거리가 멀다. 아테네가 빠진 그리스 여행기이고 이스탄불이 없는 터기 여행기이다. 장엄한 고대 신전이나 화려한 모스크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다. 안꼬없는 호빵같다고 허망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만약에 한 입만 먹어본다면 그 담백한 맛에 반하고 말 것이다. 읽을만 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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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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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둥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쫓아 오래고 긴 여행을 떠났었다...'.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많이 주워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듯도 하다. 터기 민요에도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하루키상은 이 책의 모두에서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여온 것이다...'고 여행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눈먼 점쟁이나 신탁을 받은 무녀같은 이바구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멋있고 매력있는 말이자 유혹의 언사다. 머릿속에 벌이 잉잉거리는 것처럼, 어떨 때는 정말 가슴속에선가 어디에선가에서 환청같은 북소리가 둥둥둥 들려와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그런 시기가 있다. 어떤 이는 그 북소리 장단에 맞춰 짐을 챙기기도 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굳이 못 들은 척 외면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북소리외에 떠남의 또 다른 이유로 하루키상은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을 들고 있다. 십진법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항상 20, 30, 40 등 똑 떨어지는 나이에 민감하다. 최영미와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30세에 집착했고, 공자같은 성현도 나이대별로 도달해야 할 어떤 지경를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같은 필부들 또한 그 똑떨어지는 나이가 되면 그 나이에 맞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초조와 불안에 허둥거리는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어떤 나이가 되면 무언가 곧 이루어 질 것만 같은 헛된 기대와 비전을 품게도 된다. 누군들 모르겠나.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나이가 마흔이 아니라 여든이 되었다고 해도 그 무엇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오래된 문화유산이나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을 섭렵하는 일반 여행기와는 다르다. 하루키 자신의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다. 머릿속에 붕붕거리는 두 마리 벌에 대한 이야기나, 여행중에 겪었던 소소한 감상들, 혹은 알게되었던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사소하고 별 중요할 것도 없는 그런 일상사에 관한 이야기다. 배경만이 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러운 일이다. 여행중에 쓴 소설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 명성과 부를 동시에 얻었으니 정녕코 복받은 사람 아닌가.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어디선가 희미하게 북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하지만 새장에 갇힌 새나 한가지니 언젠들 떠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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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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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를 읽으면서 과연 고전이란 무엇인가? 고전의 효용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름지기 고전이라고 한다면 시대와 장소를 떠나 그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마음에 얼마만큼의 감동과 정서적인 파장을 일으켜 자신의 인생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감히 생각해보건데, 이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 파우스트를 다 읽은 지금 본인으로서는 심심하게도 의문스럽다.

솔직하게 말해서(이는 결국 내 무식을 천하만방에 폭로하는 일일 것이다) 본인은 이 책을 통해서 그 어떤 정서적 감동도 받지 못했으며, 아무런 문학적 흥미도 느끼지 못했으니 아아 진실로 본인의 천학을 원망할 따름이나, 대저 동서고금을 통해 그 찬란한 빛을 만방에 뿌리고 있는 고전이란 것들이 본인같은 무지무식한 필부필부들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빛남이 과연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찌 자신의 천학을 부끄러이 여겨 불철주야 주경야독하며 학문에 각고면려 정진하지 않고 외람되이 옛 성현의 노작만을 탓하고 있으니 실로 민망하고 안타깝다 여길 독자제위들께옵서 다수일 것이겠으나 다만 후안무치한 본인의 개인적 감상이 이러저러했다는 말이니 괘념치 마시길 바라오며, 행여나 파우스트 일독을 결심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굳이 독서를 붙들어 말릴 생각은 없으나 기대는 버리라는 고언을 삼가 올리는 바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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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에서 리네아의 이야기 1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 미래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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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들어 아동도서에 자꾸 눈길이 간다. 국내외를 떠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들도 적지않은 걸로 알고 있다. 본인이 어렸을 때는 특별히 아동도서라는 것이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이니 소년소년세계위인전집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멋모르고 읽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대지, 부활, 춘희, 제인에어, 좁은문 같은 쟁쟁한 고전들의 줄거리만 요약한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류는 - 당시에는 계림문고가 유행이어서 본인도 친구와 경쟁적으로 사모았던 기억이 난다. - 조금 문제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독서경력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원작을 읽는데 상당한 장애로 작용한 것 같다. 다이제스트판을 통해 줄거리를 대강대충 알고 있으므로 당연히 원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비외르크의 책은 <아빠와 함께한 베니스여행>에 이어 두 번째다. 역시 아이들 책이라 쉽고 편하다. 아이들 보기에 글자가 조금 작은 것 같지만 색상이나 그림이나 책의 재질 등은 모두 마음에 든다. 리네아가 실재로 이 책의 그림을 그린 레나 안데르손의 한국 입양소녀라는 사실이 조금 인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있다. 리네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인상파화가 끌로드 모네의 흔적을 찾아 파리의 모네기념관, 오랑제리 미술관 등을 둘러보는 이야기다. 모네의 가족사와 관련하여 모네가 친구의 부인과 결혼하게 된 데 대한 부연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이건 여담이지만, 시공사에서 나온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중 <모네, 순간에서 영원으로>를 보면 모네의 친구 부인의 아들인 장 피에르가 모네의 자식이라는 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 그런 이야기는 없다. 아이들 책에 그런 내용은 불필요할 것이고, 이러한 애정관에 나는 아직도 조금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문화적 차이고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일독을 권할만 하다. 여행안내서로도 유익하고 모네 전기로서도 유효하다. 오랑제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커다란 수련그림은 꼭 한 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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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한 베니스 여행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잉가 카린 에릭슨 그림, 윤희기 옮김 / 미래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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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간다>류의 여행가이드에서부터 공화국 천년역사를 다룬 시오노나나미의 <바다의 도시이야기>까지 베니스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을 읽어 봤지만 이 책이 가장 쉽고 잘 읽힌다. 물론 재미도 있다. 이 책의 꼬마 주인공 벤델라의 최대 관심사는 산마르코 성당의 아치 위에 서있는 네 마리 청동말이다. 그 네 마리 청동말이 그렇게 유구한 역사와 깊은 사연을 간직한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청동 말이 있었다는 것 조차 금시초문이다.(바다의 도시이야기에서 단돌로의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약탈 부분에서 읽은 듯도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발없는 말은 천리를 가고 움직이지 못하는 말은 아마도 만리를 넘어 갔을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베니스로 베니스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다시 베니스로....

벤델라는 어린 소녀라 관심이 당근 어른들과 다르다. 청동말이 그렇고, 사자가 그렇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구석부분에 그려져 있는 개나 고양이 등에 관심을 보인다. 오래전 베니스 상인 몇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마가(마가복음의 기술한 그 마가 말이다.)의 유해를 베니스로 몰래 밀수해온 이후로 성 마가(산 마르코 되겠다)는 베니스의 수호성인이었다. 이 마가의 애완동물(?)이 사자라 베니스에서는 건물의 기둥이며, 처마밑이며, 문고리며, 벽이며, 곳곳에서 사자형상을 만나게 된다. '해리의 바' 벽에 그려진 금사자는 대홍수때 물에 침수된 지점을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해리의 바'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선행과 그에 따른 보은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떠나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아무 댓가없이 도와주고 또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잊을만할 때 찾아와 몇 배로 보상해준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는 흔하지만 들을 때마다 흐뭇한 마음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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