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만 없을 뿐, 모든 관계는 고인이 있던 그때처럼 제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만일 그 사람이 있을 때와 매우 똑같이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애도를 희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자살 사별자들이 ‘그 사람을 대신할 수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누군가로 대체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고인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고인의 빈자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 P221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사별자는 고인의 인생에 대한 기억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고인의 인생을 재구성하고 편집한다. 따라서 고인은 남겨진 사람의 의도에 따라 한평생 아름답게 살다간 훌륭한 사람으로, 때로는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도 편집될 수 있다. 하지만 과장된 찬사나 과장된 비난으로 고인의 삶을 기억하려는 것은 건강한 애도가 될 수 없다. - P234

제대로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안전한 환경에서 떠난 사람의 삶을 다각도로 떠올려 보는 것, 그리고 그 관계의 이야기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내가 선택적으로 망각하고 싶어 하는 그 지점이 어쩌면 사별자에게 가장 고통스럽지만 건강한 애도를 위해 반드시 수용해야 할 부분일 수도 있다. - P235

나는 한동안 그룹 샤이니가 부른 아이유의 <이름에게〉라는 노래를 무한 반복을 걸어놓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 마지막 가사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에서는 매번 울컥한다. 샤이니가 부른 그 이름의 주인공의 부고가 떴을 때 그의 팬이건 그렇지 않건 그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상담실에 찾아온 몇몇 내담자들도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 P240

개인 공백을 끝내고 다시 컴백하여 보여준 샤이니의 활동이 더욱 반가웠던 이유는 상처와 슬픔을 안고도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음을, 내가 신나고 행복하다는 것이 고인을 잊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샤이니의 팬뿐 아니라 수많은 자살사별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 - P243

고인의 시간은 여기서 끝났지만 사별자의 시간이 흐르는 한 고인과의 관계는 결코 끝날 수 없다. 우리가 한때 사랑했고 미워했던 사람들,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아프고 좋았던 경험들, 그리고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인생에 대해 배운 것들에 대해 사별자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자리에서 사별자의 새로운 삶의 의미가 생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애도는 회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발견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 P251

"비탄으로 우리는 천천히 스스로를 후벼낸다. 마치 바위가 거센 바람 속의 모래로 깎여 나가듯이, 우리가 이전의 우리를 충분히 내려놓을 때, 그리고 우리의 그 텅 빈 곳에서 성장할 때, 마침내 우리는 갈망의 끝을 발견할 것이고, 그리고 마침내 당신을 위한 방을 갖게 될 것이다."
- 로버트 니마이어(Robert A. Neimeyer)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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