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접이식 면도 나이프를 꺼냈다. 그는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욕조에 몸을 둥글게 말고 들어앉았다. 수없이 많은 흉을 몸에 새긴 나의 삼촌이 아물지 않을 마지막 상처를 준비하고 있었다. - P135

영상은 끝났다. 삼촌의 당부를 배신하고 정민은 파일을 지우지 않았다.
"괜찮아요?"
브라더가 플레이어를 종료시키고 물었다.
"네. 안 봤으면 후회했을 거예요."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마치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버스 차고지에 덜렁 혼자 남은 기분이었다. 버스는 이제 운행을 끝마쳤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요원하지만 밤 또한 길었다. - P136

복수란 본디 참고 참고 참다 터지는 압력솥의 증기 같은 것이리라. 거대한 압력이 뿜어내는 수증기엔 오래 참아 속살까지 허물어진 쌀알의 시취가 달큰하게 배어날 터였다. - P153

"보다시피 내친구들은 우마 서먼이나 키아누 리브스처럼 간지 뚝뚝 떨어지는 고독한 킬러가 아냐. 다들 부상으로 어디 한 군데씩은 장애를 갖고 있어. 항우울제나 신경안정제를 콩 주워 먹듯 해야 간신히 운전대 잡고 마트라도 갈 수 있지."
"삼촌, 난 킬러가 되려는 게 아니잖아!"
"난 그들의 일부야. 다르지 않다고.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누듯, 죄책감과 후유증도 의당 내 몫이 있어."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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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려 로버트가 셀리아에게 속삭이는 모습을 지켜봤어. 재미난 얘기라도 들은 양 셀리아가 깔깔 웃더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채워 준 사람은 나였어. 내일 헤드라인 기사에 그녀와 나란히 서 있는 사진 속 주인공도 나일 테고, 셀리아가 지금저렇게 자신의 드레스를 벗겨도 좋은 양 웃고 있지만, 로버트는 그녀의 엉덩이에 주근깨가 길게 나 있다는 걸 절대로 알 수 없을 테지. 나는 아는데… 머릿속에서 자꾸 그런 생각이 맴돌았어. - P173

다 봤던 거야.
내가 셀리아의 손을 잡는 것도.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는 것도.
그녀는 내가 방금 뭘 했는지 알아 차렸어. 내가 그 모습을 들키고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차렸어. 나를 노려보던 그녀의 작은 눈이 더 작아졌지.
나를 몰라보길 바라던 희망은 그녀가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귓속말을 하는 순간 날아갔어. 남자의 시선이 믹 리바에게서 내게로옮겨 왔어.
그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그런 생각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지 눈살을 찌푸렸어.
나는 두 사람의 뺨이라도 때리면서 남의 일에 신경 끄라고 소리치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지. 그랬다간ㅌ안전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셀리아도 모두 안전하지 않았어.
마침 반주만 나오는 구간이라 믹이 무대 바로 앞까지 걸어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 나는 이때다 싶어 벌떡 일어나서 그를 응원했어. 팔짝팔짝 뛰면서 거기 있던 누구보다 크게 소리쳤어. 내가 뭘 하는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저 앞에 앉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쑥덕거리지 않기만 바랐어. 여자에게서 촉발된 소문이 전화선을 타고 동네방네 퍼지지 말고 거기서 멈추길 바랐어. 나는 뭔가 다른 일로 시선을 끌고 싶었어. 그래서 뒷줄에 앉은 십대 소녀들처럼 목이 터져라 믹을 환호했어. 내 인생이 거기에 달린 것처럼 소리쳤어. 정말로 그럴지도 몰랐으니까.
"내가 뭘 잘못 본 걸까요?" - P238

"그렇다면 유명해지지 말았어야지." - P243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에요?"
"믹 리바와 눈이 맞아 사고를 칠까 해."
우느라 빨개진 셀리아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어. 셀리아는 재빨리 눈물을 훔친 후 그릴에 시선을 고정했어.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의미죠?"
나는 셀리아 뒤로 가서 꼭 안아줬어.
"우리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믹이 나와 눈이 맞아 사고를 치게한 다음 법적으로 바로 취소해 버릴 거야."
"그러면 그들이 당신을 더 이상 주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아니, 오히려 그들은 나를 더 주시할 거야. 하지만 그때 가선 다른기삿거리를 찾겠지. 나를 창녀나 바보라고 하면서 남자 보는 눈이 형편없다고 비난하겠지. 너무 충동적이라고 비난하겠지. 하지만 그런 문제로 나를 비난하려면 내가 너랑 사귄다는 말은 못 할 거야. 앞뒤가 안맞잖아." - P247

그들은 내가 떠벌리는 거짓말을 너무나 쉽게 믿었어. 상대방이 진실이길 간절히 바라는 거짓말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거든.
나는 그저 내 연애 스캔들이 계속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했을 뿐이야. 내가 그렇게 하는 한, 쓰레기 같은 언론은 셀리아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어.
세상은 내가 의도한 그대로 굴러갔어. - P262

"그래서 내가 창녀라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누가 알겠어?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창녀인 걸. 적어도 할리우드에서는 말이야. 봐, 그녀가 셀리아 세인트Saint 제임스인 이유가 있다니까. 성스러운 이름에 걸맞게 수년 동안 착한 여자를 연기했잖아. 나머지 우리는 그렇게 순수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당신의 지금 모습이좋아. 농익고 거칠고 과감한 모습이 좋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맨몸으로 맞서 싸우며 원하는 걸 차지하는 에블린 휴고가 좋다고. 거기에 대고 어떤 꼬리표를 붙이든, 그대로 밀고 나가 괜히 바꾸려 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비극일 거야." - P271

"그녀는 이제 가고 없어." 에블린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내 사랑은 이제 영영 떠났어.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돌아와 달라고간청할 수도 없어. 영원히 떠났으니까. 그래, 모니크, 그때 바로 연락하지 않은 걸 후회해. 그녀와 함께 보내지 못 한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그녀를 아프게 했던 온갖 어리석은 행동을 죽도록 후회해. 셀리아가나를 떠나던 날, 끝까지 쫓아가서 붙잡았어야 했어. 떠나지 말라고 애원했어야 했어.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장미꽃을 보냈어야했어. 십자가에 못 박힐지언정, 할리우드 표지판 위에 올라서서 ‘나는셀리아 세인트 제임스를 사랑한다!‘고 외쳤어야 했어. 정말로 그렇게 했어야 했어. 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그녀가 없으니까. 주체할수 없을 만큼 돈도 많고 할리우드 역사에 이름도 길이 남겼지만, 그게얼마나 공허한지 이제야 알았어. 그녀를 떳떳하게 사랑하는 것 대신에 명성을 좇았던 나 자신을 내내 원망하고 자책하며 살았어. 그때만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항상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손만 뻗으면 뭐든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 - P274

"그럼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살아도 되는거지?"
"당신이 세상 어떤 여자와 자더라도 상관 안 해."
"내 아내만 빼고." 렉스가 씩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더 마셨어. - P283

"<캐롤라이나 선셋> 촬영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둘러댈까?" 내가 조심스럽게 제안했어. "촬영장에서 서로 다른 상대에게 빠져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상했다고 할까? 다들 우리를 안쓰럽게 여기겠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을 거야. 원래 남의 불행에 더 고소해하는 법이잖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무사안일하게 지냈어.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지. 일단 좀 기다려 봐. 내가 당신의 행복을 비는 차원에서조이에게 당신을 소개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짜볼게." - P301

"조무래기 말고 파급력이 센 기자면 아무나 상관없어. 내 추락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요." 루비가 말했어. "아,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어요."
"기분 상할 게 뭐 있겠어."
"당신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잖아요." 루비가 말했어. "내놓는 작품마다 히트하고, 잘생긴 남편도 많고, 다들 당신을 추락시키고 싶어 한다고요."
"나도 알아, 안다고, 그들이 나를 추락시킨 다음엔 너한테 달려갈 거야."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당신이 덜 유명하다는 뜻이겠죠." 루비가 말했어. "내일 연락할게요. 무슨 꿍꿍인지는 모르지만 행운을 빌어요." - P308

인정하긴 싫지만 그동안 셀리아의 영화는 빠짐없이 봤어. 그러니까 셀리아를 줄곧 보긴 한 거야.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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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급해서 숟가락 몇 개 썼어요."
"집 안에 저거 말고도 다른 무기가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부엌쪽 창문을 봐요. 아주 자세히 보면 희미한 실금이 보일 거예요. 저걸 깨면 진짜 유리는 부서지고 특수 가공된 부분만 분리돼요. 도검으로 사용할 수 있죠."
나는 창고 방향으로 난 부엌 창문을 세심히 바라봤다. 빛이 투과하며 가느다란 은실 같은 금이 아른거렸다. 민혜의 말대로 실금은 단도와 장검 모양이었다.
"소파 장식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싸구려 천소파 쿠션 밑에 쇠붙이 장식이 달려서 종아리에 닿았을 텐데?"
빨간색 소파는 아주 어려서부터 이 집의 일부였다. 어느날 갑자기 없던 게 생겼다면 의아해했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모양새였으니 쇠붙이 장식이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럼, 쇠붙이 장식도 무기였나요?"
"컴파운드 보우예요. 활이라고 하면 모양이 그려지죠?
화살은 등받이 안에 들어 있고요." - P120

브라더는 우리가 사용하는 웹이 마치 바다 표면과 같다고 했다. 정보의 파도 위를 서핑하다 간혹 수심이 깊은 바다로 내려가보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들이 바로 딥웹이나 다크웹 유저라고 했다. 하지만 반타블랙웹은 그야말로 심해를 의미했다. 특수한 잠수정 없이는 접근조차 할수 없는 곳이었다. 어떤 치명적인 종(種)이 지배하고 있을지 모를 그곳은 알고도 외면하기 마련이었다. 브라더도반타블랙웹에 접속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검은 검정색을 의미하는 반타블랙은 딥웹이나 다크웹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풋내기들끼리 합성 마약이나 포르노를 거래하는 사이트가 아니라는 거였다.
"반타블랙웹에 대해선 브라더보다 내가 더 잘 알아요.
한때 거기 상품이었으니까."
민혜는 브라더가 내어준 의자에 앉아 홀 오브 바빌론에로그인했다. 그러자 화면이 일곱 개의 대문 이미지로 바뀌었다. - P122

"첫 번째 문은 표적 납치와 고문의 방이에요. 30만 불을전자화폐로 결제하면 원하는 사람을 데려다 고문 살해 할수 있어요. 실시간 방송에 방청권은 만 불이고요. 만 불을낸 사람들은 각자 한 가지씩 고문 방법을 제안할 수 있죠."
놀랍도록 덤덤한 표정의 그녀가 마우스로 두 번째 문을가리켰다.
"두 번째 문은 소아성애자들을 위한 방이에요. 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내전 중인 국가의 소녀들이 거래되죠. 아이들은 성인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교태를 부리며 포르노를 찍어야 해요. 고객들은 필름을 보고 상품을 주문하죠.
나도 여덟 살에 중국 길림성에서 한국 돈 천 5백만 원에팔려 왔어요."
브라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쥔 채식탁을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
"창자를 갈아 마실 놈들."
나도 분노와 혐오가 끓어올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외려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했다. 같은 여자인 탓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에 유린당한 여자 앞에서 주먹질과 고함은 아무 위로가 되지않는다. 나는 먹먹하게 민혜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 P123

그녀는 오래전 죽은 생물의 화석 같았다.
"세 번째 문은 총기와 금지약물 거래예요. 진만 씨는 따로 공급선이 있어서 이용하지 않는 걸로 알아요. 네 번째문은 장기밀매. 설명 길게 안 해도 되겠죠? 환자가 브로커에게 주문을 하면 브로커가 여기에 조건을 올려요. 폐쇄적인 국가의 공무원들이 판매자로 등록돼 있어요. 다섯 번째문은 자살 테러예요. 흔히 종교적인 신념으로 벌이는 짓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테러 직전에 개종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구하고 싶은 건 다름 아닌 가난에 찌든 가족들이니까요."
겹겹의 비밀이 벗겨질수록 민혜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여섯 번째 문 안엔 해킹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어요. 기업이나 국가조직, 화폐거래소, 심지어 환율이나 주가도 이들 손안에 있죠. 가장 큰 돈이 움직이는 곳이에요. 그리고마지막, 일곱 번째 문은 암살. 중간 수수료가 없는 머더헬프가 생긴 뒤 폐쇄되다시피 한 공간이죠."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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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당신을 잘 안다고 생각할 때, 그러니까 에블린 휴고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할 때, 조를 연기하는 거야. 깜짝 놀라게 하는 거지. 다들 ‘그래, 난 에블린이 뭔가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니까‘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하지만 도대체 왜 지금은 <작은 아씨들>을 할 수 없다는 거죠?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해리가 고개를 저었어.
"당신에게 투자할 시간을 줘야 해. 당신을 알게 할 시간을 사람들에게 줘야 하는 거야."
"그 말은 내가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내 말은, 사람들이 당신을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라는 거야.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거야." - P99

돈이 나가자마자 나는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어. 그리고 벽에 등을대고서 털썩 주저앉았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
태어난 곳에서 오천 킬로미터나 멀리 달아났는데 성공 가도를 달릴 방법을 찾아냈는데, 이름을 바꾸고, 머리색과 치아까지 바꿨는데 연기를 배우고 유명한 가문의 며느리로 들어갔는데.
미국인 대다수가 내 이름을 아는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나는 간신히 일어나 눈물을 닦았어.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었어.
일단 화장대에 앉았어. 앞에 놓인 삼면거울을 백열전구가 환히 비춰 주었어. 영화배우의 분장실에 있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미련할 만큼 어리석었지 뭐야. - P116

내가 돈에게 아기를 낳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중이 내 영화를 보기 꺼려한다면 그야말로 날벼락일 테니까.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진 않겠지. 아마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할 거야. 하지만 이런 기사를 읽고 나면, 다음에 내 영화를 보다가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순 없더라도 왠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사람들은 가정보다 자신을 우선하는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아. 그런 여자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게다가 아내를 단속하지 못 하는 남자를 존경 하지도 않아. 그러니 기사 내용이 돈에게도 좋을리 없었어.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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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라는 말에는 유감스러워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서 기분이 상하신거로군요."
샐러드가 나왔다. 트로이는 말없이 에블린의 접시에 후추를 갈아주다가 에블린이 웃으며 한 손을 들자 멈추었다. 나는 사양했다.
"어떤 일에 유감스러워하면서도 후회하지는 않을 수 있어." 에블린이 말했다. - P41

"나는 아주 오랫동안 진실을… 가리느라 급했어 이제 와서 해체 작업을 하려니 쉽지 않네. 그동안 진실을 가리는 걸 너무 잘해 왔거든. 아직은 진실을 어떻게 말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 경험이 별로 없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은 방식과 너무 달라서 말이야. 하지만 기어이 해낼 거야." - P58

"내가 사랑한 사람은 이제 모두 죽었어. 지켜야 할 사람이 하나도 안 남았어. 나 외엔 거짓말을 둘러댈 이유가 없어. 사람들은 내 인생의 가짜 스토리를 시시콜콜 믿고 따라왔어. 하지만 그건 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사람들이 진짜 스토리를, 진짜 나를 알았으면 좋겠어."
"좋습니다." 내가 말했다. "저한테 진짜 당신을 보여주세요. 그럼 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본 모습을 고스란히 전할게요. 그들이 당신을 제대로 이해하게 할게요."
에블린이 나를 쳐다보며 슬며시 웃었다. 딱 듣고 싶었던 말이었나보다. 다행히, 내 진심이기도 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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