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하를 찾아서 초승달문고 55
차영아 지음, 다나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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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아 작가님의 책은 몇 년에 한권씩 나온다. <쿵푸 아니고 똥푸>로 혜성같이 등장하신 것에 비하면 느린 발걸음이라 느낄 수도 있다. 작가님 안의 그 아이를 빨리 세상에 내어놓으려 등떠밀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귀 기울이며 함께 걸어간 기록 같다. 그 걸음은 느리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하며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님은 그 서툴고 작은 발걸음을 세심히 살피며 함께 걸어간다.

그렇기에 책에는 '작은' 아이가 등장한다. 세상의 풍파에 맞서기엔 너무 부족해 보여 불안한 아이. 하지만 독자들은 그 아이 안의 신통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세상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다. 그래도 아이가 용기내어 이 책의 표지그림처럼 걸음을 내딛고 한 개의 코스를 돌아서 도착했을 때, 앞으로 무수히 남은 코스들을 세어보며 한숨쉬기보다 그 완성한 코스에 박수치며 함께 기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동화의 문법에 완벽히 충실한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130쪽 정도의 저학년 동화다. 단편은 아니다. 작고 겁 많은 아이 상이와 애착인형 하하의 이야기다. 시점으로 치면 초등학교 입학식을 바로 앞둔 시점이다. 상이는 지금 입학이 두렵다. 잘할 자신이 없고, 하하를 데리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론 유치원도 개인 인형을 지참할 수 없는데, 워낙 사정이 그러하니 상이는 예외로 해주신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초등학교까지 그럴 순 없다. 엄마는 '어린이가 될 시간' 이라며 상이를 설득한다.
"하하야, 우리 이제 어린이가 될 시간이래!" (19쪽)

어린이 독자들은 상이와 하하의 모험에 집중하겠지만 나같은 엄마 독자, 나이든 독자들 눈에는 상이 엄마의 사려깊은 애씀이 보인다. 이야기 중에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상이는 심장에 구멍이 난 채로 태어났고 100일도 안되어 큰 수술을 받아 아직도 큰 흉터가 가슴에 남아있다. 유치원에서도 뭐든 느리고 서툴렀다. 거침없는 아이들 틈에 끼어들지 못했고 우는 날도 많았다.

엄마가 얼마나 속상하고 애탔을까. 무엇보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지만 그 불안을 아이 앞에서 표출하지 않는 것이 양육자의 기본이자 의무이다. 이걸 못해서 함께 힘든 부모-자녀 관계를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런 관계는 필히 주변 사람들도 함께 힘들게 한다.ㅠ 상이 엄마는 다그치기고 원망하기보다 용기를 심어주는 방법을 선택한다.
"잘 못하는 게 당연해. 학교는 잘하려고 가는 게 아니야. 배우려고 가는 건데?" (22쪽)
"똑똑, 용감 씨. 여기 있는 거 다 알아요. 어서 나오세요." (24쪽)
이처럼 부드럽고도 단단하게 말이다. 아이를 다 키워버린 나에게도 다가오는 걸 보니 이 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딴 얘기가 길었다. 이 책은 이런 부분에 많이 할애하지 않았다. 다만 스쳐가듯 있어도 눈에 보일 뿐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상이와 하하의 모험 이야기다. 입학하러 가는 날 아침, 이불 동굴 속에서 연결된 멋진 초원에서의 신기하고 통쾌하고 신나고 아슬아슬하면서도 따뜻한 모험 이야기. 그 안에서 상이는 하하를 잃었고, 또다시 찾았고, 그 사이에 다른 친구들도 만났다. 가장 인상적인 만남은 '가장 용감한 뿔' 이라는 누 대장과의 만남이다. 그 대장은 크지도 강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았다. 다만 '용감해야 할' 뿐이었다. 둘은 서로를 격려한다. 상이는 대장에게 엄마가 늘 자신에게 하던 말을 들려주었고 대장은 상이를 '깊은 상처를 이기고 살아남은 자' 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그 외 코끼리, 원숭이, 악어 등이 등장해 흥미진진한 모험을 완성한다. 마지막 이불동굴로 돌아오며 확인한 괴물의 정체는........

마지막 삽화에서 상이는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고 있다.
'가슴을 펴'고 말이다.
이 장면이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용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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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조물 우동냥 큰곰자리 저학년 3
스케랏코 지음, 채다인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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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인지 전혀 모르고 읽었다. 작가 이름은 특이한 필명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일본 작가구나.... 하긴 우동이 일본에서 더 많이 먹는 음식이긴 하지. 이 책 내가 다른 건 장담 못해도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하겠다는 건 장담할 수 있겠다. 일단 만화고, 캐릭터들이 귀엽기 때문이다. 귀여움은 무엇도 못 이긴다....ㅎㅎ 그리고 아이들 대부분은 어찌나 만화를 편식하는지, 도서실에 데려가려면 만화에 대한 제한 원칙을 조금은 두어야 한다. 안 그러면 ****, ### 앞에서만 장사진을 친다. 뭐 그게 독이라는 건 아니지만 귀한 수업시간을 투자해서 가는 건데 그런 책만 읽다 오는 건 아깝잖아. “이런 책은 휴식용이에요. 그러니까 대출은 말리지 않겠어요. 집에서 편히 쉴 때 읽으세요. 학교에서는 좀더 수준 있는 책을 읽읍시다.”

그런데 이 책 정도는 읽는 걸 말릴 필요가 없겠다. ‘그림이 아주 많은 동화’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거기에 중간중간 숨은그림찾기, 다른 그림찾기 등도 들어있어서 플레이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다. 우리반에 앞에 말한 규칙을 적용하자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며 그럼 대체 뭘 읽냐고 투덜거리던 학생이 있었는데.... (그 책들 말고도 3만 권이 넘는 책이 있건만 그의 눈에는 그것들이 책이 아닌^^;;;) 그런 아이들에게 건너가는 중간책으로 이 책을 권해주어도 좋겠다. 교사보다는 부모가 권하는 것을 더 추천한다. 집에서 부모와 함께, 형제자매와 함께 놀면서 같이 보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도깨비 방망이 우동집’의 주인장 모란 씨는 맛있는 음식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도망쳐버리고 오지 않는 바람에 고민에 빠져있다. (이것은 모란 씨의 정체와 관련 있음) 어느날 맛있는 우동 먹고 힘내보자는 생각에 우동 반죽을 빚던 중 반죽에서 “우도~옹!” 하고 우동냥이 탄생했다. 귀여운 캐릭터에 하는 짓도 웃기다. 허당에다, 먹는 걸 보면 못참고 할짝할짝 하는 표정이 넘나 귀엽다.

우동냥의 제안으로 메밀국수를 메뉴에 추가하기 위해 반죽을 하던 중 이번에는 “메에밀!” 하고 메밀냥이 탄생했다. 두 냥이가 생김새도 성격도 달라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간다.

이들의 과제는 어쨌거나 망해가는 우동집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정체가 궁금한 모란 씨의 배경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읽다가 맛있는 음식 메뉴와 그림에 군침을 삼키며 응원하다 보면 어느새 책은 끝난다. 나는 우동보다는 짜장면이나 냉면을 더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군침을 삼켰다. 아 튀김우동에 바삭한 새우튀김과 쫄깃한 면발~~ 특제전골 맛있겠다~~ 이와 같이 먹는 걸 소재로 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강점이 있다.^^

머리 식힐 때나 편한 마음으로 재밌는 걸 읽고 싶을 때 딱이다. 2권도 충분히 나올 것 같은 이야기인데 책에 그런 단서는 없었다. 일단 나온다에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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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다 이유가 있어 즐거운 동화 여행 203
이수현 지음, 정경아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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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을 위해 열심히 책을 쓰고 강의하시는 이수현 선생님이 동화도 쓰고 싶다고 하실 때, 그 동화를 빨리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올지는 몰랐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의 하루는 24시간으로 다 공평하지만 그 밀도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면 멘붕이 와서 사람구실을 못하는지라 되도록 일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르더라고. 일이 다가오면 오케이 하면서 다 받아들인다. 그게 다 들어가다니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은 변화한다. 지금 이수현 선생님이 견고한 벽을 조금씩 깨나가고 있듯이.

이수현 선생님과 어떻게 페친을 맺었는지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달장애를 가진 두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어려움과 서러움, 그리고 장애 진단을 받고 방황했던 지난날의 아픔을 토해낸 글을 읽으면서 매우 인상적인 페친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픔을 넘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남의 일이니까 짧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변화는 눈부시다. 그 사이에 동화 공부도 하시고, 이렇게 책이 나왔다. 많이 읽힐 것을 예감한다.

3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이 동화집은 모두 발달장애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단편집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하지만 작가님은 일단 본인이 잘 아는 이야기를 먼저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 같다. 작가님의 딸과 아들.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이야기가 여기에 들어있다. 엄마가 아니고서는 누가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정성껏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엄마라고 다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다.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하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세심히 들여다본 마음은 이렇게 동화책이 되어 나와서 어린이, 부모, 교사 모두의 마음을 두드리려고 준비한다.

[넌 뭘 좋아해?]에서는 학교에 늦어 달려가는 지한이가 먼저 나온다. 헐레벌떡 달려간 교문 앞에서 담임선생님과 실랑이하는 민석이를 만난다. 솔직히 담임선생님의 어려움에 너무나 공감한다. 교실까지는 들어와야 가르치지, 이 아이 한 명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교실에 나머지 아이들도 그림처럼 앉아있는 존재들이 아닌데 얼마나 난감하고 어려우실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으시고 도움을 요청하셨다. (이것도 용기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때 지한이가 같이 등교해 보겠다며 지원한다.

함께 등교하는 길에 지한이는 민석이가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려움은 남는다. 그래도 지한이는 중요한 경험을 했다.
「민석이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니,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말을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민석이와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도 친구와 가까워지는데 꼭 대화가 중요한 건 아닌가봐요.」 (26쪽)

이렇게 한 편의 동화가 끝나고 나면 주인공이 자신의 속마음을 설명하는 방식의 이야기가 덧붙여 있다. <민석이의 마음> 이런 식으로. 동화도 좋지만 자녀의 경험을 통해 수현쌤이 마음에 품었던 안타까움과 설명하고 싶은 마음속의 이유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 부분도 매우 좋다. 이 책의 차별성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현우의 이야기다. 현우는 수업시간에 노래를 불러서 짝인 예준이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 말라고 화를 내면 그 말을 또 따라 한다. 예준이가 약올라서 미치고 팔딱 뛸 상황이다. 쉬는 시간 쏜살같이 뛰쳐나가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앉은 현우. (발달장애 아이들 중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본의아니게 예준이는 없어진 현우를 같이 찾게 되는데, 예준이의 예상대로 정글짐에 있었다. (요즘은 놀이터에 정글짐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위험한 것은 다 없애는 추세라서) 그 위에서 통하는 두 아이의 마음.

이어지는 <현우의 마음>에서는 현우가 상동행동, 문제행동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쉽게 규정하는 말들에도 당사자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물론 느끼는 것이 다르니 타인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다를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제목처럼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인정해야 그 다음이 있지 않을까.

[나도 다 이유가 있어]는 정우의 이야기다. 이 편은 다른 편과는 달리 장애 주인공이 화자로 나온다. 정우는 나에게도 익숙한 아이다. 페북에서 자주 만나보았기 때문에. 정우는 웃는 얼굴이 예쁘고, 휴일 아침 엄마 아빠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커피를 내려줄 만큼 다정다감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감싸쥐고 ‘아아 나는 못해ㅠ’ 할 때가 있었는데.... 잠이 없고, 밤에 울거나 너무 일찍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며, 높은 곳에 올라가 아슬아슬한 자세를 취하거나, 감당못할 정도로 뭔가를 쏟거나 어지르거나 할 때.... 수현쌤 또한 그럴 때 고통스러운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고 눈물젖은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다음날은 또 힘을 내서 역기를 드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러한 정우의 특성이 들어간 이야기가 몰입감 있게 펼쳐진다. 길을 잃었던 에피소드, 친구의 물건을 신기해서 만졌다가 거부당했던 경험 등이 모두 이야기에 녹아있다. 그리고 아주 따뜻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너무 동화적인가?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못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그래서 슬프고 실망스러웠던 적도 많지만) 대체로는 착한 모습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방향을 잘 인도해 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학년 우리반 2학기 온작품읽기 책으로 하려고 오늘 바로 품의를 올렸다. 미리 올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결정하려고.... 미리 올렸어도 좋았을 만큼 이 책은 아이들과 꼭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우리 학년에는 반마다 발달장애 어린이들이 있다. 나도 여러 번의 통합학급 경험이 있지만 발달장애는 처음이라서 고전하는 중인데, 어떤 때 보면 교사보다 친구들이 더 낫구나 하고 감동할 때가 있다. 원래도 잘 이해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가 더 깊어질까. 벌써부터 감동이 오는 느낌이다.^^ 우리반 다 읽고 다른반에도 돌릴 생각이다.

학교는 장애이해교육의 의무가 있고,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해왔다. 지금의 내 생각으로 가장 깊이있는 방식은 바로 이 책을 온작품읽기로 함께 읽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동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젯밥에 관심이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활용도 면으로도 출중한 책이다. 아참!! 작가가 직접 제작한 워크북도 다운받을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모든 온작품읽기 책의 워크북을 직접 만들었다. 간혹 공개된 워크북도 있었지만 남이 만든 건 방향이 좀 안맞아서.... 하지만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작가 본인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워크북 너무 좋다. 그대로 활용할 생각이다. (아싸 시간 아꼈다) 어린이와 부모님들께 널리 읽히고, 교사들에게도 많이 활용되는 책이 되길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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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최고야!
현단 지음 / 한울림스페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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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단 작가님의 그림책을 두 번째 읽었다. 첫 번째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다. 그 책과 이 책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판형이 둘다 특이하다는 것이다. <무궁화꽃>은 이 책보다 더 길쭉하지만 옆으로 넘기는 책이었고, 이 책은 그 책보다는 덜 길쭉하지만 위로 넘기는 책이다. 말하자면 펼쳐놓고 보면 이 책이 더 길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렇게 긴 화면에 내용을 담으실 생각을 했을까. 특이했지만 읽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다.

표지를 딱 보니 한 남자와 그의 반려견 이야기인 듯하다.
“우리 라이언은
눈만 뜨면 나를 찾아.
잠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지.”
이렇게 시작되는 첫 장을 보고 대부분 ‘강아지 이름이 라이언인갑네’ 하지 않을까? 나는 그랬거든. 근데 그게 편견이었구만. 이 책의 화자는 뭉치라는 이름의 강아지고 ‘우리 라이언’이 사람이다. 견주인 젊은 남자다.

주인이 하도 들이대니까 뭉치는 짐짓 싫다는 내색을 하지만 속으로는 늘 함께하는 주인을 사랑한다. 헉헉댈 때까지 재미있게 놀아주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산책시켜주는, 개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주인이다. 여행도 함께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같이 하는 걸 보니 정말 종만 다를 뿐 진정한 친구라고 할 만하다.

마지막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의 두 번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앞에 복선으로 깔아놓은 ‘변신’이라는 낱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스포이긴 한데 소개글에 내용이 다 나와있으니 그냥 씀) 사람들은 그걸 변신이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뭉치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 다른 걸 따지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뭉치이기 때문에.

마지막 장에 이르면 이 책이 왜 이렇게나 긴 판형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 라이언 씨는 의자에 앉아 의족을 착용하고 우뚝 일어선다. 그때 뭉치가 하는 말.
“역시 라이언이 최고야!”
이 책의 제목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결국 이 책과 <무궁화 꽃>의 두 번째 공통점은 장애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 아무 편견 없이 함께해주는 친구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라이언 씨는 두 다리 모두에 의족을 착용한다. 하나는 무릎이고 하나는 그보다 더 위다. 하지만 라이언 씨는 앞에서도 봤듯이 비장애인들보다 더 철저히 반려견 산책을 시켜주는 사람이다. 뒷면지에는 라이언 씨가 뭉치를 데리고 산책하다 뭉치가 좋아하는 솜이라는 개와 그 견주를 만나는 한 장면이 나오는데, 라이언 씨는 반바지를 입고 있어 의족이 다 드러나 있다. 그걸 다시 돌아보지 않는, 수군대지 않고 무심히 대할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많이 발전한 것일 텐데.

나는 근시가 심해서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안경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눈 나쁜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않아서 안경이 매우 특별한 경우라면 나도 장애인이겠구나 생각한다. 발달된 보조기구들은 지체 장애인의 활동 반경을 훨씬 넓게 한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관련 과학기술들도 더욱 발전했으면 하는 희망적인 마음으로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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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주의보 - 제8회 윤석중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양양 그림 / 밤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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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님의 단편집이 도서실 신간코너에 꽂혀있길래 집어왔다. 역시 재미있고 잘 읽히네 생각하면서 읽다보니 전에 읽어봤던 이야기다. 어디서 읽었더라 생각하면서 읽다가 마지막 작품에서야 책 제목이 생각났다. 사료를 드립니다! 1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때 참 좋아서 추천 목록에도 넣었던 기억이 난다.

개정판인 이 책은 시대에 어색하지 않게 세부 내용들을 다듬었다고 하는데 오래 전에 읽은 거라 달라진 부분이 딱 보이진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다듬었다는 뜻이겠다) 그리고 표제작이 달라졌다. 초판에선 [사료를 드립니다]였고 이번 책에선 [건조주의보]이다. 이번 표제작이 책 제목으로는 더 나은 것 같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좋은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사료를 드립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참 좋았지만 적어놓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적어보려고 한다. 첫작품 [건조주의보]는 가족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건우가 ‘건조증’이라는 공통점을 찾고서 기뻐하는 이야기다. 공부를 아주 잘해서 부모님의 기대와 시중을 한몸에 받는 고등학생 누나는 안구건조증, 엄마는 구강건조증, 아빠는 피부건조증. 건우는 어떤 건조증을 발견했을까? 건우가 느끼는 소외감은 심각한 것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따라서 이야기도 귀여운 느낌으로 읽었다. 하지만 귀여운 수준이 심각한 수준으로 바뀌는 것도 한순간이니.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큰 공감을 줄 만한 이야기다.

[닮은꼴 모녀]의 민지네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이다. 교실에서 글쓰기 발표를 하던 날 알게 된 충격적 사실. 몰래 좋아하던 영민이가 엄마의 방문 학생이고, 영민이는 그 선생님(민지 엄마)를 매우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사실. 그런데 영민이가 보는 선생님과 민지가 보는 엄마는 과연 동인일이 맞나?ㅎㅎ 남의 자식 앞에서 멋진 척하기는 쉽다. 이상적인 말을 하기도 쉽다. 하지만 내 자식 앞에서는 본능과 욕심이 앞서는 법....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이 작품을 읽어보면 그중 한쪽만 그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요술 주머니]는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행운을 그렸다. 누군가를 도와주었는데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요술이 들어간 보답을 받는.... 이 작품에선 그게 요술 주머니. 화수분처럼 그 안에 넣은 것을 불려주는 주머니였다. 그런데 효과는 단 한 번. 지유는 그걸 모르고 섣불리 넣은 것을 후회하지만.....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세 가지 소원’ 이야기와도 공통점이 있다. 행운과 행복의 관계는? 이렇게 우리는 우리 안의 요술주머니 판타지를 정돈해본다.

[이상한 숙제] 이 작품은 전에 읽은 것보다 더 강하게 느낌이 왔다. 아마도 그동안에 내 경험과 생각이 조금 더 쌓인 것이겠지. 해빈이네 선생님은 ‘아름다운 사람’을 찾으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이리저리 찾아도 어려웠던 그 숙제는 어느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사람을 만나면서 해결되었다. 장애인을 돕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고 장애인이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전자에 더 초점을 맞춰온 것은 아닐까. 장애인의 마음은 서툴고 일반상식과 다른 행동 때문에 묻히기가 쉽고. 그런 점을 해빈이의 눈으로 보여준 이 작품이 왠지 고맙게 느껴진다.

마지막 [사료를 드립니다] 이 작품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난다. 장우네는 유학을 떠나며 장군이를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더구나 장군이는 대형견(시베리안 허스키)이었다. 임시보호자를 구하는 광고에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이 지원을 했고, 여러 가지 주의사항과 신신당부와 함께 장군이를 보냈다. 사료도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고, 아저씨는 언제든 보러 와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급한 사정 때문에 돌아온 장군이가 찾아간 곳에 장군이는 보이지 않았고 열악한 상황만 펼쳐져 있었다. 특히 꼬박꼬박 보내준 사료를 동네 수퍼에서 다른 생필품으로 바꿨다는 대목은 모든 견주들이 부르르 할 만하다. 우리 딸만 해도 개 먹이는 거 엄청 따지거든.... 하지만 장우는 또다른 사실을 발견하고, 눈물을 삼키며 돌아선다. 이 대목이 슬프면서도 대견하고 뭔가 희망차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이 가장 좋았나보다.
『장군이가 아이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도 장우네 있을 때보다 여위고 털이 거칠어진 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썰매를 끌며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던 자기 조상들처럼 늠름해 보였다. 아이들을 지키는 든든한 호위무사 같기도 했다.』
반려견을 다룬 작품들이 무수히 많지만 단연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이지만 새롭게 좋았다. 이제보니 새롭게 나온 역사소설이 있네.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잇는 작품인 것 같다. 동화와 소설을 넘나드는 이금이 작가님의 필력을 믿고 그 책도 읽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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