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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다 이유가 있어 ㅣ 즐거운 동화 여행 203
이수현 지음, 정경아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25년 8월
평점 :
통합교육을 위해 열심히 책을 쓰고 강의하시는 이수현 선생님이 동화도 쓰고 싶다고 하실 때, 그 동화를 빨리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올지는 몰랐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의 하루는 24시간으로 다 공평하지만 그 밀도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면 멘붕이 와서 사람구실을 못하는지라 되도록 일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르더라고. 일이 다가오면 오케이 하면서 다 받아들인다. 그게 다 들어가다니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은 변화한다. 지금 이수현 선생님이 견고한 벽을 조금씩 깨나가고 있듯이.
이수현 선생님과 어떻게 페친을 맺었는지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달장애를 가진 두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어려움과 서러움, 그리고 장애 진단을 받고 방황했던 지난날의 아픔을 토해낸 글을 읽으면서 매우 인상적인 페친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픔을 넘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남의 일이니까 짧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변화는 눈부시다. 그 사이에 동화 공부도 하시고, 이렇게 책이 나왔다. 많이 읽힐 것을 예감한다.
3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이 동화집은 모두 발달장애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단편집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하지만 작가님은 일단 본인이 잘 아는 이야기를 먼저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 같다. 작가님의 딸과 아들.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이야기가 여기에 들어있다. 엄마가 아니고서는 누가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정성껏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엄마라고 다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다.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하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세심히 들여다본 마음은 이렇게 동화책이 되어 나와서 어린이, 부모, 교사 모두의 마음을 두드리려고 준비한다.
[넌 뭘 좋아해?]에서는 학교에 늦어 달려가는 지한이가 먼저 나온다. 헐레벌떡 달려간 교문 앞에서 담임선생님과 실랑이하는 민석이를 만난다. 솔직히 담임선생님의 어려움에 너무나 공감한다. 교실까지는 들어와야 가르치지, 이 아이 한 명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교실에 나머지 아이들도 그림처럼 앉아있는 존재들이 아닌데 얼마나 난감하고 어려우실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으시고 도움을 요청하셨다. (이것도 용기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때 지한이가 같이 등교해 보겠다며 지원한다.
함께 등교하는 길에 지한이는 민석이가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려움은 남는다. 그래도 지한이는 중요한 경험을 했다.
「민석이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니,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말을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민석이와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도 친구와 가까워지는데 꼭 대화가 중요한 건 아닌가봐요.」 (26쪽)
이렇게 한 편의 동화가 끝나고 나면 주인공이 자신의 속마음을 설명하는 방식의 이야기가 덧붙여 있다. <민석이의 마음> 이런 식으로. 동화도 좋지만 자녀의 경험을 통해 수현쌤이 마음에 품었던 안타까움과 설명하고 싶은 마음속의 이유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 부분도 매우 좋다. 이 책의 차별성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현우의 이야기다. 현우는 수업시간에 노래를 불러서 짝인 예준이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 말라고 화를 내면 그 말을 또 따라 한다. 예준이가 약올라서 미치고 팔딱 뛸 상황이다. 쉬는 시간 쏜살같이 뛰쳐나가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앉은 현우. (발달장애 아이들 중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본의아니게 예준이는 없어진 현우를 같이 찾게 되는데, 예준이의 예상대로 정글짐에 있었다. (요즘은 놀이터에 정글짐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위험한 것은 다 없애는 추세라서) 그 위에서 통하는 두 아이의 마음.
이어지는 <현우의 마음>에서는 현우가 상동행동, 문제행동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쉽게 규정하는 말들에도 당사자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물론 느끼는 것이 다르니 타인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다를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제목처럼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인정해야 그 다음이 있지 않을까.
[나도 다 이유가 있어]는 정우의 이야기다. 이 편은 다른 편과는 달리 장애 주인공이 화자로 나온다. 정우는 나에게도 익숙한 아이다. 페북에서 자주 만나보았기 때문에. 정우는 웃는 얼굴이 예쁘고, 휴일 아침 엄마 아빠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커피를 내려줄 만큼 다정다감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감싸쥐고 ‘아아 나는 못해ㅠ’ 할 때가 있었는데.... 잠이 없고, 밤에 울거나 너무 일찍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며, 높은 곳에 올라가 아슬아슬한 자세를 취하거나, 감당못할 정도로 뭔가를 쏟거나 어지르거나 할 때.... 수현쌤 또한 그럴 때 고통스러운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고 눈물젖은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다음날은 또 힘을 내서 역기를 드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러한 정우의 특성이 들어간 이야기가 몰입감 있게 펼쳐진다. 길을 잃었던 에피소드, 친구의 물건을 신기해서 만졌다가 거부당했던 경험 등이 모두 이야기에 녹아있다. 그리고 아주 따뜻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너무 동화적인가?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못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그래서 슬프고 실망스러웠던 적도 많지만) 대체로는 착한 모습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방향을 잘 인도해 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학년 우리반 2학기 온작품읽기 책으로 하려고 오늘 바로 품의를 올렸다. 미리 올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결정하려고.... 미리 올렸어도 좋았을 만큼 이 책은 아이들과 꼭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우리 학년에는 반마다 발달장애 어린이들이 있다. 나도 여러 번의 통합학급 경험이 있지만 발달장애는 처음이라서 고전하는 중인데, 어떤 때 보면 교사보다 친구들이 더 낫구나 하고 감동할 때가 있다. 원래도 잘 이해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가 더 깊어질까. 벌써부터 감동이 오는 느낌이다.^^ 우리반 다 읽고 다른반에도 돌릴 생각이다.
학교는 장애이해교육의 의무가 있고,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해왔다. 지금의 내 생각으로 가장 깊이있는 방식은 바로 이 책을 온작품읽기로 함께 읽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동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젯밥에 관심이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활용도 면으로도 출중한 책이다. 아참!! 작가가 직접 제작한 워크북도 다운받을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모든 온작품읽기 책의 워크북을 직접 만들었다. 간혹 공개된 워크북도 있었지만 남이 만든 건 방향이 좀 안맞아서.... 하지만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작가 본인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워크북 너무 좋다. 그대로 활용할 생각이다. (아싸 시간 아꼈다) 어린이와 부모님들께 널리 읽히고, 교사들에게도 많이 활용되는 책이 되길 바라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