옜다, 호랑이 시루떡 한울림 꼬마별 그림책
표영민 지음, 이형진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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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그림에 눈이 즐겁고,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그 '아는 맛'과 냄새까지 느껴진다면 오감을 제대로 자극한 그림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사실 떡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 한조각만 맛보고 싶다고 손을 내밀고 싶어진다.

'옛날옛적' '할머니'가 나오는 그림책이다. 첫장에서 팥죽을 쑤고 계시니 영락없이 팥죽할머니가 연상되는데 딱 그렇지는 않다. 새벽에 부지런히 만든 푸짐한 음식을 이고 장터에 가시는 할머니를 고개에서 만나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를 보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에서의 불쌍한 어머니가 생각난다. 하지만 여기서의 할머니는 그런 불쌍한 캐릭터가 아니다. 호랑이에게 떡, 만두, 잡채, 팥죽, 곶감 다 털려놓고도 툭툭 털며 "어차피 장에 가긴 틀렸으니 우리집에 가자꾸나. 먹고 싶은 거 다 해주마." 하시는 여유있고 손 큰 할머니다. 문제는 호랑이 녀석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을 뿐.

하지만 한 번 맛본 맛의 신세계를 어찌 잊으랴? 호랑이는 그만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보다못한 동물들이 들쳐메고 할머니께로 데려간다. 자, 지금부터가 '호랑이 시루떡'의 과정이다.

앞에서 얘기한 두 옛이야기 말고도 언뜻언뜻 다양한 옛이야기를 버무린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떡고물로 이용할 흑임자, 완두콩, 팥은 다리 다친 제비가 물어다준 씨앗으로 재배한 것이라나? 시루떡에 곶감까지 넣네? 여기선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가 살짝! 이런 걸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며 읽는 재미도 좋을 것 같다.

시루에 얹어 찌는 장면에선 어릴 적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집엔 엄마가 늘 반들반들 닦아두던 시루가 있었다. 간식이 귀했던 시절에 엄마가 쪄주던 팥시루떡은 최고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 엄마는 그런 걸 집에서 어떻게 했던 걸까? 솥과 시루 틈새에 밀가루 반죽 붙이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그 장면도 이 책에 나와있어 반갑!

이리하여 온갖 맛난 떡고물에 늙은 호박고지로 줄무늬까지 만든 호랑이 시루떡 완성! 호랑이의 반응은 과연?
"이리하여 쓰러진 호랑이도 벌떡 일으킨다는 호랑이 시루떡 이야기 끝이로세!"

동물들의 입에 (남의 입에) 먹을 것 넣어주기 좋아하는 손 큰 할머니와, 그 맛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한 판의 축제처럼 신나고 정겹다. 요즘같이 춥고 어두운 세상에선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인간이라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그 탐욕과 이기심과 잔인함의 끝은 어디인가. 새삼 힘들어지는 마음에 잠시 휴식을 주는 밝고 느슨한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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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의 마법 케이크 가게
콘도우 아키 지음, 황진희 옮김 / 한빛에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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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가치는 대단하다.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 영향력은 놀랍다. 나는 그닥 관심과 애착을 갖는 캐릭터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은연중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수많은 캐릭터 중에 리락쿠마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그림책의 작가님이 바로 그 개발자라고 한다. 지금은 그림책 작업에 전념하는 것 같다.

 

캐릭터들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개성이 있지만 대다수의 공통분모는 귀여움인 것 같다. 진짜 귀여움에는 못 당하지. 리락쿠마도 한 귀여움 했고.... 이 책도 온통 예쁨, 예쁨, 귀염, 귀염이 한가득이다. 거기다가 먹음직스러움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책이다. 스토리에 상관 없이 보더라도 우와 하면서 눈이 머물 것 같은 그림책이다.

 

이제 디저트 같은 건 멀리하는 게 건강에 이로운 나이가 됐는데 세상엔 예쁘고 달콤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지. 이 책에도 한가득 들어있다. 숲속 케이크 가게 주인인 무무 씨와 조수(실습생)로 들어온 고양이 미미의 캐릭터도 사랑스럽고.

 

가장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 같은 부분은 무무 씨가 미미에게 가게의 열두 달 생일케이크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각 계절에 알맞은 재료와 느낌으로 꾸며진 케이크는 열두 가지 모두 탄성이 나올 정도로 예쁘고 멋지고 색다르다. 이걸 보고 있자니 미술 시간에 케이크 디자인 수업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디자인도 미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고, 이 그림책을 보여주고 나면 의욕도 충천해질 테니 괜찮을 것 같은데? 우리 반엔 마커, 유성펜, 색연필, 오일파스텔 등이 캐비넷 안에 착착 정리되어 있어서 원하는대로 가져다 쓴다. 이 책의 작가님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즐겁게 활동하며 꽤 멋진 케이크들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예쁘고 귀여운 디자인에 스토리가 살짝 뒤로 밀리지만, 자기 생일을 모르는 실습생 미미에게 주인 무무가 생일파티를 준비해주고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이야기가 정겹고 따스하다. 최종 작품은 공개하지 않고 이야기가 끝난다. “미미의 생일 케이크는 어떤 케이크였을까요?” 하면서. 이 책의 독후활동에 주안점을 둔다면 그냥 케이크 디자인보다도 미미의 생일케이크 상상해서 그리기활동으로 가는 것도 괜찮겠다. 간단한 뒷이야기를 덧붙여도 좋고.

 

이 책은 특별히 권하거나 하지 않아도 꽂아두면 인기도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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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구르는 속도 - 제4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아동문고 113
김성운 지음, 김성라 그림 / 사계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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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공들여 쓰신 느낌이 나는 작품이 사계절 문학상 수상작으로 내 눈에 띄었다. 작가님은 이제 제게도 독자 여러분이 생긴다니 꿈만 같습니다.” 라는 소감으로 떨리는 마음을 표현했다. 수상작이라고 무조건 프리미엄을 붙여 다른 작품과 차별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작품은 정말 좋았다. 지금 맡고 있는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작품이다. 내년에는 이 학년을 떠나 이정도를 읽기엔 좀 어려운 학년으로 갈 것 같아서 아쉽다. 어쩌다보니 같은 학년을 연달아 하게되어 좋은 책들을 1년에 다 읽기 어려울 만큼 온작품읽기 세트로 축적해 두었는데, 좋은 작품은 나오고 또 나와서 계속 입맛을 다시고 욕심을 내게 만든다. 이 책은 학급이 함께 읽는다면 주인공 학년인 4학년, 같은 학년은 아니지만 5,6학년도 좋을 것 같다. 개인이 읽는다면 독서력에 따라 더 어린 학년도 괜찮겠지.

 

이 책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 하늘이의 이야기면서, 하늘이를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다. 그 주변은 확대한다면 세상이다. 그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 느낌엔, 실제 세상의 비율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고, 나쁜 사람은 적고 강도도 낮다. 이런 세상이면 별 걱정이 없겠다는 느낌이었다. 따뜻하고 유머스럽고 미소가 번지는 세상이다. 그 느낌은 디테일에서 온다. 아직 첫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님의 특징이자 특기가 아닐까 싶다. 아주 작은 것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천천히 가는 느낌.

 

일단 하늘이의 가족. 부모님은 도시와 약간 떨어진 바닷가 마을에서 슈퍼를 운영한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니 손님도 드문 형편이다. 거기에 딸의 장애까지 생각하면 한숨을 쉴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긍정적이며 농담을 즐긴다. 하늘이도 부모님의 성정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웬만해서는 좋게 생각하고 비관이나 서러움에 깊이 잠기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이네 학교. 딱 한 명 빡구라는 빌런이 있긴 하지만 워낙 방어벽이 두터워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친구들이 너무 멋지다. 대단하게 뭘 하는 건 아닌데, 무심하게 멋지다. 이게 최고다. 난 이게 딱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왕별이랑 보라는 하늘이의 단짝 친구다. 어느날 둘이 수업끝나고 분식집에 가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는 말 안하고?’ 의아해진 하늘이는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곤란해하는 아이들. 이유는 하교 때 하늘이 엄마가 데리러오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줌마가 계시면 불편하다고. 하늘이는 그만 울적해졌다. 휠체어만 아니었으면....ㅠ 그때 두 친구는 깨달았던 것 같다. 무심코 한 생각이 친구를 서운하게 했겠구나. 하필 그날 급식에 떡볶이가 나왔다. 친구들은 하늘이한테 떡볶이 먹지 말고 남기라고 하더니 빈 우유갑에 떡볶이를 담아 밖으로 나왔다. 셋이 못가는 분식집 대신 급식 떡볶이를 먹으며 비밀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보라한테 남친이 생겼다는! 어른 있으면 못할 얘기가 맞잖아?^^ 그날 하늘이는 다이어리에 쓴다. 우리 우정 의심하지 않기. 얼마나 멋진 아이들인가! 오해 상황-서운함-피로감-상처-멀어짐 이런 코스를 밟지 않는 이 아이들은 어른보다도 낫다. 무심한 일상인것 같지만 좀처럼 벌어지기 힘든 풍경이다. 진짜 감탄했다. 너무 대견해!

 

마지막으로 이웃들. 이웃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일단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태양이네 부모님도 좋은 사람들이고, 이제 막 이웃(아니 식구인가?)이 된 이라크 언니, 마람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무슨 일로 한국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마을에서 한 달만 지낸다고 하며 하늘이네 2층에 한달 월세로 들어왔다. 한국 오기 전부터 드라마로 한국말을 배웠다는 마람 언니는 줄줄 막힘이 없고 능청스런 농담까지, 아주 한국말 고수다. 언니는 자신을 램프의 요정이라고 소개한다. 소원 들어주기 성공해야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늘이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소원을 고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이 설정 속에서 하늘이가 겪은 다양한 상황들이 독자에게 보여진다.

 

대표적인 것은 장애를 가진 하늘이가 현장체험학습을 고대하는 모습이다. 현실적인 상황이 많이 들어가 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걱정이 많은 분이었고, 하늘이 부모가 포기하기를 은연중에 바랐다. 2학년 때는 장소가 산이어서 엄두도 못 냈고, 3학년 때는 체험 장소에서 난색을 표했다. 요란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건 명백한 차별의 상황이 맞다. 하늘이는 전혀 배려받지 못하고 제외되었다. 4학년인 올해는 박물관이다. 하늘이는 과연 무사히 참여할 수 있을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활동지원 선생님이 붙었고, 담임선생님의 계획은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저상이라도 대중교통을 어떻게 믿고... 걍 전세버스로 가시지.... 라는 생각을 하는 나. 아니나다를까, 믿었던 저상버스는 경사판이 고장나 탈 수 없었다. 그나마 활동지원 선생님이 계셔서 다음 차를 타기로 하고 일행을 먼저 보냈지만, 자주 오는 버스가 아니라서 친구들보다 훨씬 늦게 합류하게 됐다. 그래도 첫 체험학습은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그 과정에 하늘이의 성취를 자기 일처럼 마음 졸이고 기다리는 친구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능한 기쁨이었다.

 

이 대목에서 하늘이가 만조의 비유를 한 것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쪽 바다가 만조일 때 반대편 바다도 만조라고 한다. 한쪽으로 쏠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늘이는 친구들을 함께 바닷물을 당기고 있는 지구 반대편 바다라고 생각했다. 멋진 비유다. 작품에 이런 비유가 한두개 들어있으면 작품의 가치가 확 올라간다. 자연현상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비유로 활용한 작가님의 세심한 센스가 돋보인다.

 

이런저런 사건들 속에서 하늘이의 소원들이 다가왔다가 넘어간다. 결국 채택된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이라크에서 온 마람 언니는 한 달 월세살이를 채우고 떠나갔다. 과연 소원은 누가 들어준 것일까? 마람 언니의 정체는 정확히 뭘까? 언니가 요정을 자처하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말하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 아닐까? 작품은 굳이 이런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무심히 넘어간다. 대신 굳이 물어보지 않았던 작은 장면들, 이를테면 아가였던 하늘이가 어린이집에 가지도 못하고 온종일 바닷가에서 혼자 놀던 장면, 엄마가 우리 딸 다리를 고쳐 주세요 라는 소원을 빌지도 못하고 저와 제 딸의 다리를 바꿔 주세요.”라고 빌던 장면을 살며시 보여준다. 그런데 푸하하 웃게 되는 점은 바로 하늘이가 이렇게 치고 나온다는 것이다.

매끈한 내 다리랑 왕 두꺼운 엄마 다리를 바꾸는 건 내가 너무 손해인 것 같지 않아?”

이게 나잖아라고 생각하는 하늘이의 건강한 마음은 스스로 소원을 향해 다가간다. 절대 혼자서는 아니고 부각되지는 않는 다양한 배경들과 함께. 그 희미한 배경 속에 내가 있기를 바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배경엔 네가. 너의 배경엔 내가. 그렇게 살면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휠체어 구르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세상. 그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 날로 비관적이 되고 마음의 끈들을 거두어들이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살며시 다가와 이런 세상도 가능하다고 보여주는 작품이다. 차별과 편견을 말하는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농담이 어색하지 않은 재밌고 따뜻하며 특별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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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되찾기 프로젝트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랑 놀래 10
송선혜 지음, 박현주 그림 / 마루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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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속셈(?)이 뻔한(?) 동화는 작품성이 없게 보이고 재미도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묘하게도 재미가 꽤 있었다. 다만 결말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다. 사이다를 기대한 어린이라면 엥 하고 실망할 수도 있겠다.ㅎㅎ 하지만 내가 어른이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꽤 만족스런 결말이었다. 그 과정도 아이들 사이의 관계와 심리가 잘 들어가 있었다.

지민이와 유나는 단짝이었지만 말도 안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유나의 물건 자랑 성향 때문이었다. 보다못해 지민이가 "너는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어?" 라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고 유나가 "너는 헌 물건만 가지고 다니잖아!" 라고 응수함으로써 둘 사이는 완전히 깨졌다.

유나 같은 성향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꽤 보인다. 경력이 많아 이런 경험이 많은 나는 아예 원천봉쇄를 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 대한 회의가 한때는 있었다. 모든걸 아이들과 상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주의가 가스라이팅처럼 교직을 뒤덮었을 때.... 나는 인권을 무시하는 교사인가 하는 자괴감이 운신을 힘들게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상의할 것이 따로 있으며 선포할 것도 지도할 것도 있다. 결말이 뻔히 정해진 행동은 못하게 한다. 꼭 똥을 찍어먹게 놔두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잖아?

유나같은 성향의 아이들은 '선심쓰기'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 한다. 가장 대표적인 행동이 학교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져와 펼쳐놓는 것이다. 그때 뭐야? 뭐야? 하면서 다가오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것과 자신의 위력을 즐긴다. 이 책의 대화 중에도 그런 게 있다.
"세뱃돈으로 산 비싼 거야. 내 말 잘 들어야 줄 거야."
심지어 급식으로 선심을 쓰는 아이들도 있다. 요구르트 등 1인 1개씩 배부되는 특별메뉴가 있을 때 꼭 "이거 먹을 사~~람?" 하면서 손님들을 모으는 아이. "나! 나! 나 주라 응?" 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만족감을 맛보려 한다. 심지어 자기가 먹고싶으면서도 그러는 아이도 있다는 사실. 심굴궂은 내가 그 꼴을 봐줄 리가 없다.
"순이는 자기 급식으로 선심쓰지 마세요. 그리고 그거 달라는 친구들은 무슨 생각이에요? 그걸 받아 먹으면 순이는 오늘 영양에서 그게 빠지는 거잖아요? 급식선생님들이 주시는 건 더 받아올 수 있어요. 하지만 친구거 받아서 더 먹는 건 안됨!"
교실에 가져오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3월 초부터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분명하게 선포한다. 수업과 관련없는 물건 가져오지 않기. 슬슬 가져오기 시작하는 아이가 보이면 "순이, 그거 안가져오는 물건인데? 꺼내지 마요. 그리고 오늘 잊지 말고 집에 꼭 놓고와요. 알겠죠?"
이런 식이다. 쪼잔해져야 가능한 담임의 일상. 에휴^^;;;;

이 책에도 그런 아이들의 심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배경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종업식까지 2월 기간 중 2학년 교실. 설날 지나고 온 아이들은 세뱃돈으로 산 비싼 물건들로 자신의 위력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민이는 여기에 낄 수 없다. 세뱃돈을 전액 엄마한테 '맡겼기' 때문이다. 이대목을 읽어주면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예상된다.

지민이는 당연하다 생각하던 일들에 배신감을 느꼈다. 부모님께 그동안 맡긴 세뱃돈을 모두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부모님은 당황한다. 단식투쟁까지 감행하는 지민이에게 꺾인 엄마는 허락한다. 엄마한테 말하고 사용하기로. 지민이가 수소문해서 정리한 가격은 무려 500만원! 냉장고에 가계부 형식의 메모지가 붙었다. 500만원부터 시작해 쓴돈과 잔액을 적어나가는 메모지다. 지민이는 드디어 부러워하던 2만원짜리 슬라임을 샀다. 그런데! 그 아래 적힌 항목에 깜짝 놀란다. 엄마가 저녁으로 맛있게 해주신 오리고기의 가격을 적어놓은 것이다.
"너도 이제 돈이 생겼잖아.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잖아. 그러면 너도 돈을 내야겠지?"

이렇게 이야기는 흥미롭게 흘러간다. 지민이는 이제 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즐기던 위력을 즐겨볼 수 있었고, 친구들한테 한 턱 쏠 수도 있었고, 피자를 시켜먹을 수도 있었지만.....

무난하고 상식적인 결말이 내 마음엔 훈훈했지만, '맡겨진' 세뱃돈에 한맺힌 어린이가 읽었다면 사이다 결말이 아니라서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결말이 좋다. '맡겨진' 세뱃돈은 각 가정에서 평화적으로 합의하시길..... 꿀꺽만 안하시면 되쥬. 근데 지금 든 생각인데, 어느정도 공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냐면 세뱃돈 그게 상부상조라서 그만큼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간 거그덩. 그건 뭐 각 가정의 지혜로운 합의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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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멍을 뚫어라 상상문고 22
문은아 지음, 불곰 그림 / 노란상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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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되는 색상의 선명한 표지그림이 눈길을 끌고 좋았는데 본문 삽화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취향 문제인 것 같다. 난 만화체의 삽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강한 것보다는 작고 귀엽고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취향. 취향이 다른 분들은 충분히 좋게 느끼실 것 같다.

작가님의 작품 중 읽었던 게 있나 훑어보니 <오늘의 10번 타자>를 몇 년 전에 읽었었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다. 이 책에도 몇가지 흥미로운 소재와 감상 포인트가 있었다.

화자가 세 명이다. 첫번째 화자 승찬이는 아파트 밖 주택 구역에 사는 아이이고 부모님은 배 과수원을 하신다. 승찬이네 학교는 인근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데 개구멍을 통과하면 가깝지만 정문으로 돌아가면 오래 걸린다. 이 '개구멍'이 중요한 소재다. 제목에도 나오듯이. 이 개구멍을 둘러싸고 아파트 밖 아이들과 아파트 주민과의 격차와 갈등이 드러난다.

승찬이네는 고모할머니의 수술 때문에 객식구가 들어왔다. 고모할머니가 홀로 키우시는 형과 뭉치라는 이름의 강아지. 형은 승찬이보다 훨씬 크지만 어딘지 어눌하고 좀 다르다. 자폐로 추정되는 장애를 갖고 있는 듯하다. 뭉치는 넉살 좋게 승찬이를 쫓아다니는데, 어느날 등교길에 따라온 녀석을 쫓아버린 이후로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집 개도 아닌데 이 일을 어쩌지!

두번째 화자가 바로 이 강아지 뭉치다. 뭉치 시점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인물 한 명이 더 나온다. 아파트 주민인 할머니지만 커다란 여행가방을 풀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시골 사시다 도시의 아들 집으로 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이 할머니가 다친 뭉치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러니 승찬이가 못찾을 수밖에.

할머니가 드디어 여행가방을 펼쳐놓는 일이 생긴다. 아파트 바깥의 공터를 텃밭으로 일구셨기 때문이다. 흙을 손에 묻히자 드디어 할머니는 되살아나셨다. 하지만 여기서도 '개구멍' 이슈가 부각된다. 돌아서 밭에 가는 건 노인들에게 너무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아파트에는 개구멍 '뚫어파'와 '막아파'가 의견대립을 하게 된다. 할머니는 며느리를 자기쪽 편으로 만들고 싶지만 말 붙이기도 쉽지 않다. 이런 모든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며 뭉치는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다.

세번째 화자는 승찬이네 반 유빈이다. 유빈이 엄마는 동대표이자 개구멍 막아파의 선두주자이며 아파트 진입 문제로 승찬이에게 자괴감을 안긴 인물이다. 유빈이는 마마보이이고 싶지 않고 승찬이와도 잘 지내고 싶지만 엄마 때문에 번번이 어긋나고 만다. 세번째 장은 유빈이의 둥이, 마마보이 탈출기라 하겠다. 아주 극적이거나 완벽하진 않지만 꽤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개구멍이 열리는 사건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세 개의 퍼즐이 조화롭게 들어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 주변 아파트 재건축 중에 전근을 왔는데, 요즘 들어보니 재건축이 끝나고 입주가 시작되며 그동네에도 이런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새로 지은 크고 비싼 아파트의 텃세? 온갖 곳 다 걸어잠그기 등등. 동화 속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배척을 가르치는 어른들의 모습, 사랑을 베풀어주는 장애인 형의 모습, 도시살이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 과보호에 매몰되는 부모의 모습 등 주목할만한 다양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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