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0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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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독서 모임에는 상반기 헤밍웨이, 하반기 셍텍쥐페리를 만난다. 1월에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다.
 책을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요량으로 한 책에 네 작품이 들어있는 책을 샀다. 그런데 번역이 엉망이었다. 존대말을 하는 같은 사람 대화중에 갑자기 반말이 나오는가하면 스페인 지붕이야기를 하는데 '기와'지붕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말이 대체 누가하는 말인지 너무 헷갈렸다. 이럴때마다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번역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민음사로 다시 읽어보았다. 확실히 달랐다. 주인공의 괴로움이 더 와 닿았고, 주인공 제이크의 절친 빌이 이렇게 매력적인 케릭터였나하고 놀랐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재치와 친구를 생각하는 배려깊은 마음까지.  D출판사 번역본으로 읽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민음사것으로 헤밍웨이 세트 책을 다시 구입했다. 저렴하게 가려다가 오히려 돈을 더 쓴 꼴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번역의 중요함을 배웠으니 그 값으로 쳐야겠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시대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다. 헤밍웨이는 모든 게 무너지고 망가지고 혼란스러워진 시대적 배경과 그 혼란속에서 방황하는 세대들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들은 일명 '잃어버린 세대'다. 
 
 주인공 제이크는 미국사람이지만 파리로 건너와 기자생활을 하며 살고있다. 실제로 당시에는 미국의 물가가 많이 올라 파리로 건너온 예술가들이 많이 있었다. 제이크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제이크는 전쟁 참전 중 큰 부상을 입는다. 헤밍웨이는 사실 직접적으로 제이크의 부상을 언급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자연스레 알게되는데 제이크의 부상은  성불구자가 된 것이다. 민음사의 책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각주로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만 D출판사에서는 그런 언급은 안 했다. 그 점은 오히려 D출판사가 좋았다. (그러고보니 같은 작품을 여러 번역 본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든다.)
 제이크는 전쟁 중 부상으로 치료 중일때 애슐리 브렛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뒤 브렛은 제이크와 헤어지고 이제는 마이크 켐벨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와중에 여전히 제이크를 사랑한다. 제이크도 그녀를 무척 사랑하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괴로워 한다.
 애슐리는 여자가 봤을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케릭터이다. 전쟁 중 남편을 잃는 아픔을 겪은 안쓰러운 여자이기도  하지만  재혼을 앞두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는 로버트 콘과 밀회도 떠난다. 그러다 투우사 로메로와 사랑에 빠져 떠났다가 결국 제이크에게 돌아온다. 애슐리의 이런 방탕한 생활 중에도 제이크는 늘 그 자리에서 애슐리를 감싸안는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술일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늘 만나서 까페와 술집을 전전한다. 책을 다 읽을 때쯤에 나는 취한 기분마저 들었고 포도주가 먹고싶을 정도였다. 이들은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걸까. 독서모임의 총무님은 방황하는 세대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헤밍웨이의 의도가 아니였을까 하고 말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주인공 제이크와 빌이 낚시 여행을 간 대목인데 그 두 인물의 우정도 돋보이고, 그 시대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무척 좋았다. 물론 그 시원한 냇가에 담가 놓았던 포도주도 한번 맛보고 싶었다.
 다음으로 인상깊은 대목은 등장인물들이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서 투우를 관람하는 부분이다. 번역때문에 재미가 떨어졌던 D출판사의 책을 읽을 때도 이 부분은 무척 재미있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 투우 대목 때문일것이다.

  소들 중에는 거세된 황소가 있다. 이 소들은 다른 투우들이 서로 싸우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거세된 황소는 제이크를 상징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은 제이크의 성 불구자라는 낙인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가족을 잃고, 나라를 잃고, 신을 잃은 세대.

 브렛은 로메로와도 인연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다. 난처한 상황에서 결국은 제이크에게 도움을 청하고 제이크는 두말할 필요없이 브렛에게 달려간다. 그런데도 브렛은 제이크의 품에 안겨 한다는 소리가 마이크에게 다시 돌아가야겠단다. 아, 불쌍한 제이크. 어찌보면 브렛이 참 부럽다.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남자들이 그녀에게 현혹되버리고 마는가. 그리고 제이크와같은  늘 그자리에 굳건히 기다려주는 에로스적인 남자라니!

"아, 제이크, 우리 둘이 얼마든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브렛이 말했다.
앞쪽에는 카키색 제복을 입은 기마 순경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바통을 들었다. 그러자 자동차가 갑자기 속력을 늦추고 브렛 몸이 내 쪽으로 쏠렸다.
"그래 맞아. 그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아?"
내가 말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는 마지막 제이크의 대사를 보며  희망적인 느낌을 받았다. 제목 또한 희망적으로 받아들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테니까'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복현 선생님은 독서 토론회에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셨다. 제목의 의미가 긍정적인, 희망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만 인간의 허무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가 실존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듯 헤밍웨이도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데 그 차이점을 우리가 찾아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정반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내내 마음에 걸렸던  브렛의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도 제이크에게 자신은 마이크에게 돌아가겠다고 한 말.
  앞으로 제이크와 브렛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들은 함께하지 못할것이다. 그렇게 허무한 것.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작품이 시작 되기전에 언급한 [전도서] 제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가슴 아픈 인간의 현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고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 전도서

 <에필로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도서관에거 검색 중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빌려보았다. 무엇보다 스페인의 축제 중 투우장면들이 무척 기대되었다. 그리고 투우사 로메로를 어떻게 생긴 배우가 연기했을지도 무척 궁금했다.
 영화 처음 시작부터 이거 참 오래전에 만든 영화구나했다. 영화적 기술이 덜 발달 된 시기가 극명히 들어나 어색한 장면들이 많았다. 투우장면들은 창에 찔린 소가 흘리는 피 단 한 방울도 보여주지 않는다. 로메로의 외모는 내 기대 이하였다. 특히 연기를 너무 못 하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는 다소 실망했지만 책으로 읽고 상상한 부분들을 영상으로 만나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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