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영미 옮김 / 창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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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8







 나를 비로소 독서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어 준 작가는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다. 거의 반년 내내 이 작가의 작품만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 찾진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렇게 완벽한 스토리 텔러가 아님을 깨닫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른 작가의 새로운 매력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렀고 여러 작품을 접했지만 - 앞으로 더 접해야 할 것이고 그 사실이 못내 설렌다. -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진 '어떤 센스'에 대해선 여전히 회자되곤 한다.

 우리나라 서점가에서 거의 흥행을 보증하는 수표가 된 일본 추리소설가 두 명이 있다. 미야베 미유키와 히가시노 게이고, 흔히 이 둘을 꼽는데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이만한 위치에 올리게 만든 요소 중 제목 짓는 센스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독성 빼곤 내세울 것 없는 문장이라며 비판받는 그지만 제목에 있어서는 혀를 내두를 만하다.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 <명탐정의 규칙> 등 여러 작품이 읽고나서 더욱 감탄하는 제목들인데 그 중 이번 작품의 제목이 가장 탁월하다고 본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 도대체 뭔 말인가 싶은 의미심장한 제목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잘 지은 제목이 아닌가 싶다. 제법 문학적이기까지 한데 작품의 반전을 부족함 없이 표현했으며 사실 거의 대놓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이 두 번째 읽는 것이고 무려 8년 만에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감탄스런 제목이다.

 나는 어떤 소설이건 영화건 무엇이건 제목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목은 깊은 우물 속에 들어갈 때 독자들이 지지해야 할 밧줄과 같은 것으로 작품 감상에 있어서 견고한 토대가 되어 이해를 도와야 한다. 작품 감상의 시작이자 끝을 장식하는 것이 바로 제목으로 특히 제목이 잘 지어졌을 때 우리는 한껏 소름이 돋게 된다. 이 제목이 그런 의미였어?! 하면서.


 어렸을 때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그 이전의 기억이 없는 여자, 그녀에게서 사라진 기억의 실마릴 찾도록 도움을 요청 받는 주인공. 이 둘이 동행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서를 찾아 어느 외진 곳의 저택을 방문하는 둘은 그녀의 아주 어렴풋한 기억과 이 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소년의 일기와 마주하게 된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일기장이 넘어갈 동안 진행되는 기억 찾기는 예상 밖의 국면을 맞게 되는데...

 이미 과거에 벌어진 일을 헤집는 내용에, 또 저택을 뒤지며 돌아다니다가 일기를 읽는 등 전체적으로 정적이고 긴박감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점차 꼬리를 드러내는 오싹함은 물론이고 추리소설다운 복선과 반전도 구축해 읽을수록 빠져든다. 특히 인간에게 있어 기억이 어째서 필요한 것인가 역설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기억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가 솔직히 접할 때마다 와 닿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선 그 의문을 아동 학대 같은 사회적 문제와 결부하여 풀어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시 읽으니 예전처럼 몰입감이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뒤로 갈수록 힘이 붙어 여지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결말이 심심하다고 느꼈었는데 다시 보니 절도 있게 마무리 지은 것 같아 작가를 다시 보게 됐다. 이 작품은 작가에게 있어 그다지 잘 안 풀리던 시절, 이것저것 시도해 볼 때 나온 작품인데 실험작 같긴 해도 이런 작품이 하나씩 하나씩 자양분이 되어 오늘날의 작가를 만든 것이라 본다. 놓쳐서는 안 될 작가의 초기작임엔 분명하다.

어쩌면 나 역시 낡은 그 집에 죽어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죽은 내가. 그 집에서 줄곧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곳에 누워 있을 게 분명한 자신의 사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한 것일 뿐. - 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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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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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5







 인간의 본성을 두고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양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성무선악설을 지지하므로 이 논쟁이 영 의미가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 대체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성악설에 공감하지 않나 싶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고 살다 보면 자신의 입장을 먼저 내세우기 마련인데 이게 바로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이기적인 태도가 사실 사람으로서 당연한 태도라는 것이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에서 인간에게는 물론 선한 본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으나 도덕을 공부한다는 것에서 이미 본성이 악한 것을 반증한 게 아니냐고 역설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는 성악설이라는 개념을 공감하기 쉽게 그려냈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각각의 등장인물의 군상이 이 정도로 적절하고 다양하게 조명되는 작품은 처음 읽어본 것 같다. 잔잔한 축에 속하는 내용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답게 가독성 하난 끝내주고 특히 결말이 좋았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급 결말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남은 페이지 수에 비해 진행 속도는 더딘 나머지 그런 걱정이 절로 들었다. - 다행히 적절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어떻게 보면 결말이 중요하지 않은 이야긴데 그래도 나름의 매듭을 잘 지었다고 본다.

 

 중학생 소년이 학교에서 실족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년의 주검엔 집단 폭행, 한마디로 이지메의 흔적이 있었는데 경찰은 수사를 통해 4명의 학생을 가해자로 지목한다. 사건은 크게 번지고 사건 관계자들은 저마다의 입장에 밀려 다른 생각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소년에게 있어도, 소년의 가족에게 있어서도, 이지메를 한 아이들의 어머니들에게도, 소년의 급우들에게도. 소년의 죽음은 한 생명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는 절망을 안김과 동시에 숨겨져 있던 이기심이 나오는 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진실을 알고 싶은 소년의 가족, 자신의 아들만은 사건과 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가해자의 어머니들,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년과 그의 급우들이 학교 안에서 보냈던 일상들은 적나라하고 찝찝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들의 심리가 공감이 간다니. 이걸 쓴 작가나 공감하고 있는 스스로나 오싹할 노릇이었다.

 

 간단해 보였지만 조금도 간단하지 않았다. 일본 소설에서 소년 범죄가 다뤄진 게 한두 작품은 아니지만 이 소설처럼 과장되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통찰이 작렬한 작품은 몇 없을 듯하다. 소년들의 치기어린 장난기에 비해 유치할 정도로 무서운 폭력성, 하지만 아직은 어려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거지는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되는데 그게 그렇게 절묘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길가의 벌레나 개구리를 장난삼아 죽이곤 하지만 나중에 떠올려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일화만으로 모든 게 설명될 텐데 그 일화를 깊게 풀어낸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가해자 소년이 나오면 그 부모가 비난을 받기 일쑤지만 그 부모들 입장 역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착잡하다. 사랑하는 자식이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된 것도,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고통이 어떠한들 피해자의 부모 앞에서 감히 비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해 죽겠는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한없이 이기적이지만 자기 가족, 자기 자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할 사람과 모든 자식이 다 중요하다고 말할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가깝게 느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기 자식이 죄를 저질렀다고 죗값을 치르도록 등을 떠미는 부모의 얘기는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데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피해자의 가족이야말로 작중에서 가장 딱하기 그지없는 입장이나 때론 그 입장을 내세워 난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고자 아들과 상관없는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시키거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가해자로 지목됐을 뿐인 아이들을 추궁하는 등의 태도는 이성을 무시한 민폐인데 자식 잃은 부모의 감정을 앞세워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게 만든다. 피해자 가족이라 해도 사람 성품은 제각각이기에 물론 이게 일본이니까 이 정도에 끝났지 만약 우리나라였으면 주먹과 고성이 오가는 등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 아이러니함이 유독 도드라졌던 것 같다.

 작품은 딱히 주인공이랄 것 없이 여러 인물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교차되는 시점의 수가 꽤 되는데 아마 이게 최소한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각각의 시선이 여러 입장을 잘 대변해 군더더기가 없고 전반적으로 요점을 잘 정리한 느낌이 강하다. 작가의 <올림픽의 몸값>에서 두 가지 시점의 교차 서술이 어딘지 매끄럽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격이다. 소년이 죽기 전, 학교 안에서의 이야기에서 이 부분이 잘 드러난다. 중심인물 단 두 명의 시점으로만 사건의 모든 것을 설명해낸다. 구타 유발이나 학생 선후배 간의 부조리한 인간관계, 교묘한 이지메, 점차 심화되어가는 알력. 최소한의 분량으로 최대한도의 효과를 뽑아냈기에 생각하면 할수록 감탄스럽다.

 

 오쿠다 히데오는 코미디와 스릴러에 능한 작가로 평가된다. <공중그네>이라부시리즈나 <남쪽으로 튀어!> 등 좋은 코미디 작품은 많이 읽었는데 스릴러는 <올림픽의 몸값>만 읽어서 저 평가가 솔직히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이제는 다르다. <최악>이나 <방해자> 등 분량도 길고 어째 오쿠다 히데오스럽지 않을 것 같아 읽기 망설여졌던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작품만 같으면 꽤나 만족스러울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할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성찰과 상상력임에 분명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 1권 7p




고민해. 세상에 물들지 말고. 풋내 나지 않으면 신문 기자라 할 수 없지. - 2권 144p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항상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단 말입니다. 근본이 그런 생물이라고. - 2권 3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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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 위의 책들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음식들
정은지 지음 / 앨리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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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책을 감상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재미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정보를 얻길 바라며 어떤 사람은 그저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 혹은 있어 보이고 싶어 펼치는 사람도 있다. 각자 다 다른 이유로 책을 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난 이 작가처럼 책을 읽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아마 누구나 책 속에 등장한 음식들이 궁금할 때가 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먹방이 매혹적이듯 작가가 글로 묘사하는 음식의 외양, 맛은 읽는 우리로 하여금 충분히 침이 고이게 해준다. 이 책의 저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작중의 음식에 대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집중적으로 알아보기에 이른다.


 음식을 통해 바라본 책들은 의외로 각각의 내용과 맞닿아 있어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작가가 거론하는 대부분의 책들을 난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이 작가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썼는지 느껴졌다. 즐기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듯 이 책은 정말이지 깊이가 있었다. 작가가 그 책을 읽고 음식에 대해 상상하고 궁금해 하며 조사했던 원동력이었을 끌림이 나에게도 전달됐으니까.

 인간의 삶에서 음식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음식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각적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소설, 자서전, 에세이 등에서 등장인물 혹은 저자들이 자주 먹고 즐기며 먹고 찾아서 먹고 어쩔 수 없이 먹었던 모든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등장한 가게의 고로케, 알랭 드 보통이 편안함을 느꼈던 기내식, <작은 아씨들> 속 소금에 절인 라임 -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가 언급하기도 한 것 - 이나 창가의 토토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주셨을 도시락, 마르크스가 지적한 수프, 조지 오웰이 안타까워 했던 홍차, <슬픈 나막신>에서 그토록 귀했던 과자... 각각의 음식이 작중이나 집필되던 시대 속에서 가졌을 의미나 유래, 만드는 방법 등 작가가 알아낸 온갖 것들이 폭넓게 적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작가의 감상도 인상적이었다.


 참 흥미로운 주제의 칼럼들이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지간한 맛 칼럼보다 몰입됐다. 더욱이 그게 책 속의 음식들이다 보니 유독 유익했던 것도 같다. 저자가 독서가이기도 해서 이것저것 감흥이 일기도 했다. 칼럼은 아무나 못 쓰는 것인가 보다. 칼럼은 잘 안 읽었는데 앞으로도 좀 찾아 읽어봐야겠다.

 작가 말마따나 내가 했던 생각을 작가 나름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도 좋았고 처음 듣는 얘기도 접할 수 있어 재밌었고 많이 참고가 됐다. 그나저나 작가가 언급한 책들도 읽어봐야지. 안 읽은 책이 많아서 좀 창피했다.



p.s 책에 삽입된 다수의 일러스트도 정말 예뻤다.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먹는다.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쾌락이 있을까. - 7p




하지만 우리가 보다 객관적인 전기를 놔두고 굳이 자서전을 읽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세상은 물론 객관적 현실로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각각이다. 다른 사람이 해석한 세상을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특히 아주 유명한 사람이, 내가 이미 ‘객관적‘으로 아는 내용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모습을 엿보는 것에는 조금은 야비한 즐거움이 있다. - 54p




산다는 건 단순히 목숨을 이어 가는 게 아니다. 만약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효율성이나 합리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의미하고 사치스러운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사실을 외면할 때 수프는 더 이상 위로가 될 수 없다. - 193~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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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사람들처럼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에게서 찾은 행복의 열 가지 원리
말레네 뤼달 지음, 강현주 옮김 / 마일스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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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덴마크인 저자가 19년 동안 덴마크를 떠나 살았다가 '덴마크가 정말 행복한 나라'임을 깨닫고 쓴 책이다. '덴마크 사람들처럼'. 덴마크는 확실히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정평이 났고 살인적인 세금으로도 악명이 높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릇으로 유명하고 또 어떤 사람에겐 우유로 유명하고 내게는 레고로 유명하고 인어공주도 유명하고 최근엔 비선실세의 딸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나라이기도 하다.

 무엇을 숨기겠는가. 이 책은 명실상부하게도 덴마크의 행복 비결을 적어낸 책이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히 자랑하는 조로 얘기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지레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 경향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제법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더욱 객관적이게 된다고 덴마크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체감한 것들이 상당히 잘 정리됐다. 그게 잘난 체하는 기색 없이 전달되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인데 이게 바로 작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덴마크인의 겸손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는 나라. 국가는 국민의 신뢰에 보답해 헌신하는 나라. 95%~99%까지의 범인을 위한 나라.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 사회적 성공보다 개인의 행복을 날 때부터 추구하며 교육하는 나라.

 위의 수식어는 전부 덴마크에 해당하고 내가 이 책에서 극히 일부만 인용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여러 매체와 연구 조사를 토대로 덴마크가 왜 행복한 나라인지 정리했다. 작가의 의견을 연구 조사가 증명해주고 연구 조사의 와 닿지 않는 수치를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공정성과 생생함을 아주 잘 겸비했다고 볼 수 있다.

 저런 나라가 실재한다니... 덴마크는 정말이지 우리와는 아주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한 예를 들자면, 덴마크의 시장의 과일 가게에는 주인은 없고 물건과 바구니 두 개밖에 없다고 한다. 두 개의 바구니의 역할은 이렇다. 하나는 과일의 값을 넣는 바구니, 다른 하나는 잔돈 바구니. 손님들은 과일 앞에 적힌 가격대로 돈을 바구니에 넣고 - 잔돈도 확실하게 바꾸며 - 주인은 문을 닫을 때쯤에서야 어디선가 기어나와 돈만 챙기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문을 열 때와 닫을 때만 오는 셈인가...


 위 예시가 불과 첫 장에서 나온 예시다. 저자가 어렸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저 모습엔 변함이 없단다. 저, 저게 말이 되나? 일찍이 덴마크가 아주 개방적이고 - 개방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국가를 위해 섹스하고 아기를 낳읍시다!' 하고 출산 장려 캠패인이 나올 정도라고... - 세계적인 수준의 복지를 갖춘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정말 상상 이상이다.

 신뢰, 교육, 자유, 기회 균등, 겸손, 공동체 의식, 가정, 돈에 초연한 것, 양성평등 등 작가가 나름대로 살펴본 덴마크 행복의 기원은 아주 흥미로웠다. 허투루 풀어낸 내용도 없고 충분히 객관적이었고 여러모로 부러웠다. 위의 과일 가게처럼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가득하고 부정부패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을 찾도록 유도하는 교육 이념도 전부. 그렇다 보니 질투가 생기고 무력감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 덴마크니까 그렇지,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덮으려고 할 즈음에 작가가 '결론'에서 아주 길게 행복에 대한 자신의 의견, 그리고 행복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마치 우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쓴 덴마크의 행복이 와 닿지 않을 수 있으리라 서두를 밝힌다. 심지어 덴마크의 가치관을 모두가 동의할 수 없을 것이며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한다.

 요는 자신이 정말 행복하겠다며 부러워한 행복의 가치관을 자신의 상황과 국가의 상황에 따라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작가 자신이 덴마크와는 전혀 다른 프랑스에서 살고 있지만 덴마크에서의 가치관으로 행복을 쫓은 것처럼, 어디에서건 어느 상황에서건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그런 토대로 삶을 운영한다면 원하는 행복을 거머쥐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끝까지 괜찮은, 정확히는 끝에 가서 정말 괜찮아진 책이다. 알게 모르게 덴마크 사회의 모순을 밝히지 않은 책의 내용 - 기껏해야 도둑질이 쉽다는 것 정도? 당연한 얘기지... - 때문에 생긴 반감마저 녹는 기분이었다. 덴마크 사람들처럼. 내가 덴마크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면 덴마크로 이민을 가면 될 일이지만 그럴 것 없이 내가 덴마크 사람들처럼 살아도 될 일이지 않을까. 물론 너무 따라하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안 될 것 없잖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막혔던 무언가가 뚫려 한결 시원해졌다.

 덴마크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한 곳인데 이 책 덕분에 더욱 가고 싶어졌다. 솔직히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두고 두고 읽어야 할 듯하다. 얇은데 내용이 많아서 이래저래 참고할 수 있겠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덴마크를 이해하는 데 정말 유용했으니 말이다.

신뢰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주 사소한 힘이다. - 28p




자신의 소명을 찾는 일은 늘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서 의욕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런데 교육제도가 우리에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최고가 되라고 강요한다면, 우리의 소명을 찾아내는 일은 더욱 힘들 것이다. - 54p




인생은 우리를 계속해서 시험하겠지. 우리는 단지 시시때때로 문제를 바꾸고 싶을 뿐이고. - 93p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번다는 뜻이니 원하는 것을 하면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네. -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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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키의 해체 원인 스토리콜렉터 31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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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7








 추리소설 단편집은 특정 테마를 파고드는 면이 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가령 밀실살인이라든가 저택이나 배드 엔딩 등 어떤 테마에 관해 작가가 다양하게 마련한 단편 추리소설들에 이제까지 크게 실망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이 작품처럼 '해체'에 관한 추리소설 단편집은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닥 관심이 없었으나 최근 작가의 <맥주별장의 모험>을 읽고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찾아봤다. 그래, 닷쿠와 다카치와 보안 선배들 말이다.

 인체 절단이라고 하니 얼마 전에 읽은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이 떠올라 긴장이 됐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작가다 보니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총 9개의 단편이 전부 해체, 절단에 관한 추리소설인데 유머가 출중한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써서 어딘지 가볍고 유쾌하게 읽힌다. 물론 인체를 절단하는 행위 자체는 간담이 서늘하지만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사뭇 다른 취지를 갖고 접근해 정말 순수하게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 즐기며 읽을 수 있었다.


 범인은 왜 피해자를 절단했는가? 절단은 상상할 수 있듯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힘도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현장에서 해체를 하다가 발각되면 곧바로 현행범으로 잡히게 되는 리스크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해체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특별히 이로울 것도 없어 보인다. 범인이 피해자를 어지간히 증오해서 저질렀다 치기엔 여간 수지가 안 맞는 행위인지라 사건을 접하는 이들에게 불가사의함과 광기를 물씬 풍긴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범인의 절단 행위를 정신이상자의 소행, 시체를 절단해야 흥분하는 변태라는 식으로 넘겨짚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살인을 범할 죽일 놈들이 많긴 하겠지만 추리소설에서는 다르다. 추리소설 속 범인의 행위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추리소설가가 반전과 추리에 중점을 두면 둘수록 더욱 납득 가능한 이유가 마련되어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돌아가서, 도대체 범인은 왜 피해자를 절단했을까?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이리저리 추리를 펼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데뷔작에서도 흥미진진한 추리쇼를 선보였다. '해체'라는 결과를 두고 주인공들이 추리를 펼치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황당무계할지언정 과정 자체가 재밌어서 지적인 쾌감이 넘쳐났다.


 최근 읽어본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참신한 작품이었다. 오직 해체에만 몰두해 온갖 종류의, 온갖 목적의 해체 사건이 펼쳐졌는데 동기를 추적하는 추리소설답게 하나같이 예상 밖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쩔 때는 결과에 끼워 맞추느라 개연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도 있었으나 - 이 작품은 합리적인 결론만 내놓으면 사건의 진상과 맞건 아니건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한데 이게 묘하게 매력적이다. - 지적 게임으로서의 측면으로 본다면 그런대로 봐줄만했다. 또 이야기를 지독하게 꼬아놓아서 상당한 집중을 요하기도 했는데 복선도 충분히 뿌려졌고 회수도 기가 막히게 해내니 매번 '한방 먹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추리소설하면 다름아닌 '추리를 하는 소설'이어야 하는데 추리라는 게 등장인물의 몫이기만 하고 정작 독자는 추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그런 독자에 속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추리력이 달리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빨리 결말을 알고 싶어 페이지를 넘기느라 추리를 뒷전으로 미룬 것 같다. 그래도 어쩌다 진상을 맞출 때도 있지만 이래저래 불성실한 추리소설 독자임을 부정할 길이 없다.


 그런 내가 정말 오래간만에 머리를 굴리며 읽었던 추리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끊임없이 추리를 하는 등장인물 덕분에 읽는 나도 덩달아 뇌가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추리소설이 지적 게임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불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작품이 바로 <치아키의 해체 원인>이 아닐까. 그리고, 단순히 시체 절단에 국한되지 않고 인형의 팔이 잘려져 있거나 사진 속 얼굴이 도려져 있는 등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절단만 다루지 않는 등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것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이 작가가 소재에 대해 가졌던 애정과 탐구 정신은 한 명의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꼭 본받고 싶을 정도였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샘이 날 정도였다. 가끔 이런 작품이 있는데 이래저래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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