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9.5







 인간의 본성을 두고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양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성무선악설을 지지하므로 이 논쟁이 영 의미가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 대체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성악설에 공감하지 않나 싶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고 살다 보면 자신의 입장을 먼저 내세우기 마련인데 이게 바로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이기적인 태도가 사실 사람으로서 당연한 태도라는 것이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에서 인간에게는 물론 선한 본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으나 도덕을 공부한다는 것에서 이미 본성이 악한 것을 반증한 게 아니냐고 역설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는 성악설이라는 개념을 공감하기 쉽게 그려냈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각각의 등장인물의 군상이 이 정도로 적절하고 다양하게 조명되는 작품은 처음 읽어본 것 같다. 잔잔한 축에 속하는 내용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답게 가독성 하난 끝내주고 특히 결말이 좋았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급 결말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남은 페이지 수에 비해 진행 속도는 더딘 나머지 그런 걱정이 절로 들었다. - 다행히 적절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어떻게 보면 결말이 중요하지 않은 이야긴데 그래도 나름의 매듭을 잘 지었다고 본다.

 

 중학생 소년이 학교에서 실족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년의 주검엔 집단 폭행, 한마디로 이지메의 흔적이 있었는데 경찰은 수사를 통해 4명의 학생을 가해자로 지목한다. 사건은 크게 번지고 사건 관계자들은 저마다의 입장에 밀려 다른 생각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소년에게 있어도, 소년의 가족에게 있어서도, 이지메를 한 아이들의 어머니들에게도, 소년의 급우들에게도. 소년의 죽음은 한 생명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는 절망을 안김과 동시에 숨겨져 있던 이기심이 나오는 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진실을 알고 싶은 소년의 가족, 자신의 아들만은 사건과 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가해자의 어머니들,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년과 그의 급우들이 학교 안에서 보냈던 일상들은 적나라하고 찝찝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들의 심리가 공감이 간다니. 이걸 쓴 작가나 공감하고 있는 스스로나 오싹할 노릇이었다.

 

 간단해 보였지만 조금도 간단하지 않았다. 일본 소설에서 소년 범죄가 다뤄진 게 한두 작품은 아니지만 이 소설처럼 과장되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통찰이 작렬한 작품은 몇 없을 듯하다. 소년들의 치기어린 장난기에 비해 유치할 정도로 무서운 폭력성, 하지만 아직은 어려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거지는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되는데 그게 그렇게 절묘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길가의 벌레나 개구리를 장난삼아 죽이곤 하지만 나중에 떠올려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일화만으로 모든 게 설명될 텐데 그 일화를 깊게 풀어낸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가해자 소년이 나오면 그 부모가 비난을 받기 일쑤지만 그 부모들 입장 역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착잡하다. 사랑하는 자식이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된 것도,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고통이 어떠한들 피해자의 부모 앞에서 감히 비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해 죽겠는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한없이 이기적이지만 자기 가족, 자기 자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할 사람과 모든 자식이 다 중요하다고 말할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가깝게 느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기 자식이 죄를 저질렀다고 죗값을 치르도록 등을 떠미는 부모의 얘기는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데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피해자의 가족이야말로 작중에서 가장 딱하기 그지없는 입장이나 때론 그 입장을 내세워 난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고자 아들과 상관없는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시키거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가해자로 지목됐을 뿐인 아이들을 추궁하는 등의 태도는 이성을 무시한 민폐인데 자식 잃은 부모의 감정을 앞세워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게 만든다. 피해자 가족이라 해도 사람 성품은 제각각이기에 물론 이게 일본이니까 이 정도에 끝났지 만약 우리나라였으면 주먹과 고성이 오가는 등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 아이러니함이 유독 도드라졌던 것 같다.

 작품은 딱히 주인공이랄 것 없이 여러 인물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교차되는 시점의 수가 꽤 되는데 아마 이게 최소한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각각의 시선이 여러 입장을 잘 대변해 군더더기가 없고 전반적으로 요점을 잘 정리한 느낌이 강하다. 작가의 <올림픽의 몸값>에서 두 가지 시점의 교차 서술이 어딘지 매끄럽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격이다. 소년이 죽기 전, 학교 안에서의 이야기에서 이 부분이 잘 드러난다. 중심인물 단 두 명의 시점으로만 사건의 모든 것을 설명해낸다. 구타 유발이나 학생 선후배 간의 부조리한 인간관계, 교묘한 이지메, 점차 심화되어가는 알력. 최소한의 분량으로 최대한도의 효과를 뽑아냈기에 생각하면 할수록 감탄스럽다.

 

 오쿠다 히데오는 코미디와 스릴러에 능한 작가로 평가된다. <공중그네>이라부시리즈나 <남쪽으로 튀어!> 등 좋은 코미디 작품은 많이 읽었는데 스릴러는 <올림픽의 몸값>만 읽어서 저 평가가 솔직히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이제는 다르다. <최악>이나 <방해자> 등 분량도 길고 어째 오쿠다 히데오스럽지 않을 것 같아 읽기 망설여졌던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작품만 같으면 꽤나 만족스러울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할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성찰과 상상력임에 분명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 1권 7p




고민해. 세상에 물들지 말고. 풋내 나지 않으면 신문 기자라 할 수 없지. - 2권 144p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항상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단 말입니다. 근본이 그런 생물이라고. - 2권 3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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