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탁 위의 책들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음식들
정은지 지음 / 앨리스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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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책을 감상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재미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정보를 얻길 바라며 어떤 사람은 그저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 혹은 있어 보이고 싶어 펼치는 사람도 있다. 각자 다 다른 이유로 책을 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난 이 작가처럼 책을 읽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아마 누구나 책 속에 등장한 음식들이 궁금할 때가 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먹방이 매혹적이듯 작가가 글로 묘사하는 음식의 외양, 맛은 읽는 우리로 하여금 충분히 침이 고이게 해준다. 이 책의 저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작중의 음식에 대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집중적으로 알아보기에 이른다.


 음식을 통해 바라본 책들은 의외로 각각의 내용과 맞닿아 있어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작가가 거론하는 대부분의 책들을 난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이 작가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썼는지 느껴졌다. 즐기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듯 이 책은 정말이지 깊이가 있었다. 작가가 그 책을 읽고 음식에 대해 상상하고 궁금해 하며 조사했던 원동력이었을 끌림이 나에게도 전달됐으니까.

 인간의 삶에서 음식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음식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각적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소설, 자서전, 에세이 등에서 등장인물 혹은 저자들이 자주 먹고 즐기며 먹고 찾아서 먹고 어쩔 수 없이 먹었던 모든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등장한 가게의 고로케, 알랭 드 보통이 편안함을 느꼈던 기내식, <작은 아씨들> 속 소금에 절인 라임 -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가 언급하기도 한 것 - 이나 창가의 토토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주셨을 도시락, 마르크스가 지적한 수프, 조지 오웰이 안타까워 했던 홍차, <슬픈 나막신>에서 그토록 귀했던 과자... 각각의 음식이 작중이나 집필되던 시대 속에서 가졌을 의미나 유래, 만드는 방법 등 작가가 알아낸 온갖 것들이 폭넓게 적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작가의 감상도 인상적이었다.


 참 흥미로운 주제의 칼럼들이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지간한 맛 칼럼보다 몰입됐다. 더욱이 그게 책 속의 음식들이다 보니 유독 유익했던 것도 같다. 저자가 독서가이기도 해서 이것저것 감흥이 일기도 했다. 칼럼은 아무나 못 쓰는 것인가 보다. 칼럼은 잘 안 읽었는데 앞으로도 좀 찾아 읽어봐야겠다.

 작가 말마따나 내가 했던 생각을 작가 나름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도 좋았고 처음 듣는 얘기도 접할 수 있어 재밌었고 많이 참고가 됐다. 그나저나 작가가 언급한 책들도 읽어봐야지. 안 읽은 책이 많아서 좀 창피했다.



p.s 책에 삽입된 다수의 일러스트도 정말 예뻤다.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먹는다.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쾌락이 있을까. - 7p




하지만 우리가 보다 객관적인 전기를 놔두고 굳이 자서전을 읽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세상은 물론 객관적 현실로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각각이다. 다른 사람이 해석한 세상을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특히 아주 유명한 사람이, 내가 이미 ‘객관적‘으로 아는 내용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모습을 엿보는 것에는 조금은 야비한 즐거움이 있다. - 54p




산다는 건 단순히 목숨을 이어 가는 게 아니다. 만약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효율성이나 합리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의미하고 사치스러운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사실을 외면할 때 수프는 더 이상 위로가 될 수 없다. - 193~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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