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키의 해체 원인 스토리콜렉터 31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9.7








 추리소설 단편집은 특정 테마를 파고드는 면이 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가령 밀실살인이라든가 저택이나 배드 엔딩 등 어떤 테마에 관해 작가가 다양하게 마련한 단편 추리소설들에 이제까지 크게 실망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이 작품처럼 '해체'에 관한 추리소설 단편집은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닥 관심이 없었으나 최근 작가의 <맥주별장의 모험>을 읽고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찾아봤다. 그래, 닷쿠와 다카치와 보안 선배들 말이다.

 인체 절단이라고 하니 얼마 전에 읽은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이 떠올라 긴장이 됐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작가다 보니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총 9개의 단편이 전부 해체, 절단에 관한 추리소설인데 유머가 출중한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써서 어딘지 가볍고 유쾌하게 읽힌다. 물론 인체를 절단하는 행위 자체는 간담이 서늘하지만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사뭇 다른 취지를 갖고 접근해 정말 순수하게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 즐기며 읽을 수 있었다.


 범인은 왜 피해자를 절단했는가? 절단은 상상할 수 있듯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힘도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현장에서 해체를 하다가 발각되면 곧바로 현행범으로 잡히게 되는 리스크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해체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특별히 이로울 것도 없어 보인다. 범인이 피해자를 어지간히 증오해서 저질렀다 치기엔 여간 수지가 안 맞는 행위인지라 사건을 접하는 이들에게 불가사의함과 광기를 물씬 풍긴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범인의 절단 행위를 정신이상자의 소행, 시체를 절단해야 흥분하는 변태라는 식으로 넘겨짚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살인을 범할 죽일 놈들이 많긴 하겠지만 추리소설에서는 다르다. 추리소설 속 범인의 행위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추리소설가가 반전과 추리에 중점을 두면 둘수록 더욱 납득 가능한 이유가 마련되어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돌아가서, 도대체 범인은 왜 피해자를 절단했을까?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이리저리 추리를 펼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데뷔작에서도 흥미진진한 추리쇼를 선보였다. '해체'라는 결과를 두고 주인공들이 추리를 펼치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황당무계할지언정 과정 자체가 재밌어서 지적인 쾌감이 넘쳐났다.


 최근 읽어본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참신한 작품이었다. 오직 해체에만 몰두해 온갖 종류의, 온갖 목적의 해체 사건이 펼쳐졌는데 동기를 추적하는 추리소설답게 하나같이 예상 밖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쩔 때는 결과에 끼워 맞추느라 개연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도 있었으나 - 이 작품은 합리적인 결론만 내놓으면 사건의 진상과 맞건 아니건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한데 이게 묘하게 매력적이다. - 지적 게임으로서의 측면으로 본다면 그런대로 봐줄만했다. 또 이야기를 지독하게 꼬아놓아서 상당한 집중을 요하기도 했는데 복선도 충분히 뿌려졌고 회수도 기가 막히게 해내니 매번 '한방 먹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추리소설하면 다름아닌 '추리를 하는 소설'이어야 하는데 추리라는 게 등장인물의 몫이기만 하고 정작 독자는 추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그런 독자에 속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추리력이 달리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빨리 결말을 알고 싶어 페이지를 넘기느라 추리를 뒷전으로 미룬 것 같다. 그래도 어쩌다 진상을 맞출 때도 있지만 이래저래 불성실한 추리소설 독자임을 부정할 길이 없다.


 그런 내가 정말 오래간만에 머리를 굴리며 읽었던 추리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끊임없이 추리를 하는 등장인물 덕분에 읽는 나도 덩달아 뇌가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추리소설이 지적 게임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불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작품이 바로 <치아키의 해체 원인>이 아닐까. 그리고, 단순히 시체 절단에 국한되지 않고 인형의 팔이 잘려져 있거나 사진 속 얼굴이 도려져 있는 등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절단만 다루지 않는 등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것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이 작가가 소재에 대해 가졌던 애정과 탐구 정신은 한 명의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꼭 본받고 싶을 정도였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샘이 날 정도였다. 가끔 이런 작품이 있는데 이래저래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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