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메레르 7 - 황금의 도시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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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이로써 국내에 출간된 '테메레르' 시리즈를 다 읽었다. 아직 8권과 마지막 작품인 9권이 4년이 지나도 출판되지 않고 있고 피터 잭슨의 영화화 소식도 들리지 않는데 정말이지 초조하기 그지없다. 지난 6권에서 잠시 흥미가 떨어지긴 했지만 이번 권에서는 흐름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진짜 다음 권은 언제 나오려나?

 이제 로렌스의 여정은 역사보단 작가의 재창작에 의존한다고 봐야 맞다. 용이 등장한 것치곤 상당히 사실적인 구석이 있는 시리즈였는데 무대를 다른 대륙으로 옮기니 판타지가 따로 없다. 물론 이 작품은 처음부터 판타지였지만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작가의 상상력에 날개가 달리는 것만 같다.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설정은 그 어떤 작품보다 돋보인다.

 

 사실 로렌스의 여정이 슬슬 억지스럽지 않은가 하고 느끼던 찰나였는데 이번 권에서는 1, 2권에서 느낀 몰입도가 다시 돌아왔다. 지금까지는 험난한 여정길이 아무리 억지스럽더라도 따라갈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간신히 붙잡았었는데 이번 7권에선 그런 느낌이 덜했다.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지만 잉카 제국의 용들과의 갈등도 재밌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도리어 심화되는 분위기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상 역사극이 이 정도로 재밌는 건 처음 봤다.

 세계 일주를 한 거나 다름없는 로렌스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다시 중국이 됐다. 이야기의 새로운 국면에 따라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결말이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어떤 식으로 결착이 나고 테메레르가 바라듯 용권이 신장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안에서 로렌스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잘 버텨줄 수 있을는지... 고지가 머지 않은 만큼 더욱 기대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보다 진정한 존경의 대상이 되기가 더 어려운 법이거든. 잔인하게 굴면 누구든 두려워하겠지. 하지만 존경을 받으려면 위대한 업적을 쌓아야만 해. - 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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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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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7






 즐겨보는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서 '부모님과 정치 얘기를 한다?'라는 의제가 나온 적이 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정치 얘기를 해야한다고 손을 들었다.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기에 앞서 대화를 통해 다양한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야한다는 게 주장의 근거였고 덧붙여서 가족끼리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지만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정치를 주제로 숱하게 언성을 높이신 걸 본 터라 어딘지 모범적으로만 들리는 얘기였다.

 그때 캐나다인인 기욤은 자신은 부모와 정치 얘기를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서두를 풀었다. 부모와의 대화는 분명 세뇌당할 여지가 있는데, 분명한 건 윗세대는 돌이켜 보면 항상 '틀려왔고' - 여성, 흑인, 동성애자, 아동, 장애인, 왼손잡이... 이들이 추잡한 편견과 근거도 없는 미신에 희생당했다는 걸 부정해선 안 된다. 지적하는 건 별개의 얘기지만. -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보다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윗세대한테 세뇌당해선 안 된다는 게 주장의 내용이었다.


 나는 여기서 기욤이 확실히 외국인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기욤은 이제 캐나다보다 한국에서 산 지 더 오래됐다고 하고 한국말도 유창하지만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외국인이 따로 없다. 장유유서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 우리나라에서 저 정도로 윗세대를 시원하게 비판하는 말은 좀처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극단적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묵인해왔던 세대 갈등의 핵심을 제대로 꼬집어서 속으로 굉장히 뜨끔했다. 난 왜 기욤보다 일찍 저런 말을 하지 못했던 걸까. 이러니 말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모든 어른이 다 존경할 만한 위인이진 않다. 아직 20대인 나보다도 무식하고 어리석고 열등한 어른을 지위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내게 한 번도 모범을 보인 적 없으면서 나이만 많다고 무턱대고 존경받으리라 기대하는 어처구니 없는 어른도, 정말 나이 빼곤 내세울 게 없는 어른을 우리는 적잖이 마주친다. 구태여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 분명하게 느꼈던 것이리라.


 로알드 달의 <마틸다>는 이번이 두 번째로 읽은 것인데 다시 읽으니 상당히 무시무시한 작품이구나 싶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동인 마틸다가 하필 최악의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것도 모자라 기껏 입학한 학교의 교장이 희대의 사이코이자 아동학대범이라는 설정이 동화틱하게 그려져 수위가 조절된 게 일단 눈에 띈다. 어렸을 적에 읽었을 땐 마틸다의 응징에 통쾌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마틸다가 용한 나머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천박한 부모에게 물들지 않고 교장에게 기죽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면 마틸다의 놀라운 재능에서 기인된 것이겠지만 어른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은 마틸다가 그렇게 장하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로알드 달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데 오랜만에 읽어도 유치하지 않았고 이전보다 많은 부분이 와 닿아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작중에서 마틸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어른을 응징하는데 그게 어린애답게 치기 어린 부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일련의 사단이 근본적으로 어린이, 이른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하대하는 못된 어른의 막무가내식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일말의 동정심이나 거부감이 일진 않았다. 오히려 못된 어른을 정면에서 부정할 수 있는 사고를 길러주기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동화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아직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더 많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들 아래에 있는 내가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면 착잡해지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못난 어른이 감히 내 위에 있으려고 한다면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며, 마치 마틸다처럼 '방도'를 모색하는 현명함을 갖춰야겠다고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부터라도 정당한 반항심을 기르자.

 영화화도 됐다는데 그것도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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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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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7.8






 제목이나 표지를 보니 작풍이 어렴풋이 연상됐는데 막상 다른 풍경이 펼쳐져서 얼떨떨했던 작품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게 바로 작가의 노림수였는지 모르겠다. 표지는 둘째 치고 - 저게 원서의 표지이기도 하다는데 일본인들 책 표지 꾸미는 센스는 늘 느끼지만 정말 이상하다. - 폐쇄병동, 정신병동을 떠올리노라면 밝은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정신병동을 무대로 한 작품은 종종 접하지만 밝은 이미지만큼이나 어두운 이미지도 유감없이 그려서 인식 자체에는 그다지 변함이 없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현직 정신과 의사 작가의 작품이라니 흥미로워 보였지만 뭐 어차피 비슷비슷한 작품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신파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했거나 통원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등장하는데 환자치곤 너무 멀쩡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너무 환자 같지 않아서 섣불리 몰입이 안 될 정도였는데 이게 우리의 편향된 인식을 꼬집기 위한 설정이었다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아직도 믿기지 않는데 작중의 환자들은 환자 같지 않은 몰골을 하고 있다. 간질이나 당뇨와 마찬가지로 간헐적으로 터지는 증상이지만 그게 '정신적인' 증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면 색안경을 끼게 되는 세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또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들 간의 드라마로 하여금 일종의 반성마저 들게 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뿐이라면 우리가 색안경을 껴도 정말 두껍게 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 자체는 그렇게 몰입도가 높지 않았다고 본다. 일부분은 신파적이고 일부분은 또 상투적이지 않았나 싶다. 여러 캐릭터의 군상이 긴밀하게 연결됐다기 보단 극의 전개를 위해 필요할 때 적당히 나열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전개가 살짝 느닷없거나 빨라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더욱이 작가가 정신과 의사라서 쓸 수 있는 작품이란 느낌도 그리 강하게 들지 않았다. 이른바 현장감이랄지, 전문적인 부분에서 해당 직업의 종사자이기에 묘사함에 있어 수월했던 부분이 아주 없진 않았겠지만 유달리 통찰력이 발휘되거나 돋보이는 전개가 미미했던 게 살짝 아쉬웠다.


 기대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비슷한 소설이 겹쳐 보였는지 몰라도 약간 과대평가 받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따뜻한 시선이라든가 주제의식은 괜찮았지만 '읽다가 눈물로 적셔질' 만큼 감동적이었다는 평엔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뭉클한 나머지 여운에 젖어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는 정도가 이 작품에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성의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 167p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 3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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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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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9.2






 JTBC 대선 후보 토론 때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문재인 후보에게는 적잖은 치명타였을 텐데 - 내가 그의 보좌관이었더라면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 이 논란에 대해 나중에 심상정 후보라도 정리를 해줘서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성 정체성은 정체성일 뿐, 개인에게 있어 호와 불호가 있을 순 있지만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되지 못하며 차별 또한 있을 수 없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소설집을 읽고나서 시청한 토론이었기에 이 논란이 유독 충격적이었다.

 소설가 메리언 데인 바우어가 편집한 <앰 아이 블루?>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성장 문학이 수록된 엔솔로지다. 이 책이 출간된 해를 보니 자그마치 20년도 더 전이던데 이게 오늘날까지 읽힐 만큼 아직도 동성애 차별 문제가 있다는 게 씁쓸했다. 아주 얄궂은 말이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분명 '시대를 관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참여한 작가가 꽤 되는데 작품들이 하나같이 개성적이었다. 게이가 게이를 알아볼 수 있는 '게이더망'부터 커밍아웃을 하기에 앞서 오가는 좌절과 용기, 연인에서 친구 사이가 된 이성 친구나 사랑의 도피 등 다양하게 풀어냈다. 개인적으로는 게이와 레즈비언 같은 동성애자에 국한하고 다른 성소수자에 대한 얘기가 없었던 건 아쉬웠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남들과는 곱절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때론 가족들에게마저도 멸시를 당하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교훈적이었다.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표제작인 '앰 아이 블루?'와 최근에 <헬프>와 동일 선상의 감상을 남긴 '어쩌면 우리는', 그리고 편집자의 작품인 '거꾸로 추는 춤'을 꼽는다. '앰 아이 블루?'는 고백을 함에 있어 신중해야 하는 동성애자의 애환을 달랜 유쾌한 작품으로 동성애자가 파란색으로 보이는 게이더망을 얻게 되면서 따라오는 깨달음과 해피엔딩이 쾌감을 선사해준다.


 '어쩌면 우리는'은 최근 읽은 <헬프>가 떠올랐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차별이란 연쇄적으로 작용한다며 괜히 심각해졌는데 이 작품은 개방 또한 연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유대인 할머니가 손녀의 커밍아웃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거꾸로 추는 춤'은 동성애 문제에서 빠지지 않고 개입되는 종교를 배경으로 둔다. 종교적 장소인 수녀원에서 너무나 비인도적으로 두 동성애자 소녀를 추방한 내용은 일종의 추잡함마저 느끼진다. 당장 명동을 거닐면 동성애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피켓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와 비슷한 역겨움을 풍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소녀가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진정한 사랑이 시작됐음을 암시하니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제목도 신의 한 수였다. 거꾸로 추는 춤은 우스꽝스럽다. 관객의 시선이나 박수를 중요시한다면 거꾸로 추지 못하겠지만 그것들이 딱히 중요하지 않다면 즐겁게 추면 그만이다. 허를 찌르는, 곱씹을수록 좋은 제목이다.


 지금까지 읽은 엔솔로지 중 가장 진실되며 재밌었다. 비슷한 주제의 책이 또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동성애자 청소년의 희로애락에는 범접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아주 얄궂게도 말이다.

게이를 한 명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단지 모른다고 착각할 뿐이지. - 26p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은 인종도 성별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 - 57p




하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용기만 낸다면 얼마든지 따라 들어갈 수 있도록. - 138p




난 남들이 잘못 넘겨짚게 내버려두는 사람들을 혐오한다네. - 228p




관객의 시선이나 박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중요한 건 춤입니다. - 2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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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이재웅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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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9







 성장문학의 불문율 중 하나로 애늙은이 같은 주인공을 들 수 있겠다. 그들은 어른 못지 않은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행동에 제약이 따른다. 다시 말하지만 성장문학이라고 하면 꼭 공유하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만날 때마다 질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만날 때마다 경이롭고 다른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처절하다. 유독 이 작품이 그랬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내가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 걸 보고 변태 같은 소설임을 상정하고서 말을 거는 사람들이 꼭 있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데, 한 번이라도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보긴 했는지 진지하게 따지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쏘아붙이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정도다. 절대적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소설도 정말 일본 못지않게 변태 같다는 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특히 성姓을 묘사함에 있어서는 그 농도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일본 소설은 차라리 해맑기라도 하지.


 상투적이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는 얘기부터 꺼내겠다. 처음엔 가난한 소년이 나오길래 수없이 답습한 비극의 일종이겠니 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누나가 주인공을 거두어들이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난은 우리나라 소설에서 안 다뤄지는 게 더 이상한 낯익은 소재긴 하지만 다루는 방식에 따라 와 닿거나 지루하게만 여겨질 수 있는 법이다. 이 소설에선 1억의 빚을 진 주인공의 누나가 포주인 남자 밑에서 어떤 식으로 빚을 갚는지,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누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묘사하는데 아이의 눈을 거쳤음에도 잔혹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작품 속 문체가 투박한 게 상당히 독특했다. 흡사 번역 소설인 듯 주어 동사 목적어를 꼬박꼬박 넣어서 나열되는 등장인물들 대사가 어색하면서도 제법 느낌 있었다. 글쎄, 뭐라 말은 못하겠는데 이 문장이 가식은 개나 준 작품에 미치도록 잘 어울리긴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난한 적이, 더욱이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가난했던 경험이 없는데 나와 같은 모든 사람들은 이 작품의 이야기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말이 궁금해서 고통스럽지만 읽어나가야만 했다. 페이지가 줄어들어도 끝없이 고통스럽고 어두컴컴해서 불안한 와중에도 말이다. 날 것 그대로의 정경을 머리에 피도 마르기 전에 깨우쳐서 조금도 아이답지 않은 서술이 내 불안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위에 애늙은이 주인공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얘는 처음에 스스로 밝힌 것처럼 '늙은 소년'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 단순하면서도 모순된 단어가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꿈도 뭣도 없이 너나 할 것 없는 비정한 현실 속에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섥혔을 뿐이다. 하나같이 동정이 가고 하나같이 한숨이 나오는 행색들이다. 빚을 진 누나나 그 누나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포주나 누나를 사랑하고 만 공원이나 포르노 만화를 그리기 싫어 콜택시 기사로 연명하는 아저씨나 자신을 늙은 소년이라고 부르며 지나치게 냉랭한 주인공... 말할 필요도 없다. 실은 전부 외면하고 싶지만 이 작품은 그걸 허용하지 못하게끔 그들의 삶에 관여하게 만들어버린다. 제3자가 뭐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무력감, 마치 주인공이 겪는 것처럼.


 모르고 지나쳤더라면 정말 후회했을 작품이다. 물론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지만, 말이 안 되는 표현을 써가면서 이제서야 읽은 나 자신을 꾸짖고 싶다. 불쾌한 작품이었지만 몰라선 안 될 불쾌함이기 때문이다.

너는 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증오하니까요.

그건 사탄의 마음이야.

맞아요. 사탄의 마음이에요. 나는 사탄이 좋아요. 사탄은 맨날 지고, 욕만 먹고, 쫓겨 다니기만 하잖아요. 선생님은 맨날 천사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천사는 가난하지도 않고, 더러운 옷도 입지 않고, 저 하늘 위에서 웃을 일밖에 없는데 왜 제가 천사를 좋아해야 하죠?

(중략)그때, 나는 내 머리를 온통 지배했던 막연했던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증오였다. -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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